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혼자 할 거면 두 번 데뷔 안 함-119화 (119/346)

119화

다른 멤버들의 인터뷰가 모두 끝나고 나의 솔로 곡도 정해졌다. 멤버들 없이 혼자 회의에 참여한 것은 처음이었다. 시끌벅적하지 않고 조용한 분위기가 어색할 지경이었다.

“승빈 군 솔로 곡은 청춘예찬 작곡가분께서 선물해 주셨어요.”

“청춘예찬 작곡가님이요?”

“네, 투마월 경연 무대에 큰 감동을 받으셨다고, 꼭 곡을 주고 싶으셨다고 하네요. 마침 크리드 세계관과도 맞아떨어지는 곡이어서 저희도 큰 고민 없이 오케이 했고요.”

“어떤 곡인지 너무 기대되는데요?”

“제목은 ‘Eternity’예요.”

오해나는 기다렸다는 듯 노트북을 열어 음원을 재생했다. 감성적이면서 몽환적인 도입부가 순식간에 귀를 사로잡았다. 퍼포먼스보다는 보컬에 집중할 수 있는 곡이었다.

[한참을 헤맸지

지금 내 눈앞에 펼쳐진

일곱빛깔 무지개

그 영원을 향해 달려가]

일곱 명의 멤버를 의미하는 센스 있는 가사도 마음에 들었다.

곡을 선물해 줬다는 것만으로도 감동이었는데 우리에 대한 이해도가 높다는 생각이 들었다. 역시 뭐든 진심을 다해야 한다. ‘청춘예찬’ 무대로 인해 이런 행운을 얻게 될 것이라고 누가 예상했겠는가? 한 번 미래를 살고 온 나조차도 알지 못했다. 노래는 청춘예찬 작곡가가 줬지만, 프로듀싱은 스노우튠이 맡을 예정이었다.

“노래 어때요? 마음에 들어요?”

“당연하죠! 너무 좋은 곡을 주셔서 잘해야겠다는 부담감이 들 정도예요.”

“승빈 군은 뭐, 항상 잘해 왔으니까 이번에도 잘 해낼 거예요.”

“…감사합니다.”

다음은 본격적인 콘셉트에 대한 전반적인 설명이 있었다. 세계관의 포문을 여는 트레일러 영상이 내 솔로 곡 뮤직비디오가 될 예정이었다. 오해나가 말해 준 트레일러의 핵심 키워드는 [소년/성장/우리]였다.

“솔로 곡의 콘셉과 세계관은 전체적인 틀을 해치지 않는 선에서 승빈 군의 의견이 전적으로 반영될 겁니다.”

‘뭐지, 설마 나보고 짜라는 건가?’

“제가 잘 해낼 수 있을지 모르겠네요.”

“승빈 군 센스라면 좋은 아이디어가 많이 나올 거예요.”

“제가 준비할 거라도…….”

“뮤직비디오는 어떤 내용으로 할지, 전체적인 콘셉트는 어떻게 할지 정도 생각해 오면 될 거 같아요. 정리해서 주시면 더 감사하고요.”

‘내가 다 짜 오는 게 맞네.’

물론 솔로 곡의 뮤직비디오와 콘셉트 등에 직접 참여한다는 것은 나에게 엄청난 경험이다. 그룹도 중요하지만, 그 속에서 개인으로서도 경쟁력을 가져야 하는 건 사실이니까. 하지만 이대로 모든 걸 다 내가 맡을 순 없지.

“디렉터님께 조언 많이 구할게요. 아무래도 전문가의 도움을 받는 게 퀄리티적으로 더 좋을 테니까요. 괜찮으시죠?”

오해나는 내 말을 듣더니 살짝 입꼬리를 올려 웃었다.

“그럼요.”

아무래도 신인이고, 갑자기 중대한 일을 떠맡게 된다면 당황해서 어버버하다가 수락할 줄 알았겠지. 하지만 연예계 짬밥이 이럴 때 참 유용하다. 전문가가 왜 있겠어. 뼛속까지 아주 쪽쪽 빨아먹을 테다.

“잘 부탁드립니다!”

오해나가 먼저 손을 내밀었고, 가벼운 악수를 마지막으로 회의는 끝이 났다. 솔직히 부담이 없다면 거짓말이다. 세계관의 선봉 역할을 맡은 것도 부담스러운데, 시작을 담은 영상을 온전히 내 손으로 창조해야 한다니.

‘참고할 만한 영화랑 책을 좀 찾아봐야겠어.’

우선 세계관의 베이스인 ‘크리드의 자아 찾기’에 집중하기로 했다.

[손을 뻗어 곧 닿을 듯해

거기 서 있어 줄래

걸음을 빨리 해 속도를 높여

비로소 완성되는 우리야]

[영원을 약속해

이제 한 걸음 남았어

뒤돌아 봐 줄래

오랜 시간을 달려온 내게

손 내밀어 줘]

연습실로 향하는 차 안에서 핸드폰 메모장을 켜고 떠오르는 단어와 장면을 무작위로 적어 내려갔다.

1. 꿈에서 깨는 장면

2. 빛을 향해 달려가는 모습

3. 중간에 넘어지는 장면

4. 달려간 끝에 있는 다른 멤버들

‘트레일러 마지막 장면이랑 타이틀 뮤직비디오 첫 장면을 연결시키는 건 어떨까?’

갑자기 떠오른 생각이었는데 생각보다 괜찮았다. 그래서 곧장 엔딩 장면을 먼저 정했다.

[손을 뻗은 멤버들을 향해 달려가는 나. 등 뒤로는 눈부시게 강한 빛이 빛나고 있었고 그들의 손을 잡은 나는 비로소 등 돌아 미소 짓는다. 그리고 다시 빛이 있는 곳으로 일제히 고개를 돌리면서 엔딩. 뮤직비디오의 첫 장면은 하늘에서 떨어지는 운석을 바라보는 일곱 명으로 시작. 엔딩에서 보고 있었던 빛은 사실 운석의 것.]

‘일단 이 정도 정리하고 나머지는 더 생각해 봐야겠어.’

* * *

회의가 끝나자마자 다시 안무 연습에 합류했다.

“형, 회의 어땠어요?”

“솔로 곡 좋았어?”

“콘셉트랑 다 듣고 온 거야?”

역시나 연습실에 들어오자마자 질문 세례에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양팔에 박재봉과 강도현이 매달려 있었고, 장신 라인인 지운이 형, 선우 형과 윤빈 형이 앞뒤로 서 있어서 묘하게 그림자가 생기는 게 다소 위협적이었다.

“다들 빨리 와, 쇼케이스 곡도 준비해야 해.”

“네!”

다행히 정유현의 말에 모두 제자리로 돌아왔다. 오랜만에 정유현이 고마워지는 순간이었다. 다른 때였다면 회의와 관련해서 이것저것 얘기를 했을 텐데, 잠깐의 시간도 허비하기엔 쇼케이스까지 시간이 부족했다. 타이틀곡 이외에도 ‘더 샤인’과 쇼케이스 콘서트에서 7인 버전으로 ‘항해의 시대’를 선보일 예정이기 때문에 해당 안무 숙지도 필요했다.

“항해의 시대 한다고 해서 안무가 많이 없겠다 생각했는데…….”

“성재 쌤이 그걸 또 해내시네.”

최성재가 보낸 안무 데모를 보면서 다들 혀를 내둘렀다. 애초에 랩 포지션으로 나온 곡이었기 때문에 안무가 거의 없는 곡이었다. 후렴구에만 잠깐 당시 ‘나침반’ 팀이 만든 군무가 있었다. 그런데 아예 보컬 파트를 넣어서 재편곡을 하는 과정에서 안무 역시 추가됐다.

“그래도 안무 진짜 멋있게 잘 뽑혔어.”

“맞아. 솔직히 성재 쌤 감동임. ‘더 샤인’에도 안무 참여하셨던데.”

“몸이 열 개이신가?”

다행히 오늘은 최성재가 스케줄상 안무 수업에 참여하지 못했다. 만약 최성재표 스파르타식 안무 수업이었다면… 회의 핑계로 땡땡이쳤을지도 모른다.

“근데 이번 안무도 체력 안배 잘해야 할 듯?”

강도현의 걱정대로 ‘항해의 시대’ 안무는 타이틀곡과 ‘더 샤인’보다 난이도가 높았다. 몸으로 함대를 표현하는 구성 안무나, 멤버들의 등을 디딤돌 삼아 점프하는 안무 등이 대표적인 예다. 안무 시안을 보던 지운이 형이 말했다.

“안 다치는 게 제일 중요해.”

“흠, 제일 힘 좋은 사람이 디딤돌 역할을 해 줘야겠는데.”

“그럼, 내가 할게!”

윤빈 형이 자신 있게 손을 들었다. 사실 다들 윤빈 형을 생각하고 있었을 것이다. 다만 부상 위험이 높기 때문에 섣불리 권유할 수 없었던 거지. 그때 정유현이 윤빈 형에게 물었다.

“근데 너 어깨 부상 있지 않아?”

“무리 안 하면 큰 문제는 없을 거예요.”

“완치된 거야?”

“네?”

“다 나은 거냐고.”

“그건 아니지만.”

“그럼 안 돼. 최대한 부상 없는 사람이 해야지.”

하지만 부상이 없는 사람을 찾기란 어려웠다. 지운이 형도 다리 부상이 있었고, 박재봉도 투마월 시그널 송 당시의 미세한 허리 부상을 당했고, 선우 형도 연습생 시절부터 어깨 부상이 있었다. 찬찬히 멤버들의 몸 상태를 듣던 정유현은 바람 빠진 웃음소리를 내며 말했다.

“절반이 미성년자인데 몸들이 참…….”

부상은 아이돌 연습생들의 숙명과도 같다. 어렸을 때부터 하루 종일 트레이닝을 받으니 몸이 성한 곳이 없는 게 안타깝지만 현실이었다.

“그럼 제가 할까요?”

정유현에게 물으니 고개를 젓는다.

“넌 메인 보컬인데 노래해야지.”

“그럼…….”

“내가 할게.”

다들 놀란 눈이었다. 정유현이 자원을 했다는 것도 놀라웠지만 이제 누가 정유현의 등을 밟을 것인가에 대해 궁금한 것도 있었다.

“괘, 괜찮겠어요?”

“다음 활동 때는 너네 중에 시킬 거니까 몸 관리나 잘해 둬.”

‘뭐지……?’

정유현은 불만 있냐는 표정으로 다른 멤버들을 둘러봤고, 다들 서로 눈치만 보고 있었다. 그때 지운이 형이 말했다.

“고마워요, 형!”

“…….”

“제가 진짜 깃털같이 밟고 뛸게요!”

“맞아요. 이제 재봉이 야식도 안 먹고…….”

“얘기가 어떻게 그렇게 넘어가요?”

“유현이 형 허리랑 어깨를 위해?”

선우 형과 박재봉의 티키타카에 모두 웃음이 터졌다. 정유현도 어이없어하면서도 입꼬리가 올라가 있었다.

“자, 이제 다시 시작하자!”

“네!”

* * *

“와, 이게 저희 의상인 거예요?”

“미쳤다. 저 진짜 맘에 들어요!”

드디어 데뷔 앨범 의상을 처음 입어 본 멤버들은 모두 하나같이 신나 있었다. 뮤직비디오 촬영에 앞서 재킷 사진을 먼저 찍게 되었는데, 같은 교복을 베이스로 해서 멤버별로 디테일이 달랐다. 오늘 찍은 사진 중 일부가 티저로 풀릴 예정이었다.

촬영장이 실제 학교라서 그런지 다들 감회가 남달라 보였다. 콘셉은 크게 2가지였는데, 우선 아이디 콘셉은 단정함이 베이스였다. 그리고 이드 콘셉은 멤버들이 각자의 능력을 발견한 후라서 자유분방함이 중요했다.

염색모를 살리기 위해 이드 콘셉부터 촬영이 시작됐다. 교복을 각자의 스타일대로 자유롭게 매칭한 느낌의 의상이었다. 운동부인 윤빈은 교복 바지에 흰 티를 입고, 셔츠는 마치 겉옷처럼 풀어헤친 상태였다. 강도현과 박재봉은 후드티를 걸쳐 입었고, 정유현은 이 와중에도 단정하게 가디건을 입고 있었다. 교복 가디건이 아닌 사복 가디건이라는 설정이긴 했지만, 과연 뭐가 다른 건지.

“최대한 자연스럽고 자유분방하게 움직여 주세요.”

“네!”

운동장을 뛰어다니거나, 학교 담벼락에 걸터앉은 모습 등 자유롭게 포즈를 취하면서 촬영이 이어졌다.

“이거 완전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 자세 아니냐.”

“형, 저 포즈 완전 어색하죠.”

“어깨에 힘만 좀 더 빼면 될 거 같은데?”

어느덧 촬영이라는 것도 잊을 만큼 다들 신나서 촬영을 이어 가고 있었다. 농구하던 척을 하더니, 결국에는 못 참고 농구 게임을 이어 갔다.

그렇게 즐거웠던 이드 콘셉이 끝나고 이어지는 아이디 콘셉. 모든 멤버가 흑발인 게 이 콘셉의 주요 포인트였다. 덕분에 염색을 한 멤버들은 헤어스프레이를 활용해서라도 흑발인 척을 했다.

단정한 머리와 단정한 교복. 단체 (짭)흑발까지. 과연 안 좋아할 사람이 있기는 한 건지. 괜히 클리셰가 아닌 거다.

특히 지운이 형이 도수 없는 뿔테 안경을 썼는데, 이드 때의 모습과 가장 상반된 매력을 보여 줬다.

“오~ 범생이네-”

“대박, 지운이 형 안경 쓴 거 처음 봐요!”

안경을 쓰니 날카로운 인상이 조금 줄어들고, 지적인 분위기가 났다. 이번에는 장소를 교실로 옮겼다.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그 어느 때보다 편한 촬영이었다.

“컷! 오늘 촬영 종료합니다!”

“수고하셨습니다!”

현장 스태프들, 촬영 작가, 촬영 현장, 날씨, 컨디션 등 한 번 촬영할 때마다 고려해야 할 요소가 정말 많다. 그리고 아이돌과 배우 일을 둘 다 해 본 결과, 이 요소들이 모두 최상으로 맞아떨어지는 일은 정말 손을 꼽을 정도로 적다. 그런데 오늘이 그런 날이었다.

모든 게 순조롭기만 했다, 그럴 리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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