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2화
정유현은 매일 들고 다니는 다이어리를, 지운이 형은 가방에 걸고 다니는 키링으로 정했다. 다른 팀도 얼추 아이템을 정했을 무렵, 박재봉이 무심코 던진 질문 하나에 모두들 계획 변경을 외쳤다.
“근데 저희 소속사 허락 없이 에이앱 할 수 있어요?”
“아.”
“…그러게?”
가끔 이 일곱 명이 ‘최상의 조합’, ‘거를 타선 없는 조합’이라고 불리는 게 어불성설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백지장도 맞들면 낫다는 말이 있는데 우린 어쩐 일인지 일곱이 모여 있으면 어딘가 허술해진다.
‘어떻게 나랑 정유현, 하다못해 지운이 형도 그걸 생각 못 했지?’
사실 나는 소속사 허락을 받고 에이앱 하는 게 생소하긴 했다. 티벡스 시절에는 데뷔하고 한두 번은 회사 직원들을 대동해야 했지만, 뒤로 갈수록 알아서 해라- 식이었다. 그러다가 말실수하는 멤버가 더러 있었지만 보는 사람이 거의 없어서 논란도 안 됐다. 배우가 되고 나서는 SNS 라이브만 해서 딱히 스태프가 필요한 소통이 아니었다.
투마월에서는 내가 회귀 전에 망돌이었어서 해결할 수 있는 상황이 많았는데, 데뷔조가 되고 나니 이런 부분에서는 약점으로 작용했다.
“매니저 형한테 먼저 물어봐야겠네.”
그런데, 매니저 형에게서 뜻밖의 소식을 들었다.
“예고편 아마 오늘 저녁에 나올걸?”
“그렇게나 빨리요?”
“응, 소속사에서도 팬들 반응 모니터링하고 있었거든. 최대한 빨리 예고편 띄워 주라고 요청했는데 오늘 저녁에 올려 주기로 했대.”
오히려 잘됐다. 굳이 에이앱으로 힘들게 해명할 필요 없으니까. 역시 씨넷 산하의 기획사답다. 팬들 모니터링은 철저히 하네.
“그럼, 우리 예고편 나오고 릴레이로 에이앱 하는 건 어때?”
“그럴까요?”
“좋아요!”
‘웬일로 선우 형이 쓸모 있는 아이디어를…….’
소속사의 허락을 받고 각자 어떤 콘텐츠로 에이앱을 할까 고민했다. 세 번의 릴레이 에이앱이기 때문에 각 팀마다 20분의 시간이 주어졌다.
“그냥… 대화하는 시간 가지면 되지 않아?”
“형은 저랑 20분 동안 단둘이 대화할 자신 있어요?”
“저녁 먹방 하자.”
선우 형의 말에 정유현은 바로 말을 바꿨다. 저 둘이서 하는 에이앱도 다른 의미로 기대된다.
“아! 우리도 먹방 하려고 했는데!”
“이미 늦었다, 재봉아.”
“우린 뭐 할까요, 형?”
“저희 요리 방송할까요? 엊그제 쿠키 믹스랑 사 뒀잖아요!”
“괜찮은데? 쿠키는 미리 굽고 위에 아이싱하면 되겠네.”
죽이 척척 맞는 둘이었다. 하지만 벌써부터 신나 있는 둘의 모습에 지운이 형과 정유현이 고개를 갸웃했다.
“…괜찮다고?”
윤빈 형이야 요리를 꽤 하지만 박재봉은… 다른 의미로 엄청나기 때문이다. 그래도 데코는 좀 낫지 않을까 긍정적으로 생각하기로 했다.
“우린 뭐 할까요?”
“음…….”
“맞다, 나 그거 해 보고 싶었어.”
“어떤 거요?”
지운이 형이 나서서 먼저 뭔가 해 보자고 하는 건 드물어서 더 궁금했다.
“슬라임!”
“네?”
“응?”
뜻밖의 대답이었다. 슬라임을? 지운이 형이?
“너 PR 영상 보는데 되게 신기하더라고, 그래서 위튜브에서 찾아봤는데 재밌어 보여서… 별로야?”
“아뇨?”
“근데 슬라임이 있어?”
“그러게? 사 와야 하나?”
“그건 걱정 마세요. 회사로 온 선물 중에 슬라임이 제일 많으니까.”
정말이었다. 거의 매일 회사로 팬들의 선물이 오는데, 늘 빠지지 않는 게 슬라임이었다. 온갖 색과 종류의 슬라임을 혼자서 하기에는 양이 너무 많았다. 그런데 지운이 형이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니, 다른 멤버들한테도 슬라임의 매력을 알려 줘야겠다.
“그럼 저흰 쿠키 구울게요!”
“그래, 뒷정리 잘하고.”
“걱정 마세요-”
순서는 선우 형 방, 윤빈 형 방, 우리 방 순으로 진행하기로 했다. 그리고 그사이 리얼리티 예고편이 올라왔다. 룸메이트를 정한 방식은 나오지 않았고, 각 룸메이트들이 서로를 확인하는 순간을 담은 영상이었다.
[크리드 존: ep1. 사전공개]
그들이 룸메이트가 된 사연은...?
-헐 ㅁㅊ
-리얼리티야?
-으아아아ㅏ아ㅏ아아아아
-개귀여워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자연스럽게 화보 조합이 룸메이트 조합이었다는 것 역시 설명됐다.
-순위 순서가 아니었네
-아니 근데 어떻게 룸메이트도 저렇게 정할수 있는거임?ㅋㅋㅋㅋㅋㅋㅋㅋ
┕그니까ㅋㅋㅋㅋㅋㅋㅋ 랜덤이면 기적인데ㅋㅋㅋㅋ
-대체 어떻게 뽑은 건지 넘 궁금하다고ㅠㅠㅠㅠㅠ
┕하..... 첫방 언제 시작하냐
-ㅅㅂ순위 높다고 개같이까인 내새끼한테 사과해라
┕22
┕33
그리고 타이밍에 맞게 에이앱이 시작됐다.
[같이 저녁 먹어요!(사슴이모티콘, 고양이 이모티콘)]
-이런 ㅁㅊ
-헐
-룸메즈 에이앱이다
-선우야아아아아아
-유현이다!!!
“클로버들~ 안녕하세요!”
“저녁 먹었어요?”
-아니아지규ㅠㅠㅠㅠ
-누나 아직 회사야ㅠㅠㅠㅠㅠ
-뭐 먹을거야?
“저희 오늘 메뉴는 분식…….”
“뭐야, 아직도 회사라구요?”
야근을 하는 팬의 댓글에 선우 형이 더 발끈했다.
“이거 안 되겠네! 사람이 다 먹고살자고 일하는 건데 밥도 안 주고! 거기 어디예요? 우리 클로버 괴롭히는 것들 제가 다 혼내 줄게요!”
-앜ㅋㅋㅋㅋㅋㅋㅋ
-애기 화났엌ㅋㅋㅋㅋㅋㅋㅋ
-선우야 여기 주소가...
-사장님 클로버 퇴근시켜주세욬ㅋㅋㅋㅋㅋㅋ
다들 의외라고 생각했지만, 데뷔 전에 다수의 아르바이트 경력을 가지고 있는 선우 형이었다. 가끔 아주 드물게 우리를 놀라게 하는 어른스러움이나, 사회생활 만렙의 모습이 괜히 나오는 게 아니었다.
둘의 에이앱은 한 문장으로 정리하면, ‘어지럽히는 놈 있고 치우는 놈 따로 있다.’였다. 선우 형이 튀김 가루를 흘리면 정유현이 치우고, 선우 형이 포장지를 까면 정유현이 버리고.
-유현이 왜이렇게 바빸ㅋㅋㅋㅋㅋㅋㅋ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유현이 해탈한듯ㅋㅋㅋㅋㅋ
-선우가 또...
-어쩌다 둘이 룸메이트가 된거짘ㅋㅋㅋㅋㅋ
-유현아 고생이 많다;;
“유현이 형이랑 지내는 거 어떠냐고요? 착한 제가 많이 맞춰 주고 있죠-”
“켁!”
“이 형이 왜 이래?”
-유현이 뿜을뻔했엌ㅋㅋㅋㅋㅋ
-선우야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니
-박선우 ㅈㄴ뻔뻔하넼ㅋㅋㅋㅋㅋ
-유현이가 고생이 많구나..
“아니- 클로버들이 오해하잖아요!”
“클로버들 계속 오해하세요. 내가 진짜…….”
“아하하! 오늘 떡볶이가 되게 맛있네요? 형도 더 먹어요. 자!”
누가 봐도 티가 나게 입을 틀어막는 선우 형이다. 순식간에 20분이 지났고, 마무리 인사와 함께 에이앱이 끝났다. 팬들이 클립 따는 게 어찌나 빠른지 선우 형이 야근 중인 팬의 회사를 혼내는 장면은 이곳저곳에 퍼졌다.
[야근시키는 회사한테 화내는 아이돌]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표정봐 저건 찐임ㅇㅇ
┕데뷔 전에 알바 많이 했었대
┕어쩐지...저건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빡침임
-선우귀여웤ㅋㅋㅋㅋㅋㅋ
-프로아이돌특 : 팬 대신해서 회사 패줌
“저희 5분 있다가 에이앱 할 거예요!”
“알았어-”
방에만 있다가 이제 주방을 향했는데,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너, 얼굴…….”
“아, 이거 세수하면 다 지워져요!”
얼굴에 반죽과 밀가루를 잔뜩 묻힌 박재봉과 그 옆에서 부랴부랴 테이블과 싱크대를 정리하는 윤빈 형이 보였다. 역시 박재봉이 있는데 요리는 무리였다. 강도현은 예상했지만 더한 모습에 벙쪄 있었다.
“이야…….”
그래도 5분 만에 정리를 마친 둘은 예정대로 에이앱을 시작했다.
[{늑대 이모티콘}(토끼이모티콘)(세잎클로버이모티콘)(쿠키이모티콘)]
-헉
-뭐야
-또 해?
-ㅁㅊㅁㅊㅁㅊㅁㅊㅁㅊㅁㅊㅁㅊㅁㅊㅁㅊ
-으아아아아아아악
-전우치즈다아아아
-뭐야뭐야
-재봉아아아아
“클로버들, 안녕하세요!”
“반가워요~”
-ㅠㅠㅠㅠㅠㅠㅠ애들 요리방송하나봐ㅠㅠㅠㅠ
-앜ㅋㅋㅋ근데 어쩌다가 둘이 요리방송을ㅋㅋㅋㅋㅋㅋㅋ
-요리 제일잘하는애랑 제일못하는 애 조합이넼ㅋㅋㅋㅋ
“오늘은 클로버들이랑 쿠키를 만들 거예요!”
“맞아요. 일단 저희가 쿠키 구워 봤는데 어때요?”
“맛있겠죠!”
-아니 쿠키만 봐도 누가만든건지 바로 맞출수있는거임?
-재봉이 대왕쿠키 만들었네
-저정도면 전 아님?
-전ㅁㅊ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전나 큰쿠키
“이렇게 생겼어도 맛, 맛은 있어요!”
“맞아요~ 재봉이가 엄청 열심히 만들었어요.”
졸지에 박재봉이 만든 것을 인정한 모양새가 되자, 박재봉이 민망한 듯 작게 핀잔을 줬다.
“제가 만들었다고 말하면 어떡해요…….”
“어… 제가 만들었어요!”
“아니, 형! 됐다, 됐어.”
-아닠ㅋㅋㅋㅋㅋㅋㅋ
-이미 다 말해놓곸ㅋㅋㅋㅋㅋㅋㅋ
-재봉아 너무 내 귀에 대고 말한거 아니니;;
-진짜 아기야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재봉이 찐으로 삐졌엌ㅋㅋㅋㅋㅋㅋ
이 팀도 선우 형네만큼이나 우당탕탕이었다.
“클로버! 저 다 그렸는데 맞춰 보실래요?”
에이앱 모니터링을 하던 지운이 형이 한참 모니터를 보다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저게… 뭐야?”
“원숭이……?”
“에이, 원숭이는 심했다. 키위 아니야?”
“눈 코 입이 달렸는데 키위겠니?”
“박재봉이라면 가능할지도?”
-원숭이?
-원숭이인거 같은데
-토끼 아니야?
-저게 어딜봐서 토끼얔ㅋㅋㅋㅋㅋㅋㅋ
“정답은 강아지예요!”
“응?”
“강아지?”
“저게?”
박재봉의 기상천외한 미술 실력에 모두 경악했다. 댓글창도 강아지는 생각도 못 했다는 반응이 주를 이뤘다.
-강아지: 이건 좀.............
-이건 강아지 의견도 들어봐야한다..........
“저희 집 초코예요! 너무 귀엽죠?”
“오, 진짜 닮았네?”
-???
-도대체 저게 닮은 거면…
-윤빈앜ㅋㅋㅋㅋㅋㅋㅋ
-재봉이 강아지키우는구낰ㅋㅋㅋㅋ
‘집에 있는 초코가 들으면 물겠다, 재봉아…….’
윤빈 형은 열심히 박재봉이 만든 쿠키‘전’에 데코를 하고 있었다.
“와, 대박.”
“윤빈 형 그림도 잘 그려요?”
“예체능은 몰빵 맞나 봐.”
“짠! 완성했어요-”
-대박
-크리드 로고 아니야?
-옆에 깨알같이 클로버도 있어ㅋㅋㅋㅋㅋ
-금손이네 윤빈이;;
“다 완성했어요!”
이어서 완성한 박재봉의 쿠키까지 화면에 등장하자, 극단적으로 대조되는 모습에 모두 웃음이 터졌다.
“클로버들한테도 꼭 주고 싶은데-”
“나중에 직접 만나서 선물할 수 있으면 좋겠어.”
“맞아요! 우리 데뷔하면 팬 미팅도 하고 만날 일 많을 테니까.”
“오늘 쿠키는 멤버들과 맛있게 먹겠습니다!”
-재봉아 마음만 받을게;;
-내가 살다살다 재봉이가 주는 걸 거절하는 날이 올 줄이야.....
-왜 우리애 기를 죽이고 그래요ㅡㅡ
-와기들 마니마니 먹어
“그럼 다음에 만나요! 안녕~”
“안녕!”
-잘가아아아
-가지마ㅠㅠㅠㅠ
-오늘 와줘서 고마워 애들아
“이제 우리 차례네요?”
“슬라임 다 골랐지?”
“응.”
그사이 강도현은 위튜브 슬라임 영상으로 속성 과외를 받고 있었다. 슬라임을 해 본 사람은 나뿐인 거 같은데 나도 첫 기억이 좋지 않아서… 지운이 형은 속에 하얀 펄이 들어간 무색의 슬라임을 골랐는데 형과 잘 어울렸다. 강도현은 어디서 저런 특이한 디자인을 발견한 건지 치킨 박스 모형의 슬라임을 가져왔다.
“대박, 완전 먹고 싶게 생겼네?”
“잠결에 먹지나 마.”
“근데 손에 엄청 붙네?”
“이거 이렇게 하는 게 맞냐?”
시작도 전에 눈앞에서 치즈인 양 늘어지는 슬라임을 보며 걱정이 앞섰다. 이 초짜들 데리고 이번 라이브… 잘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