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3화
‘눈부셔 New World’
아침부터 들려오는 익숙한 기상 송에 모두들 벌떡 일어났다. 눈도 제대로 못 뜨고 본능적으로 투마월 안무를 하던 중, 정신이 번뜩 들었다.
“근데… 이게 왜 여기서 나와?”
순간 등골이 오싹했다. 회귀하고 눈 떴는데 별무늬 벽지를 봤던 날이 떠올랐다. 설마 투마월 초반으로 회귀라도 한 건가? 말도 안 돼, 그 개고생을 또 하라고?
‘이런 X발…….’
절망감에 머리를 쥐고 있는데, 그런 나를 구원한 건 정유현의 목소리였다.
“뭐 하냐?”
“응?”
그리고 주변을 둘러보니 크리드 숙소였다. 그리고 옆에는 까치집도 정리하지 못하고 시그널 송을 추는 멤버들이 보였다.
‘그럼 그렇지. 또 회귀시키면 그건 진짜 악마야, 악마.’
[오늘의 기상 미션! 집안 곳곳에 숨겨져 있는 보물을 찾아 주세요!]
노래가 끝나더니 티비 화면에 글씨가 떠올랐다. ‘미션’이라는 단어에 모두 눈이 커졌다. 투마월은 끝났지만 미션 지옥은 여전했다.
“보물?”
“아니, 보물이 뭔지는 알려 줘야지!”
“찾았다!”
“벌써?”
모두들 보물이 뭔지 토론하는 와중에 선우 형이 벌써 보물을 찾았다. 역시 머리보다 몸이 앞서는 형이다.
[톰]
“톰?”
“이게 뭐야?”
‘제리를 찾으면 팀이 되나 보네. 아무래도 룸메이트 정하기 미션이겠지?’
누가 ‘제리’를 찾을지는 모르겠지만, ‘톰’이라니… 참 자기 같은 걸 찾았다. 한편으로는 제리를 찾게 된다면 모른 척하거나, 다른 멤버에게 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 주방 쪽에서 누군가의 외침이 들렸다.
“나도 찾았다! 흥부?”
윤빈 형이었다. ‘흥부’를 잘 모르는 듯 고개를 갸웃하고 있었다.
“흥부가 뭐야?”
“흥부와 놀부라고 형제 이야기인데, 흥부가 동생이야. 착한 동생.”
“그럼 놀부는?”
“흥부를 괴롭히는 못된…….”
“어? 나도 찾았다! 흥부 누구예요?”
놀부의 주인은 박재봉이었다. 윤빈 형은 잠시 생각하더니 배를 쥐고 웃었다.
“재봉이가 놀부? 그럼 내 형인 거야?”
“어? 형이 흥부예요? 그럼 내가 형이네~”
“맞아. 흥부 괴롭히는 못된 형.”
아마도 놀부가 흥부보다 형이라는 것만 말하려고 했던 것 같은데, 어쩌다 보니 내가 박재봉의 계획을 망쳤다.
“뭐야, 누가 알려 줬어요?”
나는 조용히 자리를 벗어났다. 거실과 주방에서 나왔다면 분명 화장실이나 옷장에 숨겨 놨을 것이다.
“찾았다.”
역시나 수건 서랍 속에 있었다. 펼쳐 보니 뜻밖의 이름이 있었다.
‘노이’
“응?”
내가 아는 그 노이? 안 그래도 해당 캐릭터 빵이 인기몰이를 하던 때였는데 의식하고 쓴 건가 의심이 갔다. 그리고 다음으로 든 생각은…….
‘아씨, 3인실이네.’
화장실 문을 닫고 나오는데, 더 환장인 상황을 목격했다. 큰 방 침대를 뒤지던 강도현이 외쳤다.
“노사?”
“응?”
강도현과 룸메라니, 벌써부터 고생길이 눈에 훤했다. 강도현이 깔끔하지 못하냐고? 아니다. 나름대로 정리도 잘하고, 깔끔한 성격이다. 그럼 잠버릇이 고약한가? 그것도 아니다. 사실 잘 모르겠다. 왜냐? 내가 잘 때 강도현은 말똥하고, 내가 돌아다닐 때 강도현은 잠들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우리 둘의 수면 패턴은 남극과 북극만큼이나 정반대였다.
서로 각자 다른 공간에서 튀어나와 종이를 붙잡고 눈을 마주친 광경이란. 둘 다 거의 동시에 정색했다. 그러곤 카메라가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또 거의 동시에 표정을 풀었다. 그것도 아주 인위적이게.
그런 우리 사이로 지운이 형이 조용히 나타났다.
“나도 찾았어. 진짜 구석구석 잘 숨겨 놓으셨더라.”
“…….”
“너희 왜 그러고 서 있어? 뭐 나왔는데?”
“난… 노이.”
“난 노사.”
“어? 난 다옹이!”
“풉!”
일찌감치 종이를 찾아서 여유롭게 과자를 먹던 선우 형이 만화의 한 장면을 연상시키는 우리 셋의 모양새에 키득거렸다.
“아, 어떻게 딱 이 셋이 같은 방이 된 거냐?”
“넌 누구랑 됐는데?”
“아직 제리는 안 나온 거 같은데?”
여유만만한 선우 형의 모습에 문득 남은 사람이 누구인가 생각하다가, 절로 헛웃음이 나왔다.
“왜 웃어?”
“제리가 누구인지 알 것 같아서요.”
때마침 윤빈 형과 박재봉이 방에서 나왔고, 다섯 명의 얼굴을 확인하던 선우 형이 나지막이 말했다.
“아, 망했다.”
나머지 멤버들도 비슷한 반응이었다.
“와…….”
“유현이 형, 고생 좀 하겠네요.”
“야, 내 걱정은 왜 안 해 줘?”
“그야…….”
박재봉이 뒷말을 잇지 않았지만 모두 공감했다. 결벽증에 가까울 정도로 깔끔함을 중시하는 정유현과 침대 위에 매점을 만들어 놓는 선우 형의 조합이라니.
“아, 너냐?”
정유현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허리에 손을 짚고 신경질적으로 머리를 쓸어 넘기는데, 쓸데없는 생각이 들었다.
‘와, 저거 분명 보정 빡세게 넣고 슬로우 모션 걸어서 예고편에 쓰일 듯?’
우여곡절 끝에 룸메이트가 완성됐고, 방은 가위바위보로 정했다. 어차피 3인실은 정해져서 남은 두 팀의 대결이었지만.
“무조건 큰 방으로 가야 하니까 가위바위보 꼭 이겨야 해요!”
“알았어. 노력해 볼게.”
제법 훈훈한 박재봉 팀과 달리 선우 형 팀은 살벌했다.
“이것도 지면 넌 진짜…….”
“내가 이기면 인테리어는 제 마음대로 할 거예요.”
“차라리 내가 나가고 말지.”
“그러다 형이 지면 제 마음대로 하는 걸로?”
선우 형의 도발에 정유현은 피식 웃더니 호기롭게 박재봉 앞에 섰다. 그리고 2분 뒤, 정유현은 죽상이 되어 돌아왔고 선우 형은 해탈한 웃음을 지었다.
“하하, 인테리어에 손대기만 해요.”
선우 형의 취향이 범벅인 공간에 정유현이 있는 모습은 상상이 안 됐다. 그보다도 우리가 더 문제였다. 일단 셋이 한 방에 들어왔는데 알 수 없는 어색함이 있었다. 아니, 분명 이 둘이랑 룸메이트는 한 번씩 해 봤는데, 셋이 한꺼번에 룸메이트가 되는 것은 또 다른 문제였다.
놀랍게도 그 정적을 깬 것은 지운이 형이었다.
“앞으로 잘 지내 보자!”
“좋아요.”
“네!”
* * *
이 난리가 났으니 그 새벽에 럽스타가 터진 줄도 몰랐지. 리얼함을 강조한다고 매니저 포함 기존 스텝들은 이미 퇴근시킨 씨넷 제작진들이었다. 매니저 형만 같이 있었어도 바로 알았을 텐데 말이다.
어쨌거나 우여곡절 끝에 럽스타그램 일을 해결하고 다시 침대 정하기를 시작했다. 아직도 깐족거리는 강도현을 침대 밑으로 밀어 넣고 싶었다.
“죄송해요. 저 때문에 정신없었죠.”
“아니야, 일 잘 해결돼서 다행이지-”
“빨리 정하자. 게임 할까, 이번에도?”
“게임 너무 많이 했다. 뽑기나 하자.”
조작을 막기 위해 박재봉에게 뽑기 제작을 부탁했다. 상자에 꽁꽁 숨겨진 종이를 선택하는 시간이 왔고, 지운이 형부터 상자를 골랐다. 셋 다 고르고 동시에 공개하기로 했다.
“하나, 둘, 셋!”
“오…….”
우리 셋은 고개를 돌리고 있었고, 나머지 넷이 종이를 확인했다. 다들 알 수 없는 표정이었다.
‘뭐지?’
궁금한 와중에 지운이 형이 종이를 확인했다.
[1인 침대]
‘그럼 강도현이랑 내가 2층 침대라는 건데…….’
서로를 마주 봤고, 바로 서로의 종이를 확인할 수 있었다.
[1층 침대]
[2층 침대]
“아…….”
순간 강도현의 얼굴이 굳었고, 내 얼굴엔 웃음이 만개했다. 층간 소음이 뭔지 열과 성의를 다해 보여 주마. 벌써부터 어떤 방법으로 강도현의 꿀잠을 방해할까 즐거워졌다.
또 1층이 안 좋은 이유가 있었다. 1층과 2층 침대의 거리가 꽤 가까워서 침대에 앉거나 기대기 애매하다는 것이다. 아마 일주일만 지내도 사이 공간이 5cm만 높았어도 삶의 질이 달라질 텐데- 하는 생각이 절로 들 것이다.
룸메와 방, 침대까지 정하고 나서 본격적으로 숙소 규칙을 정했다.
[크리드 멤버들아~ 숙소에선 꼭 지켜야 하는 거 말해 줄게!]
‘인터넷 좀 적당히 하지…….’
제작진이 준비한 화이트보드가 들어왔고, 정유현이 보드 마카를 들었다.
“먼저 기본적으로 들어가야 할 규칙부터 쓸게.”
1. 개인 프라이버시 존중하기
2. 숙소에 외부인 출입 시 공지하기
3. 청소 당번 정하기
.
.
.
10. 쓰레기는 분리수거해서 버리기
“형, 너무 많은 거 아니에요?”
“기본적인 거라면서 10개가 넘어가는데?”
멤버들의 반발에 정유현은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되물었다.
“아니, 이런 건 너무 당연한 거 아니야?”
선우 형은 뭉크의 절규인 양 외쳤다.
“저기에 개별적으로 정한 규칙까지 넣으면 여기가 숙소인지 훈련소인지도 모르겠어요.”
“어차피 저거 다 못 지켜요.”
거센 반발에도 정유현은 조목조목 하나씩 있어야 할 이유를 설명했다. 처음엔 듣는 둥 마는 둥 하던 선우 형도 서서히 말려들어 가고 있었다.
“이제 왜 넣었는지 이해되지?”
“…네.”
“그래, 이제 각자 원하는 규칙 얘기해 봐.”
박재봉이 먼저 손을 들었다. 정유현이 펜을 건넸고, 박재봉은 신이 나서 보드 위로 써 내려갔다.
“일주일에 한 번씩 야식 파티 하기!”
“아, 재봉아…….”
강도현은 못마땅한 반응이었다.
“뭐, 왜, 왜요?”
“아니 일주일에 한 번이 뭐야. 적어도 세 번은 해야지!”
“아, 뭐예요!”
정유현은 박재봉의 손에서 펜을 가져다가 문장을 추가했다.
11. 일주일에 한 번씩 야식 파티 하기! (단, 활동기에는 2주에 한 번)
“헐…….”
정유현이 추가한 문장에 모두들 헉 소리가 나왔지만 금세 수긍했다.
“그래… 우린 아이돌이니까…….”
“형, 도현이 거의 우는데요.”
“울든가.”
강도현은 낙심하며 거의 소파 밑으로 흘러내려 가고 있었다.
“내 차례인가?”
윤빈 형이 일어나서 화이트보드에 규칙을 적었다.
12. 일주일에 두 번은 같이 운동하기!
“운동?”
“응, 공원에서 농구나 축구하는 거야.”
“재밌겠다!”
숙소 들어와서 박재봉은 모든 게 다 신나 보였다. 화이트보드를 가만히 보던 정유현이 말을 더했다.
12. 일주일에 두 번은 같이 운동하기! (단, 사람들이 많을 경우 헬스장으로 장소 대체하기.)
“오…….”
역시 철저하다. 정유현도 아이돌 2회차인가 의심이 들 정도이다. 어떤 부분에선 나보다 더 아이돌 생활에 익숙해 보이니까.
“그럼 나는 이거.”
이번에는 지운이 형이 나갔다.
13. 일주일에 한 번 단체 회의하기.
“일주일에 한 번 정도는 서로 대화 나누고, 격려하는 시간 가지면 좋을 거 같아서.”
“단체 생활에 꼭 필요한 거 같아요.”
정유현도 이번엔 별말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나마 지운이가 괜찮은 규칙 가져왔네.”
“제 꺼도 마음에 들걸요?”
강도현의 도발에 정유현의 표정은 안 봐도 뻔하다고 말하는 듯했다. 강도현이 규칙을 슥슥 써 내려갔고, 정유현은 바람 빠진 웃음소리를 내었다. 나도 어이가 없어 웃음이 나오면서도 참 강도현답다는 생각이 들었다.
14. 일주일 중 하루는 규칙 없이 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