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5화
행사부터 방송 촬영, 인터뷰 등 후속곡 활동이 시작되고 바쁜 날들의 연속이었다. 그런 와중에 데뷔 후 처음으로 멤버의 생일을 맞이했다.
“와, 저기에도 도현이 형 생일 카페인가 봐요!”
“저기 버스 정류장에도 광고 붙어 있네.”
방송국으로 향하는 길마다 강도현의 얼굴이 있었다. 역시 전국적으로 큰 사랑을 받은 프로그램에서 최상위권으로 데뷔했다는 걸 체감할 수 있었다. 솔직히 그 모습들을 보면서 내심 내 생일도 기대가 됐다.
사전 녹화를 하면서도 팬들의 많은 축하가 있었다. 다 같이 한 목소리로 불러 주는 생일 축하 노래라니, 내가 당사자가 아님에도 소름이 쫙 돋을 정도였다. 활동기에 생일인 게 이렇게 부러울 수가 없었다.
‘내 생일에 맞춰서 컴백을 하자고 해야 하나.’
음악 방송을 마치고 회사에서 강도현의 생일 에이앱이 진행되는 동안, 우리는 숙소에서 강도현의 생일 파티를 준비했다.
“오늘은 야식 가능한 거죠?”
눈을 반짝이며 묻는 박재봉과 윤빈 형에 정유현은 일말의 고민도 없이 흔쾌히 허락했다.
“당연하지.”
“아싸!”
마침 ‘크리드존’이 방영되는 날이어서 야식과 함께 본방 사수를 하기로 했다. 배달을 시켜 놓고 핸드폰으로 강도현의 에이앱을 다 같이 보는데 동료의 비즈니스를 보는 기분이었다. 애교도 부리고 짧게 랩도 하고, 혼자서도 아주 능숙한 진행이었다. 시청자 수를 확인하니 이미 20만이 넘어가고 있었다.
‘생일 기념 에이앱이 조금 걱정이네.’
개인 에이앱은 티벡스 시절에도 자주 했었지만, 시청자 수가 몇천도 안 되는 경우가 허다했다. 그런데 이렇게 몇십만이 되는 사람을 두고 혼자서 진행해야 한다니, 아직 멀었음에도 벌써부터 긴장이 됐다.
“오늘 제 생일 축하해 줘서 너무 고마웠어요, 클로버! 그럼 저는 이만 가 볼게요~”
강도현의 에이앱이 종료되고 파티 준비에 속도를 높였다.
“준비 다 됐어?”
“거의?”
“배달 음식만 오면 될 거 같아요.”
벨 울리는 소리와 함께 문을 열었는데, 졸지에 배달원과 마주친 강도현이 배달 음식을 들고 문 앞에 서 있었다.
“오, 야식 먹는 날이야 오늘?”
그리고 누구보다도 수상한 포즈로 케이크를 숨기던 지운이 형이 외쳤다.
“…서, 서프라이즈! 하하하…….”
그리고 지운이 형이 신호를 줬다고 생각한 선우 형이 반짝이를 허공에 뿌렸다.
“와아!”
“…오마이갓.”
정적 속 윤빈 형의 외마디 탄식만 울려 퍼졌다. 잠시 어색해진 숙소 공기 속에서 나와 정유현은 이마를 짚었다. 어쩐지, 요즘 우리답지 않게 팀워크가 잘 맞는다고 했다.
“우와! 고마워요!”
“…엥?”
“제 생일이라고 준비해 준 거예요? 야식도 허락해 주고? 너무 좋은데요?”
망해 버린 이벤트일까 봐 눈치만 보던 멤버들도 얼렁뚱땅 강도현의 텐션에 맞춰 반응했다. 자리에 앉은 강도현을 중심으로 멤버들도 자리를 잡았다.
“크리드존 시작하겠다!”
“오늘이 무슨 에피소드지?”
“우리 리더 뽑던 날일걸?”
“오, 어떻게 알아?”
“그날 윤 피디가 말했잖아. 도현이 생일날 방영할 거라고.”
그때 촬영을 하면서도 정신이 없었는데, 방송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클로버들이 실시간으로 리얼리티를 달리는 불판을 확인하며 시청했다. 이제 이 정도 멀티태스킹은 식은 죽 먹기였다.
-ㅋㅋㅋㅋㅋㅋㅋ어쩌다가 강도현이 리더가 된거냐곸ㅋㅋㅋㅋ
-리더되기 쉽지않네…
-강도현보다는 정유현이 리더해야지ㅇㅇ
└도현이가 뭐 어때서ㅡㅡ
-나는 승빈이가 해도 괜찮다고 생각했는뎈ㅋㅋㅋ
-막내온탑 가자 재봉이 리더 함 해보자
박재봉이 문을 박차고 나가는 장면은 앞뒤 상황을 모르면 심각하게 보일 정도로 편집을 했다.
[순간 냉랭해진 분위기]
[서로 눈치만 보는 크리드 멤버들]
-박재봉 인성;;
-작작 좀 찡찡대지ㅎ
└딱봐도 연기하는건데 이걸 속넼ㅋㅋㅋㅋ
└리더 정유현인거 다 알고 보는거 아니었음?
-아니 딱봐도 깜카잖아ㅋㅋㅋㅋㅋ
-재봉이도 연기 꽤 하네??
핸드폰으로 반응을 쓱 훑어보던 박재봉은 더 볼 필요도 없다는 듯 핸드폰을 뒤집어 놨다. 그러고는 다시 방송에 집중하며 멤버들과 대화를 나누었다.
“윤 피디 악편 어디 안 가네…….”
“재봉아, 괜찮아?”
“어차피 바로 뒤에 깜짝 카메라인 거 밝혀질 건데요, 뭐.”
김준홍 사건을 극복한 후여서 그런가, 예전보다 더 단단해진 듯한 모습이 기특했다.
[이제야 상황 파악이 된 강도현]
[도현군의 생일 축하를 위한 서프라이즈였답니다!]
-??뭐야??????
-생일에 맞춰서 방송 내보내려고 저런거라고?ㅋㅋㅋㅋㅋㅋ
-윤피디 어그로 어디 안가네
-도현이 어리둥절한 거 봐ㅋㅋㅋㅋㅋㅋㅋ
└그럴만 한게 생일 한참 남아서 깜카라고는 생각도 못했을듯ㅋㅋㅋㅋ
└진심ㅇㅇ 윤피디 개싫은데 레알 악마의 재능인듯
“아오, 다시 생각해도 어이없어.”
아직도 깜짝 카메라에 속은 것이 분한 듯 강도현은 일부러 딱딱, 소리가 나게 오징어를 씹었다. 그리고 그런 강도현 위로 박재봉이 올라탔다.
“도현이 형, 생일 축하해요!”
“…억, 무거워……!”
장난치는 박재봉을 선두로 멤버들이 하나둘 쌓이기 시작했다.
“생일 축하해, 도현아-”
“내가 제일 축하한다!”
“야, 문승빈! 나 좀 꺼내 줘!”
얼굴 말고는 몸이 보이지 않을 정도가 되자 강도현이 나에게 SOS를 요청했다. 얼마나 다급했는지 평소에는 성 붙이는 걸 기겁하던 애가 풀네임을 부를 정도였다. 하지만, 어림도 없지. 제일 꼭대기에 나도 합세했다.
“무거워, 이 자식들아……!”
“그럴 리가? 내가 요즘 다이어트를 얼마나 열심히 했는데!”
선우 형의 뻔뻔한 말에 모두 헛웃음이 나왔다. 박선우가 다이어트라니, 혼자 야식 먹어도 안 찌는 체질이면서.
그때 식탁 위 강도현 핸드폰의 진동이 울렸다.
‘이 시간에 전화가 오다니?’
벌써 10시도 넘은 늦은 시간이었다. 위에서 장난치던 멤버들도 심상치 않은 전화인 걸 눈치챘는지, 순순히 강도현을 놓아 줬다.
“나 잠깐 전화 좀.”
전화를 건 사람을 확인하던 강도현이 화장실로 향했다. 슬쩍 스치던 표정이 좋아 보이지는 않았다. 방송이 끝나 갈 무렵이 돼서야 돌아온 강도현은 뭔가 마음에 들지 않는 얼굴이었다. 그리고 본인은 티가 안 난다고 생각하겠지만, 누가 봐도 나를 의식하는 것이 느껴졌다.
‘무슨 전화인데 저러지?’
하지만 눈치만 볼 뿐, 방송이 다 끝날 때까지 별다른 말이 없었다. 답답한 마음에 먼저 물어보니 강도현이 한참을 고민하다가 말을 꺼냈다.
“이 실장 알지? 문어 대가리.”
“응, 걔가 전화했어?”
‘얘도 이제 문어 대가리라고 하네?’
“어, VM에서 곧 신인이 나온대.”
순간 내가 잘못 들은 줄 알고 되물었다.
“뭐? 뭐가 나와?”
“VM에서 새 남그룹이 나온다고.”
잘못 들은 게 아니라는 걸 확인 사살 당하자, 얼마나 당황했는지 말도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어, 언제?”
“자세한 시기는 안 알려 줬어. 근데 나한테 뭘 부탁한 줄 알아? 데뷔 홍보 영상에 출연해 달래. 장난하나?”
강도현은 말도 안 되는 소리라며 얼굴이 빨개지도록 불만을 표출했다. 잔뜩 흥분한 강도현에게는 미안하지만, 포커스가 회귀 전보다 더 일찍 데뷔한다는 말만 귀에서 맴돌았다.
이렇게 된다면 신인상 퀘스트에 변수가 발생한다. 물론 오해나가 아직 우리 소속사에 있기 때문에 포커스가 투샤인을 이겼던 만큼의 인기를 얻을지는 미지수였다. 하지만 확실한 건, 성공 확률이 100퍼센트에 가깝다고 생각했던 계획에 차질이 생긴다는 점이었다.
“신인한테 신인 홍보 영상을 찍어 달라고? 제정신인가? 누가 봐도 우리랑 대결 구도가 될 텐데?”
문어 대가리의 실체를 많이 경험하지 못한 강도현은 격분했지만, 나는 덤덤했다. 그러고도 남을 인간인 것을 연습생 때부터 너무 잘 알고 있었으니까. VM 입장에서는 둘 다 데뷔시킬 작정으로 내보낸 서바이벌에서 한 명만 데뷔했으니 애매해졌겠지. 원래는 둘 다 데뷔조로 활동시켜서 얻은 인지도를 기반으로 원 그룹으로 데뷔시킬 생각이었을 거다.
하지만 루커스도 데뷔 5년 차가 되어 가고, 더 미루다가는 소위 소속사별 ‘내리사랑’을 받는 타이밍을 놓칠 수 있었다. 자연스럽게 세대 교체를 하기 위해서는 시기가 중요하니까 크리드의 활동이 끝날 때까지 신인 그룹 론칭을 미루는 것도 부담이 컸을 것이다.
‘앞으로 강도현을 걸고넘어지는 일이 많겠네.’
크리드의 계약은 총 5년이었지만, 2년 후부터는 겸업이 가능해진다. 겸업이 가능한 시기가 된다면 VM은 당연히 강도현을 바로 그룹에 합류시키겠지. 그러기 위해서는 그 전부터 데뷔할 그룹과 어떤 형태로든 간에 함께 노출시키는 일이 많아질 게 분명했다. 강도현의 팬도 포커스로 흡수해야 할 테니까.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벌어지지 말았으면 하던 일들이 당겨지는 것도 모자라서 이런 것까지 제멋대로 앞당겨지다니. 회귀 전 포커스 멤버들을 떠올렸다. 강도현과 김병대, 그리고 3명의 멤버가 더 있었다.
‘그런데 지금 강도현이 크리드가 멤버가 되었으니 그 한 자리를 다른 연습생이 채울… 설마?’
대기실에서 만났던 오재성의 얼굴이 스쳐 지나갔다. 그 자식과 이렇게 엮인다고? 솔직히 말해서 얼굴도 잘생겼고, 아이돌로서의 능력도 최악은 아니었으니 초고속 데뷔도 가능은 하겠지.
하지만 오재성이 아이돌로 두각을 보이지 않는 이유는 따로 있었다. 아이돌보다는 배우로 성공하고 싶은 야망이 엄청난 놈이었거든. 아이돌로 인지도 높이고 배우로 전향하길 바라는 전형적인 케이스였다.
‘지금도 똑같을까? 아니면 내가 회귀하면서 오재성에게도 변화가 있었을까?’
곧 데뷔한다고 했으니 적어도 두세 달 안으로 데뷔를 하겠지. 그사이에 스텟창과 앞으로의 계획을 재정비하는 시간을 가져야겠다. 그렇게 새로 등장한 변수에 대비할 계획을 짜면서 잠이 들었다.
그러나 언제나 그랬듯, 이 망할 세계는 나에게 여유로울 시간을 주지 않았다. 아침에 일어나자 본 기사에 정신이 번뜩 들었다.
[VM 신인 남자 아이돌 ‘포커스’ 런칭 예정, 투마월 출신 ‘레오’와 비밀병기 ‘재성’ 공개]
VM 엔터테인먼트에서 루커스 이후 4년 만에 신인 남자 아이돌 그룹을 선보인다. VM은 금일 데뷔조 공식계정을 오픈하며 모두의 시선을 집중시키겠다는 의미의 팀명 ‘포커스’를 공개했다. 팀명과 함께 공개된 컨셉 필름에서는 투마월에서 아쉽게 8위로 탈락한 ‘레오(김병대)’와 베일에 감춰져 있던 비주얼 멤버 ‘재성’이 등장하면서 본격적인 데뷔 준비를 알렸다. (…) VM은 다섯 명의 멤버를 순차적으로 공개한 이후 9월 초 데뷔를 계획하고 있다고 밝혔다. 과연 포커스가 크리드의 대항마가 될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되면서, VM 엔터테인먼트의 주가는 금일 대폭 상승하는 모습을 보였다.
크리드의 활동이 끝나기만을 기다렸다는 듯, 포커스의 데뷔 예정 기사가 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