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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할 거면 두 번 데뷔 안 함-118화 (118/346)

118화

“헐, 쇼케이스 티켓팅 공지 떴다!”

“언제야? 며칠임?”

“공연은 다음달이긴 한데, 당장 다음주 수요일이 티켓팅이네.”

“미쳤다. 벌써 심장 터질 거 같은 거 실화냐?”

“그래도 공연장 큰 곳 잡았네. 그나마 다행이다.”

“제발 제 자리 하나만 남겨 주세요.”

수진은 곧장 공연장 규모를 검색하고 시야를 확인했다. 어차피 지금 시야를 확인한다고 그 자리에 갈 거라는 보장은 없지만.

“아니, 근데 포스터 무슨 일이야.”

“애들 얼굴은 하나도 없고 로고만 박아 놨네.”

아직 티저가 공개되기 전이긴 했지만 괜히 아쉬운 그녀들이었다.

그리고 마침내 티켓팅 당일, 수정과 수진은 수강 신청 명소로 유명한 피시방 한편에 자리를 잡았다. 이미 곳곳에는 크리드 예매창을 띄워 둔 사람들이 보였다.

“미쳤어. 나 지금 숨 수동으로 쉬는 중.”

“야! 너 때문에 나도 갑자기 숨 못 쉬잖아!”

“어허, 어디서 지금-”

“하… 잘 부탁드립니다. 수진 님.”

아이돌 공연 티켓팅이 난생처음인 수정은 뭐가 뭔지 감도 안 잡혔다. 정각에 맞춰서 새로 고침 하고 원하는 자리 눌러서 결제까지. 사실 어떻게 보면 수강 신청이랑 비슷한 거 아닌가 싶다가도 천하의 이수진이 저렇게 긴장한 거 보면 어렵긴 한가 보다 싶었다.

“5분 남았다. 대기 타.”

“알겠어. 너 잡으면 무조건 내 꺼도 잡아야 된다?”

1인 1매밖에 예매가 안 되는지라 크롬은 수정 아이디로, 익스플로어는 수진 아이디로 로그인까지 해 둔 상태였다. 누구든 서버가 뚫린 사람이 되는 대로 잡기로 했지만 사실 수진은 언니에게 일말의 기대조차 없었다.

“카운트다운 5, 4, 3, 2, 1.”

띠리링- 정각을 알리는 소리가 피시방을 가득 채웠고, 소리 없는 전쟁이 시작됐다.

“미친, 됐다!”

“헐! 잡았다!”

피시방 곳곳에서 성공의 환호와 실패의 욕설이 동시다발적으로 들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안타깝게도 수진은 후자였다. 망했다, 포도알이 실시간으로 사라지고 있었다.

그녀가 초조해지기 시작한 그때, 수정이 입을 열었다.

“야, 미쳤다.”

“왜?”

“나 잡음.”

“진짜로? 언니, 얼른 내 꺼도 들어가 봐.”

“그것도 잡음.”

“뭐라고?”

믿기지 않는 소리에 수진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수정의 모니터를 확인했다. 그리고 소리 질렀다. 화면에는 예매 성공 내역이 떠 있었다, 그것도 스탠딩으로.

“언니, 대체 어떻게 한 거야?”

“나 그냥 제일 큰 구역 누르고 포도알 보이는 거 아무거나 눌렀지.”

역시 티켓팅은 욕심을 버려야 성공한다 그랬던가. 아무런 기대가 없던 수정이었기에 오히려 맘 편히 시도한 게 성공한 거다.

“수정 님, 제가 이제 언니로 모시겠습니다.”

“이미 제가 언니거든요? 잘하시죠?”

“넵!”

장난칠 여유까지 생긴 두 자매의 마음은 이미 공연장 안이었다.

* * *

“오랜만이에요.”

“안녕하세요!”

“오늘은 이전에 말씀드렸던 것처럼 개별 인터뷰를 가질 겁니다.”

역시 신인이라 그런가, 매사에 열정이 가득해 보인다. 수많은 아이돌 디렉팅을 하면서 아이돌에 대한 환상은 깨진 지 오래지만 저렇게 초롱초롱한 눈을 보는 건 즐겁지. 어차피 연차 쌓이고 익숙해지면 열정보다는 짬을 믿을 텐데, 지금이라도 많이 봐 둬야겠다 싶은 오해나였다.

“개별 인터뷰에서는 여러분의 앞으로 상징 동물, 번호에 대해 얘기를 나눌 거예요.”

“번호요?”

“네, 운동선수 등 번호처럼 여러분을 대표하는 번호를 정할 겁니다.”

상징색이나 동물, 심볼을 만드는 경우는 많이 봤지만 등 번호는 조금 생소할 수도 있겠다 싶었다. 하지만 학교를 배경으로 하고, 학생이 주된 콘셉인 만큼 고유 번호를 만드는 것이 팬들의 흥미를 자극할 것이다.

“막내인 재봉 군부터 시작할게요.”

“네!”

막내인 박재봉부터 면담을 시작한 이유는 집중력이 가장 좋을 때 끝내자는 마음 때문이었다. 지난번 회의 때 보니까 초중반까지는 눈을 반짝이는데, 끝날 때쯤 되니 점점 집중력이 흩어지는 모습을 보였었다. 아무래도 장시간 앉아서 듣는 게 좀 쑤시긴 하지.

“상징 동물로 생각해 본 거 있어요?”

“저는 재규어요!”

“네?”

“재규어요.”

내가 잘못 들은 줄 알았다. 솔직히 토끼, 강아지, 병아리 등 소동물을 생각하고 있었는데 재규어?

“특별한 이유가 있어요?”

“재규어는 엄청 강하잖아요! 세게 생기기도 했고.”

“음… 제 생각에 재규어와 재봉 군의 이미지가 잘 맞지 않아요.”

감정적 개입 하나도 없이 정말 사실을 말했다. 아직도 젖살이 빠지지 않아서 귀여움이 묻어 있는 얼굴에 재규어? 차라리 새끼 치타가 낫겠다. 그런데 묘하게 어깨가 축 처지더니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얼굴이었다.

“아니, 재규어의 강함을 재봉 군이 가지고 있죠. 가지고 있는데 너무 갑작스러운 이미지 변화는 대중분들한테 혼란을 줄 수 있어요. 대중분들은 재봉 군이 성장하는 걸 함께 하고 싶은 마음이 클 거예요.”

“…그런가요?”

어린 나이에 데뷔하는 애들의 특징 중 하나다. 뭐 이렇게 어른이 되고 싶다고 이미지 변화를 꾀하려는 건지. 어린 나이가 얼마나 큰 무기인데 그걸 버리고 어른이 되겠다는 것이냐. 엔터계에 오래 있어서 내가 너무 현실적인 생각을 하는 건가 싶지만, 저렇게 성급하게 이미지 변신한 애들 중에 오래 살아남은 아이돌은 보기 힘들다. 오히려 성인 되고 나서 어려 보이고 싶다고 우는 소리 내는 애들은 봤어도.

“절대 재봉 군이 어리기 때문에 약하다거나, 어리숙함을 강조하고 싶지 않아요. 재봉 군은 지금 모습 그대로 강함을 가지고 있을 거고, 우리는 그걸 끄집어내고 싶은 거고요.”

말은 이렇게 했지만… 그냥 귀여운 거 하라는 거다. 그래도 박재봉도 내 말을 듣고는 설득됐는지 수긍했다.

“생각해 봐요. 처음부터 재규어같이 센 이미지? 차라리 지금은 작고 귀여울지라도 점점 성장해서 진짜 재규어가 된 모습을 보여 주는 게 훨씬 재밌지 않을까요?”

“그러게요?”

“재봉 군은 크리드 세계관에서도 ‘성장’이라는 키워드와 가장 잘 어울리는 멤버예요.”

“그럼, 토끼로 할게요!”

“좋아요. 그럼 등 번호로 넘어갈까요?”

“네. 저는 7로 하고 싶어요.”

‘설마 행운의 숫자라서는 아니겠지.’

“럭키 세븐이니까요!”

지금까지 맡았던 팀들 중에서도 가장 어린 멤버인데, 열여섯 정말 쉽지 않다. 예상과 한 치도 벗어나지 않는 대답에 잠시 정신이 아찔했다. 사실 등번호 아이디어를 내면서 누구 하나 ‘7’이나 ‘3’을 한다고 하면 바로 컷할 생각이었는데 너무 해맑아 보여서 오케이 했다.

‘그래, 토끼도 받아들였는데 럭키 세븐쯤이야. 하긴, 이런 게 신인의 맛이지.’

“다음으로 도현 군 들어올게요!”

“제가요? 저 문승빈이랑 동갑인데.”

“너 8월생이잖아. 난 2월생임.”

“헐.”

“형이라고 불러라?”

“뭐래?”

강도현은 자기 닮은 너구리를 상징 동물로 하겠다고 하는데 속으로 이마를 백 번쯤 짚었다. 상징 동물로 너구리 하겠다는 아이돌은 내 인생 처음이다. 근데 너무 잘 어울려서 할 말이 없다.

“등 번호는 00번이요! 언제나 시작이 되겠다는 의미로요.”

“리더가 하지 않을까요?”

“저희 아직 리더 안 정해졌습니다!”

‘리더를 아직 안 정했다고?’

회의나 스케줄 때 보면 질서 유지가 잘 되어 있던데 리더가 아직 없다는 건 좀 놀라웠다. 역시 서바이벌을 함께 해서 팀워크가 좋은 건가? 알수록 신기한 조합과 멤버와 그룹이었다. 그래서 더 흥미로운 거지만.

다음은 제일 기대한 문승빈이었다. 투마월을 보면서 정유현과 함께 가장 인상적인 인물이었다. 경연을 기획하는 능력이나 크리드를 작명한 점에서 창의적인 부분에 강점을 가지고 있다고 판단했다.

“상징 동물은 제가 닮기도 했고, 저희 팬분들도 가장 좋아하는 강아지로 하고 싶습니다.”

“저희도 그렇게 생각해요.”

“그리고 숫자는 6으로 하고 싶어요.”

“6이요? 다른 이유가 있나요?”

“가장 완전한 숫자잖아요. 그리고 저를 제외한 크리드 멤버의 수이기도 하고요. 팀을 완전하게 하는, 그런 멤버가 되고 싶어요.”

‘역시 내 눈이 틀리지 않았어.’

“되게 좋은 의미를 가지고 있네요.”

“감사합니다.”

앞서 두 멤버가 지나치게 순수한 답이어서 신인의 느낌을 받았다면, 문승빈에게선 노련함이 보였다. 완전한 숫자라고 6을 가져온 것도 기특한데, 그 속에 스토리텔링까지 해 오다니. 앞으로 여러모로 활용할 일이 많겠다.

윤빈은 상징 동물로 늑대를 골라 왔는데 진심으로 잘했다고 박수 쳐 주고 싶었다. 비록 성격은 고슴도치에 가까웠지만 비주얼적으로 너무 잘 어울렸다. 그리고 등 번호는 ‘13’을 제안했다. 어떤 의미가 있는 숫자냐고 물으니 운동할 때 가졌던 고정 번호라고 설명했다.

“제가 야구, 농구, 축구를 했었는데 그때마다 13번을 했었어요.”

“오, 윤빈 씨가 운동에서 아이돌로 꿈의 영역은 달라졌지만 등 번호는 그대로 유지한다는 점에서 되게 의미 있네요.”

“네, 저에게는 행운의 숫자예요.”

박선우는 상징 동물로 고양이, 번호는 22를 골랐다.

‘왜 22지?’

“22 중에 2 하나를 좌우 반전하면 하트모양이 되잖아요!”

“독특하네요?”

“재밌겠죠!”

허무맹랑해 보여도 일단 재밌어 보이는 아이디어를 내는 게 진부한 것보단 훨씬 낫다. 물론 저 숫자 장난을 아는 세대가 있고, 모르는 세대가 있을 텐데- 하는 걱정은 있었다.

차지운은 상징 동물로 여우, 숫자로는 20을 골랐다.

‘이건 자기 나이로 골랐나 보네.’

“제가 데뷔한 나이이기도 하고, 언제나 스무 살의 패기를 잊지 않고 열정적으로 활동하고 싶어서 골랐어요.”

‘응?’

뒤에 붙은 설명은 조금 놀랐다. 스무 살의 패기와 열정으로 활동하고 싶다는 포부라니, 이렇게 신인답고 패기로운 다짐은 오랜만이다. 이런 순수한 답변을 듣다니, 역시 신인은 신인이다 싶었다.

마지막으로 정유현은 상징 동물로 사슴을 골랐다. 박재봉을 제외하고는 모두 자기 객관화가 잘되어 있는지 싱크로율 높은 동물들만 제안해서 따로 설득할 필요가 없었다.

숫자는 ‘21’을 골랐다.

“너무 바라 왔던 데뷔를 성공한 지금의 나이라서 골랐습니다. 시간이 지나도 지금의 마음을 잃고 싶지 않아서이기도 하고요.”

지극히 정석적인 이유였지만 정유현이 말해서 그런가, 의미가 남다르게 들렸다. 멤버들이 정유현의 말을 가장 잘 따르는 이유를 얼추 알겠다.

“유현 군이 말하니까 되게 신뢰가 가네요.”

“아, 감사합니다.”

모든 면담을 마치고 멤버들과 인사를 했다.

“저희가 아직 정식 구호를 못 정해서… 지금까지 크리드였습니다! 감사합니다!”

정유현의 통솔에 따라 한 줄로 서는 데까지는 쭈뼛거리다가도, 인사하는 목소리 하나는 우렁찼다. 수많은 신인들을 디렉팅했고 그들이 성장하는 모습을 함께했다. 그 과정에서 변하는 이들도 많았고. 하지만 이들은 시간이 지나도 오늘 말한 포부와 같은 마음을 유지한다면 함께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갈 수 있지 않을까- 막연한 기대를 가지게 되었다.

부디 이 기대가 배신당하지 않기를, 혼자 바라게 되는 그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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