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2화
문승빈의 원샷이 무대의 막을 열었다. 얼굴 위의 상처 분장과 새로 바꾼 흑발의 조화가 최고였다.
“아싸, 상처 분장 하고 나온다.”
“헤메코 너무 좋은데?”
“애들 칼군무 봐. 미쳤네.”
“재봉이 작아도 힘은 안 뒤처지는 거 너무 좋아.”
“윤빈이 피지컬 X나 에바야…….”
-크리드 화이팅 크리드 많이 넣어야지
-헤메코 ㅈㄴ완벽하다ㅠㅠㅠㅠㅠ
-의상 디테일보소
┕ㅈㄴ계절감1도 없고 누더기 옷만 입히던 구본진 소속사 생각하면 선녀야
┕ptsd오네…
첫 무대라고는 생각도 못 할 만큼 자연스러운 무대였다. 대부분의 신인들은 카메라를 잘 찾지 못해서 원샷 장면에서도 바닥을 보거나, 옆을 보는 경우가 허다했다. 그런데 크리드는 그런 게 거의 없었다. 거의라고 하는 이유는 아예 없는 것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동안의 짬 때문인지, 자기 새끼라 하더라도 냉정하게 판단하는 수진이었다.
“방송 사고인가?”
“승빈이 어디 보는 거야?”
“귀여워!”
순간 방송 사고인 줄 알았다. 카메라 감독이 문승빈이 마음에 들었는지, 약 10초가량 승빈의 원샷만 잡은 것이다. 처음에는 신나서 열심히 끼를 부리던 문승빈도 동선을 이동했음에도 자신을 따라오는 카메라에 당황한 기색이었다.
-앜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승빈이 동공팝핀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감독님 클로버셨나고요ㅡㅡ
-승빈이한테 카메라렌즈 자석있나봄ㅋㅋㅋㅋ
이어지는 고난이도 안무에 둘 다 조마조마해하면서도 감탄했다.
“진짜 멋있는데 조심해야겠어.”
“애들 뼈 갈리는 소리 들리네…….”
팬들의 반응도 비슷했다.
-ㅅㅂ...저 안무 너무좋아 하지만! 애들다치는건 시러...벋(But) 저 안무없으면 심심해 그렇지만 애들 관절지켜야해...내 진짜 마음은 뭘까?
┕ㅁㅊ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근데 매번 저 안무로 가는건 미친짓일 듯
┕ㅇㅇ아쉽지만 데뷔주에만 하고 다음주부터는 수정했으면 좋겠음
-안무를 왜 바꿈ㅋㅋㅋㅋㅋ젊을 때 관절아끼지말고 다해봐야지
┕병원비 니가 내줄건가봐?
┕어차피 쟤네 병원비 다 니들 지갑에서 나가는거임
┕ㅈㄴ맞는말이다 쳐맞는말
보통 데뷔 무대는 립싱크를 하거나, AR을 크게 하는 경우가 많은데 크리드는 데뷔 무대부터 생라이브였다. 이게 얼마나 패기 있고 실력에 대한 자신감이 있는 건지 수진은 알고 있었다. 구오빠들은 허구한 날 립싱크만 했었거든. 자기 파트인 줄 모르고 가만히 있다가 뒤늦게 립싱크한 게 박제되어서 조롱당한 게 한두 번이 아니었다.
-애들연습 엄청했나봐ㅠㅠㅠ
-저 안무에 저 라이브가 말이 되냐곸ㅋㅋㅋㅋㅋㅋㅋ
-누가 크리드 얼굴로 뽑았대;;
┕요즘 아이돌들은 얼굴만으로는 성공못함ㅋㅋㅋㅋ
┕얼굴 실력 인성 다 되는 애들로 뽑은거지
┕인성은 좀;;
┕투마월이나 보고 어그로끌어
-애들 신인치고 카메라도 잘 찾음ㅋㅋㅋㅋ특히 승빈이랑 유현이는 거의 카메라 탐지기임
-ㅁㅊ 방금봤냐?
┕문승빈 돌았네;;
“야, 승빈이 레전드 짤 나왔다.”
“아씨, 잘 못 봤어.”
“쨱짹이 들어가 봐. 이미 누가 움짤 올림.”
“벌써? 손 개빠르다.”
짹짹이에 들어가 보니 죄다 문승빈으로 도배가 되어 있었다. 수진도 납득했다. 투마월 당시 ‘조랭이 걔’로 불리던 때만큼이나 센세이션인 순간 포착이었다.
안무 중에 박자에 맞춰서 고개를 돌리는 동작이 있는데 그 타이밍에 맞게 카메라가 줌인으로 원 샷을 잡았고, 문승빈도 동시에 카메라와 아이 컨택을 했다. 그리고 싱긋 웃으며 윙크를 하는데, 노래 비트와 딱 맞아떨어졌다. 순식간에 바뀌는 카메라 워킹을 이렇게 잘 포착할 줄이야.
문스트럭 빈 @Moonstruck_bean 1분 전
[계정주 사망. 사유는 문승빈 윙크]
-ㅋㅋㅋㅋㅋㅋㅋㅋ문스트럭님 진짜 빨랔ㅋㅋㅋㅋㅋ
-아니근데진짜ㅅㅂ 미친거 아니냐고
-어떻게 타이밍이 저렇게 맞아떨어짐?
┕비트도 승빈이를 돕는거지
-내최애가 데뷔무대부터 카메라 잘찾는 천재아이돌이라니
차지운의 음색에 대한 반응도 좋았다.
“지운이 음색 독특한 건 알았는데, 이번 곡이랑 유독 더 잘 어울리는 듯?”
“맞아. 되게 여러 음색이 겹겹이 쌓인 거 같아.”
-지운이 음색 너무 청량해ㅠㅠ
┕탄산왜마심? 차지운 목소리 들으면 속이 뻥 뚫리는데
-지운아 너 이대로면 슈퍼스타밖에 못돼요.
┕큰일이다 지운이 진심 대상가수 정도밖에 못할듯;;
-그 평론가말이 딱 맞음...지운이 파트가 킬링파트야
-투마월 때 같이 경연 안했던 애들이랑은 음색합 처음 들어보는데 잘 어울리네
엔딩 요정은 문승빈, 박재봉, 정유현 순이었다. 문승빈과 박재봉은 각자 볼 하트와 깨물 하트를 하는 등 아이돌 정석 애교 포즈를 했다. 정유현이 어떤 엔딩 포즈를 할까 기대하고 있었는데 정말 쓸데없는 생각이었다.
“와…….”
“얼굴 미쳤네.”
아무것도 안 하고 숨을 거칠게 몰아쉬는 얼굴만 나왔는데도 감탄을 자아내는 비주얼이었다. 수정은 재봉의 깨물 하트도 너무 좋았지만, 정유현의 얼굴에 잠시 머릿속이 하얘졌다.
-저게 사람한테 가능한 얼굴임?
┕내가 정유현이랑 같은 종이라는게 안 믿김
┕종까지 나오냐곸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개안하는 기분임
-유현아 니는 꼬옥 연기해주면 되
-유현이 또 얼굴로 정프들 기살려주네
크리드의 데뷔 무대가 끝나고 SNS와 커뮤니티의 인기 게시글은 크리드로 가득했다. 정유현의 엔딩 요정, 문승빈의 원샷, 차지운의 음색에 멤버들의 라이브 실력까지. 종합 선물 세트와도 같은 무대였다.
하지만 역시 어그로도 꼬이기 마련이었다. 누가 봐도 라이브인 영상을 가지고 라이브가 아닌데 라이브인 척을 한다거나, 멤버들의 외모를 비교하며 억까 하는 위튜브와 게시글도 있었다.
-요즘 가수들은 저렇게 다 깔고부름?
┕저럴거면 왜 가수함ㅋㅋㅋㅋㅋ백댄서나하지
-저걸듣고 라이브 잘한다고 한다고?ㅋㅋㅋㅋㅋㅋㅋ
-염X들하네 음원입힌거 가지고와서 뭐하냐? 무대안본티를 이렇게ㅋㅋㅋㅋㅋ
┕그니깤ㅋㅋㅋㅋㅋㅋㅋ라이브안같은게 아니라 음원 편집해서 만든 영상이니까 라이브가 아니죠ㅠㅠ
-무수리들 지나가고 정유현나오니까 개안하는 기분임
┕둘도 못생긴건 아닌데 정유현이 너무 사기임ㅇㅇ
┕성형한애들이랑 자연은 뭔가 다르지
┕승빈이 열여덟 재봉이 열여섯이야 미친놈들아;;
-각 잘재고 댓글쓰세욬ㅋㅋㅋㅋ
┕왜 피피티따서 발표라도 하게?ㅠ
“1군 아이돌 덕질의 몇 안 되는 단점인 거 같아. 어그로 너무 많이 꼬이는 거.”
“뭐, 어쩌겠어. 원래 꽃에는 벌레가 많이 꼬이는 법이니까.”
“신고나 해야지.”
그사이 멤버들의 개인 직캠과 전체 직캠이 올라오면서 다시 불타올랐다. 수정은 곧장 재봉의 영상을 찾았고, 썸네일을 보고 입을 틀어막았다.
“미친, 썸네일 누가 선정한 거야? 너무 귀여운데?”
“윤빈이도 완전 용맹하게 나왔네.”
유독 여러 버전의 직캠이 나오는 뮤직쇼이기 때문에 팬들의 만족도는 최상이었다. 세로 직캠, 얼굴 위주 직캠, 가로 직캠까지 무대 하나에 3개의 직캠이 올라온 것이다. 원래는 인기 멤버, 혹은 소위 피디 픽인 멤버들만 나오는 직캠이어서 팬들 사이의 묘한 기 싸움을 하게 만드는데 크리드는 이례적으로 일곱 멤버가 모두 다 직캠이 나왔다.
-감사합니다...감사합니다...
-지운이 세로캠 없었으면 어떻게 살았을까...
-하, 가려지는 거 하나도 없이 보니까 속이 다 시원함
-씨넷한테 고맙다는 말을 하는 날이 오다니
-얘네는 뭔데 다 직캠을 줌?
┕크리드가 뭐하는 애들이야~ 대단한 아이돌이지!
┕아ㅋ네;;
원래 스타는 까와 빠를 동시에 미치게 한다고 하지 않는가? 이미 스타의 자질이 충분한 크리드였다.
* * *
첫 방송 이후 더 완벽한 무대를 위한 갈증이 생겼다. 모두 욕심이 있어서 그런지 연습실과 스케줄을 가는 동안에도 꼼꼼히 모니터링을 했다.
“이번에는 카메라가 오래 잡아도 당황 안 할 거야.”
“내가 본 승빈이 모습 중에 제일 당황한 거 같았어.”
그때는 정말 방송 사고인 줄 알았다. 그래도 팬들도 귀엽게 봐 주신 거 같아 천만다행이었다.
오늘은 티벡스 시절에는 한 번 나오는 것도 힘들었던 공중파 음악 방송 데뷔 무대를 하는 날이다. 데뷔하는 신인의 수는 정말 많고, 공중파 음악 방송을 뚫기란 하늘의 별 따기였으니까.
티벡스 역시 데뷔 앨범 때만 지운이 형의 인기와 소속사의 영혼을 끌어모은 푸시로 가능했지, 그 이후로는 정말 드물었다. 그런데 데뷔하자마자 이렇게 당연하게 출연하다니. 역시 대기업이 다르긴 했다.
“오늘 김준홍 선배님도 컴백하시네?”
“우와, 앨범 전달하면서 만날 수 있겠다!”
“사인도 받아야지!”
“사인?”
“네, 저희 어머니가 김준홍 선배님 나온 드라마 팬이셨거든요! 다른 연예인들은 잘 몰라도 그분은 아세요.”
박재봉은 생각만으로도 신나는지 내내 광대가 올라가 있었다.
‘우리 부모님은 좋아하는 연예인이 있었나? 나중에 누나한테 물어봐야겠다.’
김준홍. ‘포기 못 해’라는 곡으로 데뷔해 어린 나이라고 믿을 수 없는 가창력과 무대 매너로 대히트를 쳤고, 데뷔 10년 차인 지금까지도 꾸준히 앨범을 내는 현역 가수였다. 게다가 가수뿐만 아니라 전국적으로 사랑받은 예능과 드라마에 출연하면서 대중들에게 호감 이미지로 자리 잡은 대표적인 연예인이었다.
“방송에서 보니까 엄청 나긋나긋하시고 젠틀하시던데.”
“맞아. 만인의 호감이잖아.”
“오늘 만나면 좋은 말씀 많이 해 주시겠지?”
“그랬으면 좋겠다. 완전 제 롤모델이거든요. 만능 엔터테이너잖아요.”
잔뜩 들떠 있는 박재봉을 보자니 조금 불안했다. 티벡스 시절, 내가 들은 김준홍의 이야기는 대외적 이미지와는 사뭇 달랐기 때문이다. 워낙 방송가에서 파워가 센 연예인이기 때문에 대놓고 흉을 보는 사람은 없었지만, 확실한 건 대중이 아는 이미지가 전부는 아니라는 사실이었다.
사전 녹화에 들어가기 전에 먼저 김준홍의 대기실을 찾았다.
“누구야?”
“안녕하세요, 김준홍 선배님! 신인 그룹 크리드입니다!”
“신인?”
처음으로 반기지 않는 현장에 다들 서서히 웃음기가 사라졌다. 김준홍의 옆에서 메이크업을 수정하던 담당 스태프도 그의 눈치를 보는 게 느껴졌다.
그래도 정유현은 리더답게 기죽지 않고 앨범을 내밀었다. 김준홍은 앨범을 받아 들고 위아래로 훑어보더니 방송용 미소를 보였다.
“하하, 이 친구들이 투마이월드? 거기서 데뷔한 친구들 맞지?”
“아, 네! 맞습니다. 앞으로 열심히 하겠습니다!”
“그래그래, 열심히 해야지…….”
김준홍이 들릴 듯 말 듯 한 목소리로 뒤에 말을 더했는데, 나를 제외하고는 듣지 못한 눈치였다.
“네?”
“아, 아무것도 아니에요. 내 앨범도 줘야 하나? 남는 앨범 있으면 하나 가져다 줘요.”
“네!”
김준홍의 지시에 스태프 한 명이 후다닥 앨범을 찾아왔다.
“여기. 앞으로 자주 만나겠네요?”
“그럼 저희는 영광이죠!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네, 뭐…….”
상당히 찝찝한 만남이었다. 특히 박재봉의 어깨가 축 처져 있었다. 아무래도 방송에서 보던 이미지와 괴리감이 생겼을 테니 충격이 꽤 클 것이다.
“방송 준비 때문에 조금 예민하신가 봐요.”
“근데 선배님 아까 뭐라고 하셨는지 들은 사람 있어?”
“아니? 뭐라고 하셨는데?”
“아, 내가 잘못 들었나 보다.”
차마 그 말을 내뱉을 수가 없었다.
‘한순간에 사라질 게 아니면.’
역시나 듣던 대로 인성 터진 인간이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