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9화
오랜만에 호캉스를 온 문스트럭과 K, A 세 사람의 핸드폰에서 동시에 알림음이 울렸다.
[크리드가 이름 지어 드립니다! 크리드 작명소 (네잎클로버 이모티콘)]
“뭐야? 에이앱이야?”
“헐, 야 스크린에 연결해서 보자.”
“일단 아무나 폰으로 켜 봐. 연결하는 동안에도 놓칠 순 없지.”
문스트럭과 K, A는 일사불란하게 각자 맡은 역할을 해냈다. 문스트럭은 스크린에 핸드폰을 연결하고, K가 미리 핸드폰으로 에이앱을 켜는 동안 A는 음식 세팅을 마쳤다.
“안녕하세요! 크리드입니다!”
“어, 시작한다.”
-애들아 안녕어어엉어어엉
-보고싶었어ㅠㅠㅠㅠㅠㅠㅠ
-점심먹었어?
-나는 당신의 아내를 죽이고 싶지만 자살은 죄악이기 때문에 멈춥니다.
-근데 왜 작명소야?
“설마 오늘 팬덤명 나오는 거야?”
“아, 대박. 맞네. 그래서 작명소라고 했나 봐.”
“오늘 저희가 이렇게 모인 이유가 있죠, 여러분?”
“네!”
의외로 오늘은 박선우가 진행을 맡았다.
“오늘 드디어! 크리드 팬분들에게 예쁜 이름이 생기는 날입니다!”
“와아-!”
-나 이제 이름 생기는 거야?
-기대된다아아아아
-애들이 준비했나?
-ㅇㅇ공모 안받았음
“그래서 저희가 이렇게…….”
“이건 누가 지은 거야?”
“그런 거 말하면 안 되지 않아?”
“애들아, 잠깐…….”
“다들 제가 가져온 이름 보면 깜짝 놀라실걸요?”
흡사 유치원에서 자유분방하게 활보하는 아이들 사이에서 기가 빠져 나가는 선생님을 보는 듯했다.
-선우앜ㅋㅋㅋ큐ㅠㅠ
-집단적 독백이냐곸ㅋㅋㅋㅋㅋ
-원래 이렇게 말을 안들었었나?ㅋㅋㅋㅋㅋㅋ
-선우 울겠닼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때 정유현이 어수선한 쪽을 향해 핑거 스냅을 했고, 그걸 본 멤버들이 조용히 자리로 돌아갔다. 분위기가 정리되고 박선우가 다시 진행을 이어 갔다.
“리더는 정유현이 해야겠네.”
“그러게. 애들 컨트롤은 정유현만 할 수 있을 듯?”
“진짜 신기함. 정유현한테 뭐가 있나?”
“근데 나 같아도 정유현 말 들을 듯.”
“맞아. 뭔가 안 들으면 손해일 거 같고 큰일 날 거 같아.”
너무 빨리 올라가는 댓글에 모두 바쁘게 댓글을 읽고 있었다.
“그럼 바로 한번 공개해 볼까요?”
-헐
-기대된다아앙
-미친.....
-드디어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스태프가 건넨 종이를 받은 문승빈이 말했다.
“저희가 정말 고민을 많이 해서 정한 이름인데, 여러분이 꼭 좋아해 주셨으면 좋겠어요!”
“아, 제발 평범한 이름이길.”
“진심.”
팬덤명을 잘못 짓게 되면 온갖 언어 유희에서부터 관련된 밈까지 동원되면서 조롱거리가 되기도 한다. 잘 지은 팬덤명은 그룹과의 연관성, 기억하기 쉬운 짧고 임팩트 있는 이름이 베스트였다.
“이름 공개는 누가 할까요?”
“막내가 하자!”
카메라 앞으로 총총 걸어간 박재봉이 카메라 렌즈에 이름이 적힌 종이를 가까이 붙였다가 서서히 뒤로 갔다.
-??
-저거 가리겠다고 냅다 카메라 렌즈에 가까이 붙였던 거냐곸ㅋㅋㅋㅋㅋㅋㅋㅋㅋ
-하....뒤로 갈수록 재봉이 얼굴이 점점 더 잘 보이는게 더 웃김ㅋㅋㅋㅋㅋㅋㅋ
-초점 나갔엌ㅋㅋㅋㅋㅋㅋㅋㅋ
“재봉아, 초점.”
“아, 잠시만요-”
“응?”
초점을 맞추겠다는 박재봉이 손바닥으로 자신의 얼굴을 가렸다. 여섯 멤버들과 팬들도 순간 어리둥절했다.
“뭐… 해?”
“초점 나갔다면서요! 이렇게 해야 초점이 딱 종이에 맞춰지죠!”
-앜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거 아니야 재봉앜ㅋㅋㅋㅋㅋㅋㅋㅋㅋ큐ㅠㅠㅠㅠㅋㅋㅋ
-아강이 어디서 본 건 많앜ㅋㅋㅋㅋㅋㅋ
-재봉이가 평생 얼굴가리면서 초점 맞췄으면 좋겠다…
너무 해맑게 초점을 맞추는 이유에 대해 말해서 다들 할 말을 잃었다. 다들 마음 한구석에서는 댓글 반응과 같이 박재봉이 계속 눈치채지 못하길 바라고 있었다.
“짜잔!”
[클로버 C:lover]
“클로버?”
“상상도 못 한 이름이네.”
“생각보다 귀여운데?”
-클로버?
-아 그래서 에이앱 제목에 네잎클로버 있었던거야?ㅋㅋㅋㅋㅋ
-귀여웤ㅋㅋㅋ
“크리드의 ‘C’와 러버를 합친 단어로, 크리드를 사랑하는 사람을 의미하는데요. 동시에 저희 크리드에게 여러분은 언제나 행복이자 행운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와아아!”
“클로버 여러분!”
-헐ㅠㅠㅠㅠㅠㅠ
-뭐야ㅠㅠㅠ 귀엽다 했더니 왜 갑자기 감동주냐고ㅠㅠㅠ
-뭔가 기분이상하넼ㅋㅋㅋㅋㅋㅋㅋㅋㅋ
-맨날 팔로워라고 불리다가 갑자기 클로버라고 불리니까 어색햌ㅋㅋㅋㅋ
-응원봉도 클로버모양이면 귀엽겠닼ㅋㅋㅋㅋㅋ
팬덤명이 정해지자마자 멤버들 모두 말끝마다 ‘클로버’가 입에 붙었다.
“얘들 엄청 부르고 싶었나 봐.”
“귀여워…….”
“맞아. 맨날 팬분들이라고 하는 거 애들도 신경 쓰였나 봄.”
“자, 그럼 이제 클로버 1기도 빨리 뽑자고.”
A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강도현이 준비한 듯한 멘트를 했다.
“팬덤명이 공개됐으니 이제 팬클럽 모집도 해야겠죠?”
-헐
-바로 공식도 뽑는거야?
-개좋아아ㅏ아아
-잘가라 무소속 인생
-엄마 나 클로버1기야
“이번 주 토요일부터 한 달 동안 클로버 1기를 모집합니다! 제가 들은 바로는 클로버 1기를 하면 엄청난 혜택이 있다면서요?”
-앜ㅋㅋㅋㅋㅋㅋㅋ강도현 외웠냐곸ㅋㅋㅋ
-왜 이렇게 뚝딱거렼ㅋㅋㅋㅋㅋㅋ
-도현이 이런거 잘 못하는구낰ㅋㅋ큐ㅠㅠㅠㅠ
-나중에 피피엘 들어오면 무조건 티날듯ㅋㅋㅋ
누가 봐도 대본인 멘트인 것도 환장하는데, 박선우와의 티키타카도 어색했다. 박선우 역시 항마력이 떨어지는 것을 이겨 내지 못했는지 서로 두 마디 이상이 오가지 못했고 결국 박선우는 포기한 듯 내뱉었다.
“하하, 여러분 클로버 1기 하시면 데뷔 쇼케이스 선예매가 가능해집니다.”
“헐, 형!”
“왜?”
“그거 말고요!”
-말하면 안되는 거였나봨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가만히 있었으면 아무도 눈치못챘을텐뎈ㅋㅋㅋㅋㅋ
-재봉이 표정이 더웃곀ㅋㅋㅋㅋㅋㅋㅋ
“하…….”
-유현이 이마 짚는 거 봐ㅋㅋㅋㅋㅋㅋ
-앞으로 스포는 선우 담당인갘ㅋㅋㅋㅋㅋㅋ
-선우야... 이제와서 입가리면 무슨 소용이냐고....ㅋㅋㅋㅋㅋㅋㅋ
-진짜 애들 신인이다ㅠㅠㅠㅠ 귀여워ㅠㅠㅠㅠ
“네, 여러분. 이렇게 공개하게 되네요.”
“저희 데뷔 쇼케이스 겸 공연을 진행할 예정입니다.”
“열심히 준비하고 있으니까 다들 많이 기대해 주세요!”
-ㅁㅊ......쇼케이스 겸 콘서트인건가?
-제발 고척에서 해주라....
-아 고척 시야 맘에 안드는데ㅠㅠㅠㅠ
-어디든 제발 내자리 하나만....
-데뷔하는 순간을 함께 하다니ㅠㅠㅠ
“그렇게 하기 힘들다는 데뷔 팬을 하게 됐네…….”
“오히려 좋아.”
“당연함. 짱리드임.”
“크리드 디너쇼까지 가 보자고.”
디너쇼로 가자는 다짐은 이미 숱하게 많은 아이돌에게 했던 말이다. 하지만 그들은 서로 눈치껏 모른 척해 주는 의리를 지켰다.
에이앱이 끝나고 크리드 공식 계정에는 공식 색도 공개됐다. 클로버라는 팬덤명에 걸맞은 산뜻한 연두색이었다.
“이제 내 피 빨강색 아님, 연두색임.”
“색깔 잘 뽑혔네.”
“야광봉도 빨리 나왔으면 좋겠다. 빨리 흔들고 싶어”
이미 마음만은 스탠딩 1열인 그녀들이었다.
* * *
휴가를 마치고 리얼리티 촬영은 계속됐다. 거의 숙소 위주로 진행되다가 이번에 처음으로 야외 촬영이었다. 하루 종일 먹고 게임하고, 그러다가 피곤하면 자고… 씨넷이라고는 믿을 수 없는 평화로운 스케줄이었다.
그리고 저녁 시간대가 돼서야 처음으로 미션다운 미션이 주어졌다.
[미션 : 텔레파시 떡볶이 만들기]
“텔레파시 떡볶이?”
“아, 재료 사 오는 거 아닌가요?”
“오- 역시 승빈 군이 잘 맞추네요?”
척하면 척이지. 신인 아이돌 리얼리티 열에 아홉은 ‘텔레파시’ 게임을 한다. 그런데 음식과 연관이 있다? 그럼 백이면 백 재료 사 오기다.
“여러분들은 재료를 단 한 가지만 사 올 수 있습니다. 그 과정에서 어떠한 대화도 불가능하고요.”
“와, 잘못하면 떡 없는 떡볶이 먹을 수도 있겠네?”
“서로 어떤 재료를 사 올지 예측하면서 신중하게 사 오길 바랍니다!”
철저한 제작진들은 대기 장소를 따로 정하고 핸드폰도 걷어 서로 뭘 고르는지 알 수 없게 만들었다.
“그럼 유현 씨 먼저 출발할게요!”
“네.”
“형, 잘 사 와요!”
그렇게 나이순으로 한 명씩 출발했고, 내 차례가 됐다. 마트에 도착해서 한참 고민했다.
‘떡은 누군가 무조건 사 갔을 거 같고… 근데 나처럼 생각하다가 모두 고추장 사 갔으면 어쩌지?’
떡볶이에 들어가는 재료가 복잡하진 않지만, 그래서 더 고민이 되는 부분이 있었다. 복잡하게 생각했다가는 오히려 모두 같은 재료를 사는 불상사가 벌어질 것 같았다. 그래서 아예 핵심 재료가 아닌 다른 재료를 샀다.
“저는 수제비로 하겠습니다.”
수제비 정도라면 혹시 떡이 없더라도 어찌저찌 떡볶이로 비벼 볼 만한 재료라고 생각했다. 계산을 마치고 대기 장소로 향하는 내내 부디 떡과 고추장을 누군가 사 왔길 간절히 바랐다.
그리고 대기 장소에 도착했을 때 직감했다. 아, 뭔가 잘못됐구나.
“떡이… 3개야?”
“수제비…?”
테이블 위에 놓인 것은 떡볶이 떡 3봉지, 설탕 한 봉지였다.
“설탕?”
“간 맞추려고 샀어.”
윤빈 형이 해맑게 웃으면서 말하는데 이건 뭐 웃는 얼굴에 침을 뱉을 수 없었다. 그리고 따지고 보면 간 맞추는 데 필요하긴 하지. 하지만 떡을 세 명이나 사 왔을 줄이야.
“어쩌다가 세 명이 연달아 떡을 사 온 거예요?”
“그러게 말이다.”
“승빈아, 와서 봐 봐. 이거 방송 나가면 진짜 웃길 거 같다.”
“그래요?”
현장 감독님을 포함한 대부분의 스태프들은 투마월 때부터 같이 한 사람들이어서 편한 분위기였다. 현장 감독님이 너무 웃겼다며 촬영분을 보여 주는데 어이가 없어서 헛웃음이 나왔다.
먼저 정유현이 떡을 사 오는 장면이었다. 첫 타자여서 그런지 크게 고민하지 않고 떡을 골랐다.
[떡볶이는 당연히 떡이죠.]
다음은 지운이 형의 장보기 영상이었다. 떡과 고추장 앞에서 한참을 고민하던 지운이 형이 떡을 집어 들고는 카메라 가까이 말했다.
[떡볶이는 당연히 떡이죠!]
어쩜 저렇게 토씨 하나 안 틀리고 똑같은 말을 했나 신기해질 때쯤 선우 형의 촬영분이 나왔다. 이 형 역시 떡과 고추장 앞에서 고민을 하고 있었다. 제발 고추장을 고르라고- 이미 결과를 다 알면서도 바라고 있었다.
[떡볶이는…….]
“설마?”
[당연히 떡이죠!]
“아…….”
[유현이 형이나, 지운이 형 중 한 명은 고추장 사 갔을 거 같으니까 전 안전하게 떡으로 가겠습니다! 떡은 많을수록 좋잖아요?]
어쩜 저렇게 뇌트워크가 연결된 것처럼 똑같은 멘트를 한 걸까? 주변에 있던 스태프와 작가진들도 한마디씩 했다.
“나는 대본이 있는 줄 알았다니까?”
“나 그래서 김 작가한테 물어봤었잖아. 애들 멘트 짜 줬었냐고.”
“아니, 나는 저 당당함이 너무 웃겨. 눈물이 다 나네.”
“너희 잘되겠다. 멤버들이 합이 아주 잘 맞네!”
‘이걸 잘 맞는다 해야 해, 틀리다 해야 해?’
민망함에 고개를 들지 못하는 세 명을 보고 있자니, 앞으로 우리 팀의 팀워크가 참 기대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