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혼자 할 거면 두 번 데뷔 안 함-122화 (122/346)

122화

“축하해요, 도현 군!”

“이제 우리 팀 리더 도현이인 거죠?”

“축하해 도현이 형-”

“잘 부탁한다 도현아!”

“예? 아니, 저기 이거 뭔가 잘못된 거 같은데요?”

멤버들에 둘러싸여 축하를 받으면서도 강도현은 어리둥절한 상태였다.

“정말이에요. 투표 과정 담은 영상이라도 보여 줄까요?”

“네!”

제작진들이 보여 준 영상에는 정말 강도현이 4표 정유현이 2표, 내가 1표로 강도현이 가장 많은 표를 얻었다. 멤버들 얼굴이 나오지는 않았지만, 영상으로 확인 사살을 당하자 강도현도 더 이상 부정할 수 없었다.

“아니, 다들 유현이 형 뽑을 거 아니었어요? 박재봉 너도 유현이 형 뽑는다며!”

“아, 형! 비밀 투표 몰라요?”

“이미 다 나왔는데 비밀은 무슨!”

“너의 리더십을 본 거지 도현아.”

“다들 날 그렇게 생각했다고요?”

“유현이 형도 형을 뽑았잖아요. 그럼 리더로 적격인 거죠!”

혼란스러워 보이던 강도현의 표정도 점점 풀어졌다. ‘진짜 그런가?’ 점점 받아들이는 것이 실시간으로 얼굴에 보였다.

“앞으로 크리드를 훌륭하게 이끌 리더는 강도현으로 정해졌습니다! 박수!”

“와아!”

“소감 들어 봐야지-”

볼펜을 마이크 삼아 강도현이 소감을 말했다.

“전혀 예상하지 못했지만 다들 저를 이렇게 신뢰하고 의지하고 있다는 거 잘 알겠습니다.”

“풉!”

“어허? 누가 웃음소리를 내었는가? 리더님이 말하는데?”

그새 기세등등해진 강도현이었다.

“리더님 너무 권위적인 거 아니에요?”

“아뇨? 전혀?”

“볼펜으로 찌를 기세였는데요?”

“아, 아무튼. 다들 저를 믿어 준 만큼 최선을 다해서 실망시키지 않는 리더가 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리더가 정해진 후에는 단체 구호를 정했다. 박재봉이 한참 골똘히 생각하다가 엄청난 아이디어를 떠올렸다는 듯 무릎을 치며 말했다.

“크르르르- 크리드입니다! 어때요?”

양손을 공룡처럼 모아 휘두르며 크르르- 거리는데 모두 약속이라도 한 듯 못 들은 척을 했다. 시무룩해진 박재봉을 보며 윤빈 형이 장난스럽게 박재봉의 제스처를 따라했다. 못 볼 걸 봤다는 듯 찡그리던 박재봉이 빠르게 인정했다.

“음, 별로 좋은 생각이 아니었던 거 같아요.”

종이 위로 이것저것 끄적이던 선우 형이 손을 들었다.

“본 투 샤인은 어때?”

“본 투 샤인?”

“응. 우리 파이널 곡 제목이기도 한데, 데뷔했으니 정말 크리드로서 빛난다는 의미이기도 하고.”

팀 구호는 기억에 잘 남아야 하기 때문에 짧은 게 좋다고 생각했는데, 본 투 샤인은 적절했다. 어쨌든 그룹의 시초이기도 한 투마월과의 연관성도 있고.

“본 투 샤인! 안녕하세요 크리드입니다! 이렇게?”

“좋은데?”

“짧고 외우기도 좋은 거 같아.”

“다른 의견 있어?”

“오, 도현이 리더라고 의견도 모으는 거야?”

“그야 리더니까.”

금세 리더에 적응한 강도현이 능글맞게 답했다. 멤버들끼리 눈빛이 오가는데 모두 혼신의 힘을 다해 웃음을 참는 게 느껴졌다.

“그럼 핸드 사인도 만들어야 하지 않나?”

핸드 사인이라니. 티벡스 때는 핸드 사인은 없었다. 다른 아이돌들이 현란하게 핸드 사인을 할 때 내심 부러웠는데.

“그냥 주먹 쥐고 하는 건 어때?”

“싫어요! 뭔가 색다르고 멋있는 거 하고 싶어요.”

단호한 박재봉의 대답에 선우 형은 진정하라는 제스처와 함께 발언을 철회했다. 정유현이 덤덤하게 말했다.

“근데 우리 진짜 간단한 거로 해야 해. 데뷔하면 하루에 몇십 번 해야 하는데 손목 아플걸?”

“헐… 그런 현실적인 얘기를.”

동심 파괴를 당한 것처럼, 얼굴 위에 ‘나 충격받았어요’라고 적혀 있었다.

“혹시 이건 어때?”

다들 이런저런 방법으로 손을 움직이는 사이, 지운이 형이 동작 하나를 제안했다.

“오, 괜찮다.”

“멋있는데요?”

춤을 잘 춰서 그런가 손만 움직이는데도 춤추는 것 같아 보였다.

“그럼 단체로 해 볼까?”

“뭔가 긴장되는데?”

“하나 둘 셋!”

“본 투 샤인! 안녕하세요, 크리드입니다!”

단체로 구호와 핸드사인을 하는데 소름이 오소소 돋았다. 이제 정말 크리드의 일원이 된 기분이었다. 다행히 일곱 명 모두 처음인데도 틀리지 않았다. 이 정도면 정말 간단하고 임팩트 있게 만들어졌다는 반증이었다.

* * *

제작진에서 공지한 에피소드 촬영이 모두 끝났다고 생각하던 찰나, 또 다른 미션이 주어졌다.

“이제 도현 군에게 리더의 자질이 있는지 확인할 수 있는 몇 가지 미션을 드릴게요.”

“네?”

“미션을 수행하는 과정을 보면서 멤버들이 최종적으로 도현 군을 리더로 정할지 선택할 겁니다.”

“엥? 그런 게 어디 있어요?”

제작진들은 말없이 웃었고, 강도현은 솜사탕이 녹아내리는 걸 지켜보는 너구리가 되었다.

‘분명 방송에서 이곳은 씨넷이니까요- 이런 식으로 자막 나오겠네.’

“첫 번째 미션은 멤버들의 입맛을 맞춰라, 입니다.”

“입맛이요?”

“멤버들이 평소 잘 먹는 음식과 편식하는 음식을 매칭시키면 됩니다. 틀릴 때마다 신뢰도가 떨어지겠죠?”

“하…….”

제작진들이 스케치북에 음식 사진을 보여 주면 강도현은 잘 먹는 멤버와 편식하는 멤버를 구분하면 되는 미션이었다.

[민트 초코]

“일단 저는 먹고요!”

“아니, 멤버들…….”

“저도 크리드 멤버인데.”

“맞, 맞죠.”

급한 마음에 아무 말이나 튀어나오는 게 분명하다. 강도현의 당연하지만 뭔가 어이없는 답변에 제작진들도 잠시 꿀 먹은 병아리였다.

“음, 재봉이는 일단 안 먹어요.”

“제가요?”

“아니야?”

“이런 거 물어봐도 돼요?”

재봉이가 정말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지어서 순간 나도 쟤가 민트초코를 먹나 의심할 정도였다. 언제 저렇게 연기가 늘었대.

“아, 재봉이 말고 선우 형이랑 헷갈렸어요. 맞죠?”

“맞아요.”

“휴…….”

“승빈이는 안 좋아하고.”

“오, 기억하네?”

“당연하지. 너 연습생 때 내가 민초로 통일해서 가져온 날 다 남겼었잖아.”

그때를 생각하면 아직도 아찔하다. 하필 연습생 중에 안 먹는 사람이 나뿐이었다. 다들 맛있게 민트초코를 즐기는 동안 나 혼자 숟가락만 빨았었지.

“윤빈 형은 뭐 다 잘 먹었고. 지운이 형도 먹었고, 유현이 형은… 안 좋아하나?”

“너무 관심이 없는 거 아니야?”

“에이, 형도 몰랐잖아요- 민초 좋아하는구나?”

“안 좋아한다. 이놈아.”

“정답! 저희 크리드는 저, 재봉, 윤빈 형, 지운이 형이 민초파이고 나머지는 반민초파입니다.”

“엥?”

게임 룰을 창조하는 강도현을 보며 모두 혼란스러워 보였다.

“다음 문제 주세요!”

“어? 그, 그래.”

정신없이 몰아치는 강도현에 오히려 제작진들이 정신을 못 차리고 있었다.

[곱창]

“어? 이거 안 먹는 사람이 있어? 저희 다 좋아해요!”

“이 형이 진짜!?”

“뭐야, 또 재봉이야?”

“그래서 순대볶음 시켰을 때 재봉이는 순대만 먹었잖아.”

지운이 형이 설명해 주자 그제서야 맞다고 박수를 치는 강도현이다. 맞긴 뭐가 맞아. 재봉이는 곱창 킬러였다.

그렇다. 우린 지금 강도현을 속이는 중이었다.

“그럼, 재봉이 빼고 전부 곱창 좋아하는 걸로!”

“정, 정답!”

“아싸!”

이후에도 강도현은 박재봉의 취향만 맞히지 못했다. 아니, 사실 정확하게 파악했지만 정답을 맞히지는 못했다.

“어떻게 나만 이렇게 모를 수 있어요?”

“형이 더 관심 갖고 챙겨 줄게, 형은 리더니까!”

박재봉은 아무 말도 안 했지만 눈으로 욕한다는 표현이 딱이었다. 연기 천재네 아주.

“첫 번째 미션은 통과… 한 걸로 하죠?”

“아유, 감사합니다-”

다음 미션은 촉감으로 멤버를 찾아내는 게임이었다. 손과 얼굴을 만져보고 멤버를 맞히는 룰이었다.

“매일 보는 얼굴들이니까 잘 맞힐 수 있지 않을까?”

“과연……?”

처음 주자는 선우 형이었다. 이런 게임 자체가 낯간지러운 듯 주먹을 물고 소리 없는 아우성을 쳤다.

“누구지? 손이 되게 큰데? 손이 큰 사람… 선우 형?”

예상보다 더 빨리 답을 맞혀서 우리를 포함한 현장의 스태프들도 감탄했다.

“푸하-! 맞혔으면 그만해도 되는 거죠? 야, 손 떼 빨리. 간지러워 죽는 줄 알았다!”

“아니, 고작 손 좀 만졌다고 난리 부르스를 떨어요.”

“얼굴 만졌으면 못 참고 소리 질렀을 거 같아, 도현아.”

온화하지만 살기가 느껴지는 특유의 미소는 투마월 이후 오랜만이었다. 다음 주자는 윤빈 형이었다.

“선우 형만큼 손이 큰 사람이… 유현이 형인가?”

“과연…….”

“잠깐만, 얼굴 한 번 만져볼게요. 음… 아, 윤빈 형!”

“대박, 어떻게 맞혔어?”

30초도 채 되지 않아 답을 맞힌 것에 모두 신기해하고 있었다. 어떻게 맞혔냐고 물으니 강도현은 의기양양하게 답했다.

“귀에 피어싱 한 사람이 윤빈 형밖에 없거든요!”

“헐, 맞네.”

다음은 박재봉이었다. 열심히 손을 주물거리던 강도현이 긴가민가하다는 듯 답을 외쳤다.

“음… 지운이 형?”

“땡!”

“아, 알겠다. 유현이 형이죠? 확실해!”

“땡! 땡! 땡!”

앞서 말한 멤버가 모두 오답이라고 하자 얼굴에 손을 댔다. 아직 통통한 박재봉의 볼살을 이리저리 늘려보다가 확신에 찬 목소리로 답했다.

“이런 빵떡 같은 볼살은… 재봉이! 박재봉 맞죠!?”

“즘 놓크믈해여.”

“아닌가? 더 늘어나나?”

누가 봐도 이미 아는데 모르는 척하는 거였다.

“일부러 그랬죠.”

“아유, 그럴 리가?”

“역시 형은 리더하면 안 돼요.”

“너가 뽑아 놓고 그런 말을 하면…….”

“저는 안 뽑…….”

“응?”

“안 뽑고 싶었지만 그래도 형을 한번 믿어 보자는 마음으로 한 거죠!”

급기야 박재봉이 문을 박차고 나가는 상황이 발생했다. 순식간에 냉랭해진 분위기에 강도현은 당혹스러워 보였고, 몇몇 스태프들은 박재봉을 찾으러 촬영장을 떠났다.

“재봉이가 많이 서운했나 보네.”

“그러게. 잘 좀 맞혀 보지 그랬냐-”

졸지에 천하의 나쁜 리더가 되어 버린 강도현이었다. 자신이 그렇게 잘못한 거냐는 물음이 목 끝까지 올라온 게 눈에 보였다.

“가서 잘 달래 주고 와.”

“알았어요…….”

묘하게 풀이 죽은 뒷모습으로 털레털레 문밖으로 나갔다. 강도현이 나가고 현장에 있던 모든 사람이 바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도현이 많이 당황한 거 같았죠?”

“억울해서 미쳐 하던데?”

“리더의 고충을 이제 알겠지?”

모두가 준비를 마치고, 아슬아슬하게 강도현이 문을 열고 들어왔다. 한눈에 봐도 억울한 얼굴에 허탈함과 어이없음이 가득한 목소리였다.

“아, 진짜! 다들 너무해요!”

그리고 그 뒤에는 웃음을 참지 못하는 박재봉이 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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