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1화
-ㅁㅊ
-찐이야?
-와...
-ㅅㅂ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내가 파이널전에 터트리라고했잖아 ㅅㅂ아
-승빈이 간 ㅈㄴ크넼ㅋㅋㅋㅋㅋㅋ
-ㅅㅂ이거 사실이면 탈퇴해 걍
-정식데뷔도 하기전에 연애돌 이미지박히고 망했네
-남 비계터는거 ㅈㄴ음침해
“아 대가리 아파…….”
이전의 최애였다면 가차 없이 탈덕했겠지만, 승빈이를 믿고 싶어졌다. 이렇게 조심성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에 자신을 실망시키지 않길 바라는 것도 있었다.
“몰라, 일단 마시고 잘래. 내일 되면 뭐든 결정 나겠지.”
“그래, 일단 오늘은 즐기자.”
“먹고 뒤져, 씨X.”
말은 그렇게 했지만 새벽까지 뜬눈으로 지샜다. 센터로 데뷔가 확정되면서 축제였던 팬덤 분위기는 순식간에 찬물을 끼얹은 듯 얼어붙었다.
공개된 계정에서는 다들 말을 아끼거나 응원의 말을 했지만, 다들 비공개 계정에서는 사이버 담배를 날리고 있었다.
* * *
파이널 생방송이 끝난 지 반나절도 채 지나지 않았는데 데뷔조 계정이 만들어지고 에이앱 라이브까지 현실감이 없었다. 게다가 바로 시작된 데뷔 리얼리티까지 정신이 없어서 핸드폰은 확인도 못 했는데, 잠시 쉬는 시간에 보니 이곳저곳에서 연락이 와 있었다. 이게 뭐지?
[이거 진짜야?]
[형, 괜찮아요?]
[승빈아, 메시지 확인했으면 연락 줘.]
데뷔조 결정 나자마자 소개받은 매니저 형한테까지 연락이 올 정도라니, 불안함이 밀려왔다. 방을 나서니 선우 형이 뭐 마려운 강아지처럼 우리 방 앞을 서성이고 있었다. 이 형, 분명 알고 있는 게 분명하다. 내가 묻기도 전에 제 발 저려서 먼저 말을 꺼내는 걸 보니.
“그게, 어제 파이널 끝나서 말 안 하려고 했지.”
“무슨 일인데요?”
“이거…….”
데뷔가하고싶니? @Giman_stop
파이널에 여친 초대하더니 비하인드에서도 티를 못내서 안달이 났구나^^
조용히 넘어가려고 했는데 끝까지 실망시키네
문승빈 여친 엔스타 비계 사진 풉니다^^
#문승빈#크리드#크친소#투마월#투마월2#강도현#차지운
선우 형이 내민 화면에는 짹짹이 게시글 하나가 올라와 있었다. 파이널 전날 뜬 알계는 나도 알고 있었는데 단순한 어그로라고 생각했다. 배우로 막 성공하려던 무렵에도 아이돌 출신이었던 나에 대한 럽스타그램 알계가 파였으니까. 근데 이번에는 뭔가 반응이 달랐다. 알계만 파인 게 아니라 관련 기사까지 쏟아졌다.
[크리드 센터 문승빈, 일반인 여성과 연애 중?]
[성난 팬심… 아이돌 연애는 기만인가?]
[To My World 시즌2, 데뷔조의 미래는?]
‘엔스타 비계?’
금시초문이었다. 엔스타그램은 회귀 전에 배우 활동을 하면서 난생처음 만들었다. 그조차도 소속사 오피셜 계정이어서 내가 관리하지도 않았다. 그런데 비계라니? 일단 올라온 사진을 확인했고, 보자마자 헛웃음이 나왔다.
“허… 이게 무슨.”
“아니지?”
“당연히 아니죠! 그것보다 큰일이네.”
“왜?”
“이거 저희 누나 눈에 들어가면 저 완전 죽어요.”
“누나?”
선우 형은 그제야 파이널 녹화를 마치고 누나와 인사를 나눴던 기억을 떠올렸다. 그리고 알계의 사진을 보더니 배를 잡고 웃기 시작했다.
“진짜네? 와…….”
나도 모르는 누나의 비계를 털다니, 무서운 세상이었다. 그때 타이밍도 절묘하게 탁자 위 핸드폰 진동이 울리기 시작했고, 화면에 뜬 이름에 이마를 짚었다.
[누나]
“나는 나갈게.”
“네, 그게 좋겠어요.”
선우 형이 자리를 비켜줬고, 전화를 받았다.
-야!!
“아, 귀 아파.”
-X발, 이거 뭐냐?
“일단 진정 좀.”
-아니, 내가 너랑 뭐? 일반인 여자 친구?
“아니, 그러니까 왜 엔스타에 말도 없이 사진을 올려?”
-지금 내 탓 하는 거임? 죽을래?
듣자 하니 누나가 비계에 사진을 올린 이유는 부모님 때문이었다. 평소에도 간간이 연락만 할 뿐 사진을 보내거나 하는 살가운 타입이 아니었다. 그렇다 보니 가끔 누나와 만나서 찍거나 찍힌 사진을 누나가 부모님과 맞팔 상태인 비계에 올렸던 거였다. 따지고 보면 내 잘못이었네.
“기다려 봐, 누나라고 해명할 거니까.”
-에휴, 이렇게 된 이상 그냥 내가 공개할게. 아, 근데 공계로 전환하면 귀찮은데-
“이번만 부탁할게.”
-너, 데뷔해서 이번만 봐주는 거다?
“어, 땡큐.”
-야, 근데 왜 이렇게 웃기지? 너랑 나랑 진짜 안 닮았나 봄.
“그야…….”
-응, 맞아. 내가 훨씬 더 낫지.
역시 우리 남매에게 열 마디 이상은 사치였다. 급하게 전화를 끊고 매니저 형에게 연락했다.
-승빈아, 이거 아니지?
“네, 당연하죠. 저희 누나예요.”
-누나?
“네, 친누나가 엔스타 비계에 올린 사진이더라고요. 곧 해명 글 올릴 겁니다.”
-그럼 관련해서 우리도 해명 기사 올려야겠네.
“네, 파이널 끝나자마자 죄송합니다.”
정말 아찔했다. 안 그래도 내가 센터가 되면서 강도현이나 김병대 팬덤에서도 공격을 받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논란을 빨리 해명하지 않으면 걷잡을 수 없이 커지고, 이미지에도 큰 타격이 올 것이 뻔했다.
곧 누나에게서 연락이 왔다.
[야, 글 올렸다.]
확인해 보니 어릴 때 사진과 함께 글이 올라와 있었다.
“아, 골라도 이런 사진을 고르냐?”
누나가 올린 사진은 부모님께 혼나서 두 손을 들고 벌을 받는 내 사진이었다. 그리고 누나는 그 옆에서 천연덕스럽게 웃고 있었다.
[어쩌다 문승빈이랑 열애설이^^;;
저희 남매 사이입니다. 오해하지 말아주세욬ㅋㅋㅋㅋ
#문승빈 #문해빈 #문남매]
누나가 올린 해명 글 덕분에 여론은 빠르게 바뀌었다. 내 과거 사진 공개로 럽스타그램은 서서히 묻히고 있었다.
[크리드 센터의 현실남매 모먼트] 39760
일반인이랑 럽스타라고 난리났던 거 사실 친누나라고 함ㅇㅇ
친동생이랑 열애설이라뇨ㅋㅋㅋㅋㅋㅋㅋㅋㅋ
-ㅁㅊ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 누나였어?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누나분 착하시다…나였으면 진심 쌍욕함ㅋㅋㅋㅋㅋㅋㅋㅋ
-혈육이랑 열애설뜨면 진심 토할 듯?ㅋㅋㅋㅋㅋㅋㅋㅋㅋ
-승빈이 똑같이자랐엌ㅋㅋ큐ㅠㅠㅠㅠㅠㅠㅠ
┕아기 서러워서 우는것봨ㅋㅋㅋㅋㅋ
-근데 이렇게 보니까 둘이 닮았는데 왜 남매라고 생각못한거짘ㅋㅋㅋㅋ
-억까들 ㅈㄴ머쓱하겠다ㅎ
그리고 게시글에 달린 댓글 얘기로도 반응이 뜨거웠다.
-근데 누나분 누구인데 모모 보보 작가님이랑 친해?
-말하는거보면 평범한 친분은 아닌거같은데
“모모 앤 보보 작가님?”
게시글 댓글을 확인해 보니 정말이었다.
[email protected]_graphic 올해 본 게시글 중에 제일 크게 웃었네
┕@moonsunbean 언니 나 진짜 억울해ㅠㅠㅠㅠ
[email protected]_graphic 그러게 잘난 동생 티 좀 내지 그랬어~
┕@moonsunbean 어쩌다 문승빈이......(할말하않)
“아니, 작가님들이랑은 언제 친해진 거야?”
역시 무서운 친화력이다. 예전에 한번 콜라보 했다는 소식은 들었는데, 이렇게까지 친분을 쌓은 줄은 몰랐다.
-근데 승빈이 누나 사진일한다고 하지 않았나?
┕ㅇㅇ전에 지인글에서 해외유명대학에서 사진전공한다고 했었음
-잠깐만 해시태그에 이름이 문해빈??
┕ㅁㅊ문해빈 작가님이 문승빈 친누나였음?
┕요즘 뜨는 사진작가 아님?
┕(사진) 이거 시리즈 찍은 사람이잖아 ㅁㅊ
똑똑-
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돌아보니 선우 형이 있었다.
“이제 들어가도 돼?”
“네.”
그런데 선우 형 뒤로 혼신의 힘을 다해 웃음을 참는 소리가 들렸다.
‘뭐야?’
“문승빈 군, 누나와 열애설이 난 심경이 어떠신가요?”
아, 강도현이다. 아마도 해명이 된 순간부터 놀려 먹을 생각에 신났을 것이다. 지금도 나름대로 웃음을 참는답시고 입가가 자유분방하게 떨리고 있었으니까.
“난 딱 보자마자 해빈 누나인 거 알았는데.”
“전에도 본 적 있어?”
“연습생 때 얘가 아팠던 적 있었는데, 누나가 죽 사 들고 오신 적 있어요.”
“우와-”
“아무튼 지금 심경이 어떠시죠? 문승빈 군?”
“아, 치워 쫌.”
끈질기게 붙어서는 마이크인 양 주먹을 들이미는데 두통이 밀려왔다. 어쩌다 이놈이랑 같은 방을 쓰게 된 거지? 어이가 없다 진짜. 분명 파이널이 몇 시간 전에 끝났는데 숙소 생활을 시작하다니? 이건 모두 악독한 씨넷 때문이었다.
* * *
늘 상상 그 이상을 보여 주는 씨넷은 이번에도 우리를 실망시키지 않았다. 데뷔 멤버가 정해지기도 전에 숙소 계약을 이미 마친 상황이었다. 게다가 파이널이 끝나고 비하인드 촬영과 짧은 단체 에이앱을 마치자마자 칼같이 숙소행이었다.
“보통… 이럴 경우 집에 가지 않나?”
“그러게요?”
“씻지도 못하고 이게 뭐지?”
“진심, 찝찝해 죽겠음.”
이게 무슨 상황인가 멀뚱멀뚱 서 있던 우리를 숙소에 밀어 넣은 건 매니저 형이었다. 어쩐지 비하인드 찍고 나서 바로 크리드 담당 매니저라며 두 사람을 소개해 주기에 뭐가 이렇게 급한가 싶었다. 씨넷은 다 계획이 있었구나. 숙소로 들어가면서 매니저 형이 작게 속삭였다.
“리얼리티 촬영 이미 시작됐어.”
순간 등줄기에 소름이 돋았다. 차로 이동하는 과정 역시 카메라에 찍혔을 거라는 뜻이었다. 숙소에 들어와서도 본능적으로 숨겨진 카메라를 느낄 수 있었다. 아니, 아무리 리얼함을 추구한다고 해도 이건 너무했잖아?
나는 조용히 단체 메신저 방에 문자를 보냈다.
[리얼리티 촬영 시작됐대.]
“오, 우리 여기서 사는 거야 이제?”
“되게 넓다…….”
숙소에 정신 팔린 애들이 혹시나 말실수를 할까 조마조마했다. 결국 나의 고군분투가 시작됐다. 한 명씩 지나가면서 문자를 보여 주거나, 온갖 핑계를 대 일대일 상황으로 만들어 알려 주는 방법을 선택했다. 멤버들이 하나씩 사라지는 지금이 카메라에 어떻게 찍힐진 모르겠다.
“와, 숙소 진짜 좋다~”
“그니까- 역시 씨넷 최고의 회사!”
누가 봐도 어색해 보이는 반응에 헛웃음이 나왔다. 서투른 건지 능숙하게 멕이는 건지. 보다 못한 제작진이 나타나서 정식으로 리얼리티 촬영을 선언했다. 오늘은 정말 리얼한 숙소 입성까지만 담을 거니까 자연스럽게 행동하라는데 그게 되겠냐고. 다행히 거치 캠만 놔두고 모든 스텝들은 정말 바로 숙소를 떠났다.
“근데 피곤하다…….”
“잠은 어떻게 자지?”
“아직 방도 안 정해졌는데 그냥 거실에서 대충 잘까, 일단?”
정말 아무런 가이드라인이나 대본도 없었다. 이런 상태로 리얼리티를 찍게 하다니, 다시 생각해도 제정신은 아닌 방송국이었다.
“분명 합숙소 벗어났는데, 아직 그 숙소에 있는 거 같아.”
“그래도 이 조합으로 다 모인 건 처음 아니에요?”
들고 들어올 힘도 없어서 캐리어는 현관 근처에 던져 놓고, 일단 모두 거실에 널브러졌다. 정유현만 소파 위에서 이미 잘 준비를 마친 상황이었다. 바닥에 누워 있는 6명은 모두 정유현을 올려 봤고, 정유현은 그런 시선쯤은 가볍게 무시한 채 이어폰을 꽂고 눈을 감았다.
“뭔가 수학여행 온 거 같아요!”
“수학여행 가 본 적 있어?”
“당연하죠! 중학교 1학년 때가 마지막이긴 하지만…….”
“생각해 보니까 너 아직 중3이구나.”
“새삼 어리다.”
“재봉이는 그럼 뭐, 해 보고 싶은 거 있어?”
지운이 형의 물음에 박재봉은 방금까지 졸리다 한 사람이 맞나 싶을 정도로 눈을 빛내며 말했다.
“밤 새서 게임하고 놀고 싶어요!”
“내일 스케줄 있나?”
“별다른 말은 없었어.”
“그럼 오랜만에 안 자고 같이 놀까?”
그렇게 모닥불 대신 지운이 형이 챙겨 온 무드등을 켜고 우리만의 캠프파이어가 시작됐다.
“다들 자기 이름 불릴 때 어땠어?”
지운이 형의 첫 질문에 다들 잠시 조용해졌다. 그때의 감정을 담을 적절한 말을 고민하는 거겠지. 나 역시 쉽게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