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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할 거면 두 번 데뷔 안 함-110화 (110/346)

110화

테이블 위 재료를 아련하게 바라보던 정유현이 말했다.

“이제 도현이랑 재봉이 중 하나가 무조건 고추장을 사 와야 해.”

“이러다가 맨 떡으로 배 채우겠어.”

정유현의 걱정 섞인 말에 선우 형이 덤덤하게 답했다.

“정 안 되면 구워서 설탕이나 찍어 먹어야지.”

“넌 참… 긍정적이구나.”

그때, 카메라가 입구 쪽으로 향했다. 강도현이 온 모양이다.

“제발, 도현아 제발.”

“제가 왔습니다!”

누가 보면 금의환향한 사람인 양 비닐 봉투를 휘저으며 강도현이 들어왔다. 부디 저 안에 고추장이 있길 바랐지만 비닐 봉투 위로 보이는 초록빛에 모두들 절망했다.

“아, 설마.”

“도현아.”

“저거 혹시 파냐?”

“정답! 떡볶이에는 파… 이게 뭐야?”

의기양양하게 걸어오던 강도현도 테이블 위 재료를 보고 표정이 한순간에 굳었다.

“아, 망했어!”

“우리 이제 어떡하지?”

테이블에 얼굴을 묻은 선우 형을 보며 강도현은 말까지 더듬었다.

“아니, 어떻게 아무도, 고추장을 안 사 와요?”

“너는 왜 안 사 왔냐?”

“그야, 앞에 사람이 사 간 줄 알았죠!”

‘이걸 진짜 텔레파시가 통했다고 해야 해, 말아야 해?’

어쨌든 앞 사람이 사 갔을 거라고 모두 생각한 걸 보면 이것도 일종의 텔레파시겠다.

“파도 구워 먹을까? 하하…….”

선우 형도 파는 충격이 커 보였다. 나는 봉지 속 파를 꺼내서 펜싱 선수처럼 강도현 앞에 내밀었다.

“이 파는 네가 다 먹어야 한다?”

“그런 게 어디 있어?”

“네가 선택한 파니까 책임져.”

“우리 팀이잖아! 고난은 함께 극복하라고 있는 시간 아니냐고-”

그때, 지운이 형이 스윽 옆으로 다가왔다.

“죄송하지만 누구… 시죠?”

“아, 형!”

지운이 형의 예고 없는 꽁트에 다들 무너졌다. 지운이 형은 장난을 자주 치지는 않지만, 이렇게 가끔 치고 들어오고는 했다. 정말 가끔 일어나는 일인지라 매번 새롭게 놀란다.

“하- 떡이랑 설탕, 수제비, 파로 만들 수 있는 요리가 뭐가 있을까요?”

“같이 구워서 볶으면 어떨까? 설탕이랑 파로 간 맞추고.”

“네?”

역시 범상치 않은 입맛이었다. 사실 윤빈 형은 투마월 합숙 때부터 유명했다. 과연 그가 맛없게 먹는 음식이 무엇일까 연습생들끼리 토론한 적도 있었다. 자취 생활로 단련된 요리 실력이 있지만 이런 조합은 처음이어서 막막했다. 진짜 다 구워 먹어야 하나?

다들 머리를 맞대고 저녁 메뉴에 고민하던 찰나, 박재봉이 도착했다.

“재봉아!”

“제발, 고추장 제발…….”

모두들 거의 울 듯한 얼굴로 고추장을 애타게 찾았다. 그리고 박재봉이 꺼낸 것은.

“카레 가루 사 왔어요!”

“헐.”

“일단 살았다!”

모두들 유레카를 외쳤다. 카레 가루가 있다면 카레 떡볶이를 만들어 먹으면 되니까. 이건 자취하면서 몇 번 만들어 봐서 레시피도 필요 없었다.

모두들 박재봉에게 달려들었다. 기쁨의 세리머니를 해 주려는 거였는데, 갑자기 달려오는 여섯 명에 박재봉은 뒷걸음질 치다가 도망쳤다.

“뭐예요! 오지 마!”

“막내야, 어디 가니!”

“우리 복덩이 봉봉이!”

졸지에 술래잡기가 되어 버린 현장에 카메라맨들이 분주해졌다.

“크리드 여러분들! 돌아오세요!”

“이 형들이 왜 이래!?”

“기특하다, 재봉아!”

결국 잡힌 박재봉의 머리는 여섯 명의 손으로 이리저리 헝클어졌다.

“아니, 다들 왜 이렇게 난리예요?”

“네가 와서 재료들 봐 봐.”

이 형들 이상하다는 눈으로 보던 박재봉도 테이블 위 재료를 보곤 헛웃음을 지었다.

“와, 나 없었으면 어쩔 뻔했어요?”

“그니까 우리가 이렇게 호들갑을 떤 거지.”

나중에 개인 인터뷰에서 선우 형은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재봉 군이 카레 가루 가지고 올 때 어땠어요?]

“재봉이는 정말 팀에 필요한 아이구나… 생각했죠.”

그렇게 우여곡절 끝에 촬영 숙소로 돌아왔다. 주방에 들어온 것은 나와 지운이 형, 윤빈이 형, 정유현이었다. 숙소 생활을 오래 하지는 않았지만 일단 선우 형과 강도현은 주방에 발도 못 붙이게 했다. 선우 형은 억울하다는 듯 외쳤다.

“왜! 나도 도와줄게!”

“형, 전 맛있는 음식을 먹고 싶어요.”

“헐, 승빈아, 너 어떻게 그런 말을!”

그야, 형이 끓여 준 라면 먹고 충격받은 미각이 아직도 안 돌아온 거 같으니까요. 자취 생활을 오래 한 나로서는 라면을 그렇게 끓일 거라곤 생각도 못 했다. 설마 라면도 못 끓일까 했는데 정말이었다.

“형은 인정하는데, 나는 왜?”

“도현아 너는 밀키트로 된 떡볶이도 못 만들었잖아.”

“흔적도 없이 치웠다고 생각했는데 어떻게 봤어요, 지운이 형?”

“그야, 네가 엄청 눈치 보면서 버렸으니까.”

그제야 강도현도 납득하고 식탁 세팅을 도왔다. 박재봉은 알아서 설거지를 자처했다.

“전 설거지하면 되는 거죠?”

“응.”

“유현이 형, 재봉이 설거지하는 거 봤어요? 진짜 식기세척기인 줄 알았잖아요.”

“그러게. 도현아, 보고 배워.”

박재봉은 묘하게 뿌듯한 얼굴로 별거 아니라고 말했다. 누나들의 영향일까, 요리는 못 하지만 설거지는 정말 잘하더라고. 대충 역할 분담을 마치고 본격적으로 요리를 시작했다.

“저랑 지운이 형이 재료 손질할게요. 윤빈이랑 승빈이 너는 양념 만들고 있어.”

“그래.”

지운이 형이 떡을 씻는 동안 카레 떡볶이 소스를 만들었다. 윤빈 형이 가져온 설탕도 요긴하게 쓰였다.

“간 보실 분?”

“저요!”

“나!”

주방은 조용한데 거실이 난리가 났다. 결국 세 명이 쪼르르 줄을 서서 양념을 시식했다.

“대박.”

“진짜 맛있어요!”

“야, 이거 팔아도 되겠다.”

“강도현 또 오버한다.”

결과적으로 카레 떡볶이는 대성공이었다. 떡이 너무 많이 남아서 스태프분들의 몫도 만들었더니 카레 냄새 가득한 저녁 시간이 지나가고 있었다.

* * *

“이제 내려도 돼요?”

“저 좀 무서워요, 형.”

“어차피 매니저 형이랑 다 있을 텐데 뭐가 무서워? 하하…….”

그렇게 말하는 박선우의 손은 땀으로 범벅이었다. 분명 어제까지 평화롭게 카레 떡볶이 먹고 잠에 들었는데 이게 무슨 봉변이지? 안대를 써서 아무것도 안 보이는 와중에 팔목이 서로 연결된 채로 차를 타고 어딘가로 향하는 중이었다. 도무지 어디로 가는 건지 가늠도 안 갔다.

끼익-

차가 멈추는 느낌이 들었고, 내리라는 스태프의 목소리가 들렸다.

“이제 안대 벗어도…….”

“안 됩니다! 지정된 장소에서 벗어 주세요!”

단호한 남자 목소리에 반사적으로 어깨가 움츠러들었다. 서로 거리를 좁혀 모이는 것이 느껴졌다. 어쩌다 보니 맨 앞에 선 나는 스태프의 어깨에만 의지해서 걸어갔다. 얼마를 걸었을까, 스태프가 멈춰 섰고 이제 안대를 벗어도 된다고 말했다.

“악!”

“잠깐만, 손 좀!”

“네가 내려야 내가 안대를 내리지!”

다행히 나는 한 손이 자유로웠다. 뒤는 혼란 그 자체였다. 정유현은 양쪽의 박재봉과 윤빈이 손을 들면서 졸지에 만세를 한 상태였다. 눈은 안대로 가려져 있어서 하관만 보였지만 많이 참고 있다는 게 바로 보였다.

“아이고, 유현이 형이었네…….”

“하하, 내려 줄게요, 형.”

서로 내려 주려다가 코에 걸리고 난리가 났다. 결국 보다 못한 지운이 형이 안대를 내려 주고 나서야 상황이 수습됐다.

“…이게 뭐야?”

“크리드 존?”

눈앞에는 [CR:ID ZONE] 이라 적힌 거대한 간판이 보였다. 그리고 그 밑에는 지문 인식 장치가 설치된 문이 있었다.

“지문을 찍어야 들어갈 수 있는 건가?”

유심히 문을 보던 윤빈 형이 말했다. 그리고 그 옆에서 강도현이 답답하다는 듯 물었다.

“뭐지? 뭔지는 알려 줘야 들어가든 말든 하지!”

박재봉이 거들었다.

“그니까요, 지금 주변에 스태프분들도 없는데…….”

그때, 선우 형이 성큼성큼 걸어가 지문 장치에 손가락을 갖다 댔다.

“아무 말이 없는 거 보면 일단 들어가야 시작되는 거 아니야? 일단 가 보자고.”

다행히도 그게 정답이었는지 요란한 소리와 함께 문이 열렸고 텅 빈 공간에 테이블 하나가 놓여 있었다. 그 위에는 나무 상자가 있었다.

“이걸 열면 되나……?”

“자물쇠로 잠겨 있는데? 숫자 네 자리를 찾아야 해”

“뭐야, 방 탈출이야?”

“대박!”

테이블 이곳저곳을 살펴보던 지운이 형이 무언가를 발견했다.

“여기 힌트 있어. 크리드의 시작?”

“우리의 시작?”

“파이널 날짜인가?”

박재봉의 말에 바로 0608을 눌렀다.

딸깍-

“어, 됐다!”

“안에 뭐가 있어?”

그때 빈 공간을 가득 채우는 목소리가 들렸다. 변조가 되어서 누구의 목소리인지 알 수 없었다.

[크리드 여러분, 크리드 존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뭐야?”

[크리드 존에는 총 5개의 미션이 숨어 있습니다. 일곱 명이 힘을 합쳐 미션을 성공하면 그에 맞는 상품을 얻게 됩니다. 그리고 최종 관문에서는 아-주 반가운 만남이 여러분을 기다리고 있을 테니! 최선을 다해 주시기 바랍니다!]

목소리가 사라지고 쿵 하는 소리와 함께 통로의 문이 하나 열렸다. 원래 이런 리얼리티였나 의심이 들었다. 분명 투샤인의 리얼리티는 잔잔바리로 숙소 생활이랑 연습 과정 보여 주는 게 다였는데.

“일단 가 보자.”

정유현이 먼저 옆에 놓인 랜턴을 들고 통로로 향했다. 미션은 단계를 거칠수록 어려워졌다. 서로에 대해 빠삭히 알고 있어야 맞출 수 있는 문제가 대부분이었다. 투마월 합숙 생활을 꽤 오래 하면서 서로에 대해 어느 정도 알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오산이었다.

“아니, 이걸 내가 어떻게 알아?”

“형, 실망이에요!”

“이건 가족도 모를 거 같은데?”

점점 시간은 줄어들고 있었고 다들 온갖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서 답을 찾으려 들었다. 결국 뒤에 가서는 허공에 대고 소리를 치는 지경까지 왔다.

[Q. 문승빈이 지금까지 불러 본 제일 높은 음은?]

“아, 힌트 하나만 줘요!!”

“안 해, 안 해, 안 나가!”

강도현과 선우 형은 포기하겠다며 협박 아닌 협박을 했고, 지운이 형과 정유현은 머리를 맞대고 답을 찾아 나섰다. 윤빈 형은 세트장 이곳저곳의 소품을 이리저리 건드리다가 몇 개 부숴 먹었다.

“하, 답답하네.”

말하고 싶지만 말을 하면 안 되는 입장이 되니 입이 근질거려서 미칠 지경이었다. 그때, 바닥에 누워 게임 거부를 하던 선우 형이 벌떡 일어나 외쳤다.

“3옥타브 D!”

“헐!”

“뭐야, 맞아?”

[정답! 미션 클리어!]

“어떻게 알았어요?”

“아우, 쟤 다시 봄 무대 준비할 때, 방에서도 저 부분만 얼마나 연습한 줄 아냐? 하도 반복해서 저건 몇 옥타브이기에 그렇게 죽어라 연습하냐고 물어봤었는데 3옥타브 D인 거 듣고 기겁했잖아.”

“문 열렸어요!”

드디어 마지막 문이 열렸다. 어떤 상품이 기다리고 있을까- 기대로 가득하던 찰나, 의자 하나가 놓여 있었고 누군가 앉아 있었다. 본능적으로 경계심이 들었다. 뭔가… 위험을 감지했다고 하는 게 더 정확하겠다.

“뭐야?”

“누구지?”

의자에 앉은 누군가가 빙글 돌아섰고, 모두들 경악했다. 이런 우리의 반응을 예상이라도 한 듯 남자는 싱긋 웃으며 인사했다. 반가워하는 목소리에서 순간 소름이 돋았다.

“오랜만이네요, 여러분?”

무덤에서도 잊지 못할 저 가증스러운 얼굴, 윤 피디의 재등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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