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9화
흐름을 깨는 광고 타임에 현장은 야유 소리로 가득했다. 문승빈과 강도현도 긴장이 풀린 듯 자리에 한번 주저앉았다가 일어섰다.
-씨넷 죽일까 진짜..........
-ㅎㅎㅎㅎㅎㅎㅎㅎㅎ
-광고타임일걸 알면서도 기대한 사람 나야나......
-아니 지금 광고나오는 애들 진심 불매한다ㅅㅂ
-이게 진짜 광고가 될거라고 생각하나?ㅎ
-그래서 누가 일위냐고ㅗㅗㅗ
-60초 후에 공개한다는 건 양반이었음....
-ㄹㅇ 그건 시간이라도 알려줬지ㅎ....
-광고 진짜 오질나게 나오네ㅡㅡ
유독 길게 느껴지던 광고 타임이 끝나고 나서야 생방송이 이어졌다. 기다리는 시간이 얼마나 길게 느껴졌던지 내내 같은 자리에 서 있던 연습생들의 안색은 더 창백해져 있었다.
“한 번만 더 광고 봤다가는 제가 끌려 나갈 수도 있을 거 같은데요.”
윤승철이 농담을 던졌지만, 그 누구도 웃어 주지 않았을 정도로 분위기가 살벌했다.
“하하, 이제 진짜 발표해야겠네요. 저도 사람인지라 현장의 수많은 눈빛이 두렵습니다.”
“두려우면 빨리 발표하라고…….”
“‘To My World’ 시즌 2, 대망의 1위 주인공은 바로!”
모두가 손에 땀을 쥐고 윤승철의 입 모양에 주목했다.
“문승빈 연습생입니다. 축하드립니다!”
“미친!”
“아아아악!!!!”
“승빈아!!”
꽃가루가 터지면서 온 공연장을 가득 채웠다. 그 엄청난 꽃가루의 한가운데에서 모든 연습생이 문승빈을 둘러쌌다. 순위석에 이미 자리를 잡은 연습생들도 달려 나와서 합류할 정도였다.
문스트럭은 누군가를 얼싸안고 기뻐하고 싶은 마음을 꾹 참고 카메라에 문승빈을 담았다.
“자연스럽게 2위는 강도현 연습생이 되었습니다.”
“우선 2위 강도현 연습생의 소감 먼저 한번 들어 보겠습니다.”
문승빈을 반쯤 껴안고 있던 강도현이 마이크를 넘겨받았다.
“안녕하세요, 팔로워 여러분. VM 엔터테인먼트 연습생 강도현입니다. 저를 사랑해 주시고 투표해 주신 모든 분께 정말 감사드립니다. 반드시 데뷔하겠다는 마음으로 나왔는데, 이렇게 데뷔할 수 있어서 행복하네요. 모두 여러분 덕분입니다.”
“축하해 도현아!”
“사랑해!!”
“하하, 저도 사랑해요.”
“와아아악!!”
누가 보면 콘서트라고 생각이 들 만큼, 팬들과 티키타카까지 하는 강도현이다.
“제가 앞으로 보답할 수 있는 건 역시나 멋진 무대일 것 같습니다. 언제나 전보다 더 멋진 무대를 보여 드리기 위해 노력하겠습니다. 그리고 항상 응원해 준 우리 가족들, 정말 감사합니다.”
이제 소감을 다 마친 건가 생각하던 찰나, 강도현이 다시 마이크를 들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승빈아, 돌고 돌아 결국 함께 데뷔할 수 있어서 다행이다.”
-ㅈㄴ감동적이야ㅅ뷰ㅠㅠㅠㅠㅠㅠ
-둘이 이렇게 친할 줄 누가알았냐고ㅠㅠㅠ
-와이엠아이쿠라잉..?
-찐VM즈는 여기아니냐?
-서사미침;;
-나 이런거 좋아하네...
“앞으로 너와 후회 없이 만들어 갈 무대가 무척 기대된다. 잘해 보자, 우리.”
문승빈에게는 데뷔할 때 말하겠다던 강도현의 패기가 현실이 된 순간이었다.
“강도현 연습생과 문승빈 연습생의 우정이 느껴진 정말 감동적인 소감이었는데요. 그럼 드디어 영광의 1위, 문승빈 연습생의 소감을 들어 보도록 하겠습니다.”
* * *
만감이 교차한다는 말이, 지난 시간들이 파노라마처럼 눈앞을 스쳐 지나간다는 말이 모두 이해되는 순간이었다. 서바이벌에 참가한 첫날부터, 아니 회귀하기 전 그 순간부터, 어쩌면 티벡스로 데뷔했던 그 순간부터. 지나온 모든 순간이 시간 순서 상관없이 눈앞을 스쳐 지나갔다.
한차례 장면들이 지나가고 난 후, 내 눈앞에 펼쳐진 광경은 그보다 더 아름다웠다. 행복하게 웃고 있다가 내가 1위로 발표 나자 눈물을 터트리는 지운이 형, 저 멀리 순위석에서부터 달려와 준 윤빈 형과 선우 형, 그리고 1위 후보가 발표되자마자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부둥켜안은 강도현과 나.
시야를 가득 채운 행복이 오히려 현실성이 없었다. 내가 회귀를 한 게 맞나? 시간을 거슬러 과거로 돌아왔다는 것보다도 지금 이 상황이 더 낯설었다. 내 인생에서 이렇게 모두와 함께 행복한 순간이 존재할 수 있다니.
지난 과거에서도 성공하고 무언가를 달성한 순간들이 있었다. 배우로서는 지금보다 더 높은 위치에 오르기도 했다. 하지만 그때는 오로지 나 혼자였다. 의도한 건 아니었지만, 어쩌면 모두를 버리고 얻어 낸 성공. 그게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걸 너무 잘 알고 있기에 지금 이 순간이 이렇게 더 감격스러울지도 모른다.
“문승빈 연습생? 1위 한 소감이 어떠신가요?”
윤승철이 재차 질문했고, 그제야 나를 가득 채운 상념에서 벗어났다.
“아, 네! 안녕하세요, 여러분. 개인 연습생 문승빈입니다. 너무 놀라서 잠깐 머리가 정지된 것만 같았어요.”
“귀여워!”
“축하해, 승빈아!”
“일단 저를 투표해 주신 모든 분들에게 정말로 감사합니다. 서바이벌이 처음 시작된 순간부터, 아니 사실은 처음 연습생을 시작한 순간부터 꿈꿔 왔던 일을 여러분 덕분에 이루게 되었습니다. 제가 만들었던 크리드라는 이름처럼 여러분이 문승빈이라는 사람의 정체성을 완성시켜 주셨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긴장이 풀리면서 머릿속에 떠오르는 대로 소감을 말하고 있었다. 솔직히 소감으로 준비한 얘기들은 많았지만, 정말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았다.
“무엇보다도 제일 감사한 건, 저에게 함께할 수 있는 동료들을 선물해 주셨다는 겁니다. 데뷔를 할 수 있다는 것도 기쁘지만, 데뷔의 순간을 제 너무나도 소중한 동료들과 함께할 수 있어서 정말 행복합니다. 그리고 지난 시간 동안 함께했던 99명의 모든 연습생 친구, 형, 동생들에게도 정말 고맙고, 덕분에 이 모든 순간을 추억으로 남길 수 있었다고 말하고 싶네요. 제 인생에서 가장 뜨겁고도 아름다웠던 시간들이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앞으로 더 열심히 하겠습니다! 가족들 사랑합니다, 그리고 콩알단 사랑해요!”
벅차오르는 마음으로 겨우 소감을 마치고 순위석으로 올라갔다. 강도현까지 이미 호명된 다섯 명이 다시 자리를 잡고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축하해!”
“형도 축하해요.”
“흑, 형, 진짜로, 수고, 많았어요…….”
“너는 아직도 울고 있냐…….”
“끕, 안 울어요. 다 그쳤어요.”
그렇게 말하면서도 품을 더 파고드는데, 아무리 무대 위에서나 연습할 때 프로 같다고 해도 애는 애였다.
“같이 데뷔해서 기쁘다, 재봉아. 데뷔 정말 축하해.”
“저도 형이랑 데뷔해서 기뻐요.”
윤빈 형과는 가볍게 포옹을 했다. 그리고 뒤에서 기다리던 지운이 형을 꼭 껴안았다.
“왜 이렇게 울어-”
“데뷔했잖아요, 좋아서 우는 거예요…….”
“두 번 데뷔했다가는 죽겠다, 진짜.”
그 말을 듣고 한 번 더 눈물이 터진 것 같다.
그리고 마침내 1위석에 앉았다. 너무 높은 자리였다. 자리에 앉으니 현장이 모두 보였다. 정말 많은 사람들이 모였구나, 무대 위에서 보던 것보다 더 실감이 났다.
“이제 크리드의 데뷔조 자리는 단 한 자리 남았습니다.”
비장한 배경 음악과 함께 가장 떨리는 순간이 왔다. 현장에서는 마지막 희망을 품고 연습생들의 이름을 외치는 팔로워들의 소리로 가득했다.
“그럼, 7위 후보 연습생 3명을 공개하겠습니다!”
모두들 스크린을 확인하기 위해 몸을 기울였다. 스크린에 세 명의 얼굴이 뜨고 장내는 환호성과 탄식 소리가 터져 나왔다.
[정유현 / 김병대 / 이성재]
“정말 쟁쟁한 연습생들입니다. 누가 7위가 된다 해도 이상하지 않을 것 같은데요. 그럼 9위 연습생 먼저 호명하겠습니다.”
순위를 종잡을 수 없었다. 설마 정유현이 떨어질까 싶으면서도 한편으로는 상승세를 타고 있던 김병대, 대중 픽인 성재 형도 무시할 수 없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는 정유현이 된다면 팀의 완성도와 리더 역할에 좋을 것이고, 성재 형이 된다면 분위기적으로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수고 많았습니다. 영웅 엔터테인먼트 이성재 연습생!”
“아…….”
“성재 형…….”
성재 형은 담담하게 웃어 보였다.
“음… 저는 투마월을 하면서 이렇게 데뷔라는 꿈과 가까웠던 적이 없었어요. 매번 멀리서 봐야 하는 거라고 생각했는데, 정말 손 뻗으면 닿을 곳까지 왔다고 생각합니다.”
“성재야아…….”
관객석에 있던 성재 형의 팬의 슬픔 가득한 목소리에 성재 형이 손사래를 치며 달랬다.
“어? 울지 마세요! 왜 울어요! 이게 끝이 아니잖아요! 저 아직 창창합니다? 조금만 기다려 주세요. 더 멋있는 모습으로 여러분 앞에 짠 하고 나타나겠습니다, 지금까지 응원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성재 군, 수고 많았습니다.”
그때, 성재 형이 한 손을 흔들면서 마이크를 가리켰다. 할 말이 남아 있다는 제스처였다.
“성재 군, 더 할 말이 있나요?”
“네! 좀 전에 지금까지 응원해 주셔서 감사하다고 했는데 지금까지도 감사했고, 앞으로도 많이 응원해 주세요!”
“하하, 팔로워님들 앞으로 이성재 연습생의 꿈도 많이 응원해 주시길 바랍니다.”
성재 형이 빙그레 웃으며 고개 숙여 인사했다. 마지막까지 유쾌한 형이었다.
“이제 대망의 7위 발표만을 남겨 두고 있습니다.”
“아, 진짜 내가 다 긴장돼…….”
“누가 될까?”
데뷔 순위석에서도 연습생들끼리 누가 뽑힐 것인가로 갑론을박이었다.
“프로그램 초반 최상위권을 놓치지 않았던 정유현 연습생, 그리고 꾸준히 순위가 상승하며 지난 순발식에서 처음으로 데뷔권에 이름을 올린 김병대 연습생. 두 연습생 중 크리드의 최종 멤버가 된 연습생은 누구일까요?”
“유현아!”
“병대야!!”
“빨리 좀 발표해라!!!!”
“이제 제 손에 7위 연습생의 이름이 담긴 큐카드가 전달되었습니다.”
카드를 열어 이름을 확인한 윤승철이 앞쪽의 프롬포터를 확인했다. 아마도 발표 타이밍을 잡으려는 거겠지. 제작진의 사인에 맞춰 고개를 끄덕인 윤승철이 발표를 이어 갔다.
“이 연습생은 오늘 유닛 ‘샤인’ 무대에서 훌륭한 무대를 보여 줬습니다.”
‘또 의미 없이 시간 끌기 하네…….’
“그리고 1차 경연 샷건 무대를 한 연습생입니다.”
“우우-”
이 역시 정유현과 김병대 둘 모두에게 해당되는 설명이었기 때문에 영양가 없는 힌트였다. 팔로워들의 불만과 피로도도 점점 높아지는 듯했다.
‘그냥 빨리 발표나 하지…….’
정유현은 미동도 없었고, 김병대는 체념한 듯 고개를 푹 숙이고 있었다. 지켜보는 사람도 피가 말리는데 저 둘에게는 일생일대의 순간이겠지. 순위 하나를 두고 한 명은 데뷔의 꿈을 이루고, 다른 하나는 다시 연습실로 돌아간다.
“이제 정말 크리드의 마지막 멤버를 발표하겠습니다!”
운명은 그렇게 종이 한 장 차이로 천국과 지옥을 오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