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혼자 할 거면 두 번 데뷔 안 함-139화 (139/346)

139화

팬들의 축하와 함성을 받으면서 무대를 내려왔다. 대기실로 향하는 내내 꿈을 꾸는 기분이었다.

“형, 제 볼 한번만 꼬집어 주실 수 있어요?”

“네가 해 달라고 했다?”

아프지 않게 볼을 잡아당기자 박재봉이 헛소리를 했다.

“역시… 안 아프네요. 맞아요, 이건 꿈일 거예요.”

“하…….”

결국 한 번 더 힘주어 볼을 잡자 그제야 비명과 함께 박재봉이 다시 울면서 웃었다.

“와, 꿈이 아니잖아!”

“뭐야, 재봉이 지금 웃다가 우는 거야? 너 그러면…….”

“아, 형!”

‘어디서 많이 본 장면인데?’

말은 저렇게 하면서도 강도현에게 한걸음에 달려가 안겼다. 강도현도 그간 미안한 마음이 있었는지 더는 장난을 치거나 틱틱거리지 않았다.

“다들 정말 축하해!”

“형도 진짜 고생 많았어요.”

이전의 앙금은 1위의 기쁨과 함께 많이 상쇄된 거 같아 보였다.

‘이 정도면 지금 굳이 비밀을 확인하지 않아도 되지 않을까?’

얼른 눌러 달라는 듯 눈앞에서 보상 창이 반짝거렸지만 애써 모른 척했다. 앞으로 정유현 가정사 등 예정된 굵직한 사건들이 발생할 테니까 그때를 위해 비축해 두는 게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회사로 돌아와서 소소한 축하 파티를 열었다.

“다들 엄청 긴장한 거 같던데.”

“재봉이랑 선우는 너무 울어서 무슨 나라 잃은 줄 알았어.”

“하, 소감 얘기 못 한 거 너무 아쉬워요. 다음엔 꼭 제가 할래요!”

“울다가 끝나는 거 아니야?”

“참나, 제가 형보다 더 잘 준비할 건데요?”

회사 직원들도 요 며칠 알게 모르게 냉전이 오갔던 것을 알고 있던 터라 강도현과 박재봉의 관계 진전에 안심한 듯 보였다.

“1위 기념으로 에이앱 할까요?”

“안 그래도 1위 축하한다고 연습실 꾸며 놨어. 장소 이동해서 하자.”

“그럼, 지금 갈까요?”

“배 안 고파?”

“네! 빨리 에이앱 하고 싶어요!”

현장에 오지 못한 클로버들과도 1위의 기쁨을 나누고 싶은 마음은 모두 같았다. 연습실로 향하니 벽에 풍선과 반짝이로 꾸며져 있었다. 그리고 주문 제작한 케이크도 있었다. 멤버들의 동물 캐릭터가 그려진 케이크였다.

“우와, 언제 이런 걸 준비하셨어요?”

“사실 이번 주 쇼히어로는 1위 할 수 있지 않을까 싶어서 미리 준비했지~”

“다들 준비됐으면 방송 시작할게-”

“네!”

[첫 1위 했어요! 클로버 짱♡]

-애들아아아아아

-1위 축하해!!!

-So proud of you my Baby

-1위 가수 크리드♡

“와, 엄청 빨리 들어오시네.”

“이제 시작한다.”

“와아아아아!!!!”

우렁찬 선우 형의 함성과 함께 에이앱이 시작됐다.

“클로버들 안녕!”

“저희 오늘 1위 했어요!”

댓글창이 읽기 어려울 정도로 빠르게 지나갔다. 수백만의 사람들에게서 축하를 받으니 데뷔하길 정말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와중에 케이크준비한거봨ㅋㅋㅋㅋ

-코어 진짜 크리드맘들이라고ㅋㅋㅋㅋㅋㅋ

└진심ㅇㅇ 씨넷 산하라서 걱정했더니ㅠㅠㅠㅠ

-케이크 완전 이쁘다ㅠㅠ우리 애들 신경마니써주네

“1위 한 기분이 어떠냐고요? 저 진짜 하늘을 나는 기분이에요, 지금도.”

“맞아요. 재봉, 아니 이든이가 저한테 볼 꼬집어 달라고 했어요. 아무래도 꿈같다고.”

“근데 처음에 살살 잡아당겼더니 뭐라고 했지?”

“방금 도현이가 말한 거처럼 볼 아플까 봐 살살 잡아당기니까 이거 꿈 맞다고 하는 거예요. 한참 웃었죠.”

-엉뚱햌ㅋㅋㅋㅋ

-꿈아니야 재봉앜ㅋㅋㅋ

“1위 공약은 누가 정한 거냐고요? 그거 선우 형이 낸 아이디어였어요.”

“아, 승빈이 랩 너무 멋졌어.”

“이제 선우 형한테 메인 보컬 자리 넘기려고요.”

30분 정도의 짧은 에이앱이었지만, 에너지를 얻기에 충분했다. 마지막 인사를 끝으로 에이앱을 종료했고, 다들 남은 케이크를 다 처리했다. 방송할 때는 최대한 입에 묻히거나 입을 크게 벌리면 안 된다는 걸 이제는 말 안 해도 알아서 다들 편하게 먹지 못했다.

“윤빈 형 입 진짜 크다…….”

“내가 저 형 입 다 벌리고 먹을까 봐 조마조마했잖아.”

“에이, 나도 이제 그런 건 알아.”

“오- 이제 아이돌 다 됐네-”

오랜만에 느끼는 왁자지껄하면서도 불편함 없는 분위기였다. 앞으로 이렇게만 지내면 더 바랄 게 없을 정도로.

* * *

쇼히어로에 이어 다음 날 뮤직쇼까지 1위를 하면서 크리드의 기세는 멈추지 않았다. 그리고 금요일인 오늘은 ‘뮤직센터’ 1위 후보에 오르기까지 했다. 모두 어리둥절한 반응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공중파이기도 했고, 음원과 음반의 비율이 절반씩 차지하는 음악 방송이라 음원 강자인 김준홍과 대중성 최고인 걸그룹 ‘썸머’가 1위 후보에 오를 것이라고 예상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번 주 음원이 생각보다 괜찮은 순위를 유지하면서 1위 후보에 오를 수 있었던 거다.

“대박, 뮤직센터는 기대도 안 했는데.”

“1위는 힘들겠죠……?”

“아무래도 그렇지?”

“그래도 후보만으로도 대박이다, 진짜.”

“그니까요!”

다들 1위 후보에 들떠 있으면서도 1위 자체에 대한 욕심은 크지 않아 보였다.

“나 잠깐 화장실 좀.”

재수가 없어도 이럴 수가 있나, 화장실을 가는 길에 김준홍을 마주쳤다. 께름직했지만, 일단 선배니까 인사를 했다.

“안녕하십니까!”

“오늘도 1위 후보더라?”

“아, 네. 선배님과 함께 후보여서 영광입니다.”

“요즘 인기 좋나 봐?”

“좋게 봐 주셔서 감사합니다.”

“쇼히어로도 그렇고… 오늘은 선배가 1위 좀 할 거 같은데. 괜찮지?”

‘지가 하고 싶다고 할 수 있나…….’

“하하, 저희도 열심히 하겠습니다.”

김준홍을 부르는 스태프의 목소리가 아니었으면 또 복도에서 일장 연설을 들을 뻔했다.

“오늘의 1위 후보! 김준홍 씨와 크리드를 만나 보겠습니다~”

“안녕하세요, 김준홍입니다.”

“와, 김준홍 씨는 이번 앨범으로 2년 만에 음악 방송 활동을 시작해서 화제가 되었는데요, 소감이 어떠신가요?”

“2년 만에 와 보니 바뀐 것도 많고, 배워 간다는 마음으로 왔습니다. 하하.”

“데뷔 10년 차이신데도 겸손한 모습 정말 멋있습니다, 선배님!”

내내 대본만 보며 멘트하던 엠시가 저 멘트만 김준홍의 눈을 뚫어져라 보면서 하니 조금 웃겼다.

‘어린애가 사회생활 잘하네.’

“그리고 데뷔한 지 2주 만에 1위 후보에 오른 무서운 신인 크리드죠! 오늘 1위를 하게 된다면 준비한 공약이 있나요?”

“저희가 만약 1위를 한다면 동물 머리띠와 장갑을 끼고! 신세계를 추겠습니다.”

“와~ 크리드 분들의 공약도 정말 기대됩니다! 그럼 1위 후보들의 무대는 잠시 후에 만나겠습니다.”

인터뷰를 마치고 김준홍은 여자 엠시의 인사만 받고 우리의 인사는 역시나 또 무시했다. 요즘엔 인터뷰 후에도 촬영을 멈추지 않고 비하인드로 내보내는데, 음악 방송은 오랜만이라서 잘 모르는 눈치였다.

‘굳이 말해 줄 필요도 없으니까.’

오늘 무대는 평소보다 더 텐션이 올라간 상태였다. 1위 후보라는 소식에 클로버들도 평소보다 더 열정적으로 응원하는 게 느껴졌다. 오늘 만약 1위를 한다면 남자 아이돌 그룹 중 최단기간 공중파 1위가 되기 때문에 기대감이 컸을 것이다.

그 어느 때보다 열정적이었던 신세계 무대를 마치고 김준홍의 무대를 피날레로 모두 1위 발표를 위해 무대 위로 올라왔다.

“8월 셋째 주 뮤직센터의 1위는 누구일까요? 먼저 음반 점수입니다.”

음반 점수는 예상대로 우리가 월등했다. 하지만 음원 점수는 김준홍이 거의 2배에 가까운 점수를 받아서 막상막하였다. 소셜 미디어 점수와 방송 점수는 비등비등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팬들의 실시간 문자 투표가 당락을 결정하게 되었다.

“실시간 투표를 합산한 오늘의 1위는…….”

[김준홍 15432 / 크리드 15450]

“축하합니다, 크리드!”

“와아아아!!!!”

“뭐, 뭐야?”

“진짜?”

“우리라고?”

오늘이야말로 1위가 될 가능성이 정말 낮다고 생각해서 소감도 제대로 준비를 못 했다. 정유현도 답지 않게 마이크를 쥐고 우왕좌왕하던 중, 박재봉이 마이크를 쥐었다.

“클로버들! 우리 1등 했어요!”

“애들아, 축하해!”

그러더니 회사에 대한 감사 인사, 멤버들에게 수고했다는 말과 앞으로의 포부까지 당차게 말했다. 강도현보다 잘 말하겠다고 호언장담하더니 진짜 준비 한번 제대로 했네.

그렇게 약속한 공약을 수행하고, 앵콜이 끝나고 나서도 한참 동안 클로버들과 기쁨을 나눴다.

“크리드분들 이제 퇴장하겠습니다-”

“클로버들 오늘 진짜 고마워요!!”

“감사합니다!”

“잘가, 애들아!”

“조심해서 들어가요~”

현장을 나서면서도 계속 뒤를 돌아봤다. 텅 빈 무대 위였지만 현실감이 없었다. 뮤직센터에서 1위를 하다니!

앵콜을 마치고 대기실로 향하는데, 퇴근하려는 김준홍을 마주쳤다. 보통 음악 방송이 끝나면 다 같이 피디에게 인사를 하고는 했는데, 연차가 연차다 보니 그 꼰대 문화에서 탈출한 거 같았다. 눈이 마주치기도 전에 정유현이 먼저 인사를 했다.

“선배님, 조심히 들어가세요.”

“아, 눈에 X나 거슬리네.”

“…네?”

“너네 나 X먹이냐 지금? 내가 뮤직센터 다시 출연하나 봐라. X발, 2년 만에 출연하는 거면 당연히 줘야 하는 거 아니야? 안 그래, 은정아?”

“네? 아, 네… 그쵸.”

원색적인 비난에 다들 할 말을 잃었다. 아무리 아무도 없는 복도라지만 이렇게 방송국에서 대놓고 막말을 하다니. 한참을 혼자 씩씩대던 김준홍이 또 박재봉을 물고 늘어졌다.

“뭘 째려봐? 기생오라비같이 생긴 놈이 꼴에 남자라고 눈 치켜뜨는 거냐?”

“…아닙니다.”

“아니긴 뭐가 아냐 X발. 기분 나쁘다고 티 내는 거냐? 사내구실도 못 하게 생겨 가지고는 내가 우스워?”

박재봉 성격에 그래도 잘 참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표정을 온전히 숨기지는 못했나 보다. 김준홍이 건수를 잡았다는 듯 복도가 떠나가라 소리를 질렀다.

‘이 X끼는 예쁘게 생긴 남자한테 콤플렉스가 있나? 왜 이렇게 박재봉한테만 X랄이지?’

웃긴 것은 김준홍도 데뷔 초반 ‘예쁜 남자’ 열풍으로 이득을 본 사람 중 하나라는 것이다. 본인도 누구보다 저런 말 많이 들었을 텐데, 지금 자기가 당했었다고 똑같이 하는 건가?

‘진짜 최악인데?’

이번에도 정유현과 강도현이 어찌어찌 분위기를 풀고, 뒤늦게 도착한 매니저가 상황을 파악하고 나서야 김준홍에게서 벗어날 수 있었다. 박재봉의 상태를 확인하니 역시나 원상태로 돌아왔다. 아니, 더 악화되었다.

상황이 어느 정도 정리되자 강도현이 가볍게 박재봉의 어깨를 주무르며 말했다.

“어휴, 1위 못해서 엄청 자존심 상했나 보지? 다음부터는 그냥 쳐다보지도 말-”

“네, 그럴게요.”

“…뭐?”

강도현의 말을 끊고 대답한 박재봉은 더 화낼 힘도 없다는 듯 공허한 눈으로 대기실로 향했다. 금방이라도 바스러질 것만 같은 위태함이었다. 그런 박재봉을 따라 급하게 대기실로 들어가자 보상창이 미친 듯이 발광을 하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벌어진 일에 이런 의심까지 들 정도였다.

‘설마, 지금 보상 버튼 안 눌렀다고 이렇게까지 상태를 악화시킨 건 아니겠지?’

결국 울며 겨자 먹기로 속으로 외쳤다.

‘보상 수령.’

그러자 그렇게 지랄 발광을 하던 보상창이 조용해졌다.

[*보상 실행*]

순식간에 시야가 암전되더니 이내 눈앞에 보인 광경에 정신이 다 아득해졌다.

‘여기는 학교인데?’

이 망할 상태창, 도대체 얼마나 더 말도 안 되는 일이 벌어져야 만족을 할까?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