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3화
[숙소에서 첫 에이앱!]
-승빈이네지?
-지운아아아
-도현이 안뇽!
-hi~
“안녕하세요~”
“클로버들 안녕~”
“오랜만이에요-”
시청자 수가 초마다 만 단위로 올라가는 게 신기했다. 팬들이 누를 수 있는 하트도 벌써 백만이 넘었다.
“대박, 저희 이제 시작한 지 3분도 안 됐는데 하트 백만이 넘었네요?”
“클로버 최고!”
“감사합니다-”
‘와… 내가 4년 동안 했던 에이앱 하트 다 모아도 백만이 안 될 텐데.’
-손가락에 불나도 천만 만들어줄게
-광기의 클로벜ㅋㅋㅋㅋㅋㅋㅋㅋ
-근데 도현이 옆에 저건 뭐임?
-애들 눈 똥그래진 것 봨ㅋㅋㅋ
-하...신인 이맛에 파지
“오늘 여러분들이랑 슬라임 가지고 놀 겁니다!”
-ㅁㅊ
-슬라임 승빈이다ㅠㅠㅠ
-앜ㅋㅋㅋ 도현이 옆에 저 괴생물체 설마 슬라임?
-도현이는 슬라임을 찢어…
“맞아요. 근데 슬라임만 만들면 좀 지루하니까 ASMR 형식으로 할 거예요!”
“저희가 슬라임이 처음이어서 좀 서툴지라도 예쁘게 봐 주세요!”
-ㅅㅂ지운이 부탁인데 당연히 들어주지!
-지운아 넌 가만히 있어도 예뻐…
-차프들 갑자기 최수종자아 발현
-승빈이 pr때 생각나넼ㅋㅋㅋ
“저 위튜브에서 그거 봤어요.”
“뭐요, 지운이 형?”
“그, 이렇게 하면 비눗방울같이? 된다는데.”
-앜ㅋㅋㅋㅋㅋ
-저거 그거아님? 엉덩이 만드는겈ㅋㅋㅋㅋㅋ
-잘하넼ㅋㅋㅋㅋㅋ
-바풍??ㅋㅋㅋㅋㅋㅋㅋㅋ
“오! 성공했다.”
“지운이 형 처음 맞아요? 되게 잘한다-”
분명 에이앱 시작 전에는 손에서 슬라임을 가누지 못했는데 잠깐 해 봤다고 이렇게 적응할 줄이야. 그리고 저거 되게 어려운 기술이라고 들었는데.
-승빈이보다 잘하는거 같앜ㅋㅋㅋㅋㅋ
-옆에 도현이 뭐하냐곸ㅋㅋㅋㅋ
“이, 이게 이렇게 하는 거 맞나?”
“…겠냐?”
지운이 형의 현란한 슬라임 묘기에 정신이 팔려서 강도현을 이제야 발견했다. 곤죽이 된 슬라임의 모습이 꽤나 처참했다. 게다가 도대체 어떤 슬라임을 섞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말로 형용할 수 없는 색이 되었다.
지금 막 에이앱을 튼 사람이 보면 유치원생이 하는 찰흙 놀이라고 생각할 게 분명했다. 망하기 시작했을 때라도 그대로 두었다면 색만 좀 못 봐 주겠다 했을 텐데, 온갖 반짝이와 장식들을 넣어서… 그냥 시각을 포기하고 싶었다.
“이렇게 어려운 건 줄 몰랐어. 네가 PR 때 괜히 고생한 게 아니었네.”
“그건 너무 뻑뻑해서 그런 거고.”
“감촉 기분 좋다.”
-지운이 차례만 되면 자동 asmr되넼ㅋㅋㅋㅋㅋ
-도현이는 공사장asmrㅋㅋㅋㅋㅋㅋ
-지운이가 재우면 도현이가 깨우는 매직
“지운이 형이 이렇게 잘할 줄 몰랐어요. 분명 에이앱 시작 전에는 오합지졸이었는데.”
“오합지졸 정도는 아니지!”
“이거 배신이에요. 난 지운이 형도 나만큼 못하는 줄 알았다고요-”
-이 조합 asmr즈라고 하자
┕너무 길어
┕슬라임즈
-나중에 고정자컨으로 했으면좋겠음ㅋㅋㅋㅋ
“헉, 벌써 방종해야 할 시간이 왔어요.”
“벌써?”
“진짜네…….”
정신없이 양쪽을 케어하다 보니 벌써 20분이 지났다. 마음 같아서는 5분 서비스 준다고 해 놓고 2시간 주는 노래방 주인처럼 더 하고 싶었지만, 앞 팀과의 공평성을 위해서 방종을 했다.
“와, 하트 이천만 찍혔어.”
“시청자 수는 이십만 명?”
“이게… 되네?”
도저히 상상도 못 할 규모의 수였다. 투마월이 국내에서뿐만 아니라 각종 밈으로 해외 인기까지 잡은 덕이 컸다. 국내 서바이벌 프로그램의 경우 대부분 국내 화력이 90%를 차지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 크리드는 데뷔 전부터 해외 팬들의 비중도 꽤 됐다. 물론 국내 팬의 비율이 압도적이긴 하지만.
예고편의 조회 수는 이미 백만이 넘어가고 있었고, 실시간 트렌드도 전부 에이앱과 관련된 것들이었다. 단언컨대 ‘투샤인’보다도 뜨거운 반응이었다. 그래서 조금 두렵기도 했다. 높이 올라갈수록 떨어질 때 아프다는 말이 있다. 높이 올라가되 절대 추락하지 않아야 했다.
* * *
K는 몰아치는 떡밥을 주워 먹느라 바빴다. 역시 이래서 돌판 유목민들이 신인 덕질에 혈안이구나- 새삼 실감한 그녀였다. 팬덤명 정하기 에이앱에 화보, 인터뷰와 단독 리얼리티 예고편까지. 매일매일 떡밥이 마르지 않았다. 그런데 릴레이 에이앱까지 하다니. 몸이 열 개여도 부족할 지경이었다.
희한하리만치 신인은 덕질하지 않았던 그녀에게도 생소한 경험이었다. 자칭 병크콜렉터인 그녀는 소속사의 관리하에 각 잡힌, 기강이 잡힌 아이돌을 좋아하는 것 역시 거의 처음이었다.
무언가 안정적이고 생기 넘치는 아이돌을 덕질하는 게 어딘가 어색한 그녀였다. 대체 나는 어떤 덕질을 해 왔는가- 지난 덕질 인생에 관한 생각에 잠길 때쯤, A에게서 분노의 메시지가 와 있었다. 프리랜서인 K는 비교적 덕질을 자유롭게 했지만, A는 사정이 달랐다.
[ㅅㅂㅅㅂ회사 죽어]
[선우한테 회사 날려달라고 한 거 나였음ㅋㅋㅋㅋㅋㅋㅋㅋㅋ]
[하...]
[도현이 슬라임 ㅈㄴ 못하더라 몰래 보다가 터질뻔했어.]
[근데 음소거로 해서 뭐라는지 하나도 못 들으뮤ㅠㅠ]
“죽을 때까지 프리랜서로 존버해야지.”
K는 곧장 예고편과 에이앱에서 지운의 분량을 정리했다. 그리고 보정을 마치고 움짤 계정에 업로드했다.
차차 @chacha_gif 30초 전
[크리드존] ep1 예고편
지운이가 웃으니까 세상이 밝아지잖아ㅠㅠㅠ
#차지운#크리드
차차 @chacha_gif 10초 전
슬라임으로 비눗방울 만드는 지우니...♡
#차지운#Chajiwoon#크리드
순식간에 올라가는 리짹 수와 하트에 차지운의 인기를 실감할 수 있었다. 문득 논란이 터졌던 시기가 떠올랐다. 그때는 지금 반응의 반의반도 안 됐었다. 다들 비공개 계정으로 조심스럽게 덕질했었는데. 떠올리기만 해도 침울해지는 기분이 들자 K는 자신의 뺨을 아프지 않게 때렸다.
“과거 떠올려서 좋을 거 없지!”
이미 구오빠들의 병크로 평생 먹을 한을 다 먹은 그녀였다. 에너지도 시간도 넘치던 어릴 때는 사서 한을 먹기도 했다. 최애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는 모습을 합리화하기에도 좋았고. 하지만 사회인이 된 그녀에게 마이너스 감정은 사치였다. 그렇기에 이번 덕질만큼은 원 없이 행복하게 보내기로 마음먹었다.
다시 보정 프로그램으로 지운의 움짤을 만들면서 K는 다짐했다.
‘오빠들이 준 고통만큼 행복한 덕질 할 겁니다……. 오빠들도, 아니 오빠들은 행복하지 마세요.’
* * *
아직 정식 데뷔도 하지 않았는데 매일 스케줄이 있었다. 데뷔 전에 조금 더 체계적인 트레이닝을 받고 싶기도 했지만, 바쁜 일정이 나쁘지만은 않았다. 오늘은 투마월 때부터 ppl을 했던 음료 광고를 찍는 날이었다. 상큼한 탄산이 들어간 에너지 드링크였다.
“마셔 보면 알아!”
“좋아요! 거기서 조금만 더 활짝 웃어 볼게요!”
투마월 때 질리도록 마신 음료여서 그런지 찐으로 행복한 표정이 나오지 않았다. 입꼬리에 경련이 올 것 같았지만 한 번에 끝내자는 마음으로 미소 지었다. 배우 시절 터득한 기술 중 하나다. 아무리 몸에 안 맞는 배역이나 연기일지라도 용수철이 튕기듯 순식간에 에너지를 방출하는 것이다. 다행히 감독의 마음에도 들었나 보다.
“컷! 아, 너무 잘 나왔다!”
“감사합니다!”
“신인답지 않게 승빈 씨가 표정을 잘 짓네~ 배우해도 되겠어!”
“하하, 감사합니다.”
역시 신인이라는 건 꽤나 좋은 방어막이었다. 스스로는 만족하지 못했는데, 다른 사람들의 기준에는 괜찮아 보였나 보다.
“어머, 재봉이 너무 잘한다!”
“그렇지!”
역시 박재봉이 상큼한 탄산과 가장 잘 어울렸다. 촬영 내내 지친 기색 없이 귀여운 포즈와 표정을 해내는데, 존경스러울 정도였다.
“선우 씨, 조금만 더 웃자! 해피하게~ 스마일!”
“스, 스마일. 하하.”
“아니, 얼굴은 제일 귀여운 사람이 왜 그래-”
귀여움에 알레르기가 있는 게 분명하다. 의아했다. 내가 저 얼굴이면 작정하고 귀여움으로 밀어붙일 텐데. 결국 앞에서 강도현과 박재봉이 고군분투하며 선우 형을 웃겼고, 한번 빵 터진 후에는 비교적 수월하게 촬영을 마쳤다.
‘애기들 돌잔치 같네.’
“오늘 수고 많았어요!”
“수고 많으셨습니다!”
새벽부터 시작된 광고 촬영이 드디어 끝났다. 모두 녹초가 되어 차에 올라타자마자 안전벨트만 메고 녹아내렸다.
“으어어…….”
“입가에 경련 온 거 같아.”
“나도.”
곳곳에서 탄식과 앓는 소리가 속출했다. 와중에도 정유현은 흐트러지지 않고 조용히 핸드폰을 보고 있었다. 그러곤 짧고 굵게 말했다.
“다들 오늘 알지?”
‘오늘이 무슨 날이었나?’
도무지 생각이 나는 스케줄이 없다고 생각하던 중, 선우 형이 생기를 찾은 목소리로 말했다.
“맞네, 오늘 데뷔곡 처음 듣는 날이지?”
“무슨 노래일까? 지운이 형, 형도 기대되죠?”
역시 파워 E들이다. 정유현의 말을 주제로 또 대화가 이어지는 걸 보면. 슬슬 에너지가 떨어져 보이던 지운이 형이 허허 웃으며 답했다.
“응.”
크리드의 데뷔곡은 어떤 곡일까, 투샤인과 동일한 곡일지 전혀 다른 곡일지도 궁금했다. 만약 같은 곡이라면 익숙한 노래이기 때문에 녹음에는 수월할 것이다. 비록 온전히 내 스타일로 소화해야 한다는 숙제가 남았지만.
“무슨 콘셉일까?”
“완전 멋진 거였으면 좋겠어요.”
“그건 당연하지!”
투샤인의 데뷔곡 ‘더 샤인’은 정석 데뷔곡 느낌의 곡이었다. 적당히 청량하면서도 파워풀한 곡과 안무였다. 비슷한 시기에 데뷔해서 음악 방송을 돌면서 투샤인의 사전 녹화는 과장 조금 섞어서 백 번은 더 봤다. 그때마다 ‘나도 저런 곡으로 활동하고 싶다…….’ 한탄하곤 했는데, 기분이 이상했다.
나도 나지만, 지운이 형이 저 노래를 부를 수 있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수없이 가정하고 안타까워했던 것 같다. 새삼 이곳에 온 지 꽤 오랜 시간이 흘렀지만 이렇게 과거와 오버랩되는 순간들은 매번 적응이 안 되는 것 같았다.
데뷔하면서 이런 생각이 더 자주 들었다. 지금 이곳에서의 시간은 투샤인의 누군가를 대신하는 것일까, 아니면 온전히 다른 시간을 살고 있는 것일까. 이 모든 것이 현실이고 옆에 있는 멤버들은 손으로 잡을 수 있는 존재인데도 자꾸만 이 순간들이 꿈이 아닐까- 의심이 들곤 했다.
“승빈아?”
지운이 형이다. 정신이 다시 현실로 돌아왔다. 생각해 보면 이런 순간마다 날 깨워 주는 건 지운이 형의 목소리였던 것 같다. 그럴 때면 내가 했던 고민이 정말 쓸데없는 걱정이었구나 반성하게 된다. 형의 목소리를 다시 듣지 못할까 두려웠던 순간을 생각하면, 이 모든 게 감사할 뿐이니까.
“너는 데뷔곡 어떨 거 같아?”
“저는…….”
모든 것을 바로잡고, 미래를 바꾸기 위해 돌아온 시간이다. 이왕 이렇게 된 거, 누구보다 행복하고 완벽하게 해낼 것이다.
“최고의 데뷔곡일 거라고 확신해요.”
어떤 노래건 내가 그렇게 만들 거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