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4화
“아, X나 더워. 날씨 미친 거 아님?”
“더운 게 문제가 아니라 벌레가 왜 이렇게 많아?”
“하… 그렇지만 레전드는 이런 행사에서 나오는 거 너도 알지?”
“그걸 아니까 이러고 있지.”
문스트럭과 K는 벼 축제 행사에 참여한 크리드의 무대를 기다리고 있다. 데뷔하고 처음으로 하는 지방 행사였다. 순서라도 앞에 있다면 좋았겠지만, 크리드로 거하게 홍보한 축제였기 때문에 당연히 엔딩이었다. 이어지는 무대에 슬슬 지겨워질 무렵, 크리드가 등장했다.
오늘 착장은 화이트와 블루 계열의 청량한 마린 룩이었다. 승빈이에게 유독 잘 어울리는 색의 의상이어서도 좋았지만, 반바지라는 점에서 문스트럭은 코디를 향해 감사 인사를 하고 싶었다.
“승빈아!!”
“지운아, 여기!”
역시 앞선 무대들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큰 함성 소리였다.
“애들 인기 무슨 일이야?”
“슈스 다 됐네…….”
“아이고, 애들 난리났네, 벌레 왜 이렇게 많아?”
K의 말처럼 무대 위는 흡사 곤충의 왕국이었다. 모기, 파리, 나방 등 종류를 가리지 않았다. 그나마 작은 나방이라면 모를까, 거의 손바닥만 한 크기의 나방들이 무대 조명 주변을 날아다니고 있었다. 무대 위로 오른 멤버들도 처음에는 포커페이스를 유지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버거워 보였다. 다들 비명 지르고 싶은 걸 애써 참는 게 눈에 보였다.
“하나, 둘……!”
정유현이 인사를 하려다 마이크에 붙은 나방에 놀란 듯 파드득 떨며 몸을 피했다. 인사가 끊기고 정적이 생길 무렵 문승빈이 재빨리 인사를 이어 갔다.
“인사드리겠습니다. 본 투 샤인! 안녕하세요, 크리드입니다!”
“와아아!”
잠시 당황하던 멤버들도 승빈의 멘트에 따라 인사를 했다.
“맞다, 유현이 벌레 무서워하잖아.”
“그래도 승빈이가 침착하게 잘 대응했네.”
“승빈이는 벌레 별로 안 무서워하나 봐. 혼자 엄청 덤덤하네.”
대부분의 멤버가 벌레 사이에서 혼비백산한 와중에도 승빈은 무덤덤하게 날아오는 벌레를 손으로 쳐 내거나, 잡아서 던지기까지 했다.
“첫 곡으로 저희 데뷔곡 신세계 무대 보여 드리겠습니다!”
문스트럭과 K의 기대대로 무대 자체는 레전드를 찍었다. 자연광 효과인지, 영상과 사진이 평소보다 더 선명하고 예쁘게 나왔다. 지방 행사지만 여느 음악 방송과 다를 것 없이 몸이 부서지도록 안무를 하는 모습에 덕심까지 차올랐다. 하지만 중간중간 벌레의 공격에 움츠러드는 모습은 안쓰러웠다.
“벌레 X끼들 내가 다 잡아 주고 싶네.”
“전기채 들고 무대 난입하면 안 되겠지?”
“내일 사회 1면에 나오고 싶으면 한번 해 봐.”
첫 번째 무대가 끝나고, 멤버들은 의상에 붙은 벌레들을 털어 내고 다음 무대를 준비했다.
“진짜 신기해, 왜 지방 행사는 유독 예쁘게 찍히는 걸까?”
프리뷰를 확인하며 감탄하는 문스트럭과 달리 K의 표정은 그닥 좋아 보이지 않았다.
“벌레 X끼… 눈을 제대로 뜬 사진이 얼마 없네.”
“지운이도 벌레 무서워하는구나. 하긴, 근데 저 정도 크기의 나방이면 누구라도 무서워할 듯.”
“근데 괜찮아, 레전드 하나 건짐.”
반면 눈 한번 안 깜빡이고 사진에 담긴 승빈을 보며 문스트럭은 또 한 번 승빈에게 감탄했다.
‘이런 걸로도 효자짓을 하는구나.’
그 뒤로 더샤인과 항해의 시대 무대가 이어졌다. 뒤로 갈수록 멤버들도 해탈을 한 건지 적응을 한 건지 벌레를 무시하고 무대에 임했다. 세 곡의 무대가 끝나고, 마무리 인사와 함께 축제가 끝났다. 문스트럭과 K는 각자의 계정에 프리뷰를 올렸다.
문스트럭 @Moonstruck_Bean 1분 전
[20**082* 이천 벼축제]
벌레도 안 무서운 용맹 강쥐
#문승빈 #seungbin #크리드
-벌레 ㅈㄴ많네;;
-미친거아님?저 정도면 팅커벨 아님?
-아이돌 ㅈㄴ극한직업이다… 나였으면 쌍욕하고 그날로 은퇴함
-승빈이 벌레 안무서워하는구나 고자극레전드
└도대체 어느점에서 고자극인거임?
└저 말랑한 얼굴로 벌레를 잘잡는게 포인트라고
-다른 애들은 정신을 못차리던뎈ㅋㅋ큐ㅠㅠㅠ
그리고 유난히 인기를 얻은 정유현 홈마의 영상이 있었다.
온리유현 @Only_youH 10분 전
[20**082* 이천 벼축제]
유현이는 벌레가 싫어(우는 이모티콘)
승빈아 고마워(엄지 척 이모티콘)
영상을 플레이해 보니 벌레가 유현의 주변으로 꼬일 때마다 승빈이 조용히 벌레를 잡아 주거나, 멀리 쳐 내고 있었다.
-유현이가 저렇게 쫀거 처음봐ㅋㅋ큐ㅠㅠㅠㅠㅠ
-승빈이 진짜 대단;;
-방충망 안에서 무대하면 안되는거냐고
-어떻게 저걸 덥석덥석 잡을수있냐고
└역시 말랑하게 생긴애가 제일 쎈거 돌판 불변의 법칙임ㅇㅇ
-정프들은 오늘 승빈이한테 ㅈㄴ고마워해야함ㅋㅋㅋㅋ
└ㅇㅇ아니었으면 빼박 욕먹었을듯
-오늘 현장에 있었는데 승빈이 아니었으면 유현이 실려갔을걸ㅠㅠ
이런 식으로도 소소하게 이슈를 만들어 내는 승빈이 정말 천상 아이돌이라고 생각하는 문스트럭이었다.
* * *
정말 오랜만의 지방 행사였다. 티벡스 시절에야 행사 성격 가리지 않고 닥치는 대로 참여를 했기 때문에 오늘 같은 행사가 낯설지는 않았다. 하지만 다른 멤버들은 사정이 달랐다. 야외 공연 자체도 아직 낯설었을 텐데, 벌레들의 무자비한 공격에 반쯤 넋이 나가 보였다. 나와 선우 형을 제외하고는 전부 사색이 되어 있었다. 박재봉이 초점 없는 눈으로 말했다.
“…투마월 귀신 체험보다 오늘 무대가 백만 배는 더 무서웠어요.”
윤빈 형과 지운이 형은 공감한다는 듯 고개를 세차게 끄덕였다.
“저건 벌레가 아니야… 드론이야, 드론.”
벌레가 얼마나 큰지, 온몸으로 묘사하던 윤빈 형에게 지운이 형도 말을 더했다.
“무대 하다가 도망치고 싶은 거 참느라 혼났어.”
그때까지 아무 말이 없던 정유현이 내 어깨를 툭 치더니 작게 말했다.
“고마워.”
“별거 아니에요.”
“아니야. 너 아니었으면 나 진짜 무대 못 했을 거야.”
투마월 시절 숙소에서 벌레가 나타났을 때부터 알고 있었지만, 벌레에 정말 약한 사람이었다. 그래서 정유현을 특히 신경 쓴 부분도 있다. 티벡스 시절의 내가 떠올랐기 때문이다.
“너 진짜 대단하다. 어떻게 그렇게 겁이 없어?”
“하하… 혼자서 자취하다 보니 벌레 잡는 일이 많아서.”
적당히 얼버무렸지만, 사실 다른 이유가 있었다. 나도 처음부터 벌레를 안 무서워하는 사람은 아니었다. 솔직히 말해서 지금도 벌레가 무서운 건 마찬가지였다. 다만 안 무서워하는 척과 무서워도 참는 것을 잘하게 됐을 뿐이다.
내가 벌레를 잘 참게 된 계기는 티벡스 시절 참여한 한 행사 때문이었다.
‘평생 못 잊지, 살다 살다 이런 걸로도 욕먹을 수 있구나 처음 깨달은 날이었으니까.’
그때도 지금과 같은 지방 행사였다. 오늘 본 벌레들만큼이나 무시무시한 벌레들 사이에서 정신을 못 차렸었다. 온몸이 굳어서 표정 역시 무표정이거나 찡그린 표정밖에 지을 수 없었다. 웃으려고 입을 열면 금방이라도 벌레가 들어올 거 같았거든.
‘다시 생각해도 아찔하네…….’
그날 무대는 당연히 망쳤다. 얼굴로 날아오는 벌레에 기겁을 해서 동선 이동을 하다 다른 멤버와 부딪히기도 했다. 같은 그룹 멤버들의 비난도 피할 수 없었다. 자기들도 기겁하듯이 싫어했으면서, 그나마 지운이 형만 내 공포에 공감해 줬을 뿐이었다.
그리고 어떻게 됐냐고? 태도 논란으로 욕을 한 바가지로 먹었다. 아예 망돌 시절이었다면 관심도 없으니까 욕도 안 먹었을 텐데, 데뷔 초반 지운이 형 덕분에 그나마 인기가 조금 있던 때였다.
그때 나를 비난했던 사람 중에는 좆소에서 데뷔한 것에 불만인 지운이 형의 팬덤과, 지운이 형의 몰락을 바랐던 안티들까지 환장의 콜라보였다. 데뷔하고 처음으로 대중의 맹목적인 비난을 받았던 거 같다. 프레임 단위로 캡처당해서 비난을 받았는데, 거의 일주일은 그 어떤 SNS도 들어가지 않았다. 아니, 들어가지 못 했지.
[프로의식 개나 준 신인그룹 멤버]
-벌레 하나 못참아서 무대를 저따위로하냨ㅋㅋㅋㅋㅋㅋ
-ㅉㅉ 돈 뱉어내라
-이게 욕할 일인가? 쟤 얼굴 ㅈㄴ사색인데;;
└다른애들은 안무서워서 저러는거겠냐?
└차지운도 ㅈㄴ무서워하는데;;
└여기서 지운이가 왜나와 문승빈 팬이냐?
-저럴 거면 행사 가지 말아야지;;
-내가 저돈받고 공연하면 벌레도 씹어먹겠다ㅇㅇ
└ㄹㅇ ㅋㅋㅋㅋㅋ 벌써 배가 부른 듯ㅠ
-지운이가 어쩌다 저런 누추한 곳에....ㅠ
그날 벌레 때문에도 멘탈이 나가 있었는데 댓글을 보고 더 충격을 받았다. 얼마나 충격이었으면 그때 말들을 아직도 기억하고 있겠냐고. 그래서 그 이후로는 이를 악물고 벌레에 대한 공포심을 참았다. 이건 벌레가 아니라 그냥 팅커 벨이다- 무대 위에서는 자아를 잠시 빼놓고 지냈다.
그리고 불행인지 다행인지 주야장천 벌레들로 가득한 행사를 뛰다 보니 나중에는 어느 정도 벌레에 무감해졌다. 스무 살 문승빈의 개고생 덕분에 열여덟 문승빈은 더 이상 벌레 앞에서 비명을 지르지 않게 되었다. 며칠 전 정 감독과의 재회 이후로 잠깐 우울해질 뻔했지만, 회귀 전 내가 해냈던 일들은 어떻게든 지금의 나에게 도움을 주고 있기는 했다.
그래서 벌레 앞에서 사색이 된 정유현을 두고 볼 수 없었다. 그때보다 더 인기가 많은 지금이고, 분명 나보다 더한 비난을 받을 게 뻔했기 때문이다.
다행히 벌레를 잡아 주는 내 덤덤한 모습에 포커스가 집중되면서 정유현의 표정이나 행동에는 큰 비난이 없었다. 다행이라고 생각하면서도 맹목적인 비난에 맞서는 팬들의 반응에 한편으로는 씁쓸했다.
-정유현은 옆에서 뭐하냐?ㅋㅋㅋㅋㅋㅋ
-문승빈없었으면 무대도 못했을듯ㅋㅋㅋㅋㅋㅋㅋ
└ㅉㅉ프로답지 못함ㅇㅇ
└ㅗㅗㅗㅗ저기있으면 지렸을 놈이
└ㅅㅂ사람이 벌레 좀 무서워할 수 있지
-벌레사이에서도 웃어야함? 아이돌은 벌레도 못 무서워함?
└정프들 쉴드 오지네
그때 나도 팬이 많았다면 그런 비난을 받지 않아도 되지 않았을까? 뭐 이런 정도의 아쉬움 말이다. 같은 상황임에도 다르게 다가왔다.
정유현은 오늘 일이 정말 고마웠는지 틈만 나면 고맙다는 말을 했다. 한두 번은 그래, 정유현한테 이런 말 들을 기회가 얼마나 있을까 싶었지만 반복되다 보니 부담스러워지기 시작했다.
“형.”
“응?”
“한 번만 더 고맙다는 말 하면 저 이제 벌레 안 잡아 줄 거예요.”
“…아.”
자기도 민망했는지 알겠다는 말만 하고 방으로 돌아가는데 귀가 불타고 있었다. 저런 사람이 서바이벌 때는 왜 그렇게 날을 세우고 경계를 했을까? 데뷔하고 가장 많이 변했다고 생각한 사람이 정유현이었다. 원래 이런 성격이었을 수도 있겠지만.
‘근데 슬슬 정유현 가족 관련한 일이 터질 때가 됐는데-’
되도록 회귀 전 사건들이 되풀이되지 않는 게 좋겠지만, 어차피 맞닥뜨려야 할 일들이다. 과연 내가 잘 해결할 수 있을까- 걱정한 적도 있었지만 분명 잘 해낼 것이다. 그때와 지금의 나는 다르다.
이제 나는 혼자가 아니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