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1화
[!퀘스트: 신인상 달성!]
남은 기간) D-150
▶성공 시: 설득의 힘 +2
▶실패 시: 랜덤 스텟 감소 -2
퀘스트가 끝나자마자 새로운 퀘스트가 떴다는 것에 당황했지만, 내용 자체는 크게 놀랍지 않았다.
‘오히려 수월하겠어.’
투샤인을 기준으로 했을 때, 올해 데뷔했거나 데뷔할 신인 보이 그룹 중에 눈에 띄게 위협적인 그룹은 없었다. 투샤인의 유일한 대항마였던 VM의 포커스는 시기상 내년 상반기에 데뷔를 하기 때문에 우리와 신인상을 겨룰 상대가 아니었다. 기간도 연말까지로 넉넉하고, 그사이에 두 번째 앨범 활동을 한다면 팬덤도 더 커질 거니까.
그런데 실패 시 스텟 감소라니, 이만큼 올린다고 얼마나 개고생을 했는데. 게다가 무엇을 감소시킬지도 안 나와 있었다. 거기다 성공 시에는 설득의 힘? 대체 저게 무슨 소리냐고. 퀘스트창에 글자 수 제한이 있나 싶을 정도로, 뜨는 퀘스트마다 간결 그 자체였다.
사실 상태창이 처음 등장한 이후로 게임이나 소설에 나오는 상태창 관련된 정보를 얼마나 찾아봤는지 모른다. 게임을 해 본 적이 있어야지. 근데 ‘현실은 다르다’ 이런 건지는 모르겠다만, 그 어떤 곳에서도 이렇게 불친절한 상태창은 본 적이 없었다.
‘하여간 제멋대로야.’
어쨌든 성공이 거의 확실한 미션이 떠서 오히려 마음은 가벼워졌다. 지금은 그저 1위의 기쁨을 더 만끽할 시간이었다.
* * *
다음 날, 요란하게 깨우는 선우 형 덕분에 꼭두새벽부터 눈을 떴다.
“아침부터 왜-”
“대박, 이거 아직 못 봤지?”
“그게 뭔데?”
잔뜩 신난 표정으로 형이 보여 준 화면에는 기다렸던 글이 올라와 있었다.
[인기연예인 김준홍의 실체를 폭로합니다.] 조회수 : 37849
[저는 약 4년 동안 김준홍 씨와 함께 일했던 스태프입니다.
(스태프 인증 사진)
사실 지금도 무척 두렵지만 더는 두고 볼 수 없어 글을 쓰게 되었습니다. 연예인 김준홍하면 다들 예의 바르고 매너 있고 개념 있는 연예인이라고 생각할 겁니다. 하지만 카메라 뒤에서 그는 전혀 다른 사람입니다. 스태프와 동료 연예인, 특히 신인들에 대한 예의라고는 전혀 찾아볼 수 없는 전형적인 강약약강의 사람입니다. 대상을 불문한 외모 지적과 욕설, 틈만 나면 시비를 걸고 선물로 받은 앨범은 무조건 쓰레기통행이었습니다…]
‘계획대로 됐어.’
김준홍의 스태프였던 은정 씨가 마침내 용기를 냈다. 김준홍을 마주칠 때마다 항상 옆에 있던 사람이라 복도에서나 대기실에서 마주치면 자연스럽게 인사를 하곤 했다. 몇 번 그렇게 마주치더니 하루는 사인을 요청하는 거 아닌가. 며칠 망설이다가 용기를 낸 거 같았다.
그때 속으로 만세를 외쳤다. 이전에도 김준홍이 우리에게 행패를 부릴 때마다 불편해하는 기색이어서 김준홍을 그리 좋아하지 않을 거라고는 예상했는데, 심지어 우리 팬이었다니.
‘분명 도움이 될 거야.’
그때 나는 혹시라도 퀘스트가 실패하거나 박재봉의 상태가 악화될 경우를 모두 대비해야 했다. 그래서 그녀의 도움을 얻기로 했다.
이렇게 빨리 폭로 글을 쓸 거라곤 생각 못 했지만, 나름대로 열심히 물밑 작업을 해 왔다. 사인 앨범에 더욱 정성껏 땡스투를 적고 마주칠 때마다 더 친절하게 대했다. 그 내용도 폭로 글에 담겨 있었다.
[…사실 저는 김준홍 씨의 패악질을 옆에서 지켜볼 수밖에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막말을 듣고 나서도 마주칠 때마다 항상 예의 있고 친절한 모습에 죄책감이 들었습니다. 또한, 신인에게 열등감을 느끼면서 화풀이하듯 더욱 심해지는 김준홍의 갑질에 저도 상처를 받았고요. 이런 복합적인 이유로 저는 그의 만행을 더는 두고 볼 수 없었습니다.]
“대박이다, 이거 은정 님 아니야?”
“그러게.”
폭로 글에 대한 대중들의 반응은 반반이었다.
-증거도 없이 믿으라고 올린 글임?
└ㅇㅇ김준홍이 설맠ㅋㅋㅋ
-근데 인기 신인 남그룹이면 크리드 아님?
└ㅁㅊ크리드한테 저지랄을 한거?
└ㅅㅂ지보다 어린애들이 잘나가서 열받았나?
└크리드면 말이 달라지짘ㅋㅋㅋㅋ
하루는 김준홍의 히스테리가 끝난 후 은정 스태프가 나에게 대신 사과를 한 적이 있었다.
“제가 대신 사과드릴게요, 많이 놀라셨죠?”
“아니에요. 선배님이 조금… 완벽주의자시죠?”
“그냥 예민하신 거죠.”
“아유, 아니에요. 대선배님이시고 워낙 꼼꼼하신 분이니까 그럴 수 있죠. 그나저나 매일 이렇게 새벽에 나오시고 엄청 피곤하시겠어요.”
김준홍을 완전히 깎아내리지는 않으면서 상황에 대한 공감을 표현하자 그녀도 점차 경계를 풀었다.
“저… 재봉 씨는 괜찮아요?”
“음, 아직 어리잖아요. 그래서 충격이 아직 좀…….”
내 말에 잠시 분노와 미안함, 걱정이 섞여 있는 표정에 확신했다. 최애가 박재봉이구나. 그래서 조금 더 말을 더했다.
“재봉이가 워낙 좋아하는 선배님이시고, 어머니도 엄청 팬이라고 해서 기대를 정말 많이 했던 거 같아요…….”
“재봉 씨가요? 어머, 미안해서 어떻게 하지…….”
“걱정해 주셔서 감사해요.”
“…나중에라도 제가 도움이 됐으면 좋겠어요.”
그땐 몰랐지, 이렇게 빨리 도움을 주실 줄이야. 폭로 글이 올라오고 김준홍의 소속사는 전부 허위 사실이며, 법적 조치를 하겠다는 기사를 냈다. 각오한 일이었지만 흐지부지하게 끝나면 어떻게 할까 걱정하던 찰나, 크리드 홈마들이 힘을 모았다.
문스트럭 @Moonstruck_Bean
[우리 애들이 지나치게 예의 바른 줄^^]
레빗드림 @Rabbit_Dream
[ㅎㅎ... 내가 잘못 본 건 줄 알았지.]
짧은 글과 함께 올라온 영상들은 뮤직센터 1위 이후, 복도에서 김준홍이 히스테리를 부린 바로 그날이었다. 제 분에 못 이겨 멤버들 어깨를 툭툭 건드리거나, 짜증을 부리던 모습이 전부 담겨 있었다. 그때도 다들 잘 참는다고 생각했지만, 영상으로 보니 더했다. 행패 부리는 김준홍 앞에서 멤버들은 하나같이 고개도 제대로 들지 못하고 있었다.
-미친 지금 이마 손가락으로 민거임?
-와;;이중인격 미쳤네;;
-ㅅㅂ내 드라마 돌려내
-와중에 이거 도대체 어떻게 찍은거임?
└저기 건물이 복도쪽은 통유리로 되어있어서 멀리서 줌땡기면 촬영가능할걸?
-ㅁㅊ사실이었네
이 고발을 시작으로 김준홍이 저지른 만행들이 만천하에 공개됐다. 그리고 인터뷰 및 1위 앵콜 무대 비하인드 중 크리드의 인사를 고의로 피하는 장면이 포착되면서 폭로 글의 신빙성을 높였다.
논란이 거세지자 마침내 김준홍은 자필 사과문과 함께 활동을 중지했다. 그리고 은정 씨는 엔터가 아닌 다른 회사로 이직에 성공했다. 모두에게 해피 엔딩이었다.
* * *
3주간의 타이틀곡 활동과 1주간의 커플링 곡으로 예정된 크리드의 활동 2주 차가 끝나 가지만, 대중의 관심은 사그라들 줄 몰랐다. 김준홍 사건으로 인해 반응이 더 좋아진 건 말할 것도 없었다.
-오 오늘은 양아치 교복이었네??
-단정한 교복도 좋은데 역시 난 저런 자유분방한게 좋앜ㅋㅋㅋㅋㅋ
└이거 완전 갈리더라ㅇㅇ 나는 단정파
-근데 애들 설마 평일 주말 교복스타일 다른거 의도한거아니겠지?
└뭘 의도해?
└평일에 학교가고 주말엔 안가잖앜ㅋㅋㅋㅋㅋ
└?ㅁㅊ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대형 커뮤니티 게시판에 글 하나가 올라왔다.
[크리드] 과몰입하게 만드는 신인 아이돌의 무대 의상 (조회수 : 4839)
아니 나는 원래 크리드 팬 아니었거든? 우연히 알고리즘에 떠서 보다가 스며들었는데, 얘네 의상이 교복 컨셉이더라고ㅇㅇ 근데 어느 날은 교복을 세상 단정하게 입히고, 언제는 다 풀어헤치고 그래서 뭔가 싶었거든. 이유가 있나 하고 어제 트리위키 정독하다가 이마 깰 뻔했잖아;;
크리드 컨셉이 아이디, 이드로 나뉘거든? (클로버들은 다 알겠지만 머글들은 모를 수 있으니까 미리 얘기해둘게ㅇㅇ) 근데 아이디는 약간 범생이 느낌? 단정한 학생이라면 이드는 완전 자유분방하고 이런 표현 좀 그렇지만 날티ㅋㅋㅋㅋ나는 컨셉이거든.
근데 얘네 의상을 보면 평일에 있는 음악방송은 이렇게 비교적 단정한 교복을 입어.
(사진)
근데 주말에 하는 음방들 의상 보면 완전 후리하게 입혀놨거든? 막 넥타이도 안 메고, 셔츠도 풀어헤치고ㅇㅇ
(사진)
그니까 이거 지금 아이디, 이드 컨셉에 맞춰서 생각하면 학생이어서 평일에는 단정하게 갖춰입은 거고, 주말에는 학교 안 가니까 자유롭게 입은 거지;; 크리드 데뷔할 때 운석으로 프로모한 것도 그렇고 소속사가 한 과몰입 하는 듯ㅋㅋㅋㅋㅋㅋㅋ
아무튼 팬들 과몰입하게 만드는 아이돌 크리드 많관부! 다들 늦기 전에 클로버 하자… 입덕은 부정할수록 결국 떡밥 복습만 힘들게 할 뿐임ㅇㅇ
-과몰입 무슨일임ㅋㅋㅋㅋㅋㅋ
-온오프가 다른거네? 맛있어보이는데 간잽해볼까…
└츄라이츄라이
└같이 클로버하자ㅇㅇ
└클로버특 : 관심보이는 사람 나타나면 무조건 납치해감
-근데 주말이면 사복을 입혔겠지
└옷이 교복밖에 없는 세계관임ㅇㅇ
└아 진짜?
└그럴리갘ㅋㅋㅋㅋ
└근데 저건 거의 사복이라고 봐도 무방해섴ㅋㅋㅋㅋ
그리고 이 상황을 지켜보던 나는 내심 뿌듯했다. 온오프가 있는 학생 컨셉인 만큼 평일, 주말을 다르게 입어 보자는 아이디어는 내가 제안했기 때문이다.
“지난번에 승빈 씨가 냈던 아이디어, 반응 되게 좋더라고요?”
“감사합니다. 디렉터님이 아이디어를 구체화시키는 데 도움 주셔서 그런 거죠.”
“앞으로도 적극적으로 의견 제안해 줘요. 그건 그렇고, 이제 벌써 마지막 주네요?”
“와… 시간 진짜 빠르네요.”
“후속곡이 한 주 더 남긴 했지만, 타이틀곡 마지막 무대에서는 진짜 여러분의 교복을 입을까 하는데, 어때요?”
“오, 좋아요!”
대부분 오케이를 하던 중 조용히 손을 들었다.
“승빈 씨, 다른 의견 있어요?”
“음… 저희가 이미 청춘예찬 무대에서 진짜 교복을 입은 적이 있어서, 혹시 교복을 서로 바꿔 입는 건 어떨까요?”
내 말을 듣고 오해나 디렉터는 잠시 생각을 하더니 흔쾌히 오케이 했다.
“좋은데요? 다른 멤버들은 어때요?”
“좋아요!”
“괜찮은 거 같아요!”
그때 윤빈 형이 묘하게 시무룩해진 목소리로 말을 꺼냈다.
“근데… 저는 학교에서 유니폼 안 입었어요.”
“아, 맞다. 형 외국에서 학교 다녔었지.”
다들 난감해하던 차에 운동복을 입고 있던 형의 사진이 떠올랐다.
“형, 운동할 때 입던 유니폼 있었죠?”
“오, 그건 있지.”
“그럼 그걸로 해요-”
“윤빈 씨, 무슨 운동 했었어요?”
“음, 농구랑 축구랑 야구랑 테니스랑 미식축구랑…….”
“와우.”
“형 진짜 운동만 했구나, 공부 하나도 안 했죠?”
“형 놀리면 못 써, 재봉아.”
“와, 그런 표현은 또 언제 배운 거예요?”
끊임없이 나오는 윤빈 형의 운동 연대기에 오해나 디렉터도 넋을 놓고 감탄했다.
“교복들 사이에 운동복 있으면 독특하고 더 재밌을 거 같은데요? 그럼 지금 가지고 있는 유니폼 있어요?”
“농구 유니폼은 있어요.”
농구복은 숙소에서도 잠옷처럼 편하게 입는 걸 몇 번 본 적 있었다. 그때 강도현이 물었다.
“그럼 윤빈 형 잠옷 입고 하는 거야?”
형은 다급하게 손을 내저으며 해명했다.
“아니야- 한 벌 더 있어.”
“아, 그럼 다행이네요.”
“누가 누구 교복을 입느냐에 따라 완전 재밌는 장면 나오겠는데?”
다들 농구복만 안 걸리길 바라는 듯했다. 이때까지는 다들 재밌겠다는 생각에 하하 호호였다. 당일에 누구의 교복을 입게 될지 꿈에도 상상하지 못한 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