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혼자 할 거면 두 번 데뷔 안 함-135화 (135/346)

135화

사전 녹화가 시작된 후에도 박재봉의 상태는 돌아올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원래라면 사전 녹화 내내 누구보다 밝은 에너지로 클로버에게 장난을 치고 말을 거는 박재봉이었는데 유독 조용했다. 사실 문제가 될 정도의 태도는 아니었지만, 평소 모습과 확연히 다르다는 게 문제였다.

‘이러다가 분명 팬들 사이에서 말 나올 텐데…….’

“크리드 사전 녹화 시작하겠습니다!”

“네!”

“재봉아, 자리 잡아야지.”

“…네.”

다행히 무대 자체에는 영향을 주지 않았다. 무대가 끝나고 나서는 텐션이 조금 돌아왔는지, 평소보다는 낮은 텐션이었지만 팬들과 소통하기 시작했다.

“클로버들, 밥 먹었어요?”

“안… 아니, 먹었어! 재봉이도 먹었지?”

“에이, 클로버들 사실 밥 안 먹었죠!? 저희도 다 알아요.”

“배고파-”

“그래서 저희가 맛있는 간식들 준비했으니까 사녹 끝나고 꼭 받아 가세요!”

“와아아아!”

역조공은 멤버들의 아이디어였다. 이른 새벽부터 사전 녹화를 참여하는 팬들이 대부분 끼니를 거른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간식과 샌드위치를 준비했다. 사전 녹화를 마치고 대기실에 돌아와 팬들의 반응을 확인했다.

[크리드 공방 후기

오늘 멤버들이 역조공으로 각자 최애 음료랑 샌드위치 줌ㅠㅠㅠ

승빈 : 딸기스무디

재봉 : 퐁퐁초코라떼

선우 : 초코자바칩프라푸치노

유현 : 아이스아메리카노

지운 : 돌체라떼

윤빈 : 바닐라라떼

도현 : 그린티스무디

샌드위치는 참치/ 계란 중 선택]

-자기들 최애메뉴로 정한거 왜이렇게 귀엽짘ㅋㅋㅋㅋㅋ

└팬들 손민수하기 편했을듯ㅋㅋㅋㅋ

-메뉴만 봐도 누가 누구인지 알거같앜ㅋㅋㅋㅋㅋ

-형라인중에 선우만 초코인거 왜 웃기짘ㅋㅋㅋ

└역시 대표 애기입맛

└근데 홍삼캔디는 왜 좋아하는거지;;

-재봉이 퐁퐁초코라뗔ㅋㅋㅋㅋㅋㅋㅋ저거 엄청 달잖아.

└ㅇㅇ과자도 들어가서 완전 달다구리 그자체임

-유현이 아아 왜이렇게 잘어울림?

└아아마시는 대학생 정유현 생각하니 새삼 아이돌해줘서 고마움

사녹 후기도 하나둘 올라왔다.

크링 @cridlo♡er 3분 전

[오늘 뮤비 레자의상ㅇㅇ 윤빈이 완깐에다가 재봉이 약간 펌있는 머리, 승빈이 이어커프...(쥬금) 지운이는 반깐머리, 유현이는 생머리였고 도현이 브릿지 붙였고, 선우는 립커프했어요! 재봉이가 초반에 약간 피곤한 거 같았는데 나중에는 먼저 장난도 치고 괜찮아보였어요.]

-ㅅㅂ문승빈이어커프...

-선우입술에 뭐요?

└내가 본게 립커프가 맞음?

-윤빈이 완깐 개오랜만이다 섹시팀의 재림이냐고;;

-재봉이 피곤해보였다는 후기가 많네ㅠㅠㅠ

└스케줄 많아서 힘들었나봐ㅠㅠ

└아기건강지켜ㅠㅠ

‘역시 말이 나왔네…….’

그래도 대부분 컨디션이 잠깐 안 좋았고, 뒤에 가서는 평소 같았다는 것을 강조하는 후기가 많았다. 그래서 안심하던 찰나, 수위가 센 알계가 등장했다.

정신차려 @dongtae_out 4분전

[봉프들 피의 쉴드 역겨워서 사진 풀음^^

이게 데뷔한 지 일주일도 안 된 남돌한테 나올 눈은 아니지 않음?

(무표정의 박재봉 사진)

개명할 시간에 표정관리나 배우고 와 재봉아ㅠㅠ

#이든 #투마월 #크리드 #박재봉]

“아…….”

-개살벌하네;;

└얘 겁나 귀여운컨셉으로 밀고가던 애 아님?

-투마월 때 초롱초롱하던 눈 어디갔어ㅠㅠㅠㅠㅠ

-이거 그냥 순간적으로 지은 표정 찍은거아님?

-ㅇㄱㄹㅇ 현장에 있었는데 내내 저표정이었음

└구라치지마 미친ㅅㄲ야 사녹시작전에 잠깐 조용했던거고 그 뒤는 똑같았다고

└사녹참여안했나봄

-아ㅠㅠ겨우 일주일차인데 배가 불렀나봄

└저렇게 하고도 돈은 ㅈㄴ벌거라고 생각하니까 열받넼ㅋㅋㅋ

-미친놈아 누가 사녹 사진을 찍냐고;; 망했네..,.

└진심 미친거 아니냐;; 클이드 이제 사녹 짤릴 듯ㄷㄷ

생각보다 상황이 더 심각했다. 몰래 찍은 현장 사진까지 풀렸고, 하필이면 제일 안 좋은 상태일 때를 포착했다. 무대 시작 전까지는 최대한 표정이 안 보이게 박재봉에게 말을 걸면서 계속 뒤돌아 있게 했는데 그 찰나를 찍어 냈을 줄이야.

그냥 먹금을 하고 조용히 어그로 취급받으면서 끝나길 기다려야 하나 고민하던 중 동시다발적으로 알계들이 우후죽순 생겨났다.

크리드는6명일때가장아름답습니다 @CRID6 2분 전

[이렇게 대충하는 애한테 파트 몰아줄 일임?

(박재봉 사진)

하기싫음 걍 나가 재봉아.

#박재봉 #이든 #크리드]

-여기서 파트얘기가 왜나옴;;

└왜? 열심히하지도 않는애가 많이 가져가는게 짜증날수도 있는거지

-파트 적은멤 프사인가보네

└지금 몰아가는거임?

└누구라고 말도안했는데 찔리나봐?

4, 5개의 계정이 생기고 서로 팔로우하는 모습을 발견했다. 그리고 대충 감이 잡혔다. 악개(악성 개인 팬)의 집단적인 움직임이구나.

소속사에서도 상황을 인지한 듯 연락이 왔고, 매니저 형이 상황을 전달했다.

“일단 오늘 라디오 스케줄에 재봉이는 불참할 거야.”

“…네.”

“건강상의 문제로 공지 올린다고 하니까 너무 걱정하지 말고.”

“네, 죄송합니다.”

“그렇게까지 해야 해요?”

“그냥 어그로일 뿐이잖아요.”

강도현의 말처럼 어그로가 맞다. 하지만 이미 많은 사람들에게 알계가 퍼졌고, 화제의 중심에 있는 크리드에 흠집이 생기길 고대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들에게 알계의 글은 좋은 먹잇감이고, 루머와 비난을 부풀릴 좋은 연료였다.

그리고 그것과 별개로 지금 박재봉의 상태는 분명 문제가 있었다. 어린 나이에 살인적인 스케줄을 처음 겪으면서 몸도 약해져 있는 상태였는데, 거기에 정신적인 문제까지. 알계가 아니더라도 스케줄을 조정할 필요가 있어 보이긴 했다.

[크리드 이든 스케줄 관련 안내]

안녕하세요. 코어 엔터테인먼트입니다. 금일 당사 소속 가수 이든은 아침부터 컨디션 난조를 호소했습니다. 하지만 무대에 참여하겠다는 당사자의 의지가 강해 예정된 사전 녹화 스케줄을 소화했습니다. 이후 상태가 악화되어 병원 검진을 받았고, 안정을 취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의사의 소견에 따라 예정된 라디오 스케줄에 부득이하게 불참하게 되었습니다. 클로버 여러분들의 너른 양해를 부탁드립니다.

-뭐야?

-재봉이 아파?

-캡쳐 ㅈㄴ화질 구려ㅡㅡ

└링크 들어가보니까 컨디션난조로 라디오 불참한대

└헐;;

-ㅅㅂ그럼 지금 아파서 잠깐 표정안좋았던 애 데리고 그 지랄을 한거임?

└ㅅㅂ그 알계 아직도 있음?

└계폭함ㅋㅋㅋㅋㅋㅋ진짜 주기고시퍼

-아프지마 이든아ㅠㅠㅠㅠㅠㅠ

-스케줄많아서 힘들었나보네ㅠㅠㅠ

-아직 열여섯 중딩인데ㅠㅠ

나중에 확인해 보니 처음 올린 알계는 사녹 사진을 몰래 찍은 걸로 하도 욕을 먹자 결국 플텍튀(계정을 잠구고 튐)를 했다. 몰랐는데 사녹 대기할 때부터 특정 무리가 박재봉을 비롯한 다른 멤버들 욕을 하면서 자기들끼리 낄낄대는 모습을 팬들이 목격했나 보다.

‘간도 크지.’

하나가 사라지니 다른 계정들도 마치 짠 것처럼 계폭을 했다. 상황이 정리되자 조금 정신이 들었는지 박재봉은 멤버들에게 연신 사과를 했다.

“정말 죄송해요.”

“아니야, 너 요 며칠 몸 상태도 아슬하긴 했어.”

“맞아, 무리하지 말라니까. 잠도 안 자고 연습 너무 열심히 해서 그래.”

“아니에요, 제가 너무 철없이 굴었어요.”

“너무 마음 쓰지 마. 내가 너였어도 그런 말 듣고 기분 안 나쁠 수 없었을 거야.”

정유현의 말에 박재봉은 말없이 입술을 꾹 깨물었다.

“재봉이는 먼저 숙소에 가 있고, 나머지 멤버들은 이제 라디오 스케줄 하러 가자.”

“네!”

“가서 푹 자. 컨디션 조절 잘해야지.”

“네…….”

라디오 스케줄을 가는 와중에도 항상 분위기를 업시키던 박재봉이 없으니 조용했다. 재봉이가 있고 없고의 차이가 이 정도일 줄 몰랐다.

정적 속에서 윤빈 형이 먼저 말을 꺼냈다.

“재봉이, 아니 이든이 상태가 어떻게 하면 나아질까?”

“음… 일단 맛있는 거 조금 먹이고 얘기해 봐야 할 거 같은데.”

“며칠 전부터 떡볶이 먹고 싶다고 노래를 불렀는데 야식으로 사 갈까?”

야식이라는 말에 정유현이 고개를 돌렸다. 그러고는 멋쩍은 듯 다시 고개를 앞으로 돌렸다. 아마 반사적으로 ‘활동기에는 야식 금지’ 숙소 규칙을 떠올린 듯했다.

“그래그래, 재봉이 좋아하는 간식도 사 가자.”

“그리고 하나 더. 우리 내일 엔딩 재봉이로 하게 할까?”

“그것도 괜찮네. 지난번에 엔딩 요정했다고 엄청 신나 했잖아.”

다들 박재봉을 놀리는 데 진심인 사람들이었지만 역시 막내에 대한 애정이 그 베이스였다. 그사이 방송국에 도착해 첫 라디오 스케줄이 시작됐다.

“요즘 제일 핫한 신인이죠? 크리드 여러분 환영합니다!”

“안녕하세요, 본 투 샤인! 크리드입니다!”

“너무 반가워요! 사실 저도 투마월의 애청자였거든요.”

“우와, 정말요?”

“네, 제 원픽은 사실 오늘 함께하지 못한 재봉 군, 아니 이든 군이었어요.”

“아… 이든 씨가 오늘 몸이 안 좋아서…”

“아유, 연락받고 너무 아쉬웠는데 걱정됐잖아요.”

“크게 아픈 건 아니니까 걱정 안 하셔도 될 거예요.”

라디오는 편안한 분위기에서 서로 농담을 주고받으며 순조롭게 진행됐다.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 잠깐 광고 타임이 되자마자 단톡방에 박재봉이 사진 하나를 보냈다.

확인해 보니 ‘선배님, 응원해 주셔서 감사합니다!’라고 적힌 스케치북을 들고 찍은 셀카였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안색이 정말 안 좋아 보여서 누가 봐도 아픈 애였다.

[이거 꼭 선배님 보여 주세요! 라디오 듣고 있는데 저도 같이했으면 좋았을텐데ㅠㅠ]

[알았어.]

곧장 선배님께 다가가 상황을 설명하고 재봉의 사진을 보여 줬다.

“어머, 이거 저 보여 주라고 보낸 거예요? 에고, 아픈 와중에도 맘이 예쁘네.”

사진을 보자마자 엄청난 리액션을 보여 주신 선배님은 프로 방송인답게 광고가 끝나자마자 시청자들에게도 사진을 보여 주면서 이 얘기를 전달해 줬다.

“여러분, 오늘 못 나온 재봉 씨가 저한테 사진을 한 장 보내 주셨는데 저 정말 눈물 날 뻔했잖아요. 진짜 고맙고 빨리 나으라고 전해 주세요.”

“네!”

“재봉 씨, 듣고 있죠? 꼭 다시 나오기, 약속!”

훈훈한 분위기는 엔딩까지 이어졌고, 다들 기분 좋게 오늘 스케줄을 마무리했다.

“와, 야식 얼마만이야?”

“리얼리티 때가 마지막이었지, 아마?”

“너무 맛있겠다…….”

중간에 음식점도 들려 양손 가득 야식을 들고 마침내 숙소에 도착했다.

“야, 재봉아! 이것 봐라-”

“왔어요? 어? 도현이 형, 양손에 그건 뭐예요?”

“이거? 떡볶이랑 네가 먹고 싶다고 한 곱창”

“우와-”

“좋지? 벌써부터 기분이 막 풀리지?”

그새 깐족거리는 강도현에 박재봉은 언짢은 표정이었다.

“얼른 모여서 먹자! 배 안 고파?”

“저도 엄청 배고파요.”

속성으로 메뉴 세팅을 마치고 본격적으로 먹기 시작했다. 한참 이 얘기 저 얘기를 하다가, 강도현이 슬슬 눈치를 보고 말을 꺼냈다.

“우리 이번 주 엔딩 요정은 재봉이가 하는 거 어때?”

강도현의 말에 다들 눈치채고 격하게 호응하기 시작했다.

“좋아!”

“맞아, 뮤직쇼 때 보니까 재봉이 엔딩에 너무 잘 어울리더라-”

이대로 순조롭고 평화롭게 진행되면 얼마나 좋았을까. 강도현의 한마디에 순식간에 어그러질 거라고는 그 누구도 생각하지 못했다.

“맞아- 엔딩 요정은 우리보다 귀엽고 깜찍한 재봉이가 해야…….”

쾅!

상 위의 음식들이 움직일 정도로 세게 내려치는 소리였다. 고개를 들어 보니 박재봉이 고개를 푹 숙이고 주먹을 쥐고 있었다. 어찌나 세게 쳤는지 주먹이 빨갛게 물들었다. 걱정되는 마음에 윤빈 형이 손을 잡으려 했지만 뿌리쳤다. 모두들 예상치 못한 전개에 어리둥절해했다.

“야, 뭐, 뭐야…….”

“…안 한다고요.”

“뭐라고?”

“그딴 거 안 한다고요!”

이해할 수 없는 급발진이었다. 얘 진짜 왜 이러지. 사춘기라도 찾아온 건가. 모두가 벙쪄 있는 와중에 박재봉은 아예 자리를 뜨고는 방으로 들어갔다. 들으라는 듯 문까지 쾅 닫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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