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6화
[신세계]
“와!”
모두의 마음이 통했던 걸까, 일곱 명이 동시에 탄성을 내질렀다. 반응을 보던 스노우튠 팀이 장난식으로 물어볼 정도였다.
“뭐야, 뭐야! 더 샤인은 너무 아니었다 이거야?”
“당연히 아니죠~”
“더 샤인도 최, 최고죠!”
다들 저마다 나름의 변명을 하며 진땀을 뺐다.
“근데 솔직히 인정, 우리도 더 샤인보다 좋은 곡이 나올 수 있을까? 반신반의했거든. 근데 너희 덕분에 이렇게 멋진 곡이 나올 수 있었던 거 같다!”
우리의 과정이 영감을 준 노래로 데뷔한다니, 곱씹어 볼수록 벅차오르는 일이었다.
“타이틀곡이 정해졌으니 이제 안무 시안도 같이 봐 볼게요.”
“헉, 안무 시안도 벌써 나왔나요?”
“애초에 두 곡 중 하나를 타이틀로 하고, 타이틀이 안 된 곡은 커플링 곡으로 활동할 계획이었어요.”
“그럼 더 샤인 안무도 볼 수 있는 건가요?”
“당연하죠! 더 샤인뿐이겠어요? 데뷔곡 앨범 수록곡들도 전부 안무가 있을 예정입니다.”
‘역시 대기업은 다르네…….’
티벡스 시절에는 타이틀곡 이외의 안무는 사치였다. 그래서 수록곡들은 대부분 잔잔바리 발라드곡이었다. 왜냐? 커플링 곡으로 활동한다고 한들 스탠딩 마이크만 들고나와도 해 먹을 수 있어야 하니까!
수록곡도 전부 안무가 있고, 몇 개는 뮤직비디오도 찍을 예정이란다. 그러기 싫었는데 머릿속에서는 계산기부터 두들기고 있었다. 뮤비 하나 찍는 데에만 최소 몇천에 봐줄 만하려면 억 소리 나는데 그걸 최소 2개는 찍고, 내 솔로 뮤직비디오까지 찍는다면… 역시 노예도 대감집 노예가 최고다.
신세계의 안무는 역시 기대 이상이었다. 신인의 패기와 신선함이 돋보이는 안무였다. 군무를 중심으로 중간중간 자유분방한 와우 포인트가 적절히 들어간 점도 눈길을 사로잡았다. 또, 킬링 파트에서는 따라 하기 쉬운 포인트 안무들도 있었다.
‘딱 봐도 챌린지 하기 좋은 안무네.’
이외의 안무는 한눈에 봐도 난이도가 있어 보였지만, ‘저걸 어떻게 하지?’라는 걱정보다는 ‘어떻게든 해내겠다.’는 열정의 불을 지폈다.
‘더 샤인’의 안무는 익숙했다.
‘회귀 전이랑 똑같군.’
안무까지 그대로니 내심 ‘더 샤인’을 했다면 몸은 꽤 편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안무 시안에는 국내에서 내로라할 유명 댄서들의 참여가 많았다. 특히 투마월 심사 위원이었던 최성재도 참여했다. 이미 유명 아이돌들의 안무를 전담한 그였기 때문에 안무의 퀄리티는 보장된 셈이었다.
“완성된 안무는 최성재 안무가가 전담으로 트레이닝해 주실 겁니다.”
“쌤이요?”
“와, 빡세겠다…….”
불현듯 투마월에서의 최성재 트레이너가 떠올랐다.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이 아마…….
다시!
정신 안차려?
백 번 더 반복한다!
다들 눈동자를 굴리며 서로의 얼굴을 파악했다. 모두 자동으로 최성재의 목소리가 재생된 듯 동공이 빠르게 흔들리고 있었다. 최성재 안무가는 업계에서도 빠지지 않는 평이 있었는데, 바로 지독한 완벽주의자라는 거다. 평소에는 다부진 몸에 비해 온순한 눈꼬리와 장난기 많은 성격으로 대부분 웃는 얼굴이지만 안무 레슨만 들어가면 호랑이가 된다. 100명이 되는 연습생을 통솔하는 게 가능할까 싶었지만 최성재의 사자후 앞에서 정신 놓는 연습생은 없었다.
“하하, 진짜 잘해야겠다.”
“재봉아, 파이팅!”
“흐즈므르…….”
방송에는 많이 편집됐지만 박재봉은 특히나 최성재 트레이너의 총애(?)를 받는 연습생이었다. ‘눈부셔’ 안무 연습 당시 박재봉은 최성재의 집중 마크를 받았다. 다른 연습생들이 바닥에 널브러지던 때도 박재봉은 멈추지 않았다. 아니, 멈출 수 없었지. 최성재가 거의 박재봉을 지배하는 흑마법사였으니까. 그래도 박재봉은 이를 악물고 안무를 따라갔다. 그 덕분에 C등급 대표로 센터 후보에 오를 수 있었겠지. 어떤 의미로는 참 합이 좋은 둘이었다.
“내일부터 본격적으로 타이틀곡 녹음과 안무 연습이 시작될 겁니다.”
“그렇게 빨리요?”
“당연하죠. 그리고 여러분은 앞으로 한 달 반 후에 쇼케이스를 진행할 겁니다.”
“한 달 반이면…….”
“촉박하네요.”
한 달 반 사이에 타이틀곡을 포함한 수록곡의 안무와 녹음, 뮤직비디오 촬영을 마치고 리얼리티 촬영도 끝낸다니- 대충 생각해도 극악의 일정이었다.
“바쁜 일정이겠지만 최선을 다해 서포트할 테니 여러분들도 최상의 무대를 위해 노력해 주기 바라요.”
“당연하죠!”
“네!”
‘이제 정말 시작이구나.’
이곳에서의 2막이 시작됐다.
* * *
안무 연습 첫날, 다 같이 연습실에 모여 안무 시안을 보고 있는데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거울 너머로 보니 어떤 남자가 양손 가득 치킨을 들고 들어왔다.
“응?”
“안녕, 오랜만이다?”
최성재가 특유의 눈웃음을 지으며 서 있었다.
“안녕하세요!”
“연습생이 아니라 크리드로 다시 만나서 반갑다!”
치킨을 내려놓고 양팔을 펼치는 최성재에게 일제히 달려들었다. 정유현과 지운이 형 둘만 멀찍이 서서 웃고 있었다.
“야, 재봉이는 그새 키가 컸나?”
“당연하죠! 저 2센티나 컸어요-”
“그니까. 그땐 허리춤까지 왔었는데 이제 갈비뼈까지 오네.”
“풉!”
“아, 쌤!”
하긴, 170센티 초반인 박재봉이 190센티인 최성재의 옆에선 어깨도 안 닿을 키이긴 했다.
“일단 먹고 할까?”
“네!”
“와!”
“근데 저희 먹어도…….”
“오늘 하루는 풀어 달라고 내가 미리 부탁했지.”
“감사합니다!”
‘정말 참스승이셔…….’
멤버들 모두 관리가 필요한 몸은 아니었지만 소속사의 권유와 자발적으로 식단 관리를 하고 있었다. 특히 박재봉과 지운이 형은 잘 붓는 체질이어서 소속사 차원에서도 더 철저히 관리하고 있었다.
“염색도 하고 이제 진짜 연예인 다 됐네? 기분이 어때?”
피자를 우물거리던 선우 형이 고개를 저으며 답했다.
“아직 연습생이죠-”
옆자리 박재봉도 살짝 홍조가 올라와 있었다.
“연예인이라고 하시니까 되게 쑥스러워요.”
생각보다 훈훈한 분위기구나 생각했지만, 안무 연습이 시작되니 역시 그대로였다. 너무 익숙한 최성재의 목소리와 구호에 투마월 촬영장으로 돌아간 느낌이었다.
“다시!”
“정신 차리자!?”
“헉, 헉.”
첫날인데도 최성재는 자비가 없었다. 동작 하나하나 그냥 넘어가지 않았다. 이제 케어해야 할 인원이 7명으로 줄어들었으니 더 디테일한 트레이닝이 가능했다.
그래도 거울 너머의 노래창을 보니 그새 안무 스텟이 하나 올라 있었다.
[제목: 신세계(New World)]
-노래: ■■□□□
-안무: ■□□□□
“승빈아, 그 부분 팔 조금 더 뻗어서!”
“선우야, 힘 더 넣어서!”
“유현아, 빠르다!”
“윤빈아, 박자 날리지 말고!”
“재봉아!”
다른 멤버들 한 번 불릴 때 박재봉은 최소 다섯 번은 불린 거 같다.
“하, 씨… 쌤 또 나만…….”
“지운이랑 도현이는 역시 잘하네.”
“헉, 헉. 쌤, 저는요…….”
“어, 우리 재봉이도 아주 잘하지. 최고~”
엎드려 절 받기식의 칭찬이었지만 박재봉은 대꾸할 힘도 없는 듯 연습실 바닥에 널브러졌다.
“다음은 하이라이트 안무야, 제일 어려운 동작이지.”
다들 올 게 왔다는 표정이었다. 하이라이트 부분에서 한 명씩 손을 잡고 안무를 하다가 마침내 일곱 명이 원형으로 등을 지는 안무였다. 팔을 당겼다가 모이는 순간에 자리를 바꿔야 했기 때문에 스텝이 꼬이면 순식간에 무너지는 대형이었다.
게다가 하필이면 박자도 빨라서 손, 발, 머리가 모두 고생하는 안무였다.
“일단 오늘은 첫날이니까 박자 맞춰서 천천히 해보자.”
“네!”
“지운이랑 윤빈이 잡고 넘어가면서 재봉이로 바뀌고, 다음으로 승빈이…….”
‘꽤 순조로운데?’
이런 생각이 들고 3초도 지나지 않아 연습실에 비명 소리가 난무했다.
“으악!”
“형, 손!”
“악, 내 발!”
그럼 그렇지. 일곱이 모이면 혼자 있을 때보다 오합지졸이 되는 특성 어디 안 간다. 분명 한 명씩 손을 넘겨받아야 하는데 정신 차려 보니 발을 잡고 있었다.
“다시!”
“네!”
이후로도 연습실에는 최성재의 ‘다시!’와 우리들의 골골대는 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투마월 때도 저 지치지 않는 체력이 놀랍다 생각했었는데 여전했다.
‘저게 사람이야 에너자이저야?’
“승빈아, 정신 어디다 두고 있냐-”
“아닙니다!”
독심술이라도 하는 건가? 투마월 때도 딴생각하는 애들은 귀신같이 잡아서 연습생들이 긴장의 끈을 놓지 못하는 이유 중 하나였다.
“어? 으악!”
“괜찮아?”
쿵 하는 소리와 함께 지운이 형이 넘어졌다. 선우 형과 자리를 교체하는 타이밍에 서로 발이 꼬인 탓이었다. 그 순간 지운이 형이 다리 부상으로 댄스 팀을 그만둔 것이 떠올랐다. 곧장 다가가 다리 상태를 체크했다.
“심하게 삐었어요?”
“괜찮아. 발목이 살짝 접질린 거 말고는 큰 문제없어.”
“형은 이미 부상이 있었으니까 더 조심해야죠!”
“미안해요, 형. 제가 너무 빨리 넘어갔어요.”
“괜찮아, 괜찮아. 연습하다 보면 다칠 수도 있는 거지.”
조금 과잉 반응을 한 건 아닐까 걱정이 뒤늦게 밀려왔다. 아무리 과거에 형을 알아 온 시간이 있다고 한들 여기서는 다른 멤버들과 같은 시간을 알고 지낸 사이로 지내야 한다는 걸 가끔 잊곤 한다. 선우 형은 지운이 형이 주저앉은 순간부터 미안해서 죽으려는 얼굴이었다. 오히려 지운이 형이 달랠 정도였으니까.
뒤에서 상황을 지켜보던 최성재가 말했다.
“휴, 일단 오늘은 여기까지 하자.”
“네!”
“감사합니다!”
“연습 많이 하고 있어- 다음에 보자!”
“안녕히 가세요!”
“조심해서 들어가세요!”
최성재가 문을 닫고 나가자마자 모두 긴장이 풀린 듯 바닥에 주저앉았다.
“이런 스파르타식 훈련 오랜만이야…….”
강도현의 양 볼도 새빨개진 지 오래였다. 체력으로는 운동선수 저리 가라였던 윤빈 형도 손에 쥔 물병을 미끄러뜨릴 정도였으니 말 다 했다.
“사우나 온 거 같아.”
“그나저나 진짜 어렵네.”
“그니까요. 손발이 따로 움직여.”
사실 이 조합으로 다 같이 무대를 꾸민 적이 없긴 했다. 다들 실력이 있으니 기본은 하지만, 팀으로 합을 맞추는 건 또 다른 문제였다. 데뷔 전부터 하나의 미션이 생긴 기분이었다. 앞으로 팀워크와 함께 완벽해지길 바랄 수밖에.
잠깐 휴식 시간을 가지니 노래에 대한 생각이 들었다.
‘타이틀곡 녹음까진 일주일 정도 남았으니, 그전에 최대한 노래창을 채워야겠어.’
새로운 노래인 만큼 많은 연구가 필요했다. 이전에는 경연곡이었고, 어쨌든 내가 돋보여야 하는 것이 중요했기 때문에 내 스타일을 최우선으로 했다. 하지만 데뷔곡은 다른 멤버들과의 케미, 그리고 노래의 감성과 표현하고자 하는 것이 모두 일치해야 한다. 때문에 더더욱 원곡자로부터 노래의 정보를 얻는 것이 중요하다.
오랜만에 고민에 빠져 있을 무렵, 윤빈 형의 우렁찬 목소리가 들렸다.
“몇 번만 더 맞춰 보고 들어갈까?”
“네!”
“지운이 형은 좀 더 쉬어요. 어차피 형이 제일 진도 빨라서 지금은 쉬어도 돼.”
“맞아요!”
지운이 형은 손사래를 치다가도 단체로 계속 쉬라고 강제로 앉혀 놓으니 못 이기는 척 자리로 돌아갔다. 아직 오합지졸일지라도 의지와 배려 하나는 최고인 팀이었다.
‘그래, 그게 제일 중요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