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8화
[오늘의 점메추 요정 도현이입니다!(너구리 이모티콘)
날이 점점 더워지고 있어요ㅠㅠ
이런 날엔 시원한 냉면 추천합니다!
팬분들 사랑해요♡
#크리드 #도현]
-허류ㅠㅠ도현이다ㅠㅠㅠㅠㅠ
-근데 차안인거 같은데 스케줄 가는중인가?
-오늘 점심은 냉면이다
-팬분들ㅋㅋㅋㅋㅋㅋ뭔가 귀엽다
┕신인인거 티나서 너무 귀여웤ㅋㅋㅋㅋ
-우리도 빨리 이름 지어줘ㅠㅠㅠㅠ
┕공식도 빨리 모집해라 무소속으로 살고싶지않아
┕무소속ㅋㅋㅋㅋㅋㅋㅋ
“우리도 빨리 팬덤명 생겼으면 좋겠다.”
인터뷰 스케줄을 가는 차 안에서 크리드 짹짹이에 글을 올리던 강도현이 나지막이 말했다.
“그러게. 팬덤명은 뭐가 될까?”
“우리가 직접 정한 이름이면 좋겠어.”
“그게 의미가 더 있긴 하지.”
“크리드랑 뭔가 연관되면서 좋은 이름이 뭐가 있을까…….”
가만히 듣던 지운이 형이 말했다.
“…우리 고민해야 할 이름이 많네?”
“우리 구호도 정해야 해요!”
“생각보다 정해야 할 게 많네.”
문득 티벡스의 팬덤명과 구호가 생각났다. 팬덤명은 꽤 괜찮았다. 회사에서는 ‘티벡스를 사랑하는 모임’으로 티사모를 하자는 희대의 개소리를 했지만, 지운이 형이 기지를 발휘했다. 티사모를 잃지 못하는 사장의 의견을 수렴하면서 사랑한다는 뜻을 가진 ‘티아모’를 팬덤명으로 하는 게 어떻겠냐고 제안했다. 사장은 곧장 오케이 했다. 내가 볼 땐 그 인간 귀가 어두워서 티사모로 들은 게 아닌가 의심이 되지만? 구호는 뭐였냐면…….
‘빌보드를 향해! 티벡스입니다!’
…그만 생각하자.
지금 생각해도 정말 구리다. 유행하거나, 뭔가 멋있어 보이는 것이 있으면 무조건 해 봐야 직성이 풀리는 사장의 눈에 들어온 것이 하필 빌보드였다. 빌보드 차트에서 한국 아이돌이 1위를 했다는 소식이 한창 이슈가 되던 때였다. 아니, 그렇다고 신인 아이돌 구호에 빌보드를 향해! 따위의 문구를 집어넣다니.
‘지금 생각해도 제정신이 아니야.’
아니나 다를까, 데뷔하자마자 구호로도 온갖 조롱을 당했다.
-전교 100등이 서울대 가겠다는거지?
┕서울대가 뭐임 저정도는 하버드짘ㅋㅋㅋㅋㅋㅋ
┕구호 누가 짠거냐?
┕ㅅㅂ...지운아 절대탈주해
-근데 ㅈㄴ웃긴건 쟤네들도 점점 앞부분 제대로 안함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빌!웅얼웅얼 티벡스입니다! 이러잖앜ㅋㅋㅋㅋㅋㅋㅋ
┕웅얼웅얼 티벡슼ㅋㅋㅋㅋㅋㅋㅋㅋㅋ
┕ㅅㅂ지운이는 투마월로 데뷔만 했어도 이미 빌보드인데ㅅㅂㅅㅂㅅㅂㅅㅂ
저 댓글은 아직도 기억한다. 덕분에 한동안 인터넷에서 ‘웅얼돌’로 불렸으니까. 급기야 멤버 중 하나는 자기가 이러려고 데뷔한 거냐며 억울해 죽겠다고 울면서 숙소를 이탈한 사건도 있었다.
‘걔 이름이 오재수, 아니 오재성이었지 아마? 뭐 하고 살려나… 어쨌든 티벡스가 되는 것보다는 더 좋은 인생을 살고 있지 않을까?’
“형.”
“…….”
“승빈이 형!”
“응?”
“다 도착했어요. 내려요!”
인터뷰가 진행되는 스튜디오로 걸어가는 길에 강도현이 물었다.
“뭘 그렇게 생각해?”
“뭐, 뭐가?”
“다들 팬덤명 뭐 할까, 구호 뭐 할까 얘기하는데 혼자 조용하길래.”
“나도 머리로 생각하고 있었지.”
“네가 머리로만 생각하는 성격은 아닌데?”
맞는 말이어서 반박도 못 했다. 멋쩍게 웃는 걸로 흐지부지 넘어갔다. 도착한 곳에는 연예부 기자와 카메라맨이 먼저 자리 잡고 있었다.
“반가워요. 스타 연예에서 나온 박승아 기자입니다.”
“저희가 아직 정식 구호가 없어서요. 크리드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어떻게 인사해야 할지 몰라서 멤버들이 갈팡질팡하는 사이 급하게 말을 지어냈다.
“우선 데뷔 축하해요.”
“감사합니다!”
인터뷰 분위기는 생각보다 화기애애했다. 아무래도 신인답지 않은 인기 때문이겠지. 보통 신인이고 첫 인터뷰라고 하면 일부러 기를 죽이려는 기자들이 있다. 티벡스 때도 대놓고 지운이 형의 인기에 묻혀 가려는 거 아니냐고 묻는 기자도 있었다. 그때야 아무 말도 못 하고 속으로만 삭혔지만, 연예계 짬이 차고 배우 활동을 시작하고 나서는 적당히 받아치면서 먹금하는 방법을 터득했다.
하지만 역시 어느 정도 자극적인 주제가 나온 건 어쩔 수 없었다. 럽스타그램 사건, VM즈와 김병대 등 프로그램이 끝나고 나서도 말이 많았던 일들에 대해서도 가감 없이 물어봤다.
“VM에서 데뷔 못 하는 게 아깝다고 생각은 안 해 봤어요?”
“투마월에 나온 순간부터 데뷔만을 목표로 했기 때문에 아쉽지 않습니다.”
“병대 군과의 케미가 유명했죠? VM즈가 깨지는 것에 많은 분들이 아쉬워하는 거 같던데.”
“하하, 병대와는 계속 연락하고 지내고 있으니 걱정 안 하셔도 됩니다.”
다행히 강도현도 맹한 놈은 아니었다. 둘이 서로 웃는 얼굴로 한 치의 양보도 없이 인터뷰가 오가는데, 창과 방패를 보는 기분이었다.
“첫 인터뷰였는데 제가 조금 공격적이었죠? 제가 신인분들 인터뷰는 자주 하지 않아서. 하하.”
딱 들어도 거짓말이다. 아마 신인만 전담으로 하는 기자일 것이다. 다행히 나를 포함한 일곱 명 모두 다른 방식으로 현명하게 대처했다. 박재봉이 조금 걱정이었지만, 아예 어려서 잘 모르겠다는 식으로 나가더라. 저 조그만 머릿속에 뭐가 들었는지 모르겠지만 확실히 똑똑한 녀석이었다.
선우 형과 윤빈 형도 시종일관 여유를 잃지 않고 솔직하게 답했다. 오히려 먼저 솔직하게 나오니 기자도 굳이 발톱을 세우지 않았다. 지운이 형도 공격적인 질문이 많았지만 차분하게 답변했다. 정유현은 뭐, 말할 것도 없이 깔끔했다.
“아닙니다. 너무 편안한 분위기였어요. 오히려 저희가 첫 인터뷰여서 어색한 부분이 많았을 텐데, 잘 부탁드립니다!”
스튜디오를 빠져나오고, 차에 올라타자마자 곳곳에서 한숨 소리와 앓는 소리가 들렸다.
“와… 나 기 빨렸어.”
“너무 긴장했나 봐요, 온몸이 아프네.”
“다들 수고 많았어. 다음은 A잡지사 화보 촬영인데 점심 먹고 조금 시간 남으니까 다들 잠 좀 자 둬.”
“네-”
역시 투마월의 인기만큼이나 데뷔 그룹에 대한 관심도도 엄청났다. 데뷔조가 결정되고 겨우 한 달 좀 안 됐는데 인터뷰에 화보 촬영까지 스케줄이 꽉 차 있다. 스케줄이 끝나면 데뷔곡 연습도 해야 했다. 말 그대로 몸이 열 개여도 부족한 수준이었다. 잠이 부족하다는 단점이 있지만 일단은 즐거웠다. 그래, 이게 바로 아이돌의 삶이지!
* * *
며칠간의 바쁜 스케줄을 마치고 다시 찾아온 주말, 숙소 거실에 7명이 다 모였다. 같은 숙소에 살고 있지만 생활 패턴이 제각각인 멤버들이 다 같이 거실에 모이기란 쉽지 않은 일이었다.
“다들 생각해 왔지?”
“네.”
그 어려움을 뚫고 우리가 모두 모인 이유는 바로 박재봉의 예명 때문이었다. 정신없이 또 일주일이 금방 지나간 거다.
여기서도 각기 다른 멤버들의 성향이 보였다. 정유현과 지운이 형은 이름과 뜻을 정리한 걸 종이에 프린트해 왔다. 그럼 다른 멤버들은? 나를 포함해서 모두 몸만 왔다. 이름을 말하는 입만 있으면 되는 거지, 뭐가 더 필요하겠어.
“잘 들어 보고 마음에 드는 거 있으면 얘기해.”
“네!”
강도현부터 준비한 이름을 꺼내려던 찰나, 박재봉이 손을 번쩍 들었다.
“그전에 저도 생각해 온 이름 있어요!”
“그래? 뭔데?”
“네, 알렉산더예요!”
“…….”
“음… 와, 멋있는 이름이네…….”
재봉의 폭탄 발언에 모두들 입을 다물지 못했다.
‘저놈의 알렉산더, 아직도 미련을 못 버렸네.’
“꼭 알렌산더여야 해? 네 글자는 부르기 힘들지 않을까?”
저 착하디착한 지운이 형 눈에도 알렉산더는 별로였는지 돌려 돌려 재봉이를 설득하려는 것 같았다.
“안 그래도 제가 또 준비했죠. 알렉산더의 애칭이 알렉스래요!”
“알렉스?”
“네! 그래서 예명은 알렉산더인데, 부를 때는 알렉스라고 부르는 거예요!”
어때요? 짱이죠? 진짜 멋있죠? 하고 말하는 것만 같은 저 초롱초롱한 눈망울. 얼른 분위기를 바꾸기 위해서 강도현을 쿡 찔렀다.
“악!”
“도현아, 왜 그래?”
“하하, 어서 빨리 이 멋진 이름을 공개하고 싶어서요.”
고작 이 정도 강도에 저렇게 아파하다니. 나약한 놈 같으니라고. 천연덕스럽게 말을 이어 간 강도현이 드디어 예명 후보를 공개했다.
“제가 준비한 이름은 바로 ‘본’입니다.”
“본? 외자네?”
“맞습니다. 한 글자로 임팩트도 있고, 우리가 파이널 때 했던 노래 제목이기도 하구요.”
“무엇보다도 재봉이 이름 마지막 글자가 ‘봉’이잖아요. 봉이랑 비슷한 어감이기도 해서 정해 봤어요. 우리 재‘봉’이가 아이돌이 되기 위해 태어났으니까.”
생각보다 정상적인 이름이라 다들 놀라 보였다. 강도현이랑 선우 형은 뭔가 장난스러운 예명을 가져올 것 같았는데 말이다.
“오, 좋은데?”
“뭔가 억지인 듯싶으면서도 그럴싸한 의미를 담고 있네.”
“와, 문승빈, 벌써 견제 시작하는 거야?”
자신감에 가득 찬 강도현의 발표를 시작으로 다들 준비한 이름을 공개했다. 다들 고심한 흔적이 보일 정도로 꽤 괜찮은 후보들이었다.
하지만 예명을 향한 박재봉의 집착은 생각보다 더 강력했다. 다른 멤버들이 가져온 예명 후보를 들으면서도 자신이 제안한 알렉산더만 머릿속에 가득한 듯했다. 어떤 이름을 들어도 그냥 고개를 절레절레 저을 뿐이었다.
“그럼 지금까지 나왔던 후보가 본, 제이크, 제이, 애셔, 더블비.”
“진짜 많네.”
그렇게 5개의 후보가 탈락되고, 마지막은 정유현이었다. 사실 모두의 합의하에 일부러 정유현을 마지막에 배치하기도 했다. 뭔가 다른 형들 말은 안 들어도 정유현 말은 들을 것 같았으니까.
“유현이 형은 어떤 이름이 좋을 거 같아요?”
“나는 이든.”
“이든이요?”
“어, 깔끔하게 딱 두 글자고, 이 이름에 ‘강인한’이라는 뜻이 있다고 하더라고.”
“재봉이가 나이로는 막내지만, 어쩌면 정신적으로는 우리 중 제일 강한 것 같아서-”
‘그건 아마 당신이라고 생각합니다만.’
“이든 어때, 재봉아? 재봉이랑 딱 맞는 이름인 거 같은데.”
“형… 저 진짜 감동이에요!”
“감동까지?”
“저의 이 강하고 멋진 모습을 알아봐 주는 건 형밖에 없네요.”
박재봉은 지금 이든이라는 이름 그 자체보다 뜻에 꽂힌 게 틀림없었다. 거기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정유현이 자기를 가장 강하다고 말해 주다니, 그거에 더 감격한 것 같아 보였다. 정말 다시 한번 느끼지만 애는 애다. 이제 귀엽기보다는 멋지고 싶다던 말도 생각났다. 그냥 얘는 정말 단순히 멋져 보이고 싶어서 예명을 가지고 싶은 거였구나…….
‘그래도 이든이 어디야.’
박 알렉산더를 맞이할 뻔했던 우리로서는 이든? 감지덕지였다.
“그럼 박이든 씨. 이제 만족하시나요?”
“형, 그게 아니죠.”
“왜? 맞잖아 박이든.”
그새 성까지 붙여서 박이든 박이든 거리는 선우 형을 보고 정색하는 재봉이었다.
“영어는 성이 뒤에 오는 거 몰라요? 이든 박이라고요.”
“아… 그게 문제인 거였어?”
정말 이 깜찍한 중딩의 사고방식을 언제쯤 이해할 수 있으려나. 머리가 다시 지끈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