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혼자 할 거면 두 번 데뷔 안 함-133화 (133/346)

133화

“형, 저 안 부었죠?”

“음… 아니?”

“헐, 안 되는데!”

“이렇게 하면 붓기 빠지지 않을까?”

“으악!”

선우 형이 박재봉의 볼을 이리저리 반죽했다. 옆에 있던 윤빈 형이 겨우 말렸다. 첫 팬 사인회에 다들 들떴는지 차 안이 시끌벅적하다. 다들 어젯밤부터 붓기 빼는 데 좋은 음식에 팩까지 붙이고 뜬눈으로 밤을 새웠다.

‘잘 자는 게 제일 중요한데…….’

티벡스 시절엔 팬 사인회를 정말 많이 했다. 망돌 주제에 왜 팬싸를 많이 했냐고? 그야 하도 수익이 안 나니 어느 정도 본전을 뽑을 때까지 팬 사인회로 앨범 판매량을 그나마 높이기 위함이었다.

한번은 하루에 세 번 팬 사인회를 한 적이 있는데 그때 본 팬들은 거의 이름과 사는 곳까지 외울 뻔했다. 문스트럭도 그중 하나였다. 세 번 다 참여해서 세 번째에는 더 할 말이 없어서 둘 다 했던 말을 반복했던 기억이 나네.

아무튼 그때 제일 뼈저리게 느낀 것이 숙면의 중요성이었다. 전날 팩했으니 상관없다는 말과 함께 새벽까지 게임을 하던 한 티벡스 멤버는 홈마의 고화질 사진에서 푸석해진 피부와 턱까지 내려온 다크서클이 적나라하게 나오면서 흑역사가 박제되었다.

옆자리 지운이 형 역시 잠을 조금 설친 듯했다.

“어제 잘 못 잤어요?”

“잠이 잘 안 오더라고. 너는 되게 잘 잔 거 같던데.”

“피곤해서 뻗었죠.”

“오, 문승빈. 여유로워 보인다?”

“강도현 너만 하겠냐.”

박재봉은 우리가 투닥거리건 말건 전혀 개의치 않고 위튜브를 보고 있었다. 자세히 들여다보니 선배 가수들의 팬 사인회 영상이었다.

“뭐 봐?”

“팬 사인회 영상이요! 재밌어 보이더라고요, 선배님들 엄청 센스 있으시고…….”

티벡스 시절 첫 팬 사인회를 앞둔 내 모습을 보는 듯했다.

“우리 시뮬레이션해 보자. 내가 클로버 역할 할게.”

강도현의 제안에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윤빈아! 누나가 오늘 빈이한테 주려고 편지 쓰는데 종이에 베였어, 이거 누구 잘못이야?”

“그야 누나 잘못 아니에요? 그보다 손은 괜찮아요?”

“에헤이, 그렇게 말하면 안 되지!”

“반은 맞고 반은 틀렸네.”

뭐가 문제인지 모르겠다는 윤빈에게 다들 한마디씩 거들었다.

“승빈아, 네가 한번 보여 줘.”

“갑자기?”

“승빈아, 이거 누구 잘못이야?”

강도현이 뻔뻔하게 상황극을 시작했다. 사실 이 질문은 팬 사인회 단골 멘트라서 나도 여러 번 들었다. 그리고 이 질문에 기깔 나게 답한 아이돌의 영상이 큰 인기를 얻었던 적도 있었다. 그게 바로 지금 내 뒤에 앉은 강도현이었지?

“종이 잘못이죠!”

“그럼 내가 편지 쓰다가 펜 잉크가 손에 묻었어. 이건 누구 잘못이야?”

“제가 잘못했네요.”

“엥?”

“편지만 아니었으면 누나가 손 베이는 일도, 종이에 손 더러워질 일도 없었잖아요. 이건 제 잘못이에요.”

이러고 뻔뻔하게 주먹으로 머리를 콩하고 때리는 시늉까지 했다.

“헐…….”

“저 이거 써먹을래요.”

“나 속이 안 좋다.”

선우 형의 말에 나를 포함한 모두 웃음이 터졌다.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는 표정이었기 때문이었다. 그 후로도 여러 가지 팬 사인회 기출 질문들을 서로 주고받았다.

‘어차피 시작하면 이거 다 기억 안 날 텐데…….’

그리고 이 예상은 정확히 적중했다.

“크리드 팬 사인회 5분 뒤 시작하겠습니다-”

대기실에서 스태프들의 목소리를 듣고 마지막 헤메코 점검을 했다. 박재봉은 여전히 떨리는지 안절부절못했고, 정유현은 조용히 노래를 들으며 긴장을 푸는 듯했다.

“어차피 클로버들 처음 보는 것도 아니고, 긴장 풀어”

“그래도 팬 사인회는 또 다르잖아요.”

“다들 너 보러 온 사람들이니까 긴장할 필요 없지.”

그 말에 박재봉의 표정이 한결 가벼워졌다.

“크리드 입장하겠습니다.”

“와!”

“애들아! 여기!!”

“클로버~!”

입장부터 팬들의 엄청난 함성 소리가 들렸다. 티벡스 때와는 비교할 수 없는 규모와 함성이었다. 그래도 적어도 팬싸만은 그때를 슬프게 기억하고 싶지는 않다. 얼마 안 되는 수였지만 일당백으로 응원해 주는 팬들이었으니까. 물론 그게 10번 20번이 되고 나서는 서로 또 보는구나- 무드였지만.

멤버 이름을 부르는 팬들의 목소리와 카메라 연사 소리가 가득했다. 본격적으로 팬 사인회가 시작되었고, 다시 신인의 마음으로 돌아간 기분이었다.

“재봉아, 안녕!”

“아, 안녕하세요!”

“첫 팬 사인회 함께해서 너무 행복해!”

“저, 저도 첫 팬 사인회인데”

“아악! 너무 귀여워!”

옆자리 박재봉과 클로버의 대화를 엿듣는데 절로 웃음이 나왔다.

‘어쩌면 저분은 1n번째 팬 사인회일지도 모르는데…….’

오랜만에 하는 팬 사인회여서 초반에는 나도 긴장을 좀 했다. 묘하게 뚝딱이는 모습에 스스로 놀랐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적응했다.

그리고 익숙한 얼굴의 클로버의 차례가 왔다. 바로 문스트럭이었다. 문스트럭과의 팬 사인회는 2년 만이었다. 수없이 많이 마주한 얼굴인데 시간의 흐름대로라면 지금이 첫 팬 사인회가 된다니. 아직도 회귀한 시간이 낯설게 느껴질 때가 있다.

“안녕, 승빈아!”

“안녕하세요! 이름이…….”

시옷 하나만 적고 정신 차려서 다행이지, 무의식적으로 ‘샤이닝문’이라고 쓸 뻔했다. 워낙 자주 봤어야지. 자연스럽게 ‘ㅅ’을 ‘사랑하는’으로 이어 적었다.

“문스트럭 누나라고 해 줘! 첫 팬 사인회인데, 어때?”

“조금 긴장했는데 클로버분들 이렇게 가까이서 보게 돼서 기뻐요.”

“맞다. 승빈아, 이거 준비했는데 써 줄 수 있어?”

“네! 주세요.”

문스트럭이 건넨 것은 하얀 강아지 귀도리였다. 눈은 계속 문스트럭을 향하면서 재빨리 귀도리를 장착하고 머리를 정리했다. 귀도리를 쓰는 순간 카메라 연사 소리가 더 커졌다.

“헐…….”

“어, 어때요? 이렇게 하는 게 맞나?”

“응, 어머 진짜 너무 잘 어울린다! 어떻게 해? 누나 말이 안 나와.”

“아, 뭐예요-”

“맞다, 승빈아. 저기 강아지 키링 달린 카메라 쪽으로 인사 한번만 해 주라.”

잠시 고개를 빼서 귀도리를 잡고 양옆으로 흔들었다.

“승빈아!!”

“진짜 고마워. 그리고 이건 편지!”

“아, 감사합니다! 숙소 가서 꼭 읽어 볼게요.”

“고마워. 앞으로…….”

“이동하실게요.”

스태프의 말에 문스트럭이 거의 속사포 랩을 쏟아 냈다.

“승빈아, 오늘이렇게만날수있어서너무기뻤고데뷔너무축하하고넌누구보다대단하고멋진강아지니까최고가될거야항상건강조심하고가수해줘서고맙고오늘하루도행복해야해사랑해! 후…….”

“이동하실게요.”

“다음에 또 봐요!”

스태프의 저지에도 굴하지 않고 애정을 쏟아 내는 모습에 기분이 이상했다. 공개 대면식 레드 카펫 날 ‘저 사람은 여전히 나를 좋아해 줄까?’ 하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팬 사인회에는 역시 다양한 유형의 팬들이 있었다. 고퀄리티의 코스프레를 하거나 오로지 최애를 웃기겠다는 일념하에 웃긴 의상이나 분장을 한 팬들도 있었다. 그리고 드물게 오열을 하는 팬이 있었는데, 지운이 형이 최애였던 거 같다. 지운이 형이 다급하게 팬 매니저에게 휴지를 부탁했다.

“휴, 휴지…….”

“흑, 끕, 지운, 흐어어엉…….”

안절부절못하다가도 눈물을 보이는 팬의 얼굴을 살피면서 눈가를 닦아 줬다. 그래서 더 우는 팬이었지만.

“왜 울어요-”

“너무, 흑, 좋아서.”

“좋은 날엔 웃어야죠!”

팬이 준비해 온 에코백에서 무언가를 꺼냈고, 지운이 형에게 건넸다.

“이거, 내가, 흑, 아직도, 흡, 가지고 있었는데에…….”

“이게 뭐… 우와, 이거 유정 누나가 가지고 있었구나! 완전 감동이에요…….”

그게 무엇인지는 잘 보이지 않았지만, 지운이 형의 목소리도 촉촉해진 게 들렸다. 나중에 지운이 형 팬 사인회 후기로 찾아봐야겠다.

* * *

“아, 눈 아파.”

“나 눈을 의심했잖아, 너 갑자기 울어서.”

“앞에 신이 있는데 어떻게 안 울 수가 있음?”

“와…….”

문스트럭은 그 누구보다 과몰입한 K에 고개를 저었다. 분명 투마월 중반까지만 해도 자신이 가장 덕질에 과몰입한 사람인 줄 알았는데, 진짜는 따로 있었다.

“그래서 종이비행기 보여 줌?”

“당연, 지운이가 보고 감동받았다고 하는데 나 그동안의 시간을 다 보상받는 기분이었다.”

문스트럭은 곧장 프리뷰를 올렸다. 승빈에게 부탁한 귀도리 영상과 사진이었다.

문스트럭 빈 @Moonstruck_bean

[20**08** 쿨트랙스 팬싸인회]

강아지가 팬싸인회 할 수 있는 거임? 승빈이도?

#문승빈 #크리드 #CR:ID

-홈마님 감사합니다ㅠㅠㅠㅠ

-ㅁㅊㅁㅊㅁㅊㅁㅊㅁㅊ귀도리 돌았네

-ㅠㅠㅠㅠㅠ너무 뽀애bbbb

-형님, 저 녀석 아이돌 시켜버릴까요

-인사하는것봐ㅠㅠㅠㅠ

┕엄청 신났나봐ㅋㅋㅋㅋㅋ

K 역시 팬 사인회 후기를 올리려고 했다. 그런데 생각보다 더 빨리 후기가 올라와 있었다.

@fox_boy 3분 전

오늘 지운이 움ㅠㅠㅠㅠ 팬이 뭔가 줘서 유심히 봤는데 종이 비행기더라? 아기 처음에는 팬 우는거 씩씩하게 달래주다가 저거 보고 뿌엥했어ㅠㅠ

-ㅅㅂ진주 떨어진다 지운아

-아 애들앞에서 오열 쌉가능인데

-와중에 지운이 눈에서 꿀떨어지는거봐ㅠㅠㅠㅠ

-팬사랑미치뮤ㅠㅠㅠ

-얘 누구임? 치인거같은데

┕크리드 모름? 투마월 안 봤나?

┕아 ㅁㅊ얘네가 투마월 걔네임? 갈아탈까봐 일부러 안봤는데ㅅㅂ…

순식간에 하트 수와 리짹 수가 늘어나는 걸 보니 타팬들에게도 반응이 좋은 듯했다. 이렇게 영상 하나가 반응이 터지면 그 어떤 마케팅이나 소속사 홍보보다도 더 좋은 홍보 효과를 얻는다. 더 많은 사람들이 지운의 매력을 알아줄 거라는 생각에 K는 쓰라린 눈가도 아프지 않았다.

“근데 애들 신인은 신인이더라- 긴장해 가지고 다들 동공 지진 하는 거 너무 귀여웠어.”

“윤빈이 이 영상 봤냐고, 나 진짜 배 찢어지는 줄 알았잖아.”

[반존대를 잘못 배운 신인 아이돌이 팬싸를 하면 생기는 일]

오늘 크리드 팬싸갔다왔는데 비니 때문에 웃겨죽는줄 알았음ㅋㅋㅋㅋㅋㅋㅋㅋㅋ내가 설레는 말로 반존대 해줄수 있냐고 했거든 근데 비니가 한참 고민하더니 이러는거임ㅋㅋㅋㅋ(내 웃음소리는 무시해줘 왜저렇게 경박하게 웃은거임;;)

나 : 빈아, 혹시 설레게 반존대 해줄 수 있어?

(늑대 이모티콘) : 반존대가… 뭐예요?

나 : 반말이랑 존대말을 같이 하는 거!

(늑대 이모티콘) : 아~ 한번 해볼게요. OO누나 (여기까지는 진짜 죽는줄 알았음...윤빈이 눈이 진짜 이쁘더라...아무튼 저 얼굴이 나한테 누나라고 하는데ㅅㅂ)

나 : 응!

(늑대 이모티콘) : 내가 이렇게 말하면… 설레냐?

나 : ??

윤빈이 표정이 진짜ㅋㅋㅋㅋㅋ큐ㅠㅠㅠㅠ영상 못찍은 게 한임. 눈에만 담기엔 너무 아까운 표정이었음. 녹음이라도 했으니 다행이지ㅠㅠ

-이런ㅁㅊ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ㅅㅂ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웃음소리 때문에 하나도안들림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까마귀잡아먹었냐곸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이고윤빈앜ㅋㅋㅋㅋㅋㅋㅋㅋ큐ㅠㅠㅠㅠㅠㅠㅠ큐ㅋㅋ쿠ㅜㅜ

-윤빈 K드라마 1년 압수

-반존대가 맞긴한데ㅠㅠㅠㅠ

-ㅁㅊ영상으로 보면 더 귀여움 (링크)

┕선생님 감사합니다

┕ㄱㅆ) 헐 이거 찍으신분 있구나ㅠㅠ 고마워ㅠㅠㅠ

“확실히 신인이라 그런가? 동태 눈깔 없는 거 너무 좋아.”

“우리 애들은 연차 쌓여도 생태였으면…….”

문스트럭은 조용히 속으로 생각했다. K가 들었다면 연을 끊을 만한 생각이라서 차마 입 밖으로 내지는 못했다.

‘생태 덕질해 본 적도 없으면서…….’

그리고 슬프게도 그건 사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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