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혼자 할 거면 두 번 데뷔 안 함-142화 (142/346)

142화

“여기 진짜 오랜만이다. 구오빠 미팬도 맨날 여기서 했었는데.”

“어, 애들 온다!”

“와아아아!”

“애들아, 안녕!”

방송국 앞 광장에서 줄 맞춰 앉아 대기하고 있던 팬들의 시선이 일제히 한 곳으로 향했다. 사녹을 마친 크리드 멤버들이 멀리서부터 손을 흔들며 뛰어오고 있었다. 특히 앞쪽의 박선우와 윤빈은 거의 강아지처럼 팔랑거리고 있었다.

“윤빈이 X나 대형견 같아…….”

“선우 오늘 헤메코 미쳤네.”

곧 모든 멤버가 장소에 도착했고, 본격적인 미니 팬 미팅이 시작됐다.

“클로버들 안녕~”

“날씨가 많이 덥죠?”

승빈이 걱정스러운 얼굴로 물었고, 문스트럭은 그 모든 순간을 카메라로 담으면서도 바로 답했다.

“괜찮아~”

“너희 보니까 하나도 안 힘들어!”

“정말요? 저희도 클로버 만나니까 하나도 안 힘들어요!”

“맞아요. 승빈이 여기 오기 전까지 완전 초죽음 상태였거든요. 근데…….”

“왜!?”

“초죽음?”

윤빈의 말에 문스트럭은 하마터면 손에 들고 있던 카메라를 떨어트릴 뻔했다. 요즘 스케줄이 몰아치고 타이틀 활동이 끝나자마자 후속곡 활동을 한다고 해서 체력적으로 괜찮을까- 걱정하던 참이었기 때문이다. 예상보다 더 큰 팬들의 반응에 윤빈도 조금 당황한 듯했다. 분명 ‘승빈이가 이만큼 피곤했지만, 여러분들을 보니 이렇게 활기차졌다.’는 걸 말하고 싶었는데 적절한 표현을 찾지 못한 듯했다.

“아이고, 클로버들 놀랐겠다. 저 괜찮아요! 그냥 어제 늦게까지 연습해서 조금 졸았던 거예요.”

“승빈아, 밥 많이 먹어!”

“하하, 저 오늘 두 그릇 먹었어요!”

“잘했어!”

역시 밥의 민족다웠다. 승빈이 전혀 안 피곤하다는 듯 이리저리 몸을 움직이고, 자신을 찍는 카메라를 향해 애교를 부리는 것을 보고 나서야 현장의 클로버들도 진정했다. 처음 겪는 반응이어서 놀랐을 법도 한데 능숙하게 팬들을 안심시키는 모습에 문스트럭은 감탄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천년, 아니 만년돌을 잡은 것 같다는 생각에 오늘도 벅차올랐다.

‘언제 한번 한약이라도 지어서 서포트 보내야 하나…….’

‘팬싸 가서 맥이라도 잡아 봐야 하나…….’까지 생각하던 그녀였다. 현장이 잠잠해지자 박선우가 능숙하게 MC 역할을 이어 갔다.

“저희가 벌써 3주 차가 되었잖아요!”

“시간 진짜 빨라…….”

“그사이에 클로버 덕분에 1위도 해 보고 너무 행복했어요!”

“진짜 클로버가 짱!”

“귀여워!”

쌍따봉을 날리는 박재봉에 현장의 팬들이 자지러졌다. 여기저기서 카메라 연사 소리로 가득했다.

“사실 내일이 타이틀곡 마지막 활동 날이거든요.”

강도현이 아쉽다는 듯 눈꼬리를 축 내리며 말했다. 여기저기서 아쉽다는 소리가 나왔다.

“하지만, 여러분들을 위해 저희가 선물을 준비했죠? 바로바로, 다음 주부터는 후속곡으로 ‘더 샤인’ 활동을 합니다!”

“…와아아-”

한 박자 느리게 환호하는 팬들의 반응에 강도현은 어리둥절한 표정이었다. 옆에 있던 승빈의 광대가 씰룩거리는 걸 보고 문스트럭도 입술을 깨물며 참던 웃음이 터졌다.

“뭐야, 다들 반응이 왜 이래요?”

“그야… 클로버들은 이미 다 알고 있으니까.”

승빈이 도현의 어깨를 두드리며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었다.

“엥? 승빈이 말이 맞아요? 클로버들 이미 다 알고 있었어?”

“도현이 당황했나 봐, 존댓말했다가 반말했다가.”

“아, 뭐예요- 난 클로버들 서프라이즈 해 주고 싶어서 준비해 왔는데!”

발을 동동 구르는 강도현의 모습에 멤버들도 웃음이 터졌고, 차지운은 특히 웃음을 쉽게 멈추지 못했다. 옆자리의 K가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아이고, 우리 지운이 또 이상한 포인트에 터졌네… 저거 이제 10분은 더 갈 거다.”

거의 눈물을 흘리면서 웃는 차지운에 타멤프들은 신기하다는 반응이 많았다. 혼자 5분가량은 더 웃은 차지운이 진정되고 나서야 간단한 큐앤에이 시간이 시작되었다. 팬들이 미리 적어 둔 포스트잇을 하나씩 떼서 답변하는 형식이었다.

“제일 먼저… 유현이 형 관련 질문이에요. 너무너무 완벽한 유현이의 피부 관리법은?”

“오- 이건 저희도 궁금했어요. 비법이 뭐예요, 형?”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고, 물 많이 마시고… 그게 다인 거 같아요.”

“엥? 다른 거 없어요? 뭐 세안법이나…….”

“네, 없어요.”

“와우, 유현이 형의 피부는 타고난 걸로!”

박선우가 명쾌하게 정리했다.

“두 번째는, 승빈이 질문이네요. 꼭 커버해 보고 싶은 곡이나 장르가 궁금해~ 라고 적어 주셨어요.”

“음… 저는 락? 해 보고 싶어요. 완전 시원하게 지르는.”

“미친!”

이미 문스트럭의 머릿속에는 무대 위에서 락스피릿 가득한 문승빈의 모습이 재생되고 있었다.

‘악기는 뭐가 좋을까. 기타? 베이스?’

단정한 모습과 창법도 좋지만, 여러 가지 창법을 무리 없이 소화하는 걸 보면 작정하고 시원하게 내지르는 락에도 의외로 잘 어울릴 것이라고 확신했다.

“승빈아, 네가 내 아기 락스타야!”

현장의 승프 중 한 명이 외쳤고, 승빈은 그에 보답하듯 손가락으로 피쓰를 만들어 보였다.

“미친, 오늘 레전드 하나 나왔다, K야.”

그렇게 20분가량 이어진 질문 타임이 끝나고 마지막 포토 타임이 되었다.

“아, 미팬 너무 짧아.”

“그니까! 아쉬워.”

“저희 이제 한 명씩 포토 타임 가질까요?”

“와아아!”

“그럼, 누구 먼저 할까요?”

“저 먼저 할게요!”

“그래, 이런 건 귀여… 아니 재봉, 아니 이든이가 먼저 할게요!”

말이 꼬이는 박선우에 클로버들은 엄마 미소를 지으며 주섬주섬 핸드폰과 카메라를 꺼냈다.

“하긴, 나도 아직 재봉이 재봉이라 부름.”

박재봉은 단상 중앙으로 와서 여러 가지 포즈를 취했다. 다양한 포즈를 시시각각 빠르게 바꿔 가는데, 역시 보통 아이돌력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전보다 더 뻔뻔하게 귀여워진 기분이었다. 최애가 아니더라도 한번쯤은 찍어 보고 싶게 하는 피사체였다.

“다음은 승빈이-”

승빈은 요즘 유행하는 손동작을 알아 왔다며 머리 위로 브이를 했다. 그리고 볼하트와 방금 전 질문 타임 때 보여 줬던 피쓰 포즈를 했다. 그것도 혀를 빼꼼 내밀고 윙크까지.

이미 혼이 빠진 듯한 문스트럭은 홀린 듯 셔터를 눌렀다. 오늘을 문승빈의 날로 제정해야 한다며 매년 이날을 기념하리라 다짐했다.

“오늘 너무 즐거웠어요!”

“조심해서 들어가요~”

“우리 또 만나요!”

멤버들 모두 잘 가라는 인사를 하면서 자리를 뜨지 않았다. 결국 스태프가 다음 스케줄을 위해 가야 한다고 공지했고, 그제야 뒷걸음으로 들어가면서도 양손으로는 계속 인사를 했다. 가지 말라고 우는 소리를 내던 팬들도 이제 들어가라는 말을 할 정도로 오랫동안 남아 있었다.

“애들 팬 사랑 미쳤네.”

“야, 나 오늘부터 평승프임.”

“오늘부터?”

“…조용히 해.”

* * *

“벌써 막주라니.”

“다시 쇼케이스 날로 돌아가고 싶어.”

미니 팬 미팅을 한 다음 날, 이번 주도 1위 후보인 크리드의 VCR이 나오고 무대가 시작됐다. 의상을 확인한 문스트럭과 A는 잠시 서로의 얼굴을 마주했는데, 뭔가 잘못됐음을 감지했다.

“뭐, 뭐야?”

잘못 본 게 아닌가 싶어 몇 번 눈을 비볐지만 그대로였다. 당황스러운 마음에 짹짹이를 보니 일단 멤버들의 모교 교복이 콘셉트임을 알 수 있었다.

“아니, 근데 왜 승빈이만 농구복이야?”

“도현이 바지 터지는 거 아니야?”

각기 다른 교복들 사이에서 자신의 몸보다 한 품은 큰 나시티와 반바지를 입은 문승빈에 문스트럭은 헛웃음이 나왔다.

“누가… 교복으로 농구복을 입고 다닌 거냐고.”

“아, 설마 교복 바꿔 입기 한 거냐? 저거 재봉이 교복이니?”

A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도저히 강도현의 사이즈라고 믿을 수 없는 교복이었다. 상체 와이셔츠 어깨가 맞지 않아 팽팽하게 주름 하나 잡혀 있지 않았고, 바지는 정강이에서 멈춰 있었다.

-누가 승빈이만 드레스코드 안알려줬냐ㅡㅡ

└문승빈왕따설ㅋㅋㅋㅋㅋㅋ

-재봉이는ㅋㅋㅋㅋㅋㅋㅋ아빠옷이냐곸ㅋㅋㅋ

-도현이 숨은 쉴수있는거지?

-승빈앜ㅋㅋㅋㅋ큐ㅠㅠㅠㅠㅠㅠㅠㅠ

└내가 문승빈이었음 울었어

└프로아이돌…

-그래서 어떻게 바꿔입은거임?

└승빈-윤빈/윤빈-지운/지운-선우/선우-도현/도현-재봉/재봉-유현/유현-승빈

└농구복 윤빈이야?

└그렇지않을까? 해외살다왔잖아 교복안입는 학교였을수도?

└어떻게 자기 교복 고른 애가 하나도없음?

-아니ㅋㅋㅋㅋㅋ 대체 누구 아이디어야ㅋㅋㅋㅋ

└코어 직원분들 코디님들 제발 상여금 받으시길....

“도현이 춤출 때마다 옷 신경 쓰네. 저러다가 실밥 터질까 봐 겁나.”

“승빈이 팔랑거리는 거 봐, 귀여워…….”

“애들 도대체 무슨 방법으로 바꿔 입은 건지 궁금해지는데?”

그리고 그녀들의 의문은 바로 다음 날 올라온 자체 콘텐츠에서 풀렸다.

* * *

안무 연습 중간 쉬는 시간에 휴대폰을 확인하는데, 타이밍 좋게 비하인드 영상이 업로드됐다. 매번 느끼지만 정말 열일하는 직원 분들이셨다.

[CR:IDay! ep2. 나는 네가 지난 여름날 입은 교복을 알고 있다.]

“와, 농구복 짱 커요.”

“재봉아, 너는 절대 걸리면 안 되겠다.”

교복을 정하는 방식은 사다리 타기였다. 사다리 타기 프로그램이 진행되는 과정을 멤버들은 정말 진지하게 보고 있었다. 그 모습에 팬들은 겨우 사다리 타기에 저렇게 목숨을 걸었을 줄 몰랐다는 반응이었다.

“오늘의 관전 포인트는 ‘누가 재봉이와 윤빈 형의 교복을 입느냐’입니다.”

“기왕이면 둘 다 주인한테 가면 좋을 텐데요.”

“문승빈 씨, 특별히 원하는 교복이 있나요?”

“저요? 당연히 제 거요. 박선우 씨는요?”

“저는 지운이 형 교복이 탐납니다.”

-이제 다들 선우 mc놀이에 익숙해진거냐곸ㅋㅋㅋ

-애들 옹기종기모여서 사다리타기하는거 왜이렇게 귀여움?

하나둘 결과가 밝혀지면서 교복이 결정된 멤버들의 희비가 교차하는 모습도 장관이었다.

“아…….”

-문승빈 표정봨ㅋㅋㅋㅋㅋㅋㅋㅋㅋ

-승빈이가 또…

“역시 이런 건 하자고 한 사람이 걸린다니까?”

“조응히 흐르…….”

-앜ㅋㅋㅋㅋㅋ승빈이 절규하는것봨ㅋㅋㅋㅋㅋ

-도현이겁나 깐족거렼ㅋㅋㅋㅋㅋ

└아아…자기 앞길은 몰랐던 자의 최후

-ㅋㅋㅋㅋㅋ 도현이 입이 방정이라곸ㅋㅋㅋㅋ

“하하하! 어쩌다가 강도현이 재봉이 교복을 고르냐?”

“제 교복이 뭐 어때서요!”

“아니, 도현이 입을 수는 있는 거지?”

“그 정도는 아니거든요?”

하지만 교복을 갈아입고 나온 강도현의 모습에 모두 시선을 피할 수밖에 없었다. 강도현도 꽤 마른 편이었음에도, 체격 차이가 상당해서인지 핏이 거의 스키니진 수준이었다. 처음에는 이거 입고 어떻게 춤추냐며 침울해하다가도 금세 박재봉을 놀리는 데 재미를 붙인 강도현이었다.

“재봉아, 이거 입으니까 형 숨 막힌다.”

“두고 봐요, 내가 진짜 형보다 더 커질 거니까!”

“울 재봉이 다시 태어나고 싶은 거야?”

박재봉의 4년 뒤 모습을 아는 나로서는 웃음밖에 안 나오는 대화였다.

‘그래, 결국 승자는 너다, 재봉아.’

부러운 자식 같으니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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