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7화
본격적인 활동기가 시작되고, 몰아치는 떡밥 속에서 허우적대던 클로버에게 또 다른 콘텐츠 알림이 왔다. 승빈의 사진 보정 작업을 하던 문스트럭은 처음 보는 콘텐츠에 호기심이 생겼다.
“이게 뭐야?”
[CR:IDay! ep1. 뮤직비디오는 처음이라]
벌써 영상을 함께 달리자는 글이 클로버 게시판에 올라왔고, 수백만의 사람들이 채팅에 들어왔다.
-무슨 콘텐츠지?
-예능이었으면조켔음ㅋㅋㅋㅋㅋㅋ
-원래 이렇게 하루도 빠짐없이 떡밥터지는게 당연한거야?
└놉 네버
└진심ㅋㅋㅋㅋ구오빠들 일년에 자컨 3회보여주고 끝이었어...
영상을 보니 뮤직비디오 촬영 현장이었다. 무슨 콘텐츠인가 했는데, 대기실이나 촬영 현장에서 멤버들의 리얼한 모습을 담은 영상이었다.
“그래, 아이돌이면 대기실이랑 촬영 현장 보여 주는 자컨 하나쯤은 있어야지.”
시작부터 박선우와 강도현이 카메라 앞에 얼굴을 들이밀고 있었다.
“오- 이게 크리드 캠이야?”
“앞으로 잘 부탁해~”
“여기는! 저희 타이틀곡 ‘신세계’의 뮤직비디오 촬영 현장입니다! 박수!”
박선우의 말에 강도현은 박수를 치며 호응하다가 물었다.
“근데 웬 박수?”
“소리를 지를 순 없잖아-”
박선우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주변에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리다가, 다른 멤버들의 감탄 소리가 크게 울렸다.
“오~”
“소리 질러도 될 거 같은데?”
“뭔지 궁금하죠, 클로버? 같이 확인해 볼까요?”
“역시 선우가 능글맞네.”
문스트럭은 빠르게 올라가는 채팅창을 보며 중얼거렸다.
-뭐야뭐야뭐야
-어그로기만 해봐ㅋㅋㅋㅋㅋ
-애들 헤메코 받나본데?
“방금 들린 소리는 뭐였죠? 윤빈 씨?”
“유현이 형 얼굴에 스카스를 만드는데, 너무 잘 어울려서요-”
“유현이 형! 얼굴 한번 보여 줘요-”
“진짜 잘생겼다니까?”
“와…….”
멤버들의 반응에 쑥스러운지 머쓱하게 웃는 정유현의 얼굴이 카메라에 담기고, 문스트럭도 넋을 놓고 얼굴을 감상했다. 멤버마다 흉터의 위치가 다른 것 같은데, 정유현은 콧잔등에 흉터가 있었다. 피부가 하얘서인지 붉은 흉터가 더 눈에 띄었다. 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건 분장에도 지지 않는 살벌한 이목구비였다.
-ㅁㅊ
-내가 왜 다 자랑스럽냐…
-정유현얼굴 ㅈㄴ짜릿해
-유현이 부끄러운가봨ㅋㅋㅋㅋㅋ특유의 머쓱한 표정 너무 귀여우뮤ㅠㅠㅠ
그사이 강도현도 분장을 마친 듯 다시 카메라에 등장했다. 강도현은 입가 주변이었다. 까무잡잡한 피부에, 흡사 입술이 터진 것 같아서 인터넷 소설의 남자 주인공을 연상시키는 비주얼이었다. 교복도 넥타이 없이 흰 티셔츠에 와이셔츠만 걸쳐서 더 잘 어울렸다.
-도현이 ㅈㄴ세계서열1위할거 같이 생김
-인소의 의인화…
-나 오늘부터 김여주다.
└찰리찰리?
└ㄲㅈ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승빈이 분량 왜 이렇게 없어.”
처음 등장할 때 빼고 모습이 거의 보이지 않는 문승빈 때문에 문스트럭의 인내심이 점점 떨어지고 있었다. 그리고 타이밍 좋게 문승빈이 나타났다.
“클로버들 안녕~”
“미친, 갑자기 그렇게 얼굴 들이밀면 내가 오예이긴 한데…….”
“지금 시간은… 5시 10분입니다. 아주 이른 새벽부터 촬영하고 있어요오…….”
-승빈이 이제 분장마치고 왔나보넼ㅋㅋㅋㅋ
-보고시펐다구ㅠㅠ
-생머리 ㅈㄴ청순하자나…
└청순한데 날티나는 스타일링이 더 맛도리인거 알지 다들?
-근데 졸린가봨ㅋㅋㅋㅋㅋ말꼬리 늘어지는 거 보니까
└오히려 좋다면?
“헐, 승빈이 흉터는 파이널 무대에서 상처 난 부위네? 이런 디테일도 안 놓치고, 천재야 진짜…….”
흑발에 생머리를 한 문승빈이 흉터 분장을 손가락으로 콕 가리키며 열심히 티엠아이를 풀었다. 새벽부터 이어진 촬영이라 그런지 평소보다 나른한 느낌이 가득했다.
“음… 왜 여기다가 했냐면요, 저 투마월 파이널 때 여기 다쳤었짜나여… 아니, 다쳤었잖아요.”
-??
-???????
-내가 지금 뭘 들은거임?
-와 흉터 개리얼하다ㄷㄷ
└그게 중요해? 문승빈이 지금 웅냥거렸다고
광대가 아파 올 정도로 흐뭇하게 보던 문스트럭은 잠시 화면을 멈췄다. 그리고 방금 자신이 들은 것이 진짜인가 한참 고민하다가 10초 전으로 영상을 돌렸다. 그런데 몇 번이고 들어도 같았다.
“아, 미친. 아침 촬영이라 졸렸나? 웅냥거리는 것 봐…….”
평소 날것의 모습보다는 정제된 모습을 많이 보여 주던 승빈의 발음이 뭉개지는 것은 정말 보기 드문 장면이었다. 전생에 배우를 했었는지 의심이 갈 정도로 노래를 부를 때나 평소에도 승빈이 말하는 건 또렷하게 귀에 들어왔다. 오죽하면 자막 기능을 사용하면 문승빈은 거의 오타 없이 그대로 전달이 된다는 짤이 팬들 사이에서 유명할 정도였을까.
“그때 무대 사진이나 영상들을 클로버들이 엄청 좋아하더라고요- 그래서 꼭 여기에 해 달라구 메이크업 쌤한테 말씀드렸어요. 저 잘했죠?”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효자야!!!!!!!!!!!!!!!
└좀 조용히 좀 해;;
-승빈이 금방이라도 머리에서 귀 튀어나올거같으뮤ㅠㅠㅠㅠㅠ걍 댕댕이 아니냐고ㅠㅠㅠ
-앜ㅋㅋㅋㅋ
-그래써요 우리승빈이?
-혼자 쫑알쫑알거리는거봐ㅠㅠㅠㅠㅠㅠ한입에 자바머거ㅠㅠㅠㅠ
-ㅋㅋㅋㅋㅋㅋ승빈이 무슨 위튜버같음ㅋㅋㅋㅋㅋㅋㅋ
-이거 진짜 귀한자료다…금손님들 컷따주실때까지 숨참고있어야지!
└(링크) 이미 올라옴ㅋㅋㅋㅋㅋㅋ
“뭐지? 어떻게 이렇게 귀엽지? 아, 너무 귀여운데?”
문스트럭은 하염없이 귀엽다는 말만 무한 반복했다. 옆에 누가 있었다면 주문이라도 외우냐고 물었을 것이다. 문스트럭은 이제 승빈의 모든 것이 귀여워 보이는 경지에 올랐다. 세상에는 사람을 헤어 나오게 하지 못하는 것들이 있는데 그중 제일은 ‘귀여움’이다. 귀여워 보이기 시작한다? 그렇다면 심심한 위로를 건넨다. 그건 정말 답도 없는 사랑에 빠진 거니까.
“아니 근데, 우리 다 같이 흉터 분장했는데 누구는 맞은 거 같고 누구는 때린 거 같지 않아요?”
승빈의 질문에 정유현을 중심으로 모여서 얼굴을 맞댔다. 신난 사람과 기가 빨린 사람의 표정이 확연하게 달랐다.
-E들이랑 I들 차이봨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애들 너무 사이 좋아보이고 좋다ㅠㅠ
“뭐야, 진짜네?”
“난 때린 사람 같지?”
“선우 형은 누가 봐도… 당연히 맞은 사람이죠.”
“하하하! 맞아요. 선우 형이랑 저랑 승빈이 형은 맞은 거 같고 지운이 형은…….”
박재봉은 차지운의 얼굴을 보고 급기야 딸꾹질을 하기 시작했다. 사람 얼굴 보고 너무한 거 아닌가 싶을 수도 있지만 화면에 잡힌 얼굴을 보니 놀랄 만도 했다. 차지운은 눈꼬리부터 눈썹까지 이어지게 흉터 분장을 했다. 속쌍이 거의 보이지 않을 정도의 무쌍인 차지운의 날카로운 눈매가 더 부각되는 흉터였다. 무슨 문제가 있냐는 듯 재봉을 올려다보는데 치켜뜬 눈 때문에 더 센 분위기가 만들어졌다.
-와;;
-지운아 널 정말 사랑하지만 너 정말… 더보기
-어쩌다 저얼굴에 천사의영혼이ㅠㅠㅠㅠㅠ
└왜 우리 지운이 기를 죽이고그래요ㅡㅡ
분명 멤버들의 일상을 보여 주는 콘텐츠임에도 멤버들 간의 관계성이 잘 보여서 지루하지 않았다. 무엇보다도 투마월 때는 좀 어색한가? 싶었던 관계들도 많이 친밀해진 게 눈에 보였다.
* * *
크리드가 데뷔한 지 2주 차를 향하고 있는 지금, 그룹의 성적을 확인해 봤다. 먼저 데뷔 앨범은 초동 30만을 기록하면서 역대 신인 그룹 초동 1위를 차지했다. 이전의 기록은 VM의 루커스가 세운 27만 장이었다. 집계 5일 차에 20만 장을 기록하고 있었는데, 신인 그룹 초동 1위를 시켜야 한다는 일념하에 클로버들의 화력이 불타올랐고, 결국 마지막 날 30만 장을 찍을 수 있었다. 그리고 2주 차인 현재, 총판은 40만 장을 넘어가고 있었다.
사실 회귀 전에는 아이돌 앨범 판매량 경쟁이 과열되어 초동이 50만을 넘어가는 그룹도 여럿이었지만, 지금은 아직 그 정도는 아니었다. 그래도 그렇지, 팬 사인회 한번 잡히면 몇만 장이 순식간에 팔린다는 것이 나로서는 처음 겪는 경험이었다.
티벡스는… 말을 말자. 그래도 데뷔 앨범은 지운이 형의 인기 덕분에 만 단위가 나왔던 거로 기억한다. 소속사의 삽질과 멤버들의 탈주로 인해 그룹이 공중분해되기 직전에는 천 단위로 뚝 떨어졌지만.
그리고 그룹과 개인에 대한 화제성도 높은 순위를 유지했다. 남자 아이돌 브랜드 평판 순위는 VM의 간판 그룹인 루커스와 1, 2위를 다투고 있었다. 이런 굵직한 순위 이외에도 틈만 나면 연령대 검색어에 멤버 개개인의 이름이 등장하는 등 높은 화제성을 유지했다.
이런 화제성이 가장 피부로 느껴진 순간은 벌써 10개가 넘는 광고를 찍었다는 것이다. 광고 종류도 음료, 화장품, 의류 등 다양했다. 배우로 성공하던 때에도 이렇게 많은 광고를 찍은 적이 없었는데.
이렇게 높은 관심과 화제성만큼 고충도 있었다. 갑자기 친한 지인이라고 자칭하는 사람들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문승빈이랑 친했는데 공부도 꽤 열심히 했는데 수업 시간에 엄청 졸았음ㅇㅇ]
이런 건 귀여운 수준이었다.
[00중 3학년 때 같은 반이었는데 걍 찐따였음ㅇㅇ 얘는 학폭 걱정할 필요 없을듯ㅋㅋ]
-승빈이 2학년때 **중으로 전학 갔었는데 뭔소리임?
이렇게 반박 글이 올라오면 빛삭하는 게 일상이었다. 아예 모르는 사이가 올린 글도 어이가 없었지만, 애매하게 같은 반이었거나 대화 한번 했던 걸 근거로 절친 행세를 하는 사람들도 골치 아팠다.
그리고 의외로 제일 골 때리는 거는 우후죽순으로 풀리는 과거 사진이었다. 잘 나온 사진만 올렸다면 상관없겠지만 아직 생기다 만 감자 시절 사진은 민망했다.
[문승빈 유치원 졸업 사진]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완전 반죽시절 아님?ㅋㅋㅋㅋㅋㅋ
-손목 포동포동한 것봨ㅋㅋㅋㅋㅋㅋ
-몇살때야 저겤ㅋㅋㅋㅋㅋ
흑역사에 가까운 사진이 나오면 온갖 밈과 짤로 소비되는 것도 시간문제였다. 그나마 팬들이 쓰는 것은 괜찮지만 안티들에게 사용되는 것은 반갑지 않았다.
그러던 중, 뜻밖의 사진이 공개됐다. 박재봉의 중학교 1학년 때 사진이었는데, 지금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빨갛게 탄 피부와 삭발한 게 아닌가 생각이 들 정도로 짧은 까까머리였다.
-이거 재봉이라고?
└아 머리에 너무 충격받아서 얼굴을 지금봤는데 똑같이 생겼네
-까까머리재봉잌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감자감자 했지만 이건 진짜 감자잖아ㅋㅋㅋㅋㅋ
-와중에 두상 존예다... 동글동글 빚어놓은 거 같음
└그니까ㅋㅋㅋㅋㅋ 떼굴떼굴 굴려버려ㅠㅠㅠㅠ
└그건 좀;; 잔인하다곸ㅋㅋㅋㅋㅋ
-아니 남중이라서 그런가? 이런 사진이 이제야 풀리다니
└긍까ㅋㅋㅋㅋ 서바 때 안풀린게 신기함ㅇㅇ
“이게 박재봉이라고?”
박재봉이라고는 절대 상상할 수 없었다. 피부 그을리면 안 된다고 선크림을 덕지덕지 바르다가 토시오 같은 모습까지 보여 준 애가 이렇게 꼬질꼬질한 과거가 있었다고? 와중에 피부는 하얘서 까무잡잡하게 타지도 않고, 양 볼만 붉게 익어 있었다.
그리고 이 사진을 단톡방에 올리자 박재봉에게서 급하게 전화가 왔다.
“어, 재봉아. 너 예전에…….”
“다른 얘기는 없었죠?”
“응?”
“사진 말고 다른 글은 없었죠?”
다급하게 묻는 목소리에서 뭔가 촉이 발동했다. 이거 분명 박재봉의 트라우마와 관련이 되어 있을 거 같다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