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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할 거면 두 번 데뷔 안 함-121화 (121/346)

121화

“왜 그래?”

지운이 형이 당황한 듯 물었고, 나는 말없이 검지 손가락을 입술에 대고 조용히 하라는 신호를 보냈다. 지운이 형도 상황이 심상치 않음을 느꼈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문제는 윤빈 형이었다. 제아무리 내 뒤에 숨기려 해도, 저 덩치가 내 뒤에 가려질 리가 없지. 나는 메모장을 켜서 윤빈 형과 지운이 형에게 보여 줬다.

[사생. 매니저 형 연락, 윤빈은 최대한 몸 줄이고]

경황이 없어서 최대한 간략하게 단어 위주로 보냈다. 지운이 형은 바로 알아채고 핸드폰으로 메시지를 보냈다. 몸을 줄이라는 말에 윤빈 형은 갸웃하다가도 쭈그려 앉았다. 저 자세 오랜만에 보네.

다행히 사생은 우리를 발견하지 못한 듯 자리를 떴다. 그제야 안심을 하고 숙소로 향하는데, 등 뒤에서 소름끼치는 한마디가 들려왔다.

“왜 그랬어?”

등줄기에서부터 소름이 돋는다는 게 이런 기분일까? 윤빈 습격 사건의 전말을 알고 있는 나로서는 더한 공포감이었다. 흉기 사용으로 대한민국을 한바탕 뒤엎은 사건이었으니까. 요즘 돌판 사생이 무슨 흉기를 들고 위협을 하나- 생각했지만, 기사에 의하면 가해자는 1세대 아이돌부터 사생으로 활동을 했던 작자였다.

‘근데 왜 지금 나타난 거지?’

원래 이 사건은 투샤인의 2집 활동 시기에 벌어진 일이었다. 하지만 지금 이걸 고민할 때가 아니지.

툭, 툭

지금 뒤 돌면 오히려 사생을 자극할 수 있다는 생각에 윤빈 형을 먼저 앞쪽으로 밀었다.

“뒤 돌지 마요.”

작게 속삭였고, 침이 목울대를 넘어가는 소리가 들렸다. 뒤에서는 점점 흥분했는지 작게 웅얼거리던 소리가 커졌다. 어찌나 급하게 말하는지 중간중간 말을 더듬기까지 했다.

“나한테만 인사하는 줄 알았는데 다른 X들한테도 웃어 주더라? 그렇게 아무한테나 꼬리 치고 다니니까 좋았니? 내가 우스워?”

일정하던 우산 소리가 점점 불규칙적으로 타닥거리고 있었다. 판단 미스였다. 매니저가 아니라 경찰을 부를 일이었다. 걸어오는 발자국 소리에 바닥에 고인 물소리가 합쳐지면서 공포감을 조성했다.

“절대 그런 게…….”

윤빈 형이 뒤를 돌아봄과 동시에 걸음 소리는 뜀박질 소리가 되었고, 나는 반사적으로 지운이 형과 윤빈 형 앞으로 뛰어들었다. 그 순간에도 머릿속에서는 ‘왜?’라는 생각이 들었다. 자칫하면 내 목숨이 위험해지는데? 하지만 그런 생각도 지금은 사치였다.

“윤빈 형 데리고 들어가요, 빨리!”

“너 혼자 뭘 어쩌려고!”

눈앞에 윤빈 형이 있는 게 사생을 더 자극하는 일이었다. 막무가내로 달려드는 몸을 일단 막고 흉기를 든 손목을 붙잡았다. 액션 영화를 찍으면서 몇 달 동안 단련했던 호신술을 이럴 때 쓸 줄이야. 벌크업까지 했던 그때와는 달라서 힘이 부족하긴 했지만, 호신술은 힘보다는 기술이기 때문에 일단 어느 정도 제압이 가능했다.

하지만 사람이 분노에 이성을 잃으면 힘이 더 강해진다는 말이 사실이었다. 일단 흉기를 움직이지 못하게 꽉 고정시켰지만 격렬하게 저항하는 탓에 나도 힘이 점점 빠져갔다.

그때 그토록 기다리던 매니저의 목소리가 들렸다.

“얘들아!”

안도감에 방심한 탓일까, 소름 끼치는 차가움이 손등을 스쳐 지나가는 것이 느껴졌다.

“아……!”

“이거 놔! 네가 뭔데!!!”

크게 다친 것은 아니었지만 반사적으로 손에 힘이 풀렸고, 막무가내로 휘두르는 흉기를 피해 뒷걸음질 쳤다. 하필이면 문턱에 걸려 주저앉았고, 두 눈을 질끈 감았다. 이렇게 이번 생도 아이돌은 끝이구나- 그 짧은 순간에 오만 가지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내가 생각한 시간보다 더 긴 시간이 지났음에도 나는 멀쩡했다.

“놓으라고!! 윤빈 데려와 X발!”

눈을 떠보니 매니저와 경호원이 사생을 붙잡고 있었고, 옆에 흉기가 떨어져 있었다. 나는 잽싸게 옷소매로 흉기를 수거했다. 나중에 증거물로 사용해야 하니까.

다행히 바로 경찰이 왔고 사생은 현장에서 체포됐다. 상황이 정리되고 나서야 매니저는 내 상태를 살폈다.

“다친 곳은… 너 손이 왜 그래!!?”

“살짝 베인 것뿐이에요.”

“피가 이렇게 나는데! 안 되겠다, 일단 응급실부터 가자.”

“승빈아!”

지운이 형과 윤빈 형이 달려왔다. 그제야 안도감에 다리에 힘이 풀렸다. 휘청거리는 나를 매니저가 붙잡았다. 지운이 형은 조금 화가 난 얼굴이었고, 윤빈 형은 언제부터 운 건지 눈이 빨갰다.

“너, 다음부터는 이러지 마. 혼자 무모하게 뭐 하는 거야…….”

나를 힐난하려는 게 아니라는 걸 너무 잘 알아서 일부러 과장하며 형을 달랬다.

“아이, 셋이나 다쳐 버리면 우리 데뷔 못 하잖아.”

“너 그걸 지금 말이라고……!”

“아, 알았어. 나 환자야. 아파-”

“아팠어? 미안…….”

거봐라. 아프지 않게 때린 거에 오바 좀 한 건데, 바로 사과를 하는 형이다.

“승빈아 미안, 너무 미안해……·.”

“괜찮아요, 저여서 이 정도였지 형이었으면 더 크게 다쳤을 거예요.”

사실이다. 과거에는 윤빈 형 혼자 귀가하던 길이어서 도움을 요청할 방법도 없었고, 크게 다쳐서 거의 반년 동안 활동을 중지했었으니까. 다친 건 나인데 어찌 된 게 내가 윤빈 형을 달래고 있었다. 얼마나 서럽게 울었는지, 구급대원에게서 환자의 진정을 위해 조금만 소리를 낮추라는 핀잔까지 들었다.

다행히 몇 바늘 꼬매는 정도로 끝났다.

“그래도 며칠간은 과격한 활동은 하면 안 돼요.”

“네.”

치료를 마치고 숙소로 돌아왔는데 모두 잠들지 않고 있었다. 12시가 지나면 졸기 시작하는 박재봉도 눈가를 꾹꾹 누르며 잠을 참고 있었다.

“형!”

“괜찮아요?”

“다친 곳은?”

“많이 다쳤어?”

일제히 질문이 들어오는데 정신이 없었다.

“쉿. 새벽이야, 이웃집에서 민원 들어오겠다.”

“아, 맞다…….”

“그거보다 형이 더 중요하죠!”

“오- 재봉이~”

“오바하지 마. 괜찮아.”

오히려 내가 덤덤했다. 정유현은 머리가 복잡한 듯 신경질적으로 머리를 쓸어 올렸다.

“하… 매니저 형한테 더 강하게 얘기를 했어야 했는데.”

아마 리더로서 책임을 다하지 못했다는 생각 때문이었을 것이다. 물론 매니저가 있었다면 더 좋았겠지만, 이건 미래를 아는 나조차도 예상 못한 변수였으니까.

“아니에요. 저희가 너무 안일하게 돌아다닌 잘못이죠.”

“…”

“다들 늦었는데 얼른 자요. 이러면 나도 못 자잖아.”

“진짜 괜찮은 거 맞지?”

“누가 보면 입원이라도 한 줄 알겠어-”

겨우 모두 방에 돌려보낸 후에야 잠에 들 준비를 마쳤다. 거실에서 만난 정유현이 다시 사과했다.

“미안하다.”

“사고예요, 사고. 너무 신경 쓰지 마요.”

“그래… 사고지. 하지만 난 내가 막을 수 있는 사고는 최대한 막고 싶어.”

“알았어요. 다음에는 꼭 형한테 먼저 알릴게요.”

정유현은 잘 자라는 말과 함께 다시 방으로 들어갔다. 방에 들어가 보니 강도현과 지운이 형은 이미 잠들어 있었다. 침대에 누우니 아까는 너무 긴급 상황이어서 풀지 못한 의문이 다시 떠올랐다. 목숨이 위험한 상황인 걸 뻔히 알면서도 둘 앞에 선 이유가 뭐였을까? 동료애? 윤빈 형이 지금 다치면 크리드의 미래가 불투명해져서?

아니면 단순한 정의감이었을까? 하나의 이유로 딱 잘라 말하기엔 너무 복잡한 문제였다. 또 다른 의문, 이 사건이 왜 지금 발생한 거지? 지운이 형의 루머 사건이 원래 사건 발생보다 이르게 발생한 것처럼 말이다.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지만, 크리드가 된 후부터는 앞으로의 미래가 회귀 전과 같다고 보장할 수 없다는 걸 의미하는 건 분명했다. 손등의 상처에서 통증이 밀려왔다. 괜찮은 척 하지 않아도 되는 시간이 오니 참았던 통증이 더 크게 느껴졌다. 일단은 자야겠다. 더 생각하기에는 머릿속이 너무 복잡했다.

다음 날 일어나니 역시나 습격 사건이 대서특필 되어 포털 사이트와 SNS를 점령했다. 검색어와 실시간 트렌드에는 씨넷에 대한 팬들의 분노가 가득했다.

#씨넷_소속가수_지켜

#씨넷_정신차려

이런 해시태그도 만들어져서 빠르게 확산되고 있었다. 소속사에서도 사태의 심각성을 인지하고 경호 인력을 추가했고, 윤빈 형도 생각이 많이 바뀐 것 같았다. 일단 이렇게 사태가 정리되었지만 다들 알고 있었다. 언제고 다시 터질 수 있는 문제라는 걸.

이 사건으로 사생 문제와 비뚤어진 팬 문화에 대한 비판이 한동안 여러 시사 고발 프로그램의 단골 주제가 될 정도였다. 물론 가해자는 법의 처벌을 받았다. 하지만 오직 흉기로 위협한 것에 대한 처벌이었다. 사생 행위 자체는 아무런 처벌도 받지 않은 거다.

‘씁쓸하네.’

예상한 결과였지만, 입안이 꽤 씁쓸했다.

* * *

“오랜만이죠?”

예기치 못한 부상으로 잠깐 멈췄던 리얼리티 촬영이 재개됐다. 그 말인즉슨, 윤 피디와도 재회했다. 리얼리티 촬영이 시작하면 보통 하루나 이틀 내내 촬영을 하는데 하루 종일 윤 피디 얼굴을 봐야 한다는 거다.

“아, 네.”

“피디님도 잘 지내셨죠?”

대부분 멋쩍어하는 와중에 정유현이 먼저 안부를 물었다.

“하하, 어떻게 하면 재밌는 리얼리티를 만들까 고민한 거 말고는 잘 지냈죠. 어떻게 몸은 좀 괜찮아요?”

“네, 많이 회복했습니다.”

“재밌는 거 많이 준비했는데, 아쉽게 미뤄졌네요.”

“아, 죄송합니다.”

“어후, 죄송하기는- 누가 들으면 내가 방송만 생각하는 줄 알겠어. 승빈 씨 건강이 훨-씬 중요하잖아요.”

이 새끼 지금 비꼬는 거 맞지. 담당 피디가 프로그램에 관심을 가지는 건 당연한 일인데 윤 피디가 그러는 건 찝찝했다. 투마월 때 하도 당해서 그런가, 저 인간 머릿속에는 어떤 악편으로 어그로를 끌어 볼까- 라는 생각뿐일 거 같다.

“그래서 오늘은 간단하게 크리드의 리더를 선정하는 과정과 팀 구호를 만드는 에피소드를 촬영할 겁니다.”

‘생각보다 무난한 주제인데?’

생각해 보니 아직 리더를 정하지 않았다. 다들 암묵적으로 정유현을 리더로 생각해 와서 그런지 딱히 리더를 선출해야 하는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다들 평소에 생각해 둔 리더가 있나요?”

“유현이 형이요!”

“유현군 어떤 점이?”

“음, 저희 중에 제일 차분해요.”

재봉의 대답에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유현이 형 말은 뭔가 안 들으면 안 되는 느낌?”

“왜요, 무서워요?”

‘역시 악편의 기회를 놓치지 않네.’

“아뇨? 처음엔 되게 무서운 형인 줄 알았거든요? 근데 표현이 적을 뿐이지 저희 생각 엄청 해요-”

다행히 눈치 빠른 박재봉은 문제의 껀덕지 없이 잘 답변했다.

“사실 저희는 연습할 때나, 숙소에서도 유현이 형을 리더라고 생각하고 지내 왔어서.”

“맞아.”

“팀의 정신적 지주 같은 역할인가 보네요?”

“아, 그 정도까지는.”

정유현은 멋쩍게 손사래를 쳤다.

“그럼 투표를 통해 리더를 결정하겠습니다. 한 명씩 뽑고 싶은 사람의 이름을 메모지에 적고, 투표실 카메라 가까이 보여 주세요. 그럼, 유현 군을 시작으로 나이순으로 투표하겠습니다.”

정유현이 투표실로 이동하고 모두 서로 누굴 뽑을 건지 물었다.

“난 유현이 형.”

“나도 유현이 형 하려고 했는데!”

대부분 유현이 형을 얘기했다. 모두가 예상한 대로 유현이 형이 되겠구나 생각했다. 그런데 이렇게 예상 가능한 그림이 나온다면 분명 재미없어 할 윤 피디였다. 그리고 투표실에서 역시 윤 피디가 조용히 넘어갈 리 없다는 점을 다시 느꼈다.

“리더 선정자 결과가 나왔어요.”

“유현이 형 세레모니나 수상 소감 준비했어요?”

“무슨 리더 된 거에 세리머니를 해.”

“기분이라도 내는 거죠~”

“그럼 공개합니다!”

작가님이 스케치북 위에 이름을 슥슥 적더니 바로 공개했다. 예상치 못한 장면에 모두 어버버했다.

[강도현]

“네? 저요?”

왜 강도현이 여기서 나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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