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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할 거면 두 번 데뷔 안 함-127화 (127/346)

127화

“와, 타이틀 뮤직비디오 찍으려니까 진짜 데뷔하는 게 실감 나네요.”

“눈부셔 이후로 이렇게 큰 세트장은 처음 보는 거 같아.”

거대한 초록색 크로마키 세트장에서 모두 다 입이 떡 벌어졌다. 앞으로 이틀 동안 타이틀곡 뮤직비디오를 촬영하게 되는데, CG가 필요한 장면을 먼저 촬영할 예정이었다.

아이디와 이드의 모습을 모두 담아내야 하기 때문에 의상부터 헤어, 메이크업의 변화도 많을 예정이었다.

“승빈 군 솔로 뮤직비디오 엔딩 장면에서 이어지는 오프닝부터 촬영 시작하겠습니다!”

“네!!”

“저기 허공에 점 보이죠? 큐 사인 들어가면 저기를 향해서 모두 뒤돌아보면 됩니다.”

“저기 점에 뭐가 있는 거예요?”

“거대한 운석이 떨어지는 CG가 들어갈 거예요.”

“운석이요?”

뮤직비디오 콘티를 미리 확인하긴 했지만, 허공을 보고 운석을 떠올리기란 다른 멤버들에게는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흠, 그니까 저 작은 점이…….”

“운석이라고 생각해야 한다는 거잖아?”

강도현과 박재봉은 허공의 점을 뚫어져라 쳐다보며 턱을 쓸어 넘겼다.

“운석이 어떻게 생겼지?”

선우 형의 상상도 못한 질문에 정유현은 경악한 얼굴이었다. 조용히 눈으로 욕을 하는 듯했다. 정유현의 시선을 발견한 선우 형은 뒤늦게 발을 구르며 해명했다.

“아니! 운석이 뭔지는 당연히 알지! 근데 우리가 모두 같은 운석을 생각해야 하지 않겠냐고, 그런 의미로 한 말이지 누굴 바보로 아냐고-”

“그야…….”

“아니었어요?”

짜기라도 한 듯 일제히 ‘우리는 박선우가 바보인 걸 알아요’라는 반응을 보이자 선우 형이 펄펄 뛰었다.

“야!”

박재봉 다음으로 타격감이 좋은 멤버였다. 쉽게 놀림당하지는 않지만 한 번 놀리면 아주 반응이 재밌거든.

“촬영 시작하겠습니다~”

“네!”

“잘 해보자!”

모두 기대 반 걱정 반 카메라 앞에 섰다. 촬영장에 신세계 음원이 흘러나왔고 감독의 사인과 함께 모두 점을 향해 뒤돌았다.

“컷!”

“어땠어요?”

“미안, 나 웃음 터졌어.”

“아, 형!”

윤빈이 이실직고했고, 박재봉이 핀잔을 줬다. 정작 자기도 모니터링을 하고 바로 꼬리를 내렸지만.

“와…….”

“다들 어디를 보고 있는 거야?”

모니터링을 하니 절로 웃음이 터졌다. 선우 형과 강도현은 갈 곳 잃은 눈이었고, 윤빈 형은 눈까지 접어가며 웃고 있었다. 박재봉을 보니 강하게 보이고 싶었는지 인상을 팍 쓰는데 그저 화난 소형견을 보는 기분이었다.

“오- 재봉, 아니, 이든이 찡그렸어요~”

“하씨, 이게 아닌데?”

“아주 뭐 하나 잡아먹겠어?”

“그만 놀려요!”

지운이 형은 조금 경직되어 보이긴 했지만, 점 위치를 제대로 본 몇 안 되는 사람이었다. 정유현은 역시 능숙했다. 하긴, 저 비주얼인데 아이돌만 준비시켰을 리가 없지. 백 퍼센트 연기 수업을 받았을 것이다. 어쩌면 배우로 들어왔는데 우선 인지도를 높이는 전략으로 아이돌을 준비했을지도 모른다.

“승빈이? 넌 되게 잘 나왔다?”

“아, 감사합니다!”

점을 보고 운석을 상상하라고 했을 때 큰 걱정은 없었다. 데뷔작 촬영 당시 맹물을 소주처럼 먹는 연기도 해 봤고, 액션 영화 촬영 때는 비비탄 총에 맞고 실탄에 맞은 것처럼 고통스러워하는 연기도 해 봤기 때문이다. 언젠가 SF물도 해 보고 싶었는데 이렇게 소원 성취하네.

“어떻게 저걸 보고 몰입할 수가 있어?”

“역시 우리 팀 최고의 연기파라니까? 솔로 뮤직비디오 촬영 때 생각해 봐-”

이럴 거면 조금 못하는 척을 할 걸 그랬나? 솔직히 말해서 연기를 할 일이 생기면 자신감이 생기는 건 사실이다. 어쨌든 내가 가진 남보다 유리한 특기니까.

“어떻게 해야 몰입이 잘 될까?”

결국 또 승빈스쿨을 열었다.

“운석이 잘 상상되지 않으면 각자 자기가 생각하는 가장 놀라운 일들이나, 놀라게 하는 것들을 생각해 보면 좀 더 이입이 잘되지 않을까?”

“예를 들면?”

“예를 들면… 대중교통 타려고 하는데 지갑을 안 들고 온 거야.”

“난 상성페이 쓰는데?”

선우 형의 말을 듣고 눈을 질끈 감았다. 아, 진짜 하나부터 열까지 안 맞는다.

“…핸드폰을 두고 왔다고 생각해.”

“히익!”

그렇게 놀랄 일인가, 하지만 정말 생생한 표정이 나왔다.

“방금 표정 좋았어. 근데 우린 아이돌이잖아? 너무 현실 표정이 나오면 안 되니까 감정을 조금만 조절해 봐.”

“이렇게?”

확실히 전보다 자연스러운 표정이었다. 맞다고 고개를 끄덕이자 바로 거울 앞에서 맹연습을 한다. 그렇게 각자 몰입이 잘 되는 상황과 대상을 점에 이입하기 시작했다. 평소 내가 사용했던 몰입 방법이어서 다른 멤버들에게도 잘 맞을까 확신은 없었지만, 효과가 생각보다 더 좋았다.

“표정 좋고! 아니, 제일 작은 친구가 특히 표정이 생생하네?”

“제일 작은… 저요?”

“그래.”

“감사합니다!”

제일 작다는 말에 약간 자존심이 상한 듯했지만, 칭찬의 말에 금세 표정이 풀렸다. 박재봉에게 뭘 상상했냐고 물으니, 눈부셔 무대 준비 당시 리프트에서 넘어질 뻔한 순간을 떠올렸단다.

“그건 너무 공포 아니야?”

“운석 보면 그 정도 공포감은 느끼지 않겠어요?”

나보다 더 몰입한 녀석이었다. 모니터링을 하니 확실히 전보다 표정이 생생했다.

“승빈이 형 덕분에 빨리 해냈네요!”

“그래, 승빈이 덕이 크네.”

“뭐 이 정도 가지고 그래요- 소속사에서 잠깐 배운 게 이렇게 쓰일 줄 몰랐네.”

“도현이도 연기 수업받지 않았어? 어떻게 이렇게 다르지……?”

선우 형의 물음에 강도현이 더 열을 냈다.

“저는 그때 래퍼 포지션이라 어차피 연기 안 할 거 같아서 대충 들었어요.”

“뭐든 최선을 다해야 이렇게 기회가 올 때 잡을 수 있는 거란다, 도현아?”

“어우, 재수 없어.”

다음 촬영은 군무 장면이었다. 야외에서는 처음이었다.

“그럼 촬영 시작합니다!”

“네!”

음원이 틀어지고 군무를 시작했다. 이렇게 세팅을 다하고 안무를 맞추는 건 처음이었다. 그런데 한 가지 문제가 생겼다. 모든 군무 장면에 내일이 없는 것처럼 온 힘을 다해 추는 것이다. 모두 그랬지만 유독 박재봉이 열정이 넘쳐서 에너지 조절을 못하는 게 보였다.

“컷! 아유, 다들 몸에 힘이 빡 들어가 있네! 역시 신인이라 그런가?”

감독은 지금까지 작업했던 어떤 사람들보다도 목소리가 큰 사람이었다. 현장 전체에 쩌렁쩌렁 울리는데, 소리에 민감한 지운이 형은 흠칫 놀랄 정도였다.

“후렴 부분 안무 촬영할게요! 멤버들 개인 클로즈업도 들어가니 표정 잘 지어야 해요!”

“네!”

촬영이 시작되고, 역시 박재봉이 자꾸 신경 쓰였다. 다른 멤버들의 클로즈업 컷을 따는 동안에도 실제 무대를 하는 것처럼 온몸에 힘이 들어가 있었다. 매 씬마다 열심히 하는 거? 정말 바람직한 자세가 맞다. 칭찬해 줘야 할 일이지만, 문제는 우리는 이틀 동안 적어도 30번은 넘게 이 군무를 맞춰야 한다는 것이다.

물론 박재봉이 신체 건강하고 에너자이저 체력인 열여섯이라지만 우리 안무가 보통 체력이 많이 쓰이는 군무가 아니다. 한번 완곡으로 추고 나면 땀이 얼굴에 비 오듯 흐를 정도였다.

결국, 잠시 모니터링을 하는 타이밍에 박재봉을 불렀다.

“왜요, 형?”

“아까 전부터 보고 있었는데, 너무 처음부터 힘을 빼는 거 같아서. 체력 안배 잘해야지.”

“에이, 저 아직 어려요! 이 정도는 하나도 안 힘들어요.”

“다른 애들 클로즈업 샷 딸 때는 쉬엄쉬엄해.”

“뭐든 열심히 해야죠!”

저 해맑은 패기를 어쩜 좋을까. 나 역시 티벡스로 데뷔할 때 저런 마인드였다. 열여덟 살이니 체력은 자신 있었고, 처음 찍는 뮤직비디오는 매 순간 온힘을 다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고 결국 뮤직비디오 촬영이 끝나자마자 응급실행이었지만.

하지만 결국 박재봉도 자신의 패기가 객기임을 인정했다. 하필이면 나이순으로 클로즈업 샷을 찍게 되었고, 총 일곱 번의 군무를 추게 됐다. 그러다 결국 자신의 클로즈업 샷 촬영에서는 만족스럽지 않은 결과가 나왔다.

“잠깐 쉬고 다시 촬영 들어갈까요? 막내 얼굴에 홍조 올라온 거 봐-”

“헉,헉… 죄송, 죄송합니다…….”

‘그러게 말 좀 듣지…….’

양옆에서 박재봉을 부축하고 다른 멤버들의 개인 샷 촬영을 먼저 진행했다. 박재봉의 앞 순번이었던 강도현도 가쁜 숨을 고르고 있었다. 이마에 쿨시트를 붙이고 거대한 선풍기 앞 테이블에 널부러진 박재봉이 앓는 소리를 냈다. 그리고 나에게 말했다.

“흐어… 형 말이 맞았어요, 이렇게까지 힘들 줄 몰랐는데…….”

“거봐, 뮤직비디오 촬영이 그렇게 호락호락한 게…….”

“네?”

“아니, 선배님들 촬영 비하인드 보니까 보통 힘든 게 아니라고. 하하…….”

“형 그런 거 엄청 찾아보나 봐요, 전에도 저렇게 말하지 않았었나?”

“내가 그랬나? 그리고 나는 며칠 전에 한번 찍었잖아. 뮤직비디오 선배의 조언이다.”

나도 말하고 흠칫했다. 자꾸 아이돌 시절을 떠올리고 조언하는데, 이러다가 ‘라떼’ 운운을 할까 봐 걱정이다.

‘꼰대처럼 안 보이게 주의해야겠어.’

그다음부터는 박재봉도 페이스 조절을 하면서 촬영에 임했다. 역시 깨닫고 나면 바로 적용하는 게 박재봉다웠다. 다른 멤버들도 한결 여유로워진 모습이었다. 개인샷 촬영 후에도 몇 번 더 옷을 바꾸고, 메이크업을 수정하며 촬영이 이어졌다.

이번에 입은 의상은 전신 레자였다. 상의, 하의를 따로 입어 본 적은 있지만 이렇게 점프수트 재질은 처음이었다. 다들 딱 붙는 전신레자 의상에 어색해하다가 움직일 때 편하게 길들여 놔야겠다며 세트장에서 이리저리 뛰어다니기 시작했다. 정유현과 지운이 형은 그 자리에서 가볍게 스트레칭했다. 나머지 네 명은…….

“잡아라!!”

“오지 마요!!”

“잡힌 사람이 오늘 야식 쏘기!”

윤빈 형은 말없이 신나서는 그 뒤를 졸졸 따르고 있었다. 그리고 강도현의 말을 정유현은 놓치지 않고 주의를 줬다.

“내일 촬영인데 무슨 야식이냐!”

“아, 귀도 좋아 진짜!”

이 장면들은 모두 내 카메라에 담았다. 나중에 콘텐츠로 풀면 다들 좋아하겠지. 이렇게 장난을 치다가도 촬영이 시작되면 모두 언제 그랬냐는 듯 몰입했다. 연기를 필요로 하는 장면의 촬영은 다 끝나고 안무 촬영만 남아서 다들 부담이 덜해 보였다.

“수고 많았습니다!”

“감사합니다, 수고 많으셨습니다!!”

우렁찬 인사와 함께 드디어 첫 번째 촬영지에서의 촬영이 끝났다. 새벽에 시작했는데 벌써 해가 떨어지고 있었다.

숙소로 돌아가는 길에 매니저 형이 말했다.

“아마 다음 주에 티저 사진 올라올 거야.”

“대박”

“우리 머리 처음 공개하는 거 아니야?”

“응. 클로버들 엄청 놀라겠다.”

“마음에 들어 하면 좋을 텐데.”

쇼케이스까지 3주, 이제 정말 데뷔가 코앞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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