146화
포커스의 데뷔 소식에 대중들은 새로운 흥밋거리를 찾은 듯 폭발적인 반응이었다.
-느슨해진 신인남돌판에 긴장을 주는 포커스의 데뷬ㅋㅋㅋㅋ
-신인상은 무조건 크리드일거같아서 재미없었는데 좋다
└그래도 신인상은 크리드일 듯?
└VM인데?ㅋㅋㅋㅋㅋ
-루커스 동생그룹이 드디어 나오넼ㅋㅋㅋㅋ
-김병대는 뭐냐? 투마월에서 그러고도 데뷔를 하네?
└저기서 병대가 제일 인지도 높은데 개소리ㄴㄴ
└좋은의미로 높은 인지도가 아니니까?
-재성인가 쟤가 그 전설의 VM비공연생인가봄
-재성이 잘생겼네;;
└ㅇㅇ보급형 현우같음 VM상이라는 게 있나봐
└현우가 누구야
└루커스 리더 모름?
오재성에 대한 대중들의 반응도 호의적이었다. 찾아보니 얼마 전 루커스의 콘서트에서 우연히 찍힌 사진이 화제였고, VM 소속사 팬들에게 비주얼 담당인 비공개 연습생으로 기대를 받고 있었던 모양이다. 그때 요란한 노크 소리와 함께 선우 형이 들어왔다.
“대박, 기사 봤어?”
“포커스 말하는 거예요?”
“봤구나!”
저 형은 정말 하루 종일 핸드폰만 보고 사는 걸까? 어떻게 저렇게 소식이 빠르지?
“그게 먼 소리예여…….”
요란한 소리에 잠이 깼는지 강도현이 눈을 비비며 물었다.
“VM에서 신인 나온대!”
“아, 뭐야…….”
“이 반응은 뭐지? 이미 알고 있던 거처럼 말한다?”
“도현이는 어제 전화 받아서 이미 알고 있었어요.”
“아하, 어제 그 전화였어?”
“뭐, 언제 데뷔한대요? 연말쯤인가…….”
“다음 달에 데뷔한다는데?”
내내 몽롱한 눈으로 묻고 답하던 강도현의 동공이 커졌다.
“다음 달? 그렇게나 빨리요?”
“뭐야, 이미 알고 있던 거 아니야?”
강도현도 예상보다 앞당겨진 포커스의 데뷔에 당황한 듯했다. 하긴 곧 데뷔한다는 전화 하나 주고, 다음 날 공식 기사를 낼 거라고는 생각도 못 했겠지.
“어쩐지… 씨넷 방문하면서 얼굴 한번 보겠다고 한 게 이상하다고는 생각했는데.”
“누가?”
“우리 소속사 실장님.”
“와우.”
강도현은 혹시라도 내가 문어대가리와 마주치게 될 것을 걱정했는지 말했다.
“문어… 아니 이 실장은 내가 붙잡고 있을게. 둘이 부딪혀서 좋을 거 없잖아.”
“그래, 고마워.”
말은 이렇게 했지만 마주치더라도 상관없었다. 오히려 마주치기를 기대하면 모를까. 연습생 시절에나 문어대가리한테 벌벌 떨었지, 산전수전 다 겪고 다시 마주한 문어대가리는 더 이상 공포의 대상이 아니었다.
“너도 연습실 갈 거야?”
“응, 문어대가리 만나고 바로 연습실로 가려고.”
“그래, 그때 보자.”
데뷔 앨범 활동이 끝나고 일주일간의 휴식 기간이 생겼다. 하지만 말만 휴식이지 멤버들 모두 연습실에 나오는 것을 선택했다. 이번 휴가가 끝나면 곧장 다음 앨범 활동 준비가 시작될 예정이기 때문이었다. 일주일이라는 짧은 시간이지만 모두 이번 활동에서 아쉬웠거나, 보완할 점을 채워 나가기로 했다.
사옥으로 향하는 길에 매니저 형으로부터 뜻밖의 소식을 들었다.
“추석 특집 노래 프로그램이요?”
“응, 어제 섭외 들어왔다고 연락받았어.”
“대박! 승빈이 형, 진짜 축하해요!”
“어, 고마워.”
“근데 어떤 프로예요?”
“가제긴 한데 ‘시크릿 싱어’래.”
“시크릿 싱어요?”
“어, 얼굴 가리고 야외에서 노래 부르는 거라던데.”
미쳤다. 매니저 형이 말해 준 ‘시크릿 싱어’는 얼굴을 가리고 목소리만으로 대결하는 노래 경연 프로그램이었다. 정체를 숨기는 노래 경연 프로그램은 이전에도 이후에도 많았지만, 시크릿 싱어만의 차별점은 바로 영상미였다.
스튜디오에서 녹화가 진행되는 다른 경연 프로그램과는 다르게, 전국 곳곳을 돌아다니며 야외에서 공연을 하는 게 가장 큰 특징이었다. 멋진 풍경과 어우러지는 무대에 화제성은 물론이요, 위튜브에서의 클립 조회 수도 엄청난 프로그램이었다.
게다가 주말 황금 시간대에 편성되어 대중성이 높고, 노래 실력만을 보여 주기 좋아서 많은 가수들이 출연하고 싶어 하는 예능이었다. 대형 기획사 및 라이징 신인들의 예능 등용문이 되기도 했다.
티벡스 시절에는 대표가 영혼을 끌어모아서 한번 출연할 뻔했지만, 갑자기 컴백이 잡힌 다른 유명 아이돌에게 자리를 뺏겼다. 그런데 참가자로, 그것도 첫 시작인 파일럿 프로그램에 출연하게 되다니- 꿈만 같았다.
“얼굴을 가리면 완전 노래 실력으로 대결하는 거 아니에요?”
“이제 문승빈 노래 잘하는 거 세상 사람들이 다 알겠네~”
“강도현 또 오바한다.”
“오바라니~ 난 사실을 말했을 뿐이라고.”
“오늘내일 중으로 선곡 마치고 다음 주 수요일에 녹화니까… 한 일주일 연습 시간 있을 거야.”
“네.”
“1차로 승빈이 네가 선곡하고, 합주 연습하면서 최종곡 선정할 거고.”
“네!”
연습실에 도착해서도 어떤 곡을 선곡할까 고민했다.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아무래도 발라드였다. 가장 익숙한 장르이기도 하고, 대중성을 고려해도 좋은 선택이었다. 하지만, 단순히 노래를 잘한다는 걸 보여 주는 것보다 다양한 장르를 소화할 수 있다는 걸 보여 주고 싶은 욕심도 있었다.
그때 머릿속을 스쳐 지나간 것이 ‘락 발라드’였다. 총 2라운드이지만 1차는 단체곡이기 때문에 개인적으로는 딱 한 곡만 준비할 수 있었다.
‘개인 곡은 무조건 락 발라드를 선곡해야겠어.’
처음 주어지는 기회였기에 해 보고 싶었던 장르에 도전하기로 했다. 밑져야 본전이라고, 1등이 될 욕심은 없었다. 이미 프로그램 자체가 엄청나게 성공할 미래를 알고 있었기에 기억할 만한 임팩트를 주는 게 내 목표였다.
그 후로 한참을 음악 사이트의 노래를 살펴보면서 하나하나 들어 보는데 마음에 딱 꽂히는 곡이 없었다.
“형, 무슨 노래 할 거예요?”
“일단 2차는 락 발라드 곡으로 하려고.”
“아, 승빈아. 나도 노래 추천해 줘도 돼?”
“네! 그럼요.”
지운이 형이 플레이리스트에서 곡 하나를 선택해서 보여 줬다.
형이 추천한 노래는 더 소울의 ‘여름의 끝’이었다. 여름에 헤어진 연인을 그리워하는 가사로 수많은 남자 보컬들의 18번과도 같은 노래다. 나 역시 티벡스 시절 이 노래를 많이 듣고, 연습했었다. 호소력 짙은 목소리와 감정 표현이 중요한 곡이어서 나에게도 제격이었다.
“청춘예찬 무대 준비할 때부터 언제 한번 꼭 커버해 달라고 부탁하고 싶었어.”
“한번 불러 봐-”
“그래, 한 소절 불러 보고 결정하자.”
갑작스러운 요청이었지만 침착하게 노래를 불렀다.
[쏟아지는 빗소리만
멍하니 듣고 있었어
끝내 네 번호를
누르지 못하고 있어]
부르면서도 딱 내가 찾던 곡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후렴구를 부르고 반응을 살폈다. 지운이 형과 윤빈 형은 조용히 감탄하고 있었고, 선우 형은 잔뜩 호들갑을 떨었다.
“야, 다른 노래 생각할 필요 없어. 이걸로 해! 이것보다 좋은 노래 없을 거 같아.”
“맞아. 승빈아, 이 노래로 하자.”
“그, 그럴까요?”
지운이 형만이 그래도 다른 곡들도 생각해 보고 고르라는 조언을 해 줬지만, 이미 답은 정해져 있는 듯했다.
* * *
“배고파-”
선우 형이 의자에 널브러져서 외쳤다. 아침부터 계속된 연습에 다들 허기진 상태였다.
“곧 점심시간이네, 먹고 마저 할까?”
“유현이 형, 회사 구내식당 갈까요?”
“오늘 메뉴 별로야, 나가서 먹자.”
“역시 윤빈 형이야. 메뉴 빠삭하게 다 외우고 있잖아.”
“빠삭하게?”
“음… 퍼펙트하게!”
“좋은 거네?”
박재봉의 눈높이 영어 번역에 윤빈 형은 언제나처럼 허허실실 웃었다.
“나는 오늘 점심은 패스하려고.”
“왜? 안 먹으면 힘없어, 승빈아.”
지운이 형이 걱정하는 듯해 별거 아니라는 듯 답했다.
“아침을 많이 먹어서 아직 배가 별로 안 고파요.”
“그럼 저희 올 때 간식거리라도 사올까요?”
“그래, 시간 지나면 배고파질 수도 있으니까 빵이라도 사 올게.”
“고마워요.”
모두 떠나고 연습실에 혼자 남았다. 스텟창을 점검하려면 이편이 더 편했다.
[이름: 문승빈]
외모: A-
끼: B+
보컬: A
댄스: B-
프로듀싱: B
“그사이 끼랑 프로듀싱이 올랐네?”
프로듀싱은 솔로곡 뮤직비디오 스토리를 직접 준비하고, 오해나 디렉터와 협업을 하면서 오른 듯했다. 그리고 확실히 데뷔를 하고 매일 음악 방송과 팬 사인회, 예능 프로그램 출연 등으로 끼 포인트가 상승할 기회가 많아졌다.
다음은 노래창이었다.
[제목: 여름의 끝]
-노래: ■■□□□
“그래도 아는 노래라고 기본적으로 포인트가 채워져 있네, 다행이다.”
먼저 원곡을 무한 반복했다. 그리고 중간중간 내 목소리에 맞게 창법을 바꿔 가며 가장 잘 어울리는 조합을 찾아갔다. 원곡자는 내 목소리보다 거친 느낌이 강해서, 목을 긁어내는 창법을 연습하기로 했다. 원곡뿐만 아니라 다른 락 발라드 장르의 노래들도 분석하는 것이 필요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머리로는 이해하는데
도무지 말을 꺼낼 수 없어
끝까지 어른스럽지 않은 모습
미안해 못난 나라서]
‘아직 너무 정직해.’
일반적인 연기를 할 때는 필요 이상의 감정 소모를 하지 말자는 철칙이 있었지만, 이별 연기를 할 때는 다 쏟아 내곤 했다. 노래를 부를 때 감정이 노래를 앞서면 안 된다고 생각했는데, 이번 노래에는 감정이 앞서더라도 나쁘지 않겠다는 판단이 들었다.
가사를 중점으로 감정 이입을 하기 시작했다. 마침 배우 시절 찍었던 로맨스 영화의 스토리와 가사가 비슷한 상황이었다. 상대방은 이미 정리를 마쳤고 나만 감정이 남아 있어서 전화라도 하고 싶지만, 도저히 통화 버튼을 누를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근데 뭐, 연애를 해 봤어야지.”
아이돌 연습생 시절에 연애를 하다가 걸리면 가볍게는 몇 주간 연습생 자격 박탈이고 심하면 계약 해지였다. 대형 기획사이기 때문에 더 빡세게 관리를 하는 것도 있었다. 남녀 연습생이 비슷한 시기에 동시에 퇴사를 하면 오래된 소속사 팬들은 대충 눈치를 챈다. 그러면 나중에 데뷔하고 나서도 사실 여부와 관계없이 기정사실화되어서 꼬리표처럼 따라다니는 경우도 더러 있었다.
그리고 데뷔한 후에는 안 그래도 망돌인데 재수 없게 연애설까지 터진다면 완전히 돌이킬 방법이 없다고 생각해서 연애는 꿈도 못 꿨다. 다른 멤버들은 티벡스가 완전히 망하기 직전에 이럴 바엔 연애나 해 보고 망하겠다고 하다가 연달아 팬들에게 들켰었지. 배우로 성공하고 나서는 이룬 것들을 지키기 위해 더더욱 사생활에 조심했다.
결국 배우 시절 사용한 방법으로 연습하기로 했다. 최대한 많은 영화와 드라마, 소설로 감정을 이해하는 것이다. 흔히 말하는 ‘과몰입’에는 자신 있었으니까.
그렇게 한참을 연습에 매진하던 중, 연습실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누구…….”
열린 문 앞에는 문어대가리가 서 있었다. VM에서 나온 이후로 몇 달 만에 이뤄진, 전혀 달갑지 않은 재회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