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혼자 할 거면 두 번 데뷔 안 함-138화 (138/346)

138화

“어, 없었어.”

“그냥 사진만 올라온 거 맞죠?”

“그렇다니까?”

“…다행이다. 알겠어요.”

몇 번이고 되묻던 일방적인 대화가 끝나고 조금 어이가 없었다. 어차피 다들 지금 숙소에 있는데 얼마나 급했으면 전화를 다 했을까.

혹시나 해서 나가 본 거실에서는 선우 형과 강도현의 웃음소리가 가득했다.

“아니, 이거 진짜 재봉이 너 맞아?”

“아니요.”

하도 별별 과거 사진이 많이 올라오니까 서로 단톡방에서 사진을 공유하면서 장난치는 건 일상적인 일이었다. 물론 박재봉과 선우 형, 강도현 이 셋이 그 주축이기도 했고.

“너 맞잖아~”

하지만 박재봉의 반응이 좀 달랐다. 까까머리가 충격적이긴 했지만, 사실 사진 자체로 보면 못 나온 사진도 아니었다. 그리고 거의 엽사에 가까운 사진이 단톡에 올라와도 본인이 더 웃겨 하던 박재봉이었는데 뭔가 이상했다.

“아니라고 해도 안 믿을 거면서 왜 물어봐요?”

“완전 까까머리에 귀여웠네~”

‘지금 분위기 풀어 보겠다고 저러는 거야?’

머리가 지끈거렸다. 둘 다 나쁜 성격은 아니지만, 마냥 장난스럽게 접근해서 될 문제 같지는 않았다.

“아… 네.”

전처럼 급발진하는 건 아니었지만, 억지로 입꼬리를 올리는 게 티가 났다. 박재봉의 반응이 생각보다 시원하지 않자, 둘도 더 장난치지는 않았다. 그래도 다들 눈치가 없는 편은 아니라 다행이었다. 머쓱한 듯 방으로 돌아가는 둘을 보며 박재봉이 한숨을 쉬었고, 그 타이밍에 나도 한숨을 내쉰 거 같다.

‘아무리 봐도 가볍게 넘길 수는 없을 거 같은데.’

원래도 그랬지만, 이제는 여러 의미로 1위가 간절해졌다. 1위를 하면 바로 박재봉의 비밀부터 알아봐야겠다.

* * *

생방송 무대 전 대기실에서 기다리던 중, 다급하지만 기대에 찬 목소리가 들렸다. 매니저 형이었다.

“애들아, 너희 오늘 1위 후보래!”

“1위 후보라고요?”

“그래!”

대기실에 있던 모두가 깜짝 놀랐다. 헤어를 받던 박재봉은 순간적으로 고개를 돌렸다가 머리 망가진다며 헤어 스태프의 손에 붙잡혔다. 서포트로 받은 도시락을 먹던 지운이 형과 정유현도 먹는 걸 멈추고 놀란 토끼 눈이었다. 강도현과 선우 형, 윤빈 형은 옹기종기 모여서 씨더스타를 하다가 폰을 떨어트릴 뻔했다.

나 역시 심장이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만약 오늘 1위를 하게 된다면, 아이돌 인생으로는 처음 받아 보는 1위다. 배우로 전향하고 신인상과 인기상은 받았지만, 아이돌로서의 1등은 어떤 기분일지 상상도 안 됐다.

“데뷔곡부터 1위 할 수도 있다는 거잖아?”

“혹시 못 하더라도 실망하지 않기야.”

“당연하죠, 리더님.”

말은 무뚝뚝해도 뭘 말하고 싶은지 알 수 있었다. 연예계 생활하면서 지켜본 결과, 좋은 일이나 나쁜 일에 일희일비하지 않는 사람들이 롱런하더라. 그리고 같이 1위 후보에 오른 사람이 김준홍이어서 더 그랬다. 앨범 판매는 아이돌 그룹인 우리가 월등하지만, 대중적인 인기도 높고 음원을 생각하면 저력을 무시할 수 없었다.

그래도 이제 데뷔 앨범인데 1위 후보에 오른 것만으로도 엄청난 수확이었다. 비록 세간의 관심을 받고 데뷔한 그룹이기 때문에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많지만.

‘잠깐만, 내가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잖아?’

아직도 눈앞에 둥둥 떠다니는 상태창을 보고 정신이 번쩍 들었다. 미션 기한은 100일이었다. 꽤 넉넉한 기간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이번 활동을 마치고 다음 활동을 시작할 때면 아마 100일이 더 지난 후일 것이다. 그리고 그때쯤에는 VM의 루커스가 컴백하기 때문에 지금보다 더 힘들 것이다. 그 말은 곧, 반드시 이번 활동에서 1위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혹시, 만약에 1위 하게 되면 공약 같은 것도 하겠지?”

“너무 김칫국 먹는 거 아니에요?”

잔뜩 들떠 있는 선우 형을 강도현이 진정시켰다. 하지만 정유현이 말을 덧붙였다.

“근데 이러다가 갑자기 1위 하면 더 당황할 수 있으니까 공약 정도는 준비하는 게 좋을 거 같아.”

“거봐~”

“그렇다고 너무 들떠 있지는 말고.”

“넵.”

어떤 세리머니를 할까, 머리를 맞대고 고민했다. 다들 조금씩 들떠 있었고 이런저런 아이디어가 나왔다. 좀처럼 의견이 좁아지지 않던 때, 선우 형이 말했다.

“파트 체인지 할까요?”

“오, 괜찮은데요?”

“무난하니 좋을 거 같네.”

“근데 우리 이러다가 진짜로 1위 하면 어떻게 해요?”

“너무 떨려서 토할 거 같아.”

짹짹이를 확인해 보니 투표 독려와 함께 여러 이벤트가 진행되고 있었다.

[쇼히어로 문자 투표 이벤트

오늘 쇼히어로 생방송 문자 투표에서 크리드를 투표해 주신 분들 중에 2분에게 리짹 추첨을 통해 치킨 쿠폰을 드립니다!

투표 방법 : 7시 20분 이후 #****으로 크리드(띄어쓰기, 영어 사용 X) 보내기.

참여 방법 : 리짹과 함께 멘션으로 인증 (아이디, 투표 시간 모두 나온 사진 필요/ 당첨 후 디엠으로 재확인)

타팬 참여 가능하며 중복 투표 XX]

기프티콘에서부터 무선 이어폰, 덕질 자금까지 다양한 이벤트가 진행되고 있었다.

‘나도 한번 참여해 볼까…….’

얼마나 라인업이 화려했는지, 나도 상품에 잠시 눈이 멀 정도였다. 겨우 정신 차리고 누나에게 연락했다.

[누나 오늘 7시 20분 이후에 #****으로 크리드 투표 좀]

[오, 1위 후보야?]

[응.]

[대박이네 주변 지인 다 털어서 투표해 볼게. 어차피 이미 다 했을 거 같지만.]

그래도 이럴 땐 든든한 누나였다. 아는 지인이란 지인은 다 털어서 투표 부탁을 하고 난 후에야 대기실을 나섰다.

전 출연자들이 함께 서 있는 결과 발표 자리도 아이돌 인생 처음이었다. 항상 맨 뒤, 아니면 1위 가수 뒤에 서서 한 컷이라도 잡히겠다고 열심히 팔딱이던 때가 떠올랐다. 1위 발표를 앞두고 떨렸는지 지운이 형이 말없이 옷소매를 잡았다. 점수를 확인하는데 막상막하였다. 그래서 모두 손에 땀을 쥐고 결과를 기다렸다.

“이번 주 8월 3주 차 쇼히어로 1위는… 크리드 축하합니다!”

“와아아아아!!!!”

“축하해, 애들아!”

팡! 하는 소리와 함께 꽃가루와 폭죽이 터졌고, 모두 놀라 뒷걸음질 쳤다. 잠시 주변 소리가 모두 사라지고 쿵쾅대는 심장 소리만 서라운드로 들리는 듯했다. 티벡스 시절엔 단 한 번이라도 음악 방송 1위를 한다면 미련 없이 해체를 받아들일 수 있으리라고 생각하던 때가 있었다.

1위를 했다는 소식도 놀라웠지만. 방청석에서 누구보다 기뻐하며 축하해 주는 팬들과, 수많은 선배 가수들 사이에서 트로피를 쥔 내 모습까지 모든 게 비현실적이었다. 아직 실감이 나지 않아 모두 선뜻 소감을 말하지 못했다.

처음 마이크를 받은 강도현은 목이 메는 듯 마이크를 입에 갖다 댔다가 떼어 내기를 반복했다. 옆에서 윤빈 형과 선우 형, 박재봉은 얼싸안고 운 지 오래였다. 나는 한참 동안 트로피를 보다가 지운이 형에게 트로피를 건넸다. 형의 눈에도 눈물이 맺혀 있었다.

“지운이 혀어엉-”

“흐어엉…….”

“…풉!”

“못난이들이다, 못난이들.”

자기들끼리 얼싸안고 울던 셋이 타깃을 바꿔 나와 지운이 형에게 두 팔을 펼치고 다가왔다.

‘그래, 오늘 같은 날은 받아 주자.’

웬일로 거부하지 않고 안겨 오는 내가 이상했는지 박재봉이 도리어 멈칫했다. 훌쩍이면서도 이 형이 웬일로 순순히 가만히 있는 건지 생각하는 게 눈에 다 보였다. 하여간 투명한 놈이다. 쭈뼛대길래 먼저 안아 주니 더 뿌엥 하고 운다.

옆을 보니 지운이 형에 비하면 난 양반이었다. 양어깨에 자기보다 키가 큰 남자애 둘을 끼고 눈물을 닦아 주느라 정신이 없어 보였다. 그사이 형은 눈물이 다 들어갔는지, 골치 아프다는 듯 웃고 있었다.

“저, 크리드분들 소감…….”

여기서 더 오디오가 빈다면 방송 사고이기 때문에, 엠시가 주는 꽃다발을 건네받은 정유현이 먼저 소감을 말했다.

“어… 감사합니다. 사실 저희 모두 예상 못 한 결과여서 지금 아무 생각이 안 드네요. 먼저 우리 클로버! 정말 감사합니다. 여러분이 없었다면 오늘 이 상도 없었을 거예요. 항상 아낌없이 사랑해 주시고, 응원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리고 저의 코어 엔터테인먼트 이사님, 대표님, 모든 직원분도 항상 저희를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리고 그사이 감정을 추스른 강도현이 소감을 이어 말했다.

“그리고 우리 멤버들! 너무 고생 많았어, 앞으로도 이렇게 건강하게 클로버랑 활동했으면 좋겠습니다. 아, 우리 멤버들 부모님들께도 감사드린다는 말 전하고 싶습니다. 앞으로도 겸손하고 성장하는 크리드 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네, 크리드분들 1위 진심으로 축하합니다. 그럼 저희는 여기서 인사드릴까요? 음악이 세상을 구한다, 쇼히어로! 다음 주에 만나요~”

김준홍에게도 인사를 하려고 했지만, 우리의 인사는 못 본 체하고 바로 무대 아래로 내려갔다.

‘진짜 한결같네.’

평소였다면 기분 나빴겠지만, 지금은 오히려 세상 통쾌했다.

“클로버~ 고마워요!!”

“사랑해요!”

“감사합니다!”

“저희가 클로버를 위한 1위 세리머니를 준비했어요!”

앵콜은 준비한 대로 파트 체인지를 했다. 스태프가 준비한 종이를 뽑았고, 클로버에게 서로 어떤 파트를 맡았는지 보여 줬다.

하필 나는 강도현의 파트였다. 즉, 랩 파트였다. 또다시 투마월 파이널 준비의 악몽이 떠올랐다.

“래퍼 승빈이 컴백하는 거야?”

“와아아!”

“…하하.”

그리고 운명의 장난인지, 선우 형이 내 파트를 뽑았다.

“선우 형 부르다가 목에서 피 나는 거 아니에요?”

“승빈아, 긴장해라? 메보 자리 빼앗길 수도 있으니까.”

“아이고, 무서워라-”

노래가 시작되고 다른 보컬 파트의 멤버들은 무난하게 해냈다. 그리고 드디어 랩 파트가 시작됐다.

[눈앞의 뉴월드

펼쳐진 신세계

넘어질 두려움 따윈

조각난 과거에 두고

앞만 보고 달려]

완벽하진 않았지만, 얼추 모양새를 갖춘 랩이었다. 걱정할 일이 아니었다. 클로버들의 엄청난 함성, 그리고 강도현이 백업을 해 줘서 더 걱정 없이 내지른 거 같다. 투마월 때는 무조건 잘해야 한다는 부담이 있었는데, 지금은 정말 내가 애정하는 사람들 앞이어서 하나도 긴장이 안 됐다. 다음 관전 포인트는 선우 형의 메인 보컬 파트였다. 의외로 노래도 꽤 하는 형이었기 때문에 대부분의 파트는 괜찮았다. 고음만 빼고.

그리고 선우 형은 재치 있게 초고음 부분에만 나에게 마이크를 넘기고 자신은 익살스럽게 립싱크를 하는 기지를 발휘했다.

“하하하!”

모두 신이 난 상태로 앵콜 무대를 하고 있는데, 미션창에 클리어가 떴다. 그리고 또 다른 창이 하나 나타났다.

[*보상 수령*]

‘이건 또 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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