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5화
리얼리티 촬영이 끝나고 나서야 겨우 럽스타그램 해명과 관련된 팬덤 반응을 확인했다. 다행이면서도 찜찜했다.
-이제 앞으로 말도 안되는 일들로 어그로 ㅈㄴ꼬일텐데 일단 그룹이 잘되는게 중요하지;;
-ㅇㅇ...다 좋아서 품는거아님 그룹이 살아야 내새끼가 살아서 품는거지
-연검정화 하러가자
-한놈이 X된다고 내새끼가 올라가는게 아니라 같이 X되는거니까;;
럽스타그램 해프닝 덕분에 팬덤이 결집된 거 같았지만, 이런 생각도 들었다.
‘나는 이용당한 건가?’
어쨌든 좋은 게 좋은 거라는 마음으로 차가운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파이널이 끝나고 처음으로 얻은 휴식 시간이었다. 주어진 10일을 어떻게 보낼까 계획하던 중,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이 누나와의 시간 보내기였다. 말해 놓고 나도 낯간지러웠는데 누나도 처음에는 의심이 가득했다.
[누나, 나랑 놀러 갈래?]
[네가? 나랑? 왜?]
누나도 어색했는지 메시지를 확인하고 20분이 지나고 나서야 답장이 왔다.
[아니, 누나 오랜만에 한국 온 거기도 하고, 엄마 아빠한테 사진도 보내고 하게.]
[오;; 효자네 효자.]
얼마만의 여유인가 싶던 찰나, 누나의 목소리가 들렸다.
“근데 이렇게 나와 있어도 돼? 나 너랑 또 열애설 나기 싫은데-”
“아, 진짜 징그럽게.”
“징그러워? 이 자식이 누나한테 못 하는 말이 없어.”
휴가를 받고 먼저 누나를 만나기로 한 이유는 별거 없었다. 한국 와서 지금까지 챙김만 받았지 제대로 뭔가 해 준 게 없었다. 사실 난 회귀 전에도 지금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무뚝뚝했고, 가족도 그런 나를 더 편하게 생각할 것이라고 여겨 왔다.
티벡스 시절에는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내 사정을 알리고 싶지 않아서 더 연락을 하지 않았다. 연락을 자주 하지 않아 죄송하다고 할 때도 부모님은 늘 ‘무소식이 희소식’이라고 답하셨다. 하긴, 해체했다는 소식을 전할 바엔 아무 일도 없는 게 나은 일이긴 했다.
배우가 되고 나서는 눈코 뜰 새도 없이 바쁜 스케줄에 가족과의 연락은 항상 뒷전이었다. 회귀 직전에는 이 문제로 누나와 크게 다투기도 했다. 그날도 새벽까지 투마월 촬영을 마치고 돌아온 날이었다.
-아무리 그래도 엄마 생일은 기억해야지.
“엄마 그런 거 신경 안 쓰시잖아, 나 이번에 프로그램 새로 들어가서 정신이 없었어.”
-정말 엄마가 신경을 안 쓴다고 생각해?
“왜 갑자기 화목한 가족인 척이야?”
-…뭐?
“지금까지 엄마 신념대로 방치하고 사셨으면서 이러는 거 솔직히 웃겨.”
-너 말 다 했냐?
“…나 촬영 들어가, 끊을게.”
마지막 통화는 불만에 거짓말뿐이었다. 돌이켜보면 말 같지도 않은 소리였다. 매년 내 생일마다 부모님은 생일 축하 메시지와 함께 선물을 보내 주셨으니까. 머나먼 미국에서 보낸 선물이지만, 언제나 내 생일 날짜에 딱 맞춰 도착했다. 그게 얼마나 큰 애정인지를 미처 몰랐지. 그땐 후회할 겨를도 없었고, 누나와 갈등을 풀고 엄마에게 사과할 기회도 없었다.
지운이 형을 잃을 뻔했다가 다시 기회를 얻게 되니 주변 사람들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되었다. 잃고 나서 후회하는 게 얼마나 끔찍한지를 이젠 누구보다 잘 아니까. 그래서 지금이라도 살가운 동생이 되려고 했으나…….
“너, 혹시 이제 나한테도 이미지 관리하는 거냐?”
“뭐?”
진지한 얼굴로 황당한 질문을 하니 더 어이가 없었다. 아무리 이미지 관리가 중요한 게 연예인이라지만 가족한테까지 그럴 리가 없지 않은가.
“야, 설마 내가 네가 미운 짓한다고 막 과거 사진 풀고, 험담할 거라고 생각하는 건 아니지?”
‘충분히 가능한 일이긴 하지……?’
“혹시라도 그러는 거면 진짜… X랄하지 말고 평소대로 해라?”
“됐다, 됐어. 동생 노릇 좀 하려고 했는데!”
“풉! 푸흡, 뭐? 동생 노릇? 푸하하!”
“조용히 좀 해, 다 쳐다보잖아.”
마스크를 올리고 모자를 눌러쓰는 나를 보더니 누나가 입을 틀어막고 웃음을 참았다. 한참을 배를 쥐고 웃던 누나가 말했다.
“아, 미치겠다. 이제 이런 것도 신경 쓰는 사람이 된 거야? 우리 동생, 완전 연예인 다 됐네.”
“사람 몰리면 곤란하잖아.”
“와… 문승빈 때문에 사람들이 몰린다니?”
하긴, 대한민국에서 가장 핫한 오디션 프로그램 1위를 했다고 한들 천하의 문해빈한테는 그저 동생 문승빈일 뿐인데 뭐가 그리 특별하겠는가?
“네가 아무리 대한민국 최고 아이돌이 되고, 세계적인 스타가 된다고 한들 이 누나 눈에는 그냥 문승빈일 뿐이에요. 그런 의미로 누나 사진 하나 찍어 줄래?”
“얘기가 왜 그렇게 흘러가는데?”
“그야 내가 지금 사진을 찍고 싶으니까?”
“…핸드폰 줘 봐.”
갑작스러운 사진 요청은 청천벽력과 같았다. 누나의 사진을 찍어 주는 것만큼 어려운 미션이 없기 때문이다.
“수평 잘 맞추고, 머리 괜찮아?”
“어, 예뻐.”
“그건 알아.”
“…….”
“찍고 있는 거야?”
“응, 무음으로 해서 안 들리는 거야.”
“너는 그냥 막 찍어. 내가 알아서 할 거니까.”
막 찍으라는 저 말에는 사실 무시무시한 뜻이 담겨 있다. 빠르지만 정확하고 완벽하게 찍어서 최대한 효율 있게 좋은 사진을 뽑아내라- 는 의미다.
“여기.”
핸드폰을 내밀고 이제 검사의 시간이다. 하필이면 누나가 사진작가라니. 진짜 모든 경우의 수 중 가장 최악이었다.
“음~ 남는 게 하나도 없네?”
“그럴 리가?”
“응, 동생아 누나 머리 상태가 거지면 얘기를 해 줘야지. 여기 뻗친 머리가 다 나왔네.”
차라리 화를 냈으면 좋겠다.
“넌 정말 한결같다. 아이돌이면 모름지기 사진은 기본인데, 나중에 팬들한테 욕먹는 거 아니야? 셀카 못 찍는 아이돌이라고.”
“셀카는 잘 찍으니까 걱정 마… 악!”
“지 셀카는 잘 찍고, 누나 사진은 아주… 예뻐 죽겠네.”
누나에게 양 볼이 잡혔다. 사정없이 잡아 늘리는 탓에 볼이 빨갛게 부었다. 그 모습을 보고 찐빵이라며 사진을 찍는데, 그렇게 사악해 보일 수 없었다.
그럼 그렇지. 다정한 남매는 애초에 꿈도 꾸지 말았어야 했다.
* * *
아니나 다를까 저녁이 되자 하나둘 목격담이 올라왔다. 나름 중무장했다고 생각했지만, 역시 알아본 사람들이 많았나 보다.
[문승빈 목격담]
오늘 00카페에서 문승빈이랑 어떤 여자 같이 있는 거 봄;; 되게 친해보이던데?
-?
-데뷔도 안한놈잌ㅋㅋㅋㅋㅋㅋ
-발랑까졌넼ㅋㅋㅋ
-문승빈은 왜이렇게 여자가 많냐?
┕열받게 뭐라는거야
-저거만 보고 문승빈인걸 어떻게 알아? 신기하다;;
-누나야 미친놈들아;;
┕아 이번에도 누나임?
┕사격중지;;문해빈 작가님이다
-ㅠㅠㅠ이쯤되면 승빈이가 누나 그만만났으면 좋겠으뮤ㅠㅠ
┕뭐라는거야 이건;;
┕ㅈㄴ관종같잖아
┕현생 좀 살아라 인간아
[오늘 00카페에서 승빈이랑 승빈이 누나 봄. 승빈이 벙거지에 마스크까지 중무장했음ㅋㅋㅋㅋㅋㅋㅋ청바지에 맨투맨티 입고 있었는데 딱 봐도 연예인이더라;; 가린다고 가려질 아우라가 아니었음ㅋㅋㅋㅋㅋ 근데 승빈이... 누나한테 혼나고 있던데?]
-?
-뭘 했길래 혼난거짘ㅋㅋㅋㅋㅋ
-여기 목격담 보면 사진찍어주다가 혼났댘ㅋㅋㅋ (링크)
┕사진이면 왜 혼났을지 예상가넼ㅋㅋㅋㅋㅋ
[오늘 00카페에서 문승빈 봤는데 누나한테 맞던데?]
작가님 사진 몇장 찍어주고 확인받더니 볼 꼬집히고 등짝 맞는거봄…
둘이 그냥 현실남매 사이임;; 둘 사이에 어떠한 애틋함도 안 느껴졌음ㅋㅋㅋㅋㅋㅋ걍 ㅈㄴ 치고받는 남매? 한시도 안 쉬고 투닥거려서 나랑 지인은 자리 옮겨야하나 할 정도였음ㅋㅋㅋㅋㅋ(농담임ㅇㅇ)
-아니 무슨 후기글마다 혼나고 맞고 볼잡히곸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ㅈㄴ비주얼만 비현실적이지 나랑 내 남혈육이랑 똑같잖아;;
┕동생놈 얼굴에 손을 어떻게대냐
┕승빈이 얼굴이면 쌉가능이짘ㅋㅋㅋㅋㅋ
-승빈이 왜 혼났엌ㅋㅋㅋㅋ큐ㅠㅠㅠ큐ㅠ큨ㅋㅋㅋ
┕승빈이가 작가님 사진 찍어줬는데 잘못찍었나봨ㅋㅋㅋㅋㅋ
┕승빈이 셀카는 잘찍던뎈큐ㅠㅠㅠ
┕....진심임?? 진짜 찐사랑이다......
-사진 못찍어서 혼나는 문승빈이라닠ㅋㅋㅋㅋㅈㄴ귀엽닼ㅋㅋㅋㅋ
┕하필 누나가 사진작가야ㅠㅠㅠ그것도 ㅈㄴ유명한
-아무리 가족이어도 때리는건 좀;;
┕넌 대체 어디서부터 문제냐?;;
“확실히 투마월이 인기가 많았구나.”
중간중간 핀트를 잃은 댓글들을 보면서 앞으로 더 조심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저런 건 양반이었다. 심지어 이런 영상도 올라왔으니까.
[크리드 문승빈, 터질게 터졌다.]
크리드의 인기 멤버 문승빈, 데뷔도 전에 터질 게 터졌습니다. 럽스타그램 논란이 잠잠해지기도 전에, 이번엔 카페에서 소란을 피운 건데요. 한 게시글 작성자는 문승빈과 친누나가 시도 때도 없이 떠들고, 공공장소 매너 따위는 신경도 안 쓰는 모습을 보였다는데요. (누나분도 보통 관종이 아니네요;;) 결국 자리를 옮겼다고 하네요. 아직 데뷔도 안한 신인이 이렇게 소란을 피우고 다녀도 되는 걸까요? 이상, 까튜브였습니다.
-저런 인성덜된 애가 아이돌 한다고 설치는거임?
-문승빈 데뷔하면 얼마나 더 큰걸 터뜨리고 다닐지 기대됨ㅋㅋㅋㅋㅋㅋ
┕ㅅㅂ쟤 때문에 또 우리애도 싸잡혀서 욕먹겠네
-원글이랑 다른데? 채널닉값하네;;
┕뭐가 다른데?
┕원글에는 소란피운다는 말도 없었고, 자리 옮겼다는 말도 없음;;
┕투닥거리고 때렸다잖아;;그럼 그게 소란이지 뭐임?
┕니네 카페에서 친구들끼리 장난안치냐? 아 친구가 없구나ㅠ
-근데 이건 승빈이가 조심해야할 부분이 맞아ㅠㅠ앞으로 어그로들 엄청 꼬일텐데 너무 부주의했음ㅠㅠ
┕이런애들 때문에 아이돌들이 정병오는거지
┕정병이라는 말 쓰지마세요.
┕아;;네;;
“와…….”
이런 방향으로까지 창조 논란을 만들 것이라고는 생각도 못 했다. 말도 안 되는 논리였지만, 동조하는 이들이 꽤 많았고 아이돌 억까 관련해서는 가장 규모가 큰 채널이었기 때문에 조회 수도 빠르게 오르고 있었다.
인기 아이돌의 삶은 나도 처음 겪어 봐서 어디까지 조심해야 할지에 대한 정립도 필요했다. 아무리 경계가 사라지는 추세라고 한들 확실히 배우 팬덤과 아이돌 팬덤의 차이가 있으니까.
사실 데뷔가 결정되고 나서 이게 가장 걱정이었다. 프로그램의 인기만 봐도 크리드는 못해도 중박은 치는 그룹일 것이다. 데뷔를 준비하는 기간 동안 팬덤이 흩어지지 않는 이상 현재 남돌 중에서는 가장 화력이 강한 그룹이 되는 건 시간문제였다. 서바이벌 동안은 지난 연습생과 아이돌 경험을 통해 해냈지만, 크리드가 되고 나서부터는 문제 해결에 필요한 데이터가 부족했다.
‘앞으로는 더 정신 잡고 활동해야겠다.’
끝이 아니라 이제 진짜 시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