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8화
“레전드면 승빈이?”
“도현이 아니야?”
“재봉이일 수도?”
“5위 연습생은 세 번의 순발식에서 모두 데뷔권이었던 연습생입니다.”
“세 번 다 들어온 애가 누구지?”
“도현이랑 재봉이랑 승빈이.”
세 명의 이름을 듣자마자 문스트럭은 여기서 승빈의 이름이 불릴 것이라고 생각했다. 강도현이 5위일 리는 없고, 박재봉 역시 몽환 팀 무대로 순위 반등에 성공했기 때문이다.
‘제발 뭐든 좋으니 데뷔만 하자 승빈아…….’
“총 득표수 97만 5412표를 얻었습니다. 축하합니다, 킨 엔터테인먼트 박재봉 연습생!”
“재봉아아아!”
“됐다!”
-재봉아아아아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아가야ㅠㅠㅠㅠㅠㅠㅠㅠㅠ
-데뷔조 지금까지 ㅈㄴ순항중이네
-아싸 선우랑 재봉이 같이 데뷔하네!
-쭈아!
“헐, 박재봉이 5위야?”
“순위 변동 꽤 있나 본데?”
“하씨, 괜히 불안해지네…….”
박재봉도 많이 놀랐는지 두 귀를 막고 아예 주저앉았다. 주변의 연습생들이 부축을 하고 나서야 무대로 향했다.
“이, 이거 꿈 아니죠? 하… 우선 응원해 주신 모든 팔로워님들 감사합니다! 많이 부족한데도 이렇게 큰 사랑 주시고 믿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크리드의 멤버로… 함께할 수 있는 영광, 주셔서, 흑, 감사합니다…….”
“아, 귀여워!”
“재봉이 뿌엥 하고 우네.”
그 뒤로는 거의 흐느껴서 뭐라 하는지 정확히 들리지 않았다. 대기하던 다른 연습생들도 못 말린다는 듯 웃었다.
“감사, 감사합니다…….”
재봉이 순위석으로 올라가는 길에 박선우가 우는 재봉의 얼굴을 따라 하고 있었다. 재봉이 꽤 아프게 어깨를 쳤고, 과장되게 아픈 척 하던 박선우가 먼저 손을 내밀었다. 아직도 엉엉 우는 재봉이 그 손을 붙잡아 악수를 나눴고, 둘은 나란히 데뷔조 의자에 착석했다.
“이제 4위를 발표하겠습니다.”
“이번엔 지운이다.”
“하, 승빈이도 차라리 지금 불리는 게 마음 편한데…….”
“이랬는데 김병대 불리면…….”
“개판 나는 거지.”
“4위 연습생은 오늘 센터를 한 연습생입니다.”
“정유현, 문승빈, 윤빈, 차지운 네 명 중 하나네.”
-유현이일듯ㅇㅇ
-차지운 불릴 때 되지 않았나?
┕2분할 버프받은거면 가능할 듯
-뭔가 승빈이일거같은데
-니들 왜 윤빈이 애기는 왜 없냐ㅠㅠㅠㅠㅠㅠㅠ
┕7위 노려야 할듯...
“이 연습생 역시 무대 위에서는 강렬한 모습이라면, 무대 아래에서는 의외의 매력을 보여 준 연습생입니다.”
“정유현은 아니지 않아?”
“그러게, 무대 위아래 갭 차이면.”
-ㅅㅂ...
-유현이 어쩌냐...
-차지운일듯ㅇㅇ
┕22
┕33
-빨리 불리고 자리앉자 내새끼 다리아프겠어;;;
“총 투표수 99만 1532표를 얻으며 막판 순위 상승에 성공했습니다. 축하합니다, 베리 엔터테인먼트 윤빈 연습생!”
“헐?”
“미친?!”
“윤빈아!!!!”
-ㅁㅊ?
-?
-윤빈이떡상했넼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으아아아아아아!!!!!!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축하해윤빈아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윤빈이울어ㅠㅠㅠㅠㅠㅠㅠㅠ
다리에 힘이 풀렸는지 윤빈도 한동안 자리를 벗어나지 못했다. 진정이 좀 되고 무대로 걸어와 소감을 말했다. 꺽꺽 소리가 나도록 눈물을 흘리는 모습에 문스트럭을 비롯한 현장의 팔로워들도 저러다가 쓰러지는 거 아닌지 걱정했다.
“감사합니다, 팔로워님들, 너무, 너무 감사합니다. 응원해 준 모든 분들 감사합니다. 우리 투마월 연습생 동생, 친구, 형들 모두 고마워요… 선생님들, 그리고 제작진 분들도 감사합니다. 그리고…….”
호흡을 가다듬던 윤빈이 말을 이어 갔다. 이번엔 영어였다.
“엄마, 아빠. 나 데뷔했어요. 더 자랑스러운 아들이 될게요. 기다려 주셔서 감사합니다, 사랑하고 보고 싶어요.”
-ㅅㅂ...이날을 위해 영어공부를 한것같다
-대충 감동적인 말이었지?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순위석으로 올라가는 윤빈을 박재봉과 박선우가 반겼다. 덩치가 제일 큰 윤빈이 비교적 작은 둘 틈에 비집고 들어가는 웃지 못할 장면이었다.
4위까지 발표되고, 문스트럭과 K는 심장이 쫄려 왔다. 이제 4명밖에 남지 않았는데 박재봉이 생각보다 앞에 불리고, 아슬아슬하게 데뷔권에 머물던 박선우가 데뷔에 성공했다. 그러더니 이제 윤빈은 9위에서 4위까지 치고 올라온 거다. 지난 순위 5위, 2위도 안심할 수 없었다.
* * *
‘뭐지? 왜 아직도 안 불리는 거지?’
처음부터 생각했던 거지만 7명은 진짜 무슨 기준으로 정한 숫자일까. 서바이벌 프로의 데뷔조라고 하기에는 적어도 너무 적은 인원이었다. 6위부터 한 명씩 발표될 때마다 심장이 덜컹거렸다. 재봉이도 선우 형도 정말 축하하는 마음이었지만, 마음 한구석에서는 계속 불안함이 커져만 갔다.
그리고 마침내 4위로 윤빈 형이 발표되었을 때는 머릿속이 멍해졌다. 이제 남은 자리는 7위까지 겨우 4자리. 그리고 아직도 강도현과 정유현의 이름이 불리지 않았다. 과연 남은 4자리에 형과 내가 둘 다 들어갈 수 있을까?
“이제 3위를 발표하겠습니다. 경연이 진행될수록 점점 발전된 모습을 보여 주면서 많은 팔로워님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연습생입니다. 역시 오늘 센터를 맡았습니다.”
“발전된 모습이면 완전 반전인 거 아니야?”
“센터면 지운이 형, 승빈이, 유현이 형인 거잖아.”
“승빈아, 너인가 본데?”
내가 불려도 미치겠고, 안 불려도 큰일이다. 지난 순위에서 정유현이 순위가 하락하면서 팬덤 내 집결도가 높아졌고, 투표 이벤트의 규모와 화력만 봐도 충분히 다시 최상위권으로 올라올 저력이 있어 보였다. 스크린에 나와 지운이 형, 정유현의 얼굴이 교차되어 나오고 있었다. 지운이 형 역시 입술을 깨물고, 숨을 몰아쉬는 등 안절부절못해 보였다.
“총 102만 6432표의 투표수를 받았습니다!”
“미쳤다, 100만 표가 넘었네?”
“축하합니다, 개인 차지운 연습생!”
“형!”
“지운아!!”
지운이 형이 호명되자마자 두 다리에 힘이 풀렸다. 이제 됐다는 안심이 먼저 들었다. 그리고 지운이 형의 미래를 바꿀 수 있다는 사실에 감격스러워서였을까, 눈시울이 붉어졌다. 연습생들의 축하를 받던 지운이 형이 바로 무대로 이동하지 않고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뭐가 잘못됐나?’
생각하던 찰나, 나를 발견한 지운이 형이 한달음에 다가와 껴안았다. 어깨를 토닥이는 투박한 손끝에 그동안의 일들이 주마등처럼 빠르게 지나갔다. 지금껏 나는 이 순간을 기다려 왔구나, 너무나도 고됐지만 충분히 가치 있는 시간이었다.
“고마워, 진짜…….”
“축하해요, 형. 빨리 가 봐요. 소감 얘기해야지.”
형 앞에서는 울고 싶지 않아서였을까, 일부러 빠르게 말을 마쳤다. 지운이 형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무대로 향하는 뒷모습을 보고, 그제야 남은 눈물이 터진 거 같다.
“안녕하세요, 팔로워님들. 개인 연습생 차지운입니다!”
“축하해, 지운아!!!!”
“지운아, 사랑해!!”
지운이 형을 부르는 팬들의 목소리는 유독 물기가 가득했다. 아마 그동안의 여러 굴곡을 이겨 내느라 힘들었겠지. 나를 응원해 주는 팬들만큼이나 지운이 형의 팬들에게도 고마움이 가득했다.
“우선 투표해 주신 모든 팔로워님들 너무 감사합니다. 사실 저는 제대로 노래를 배운 적도, 무대를 준비해 본 적도 없고 그저 춤만 추면서 살아온 사람입니다. 그래서 투마월에서 정말 많은 것을 새롭게 배웠습니다. 함께한 연습생 친구들이 없었다면 절대 여기까지 오지 못했을 거예요. 그만큼 한 명 한 명 너무 소중합니다. 그리고… 힘든 순간에도 저라는 이유로 끝까지 믿어 주고 응원해 주신 모든 분들에게 이 자리를 빌려 다시 한번 감사를 전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우리 가족, 제가 많이 사랑합니다.”
“차지운 연습생, 정말 축하드립니다!”
“아, 정말 죄송하지만 한마디만 더 해도 괜찮을까요?”
“물론이죠!”
“승빈아, 기다리고 있을게!”
눈물이 그칠 새가 보이지 않으니 옆에서 장난을 치던 연습생들도 걱정하기 시작했다.
“왜 이렇게 울어, 인마!”
“누가 보면 탈락한 줄 알겠어-”
“울지 마-”
회귀 전 마지막 순간만큼이나 주체가 안 될 정도 눈물을 쏟아 낸 것 같았다.
* * *
“아니, 승빈이 왜 저렇게 울어?”
“쟤 설마 자기 안 될 줄 아는 건 아니겠지?”
“에이, 설마. 승빈이는 무조건이지.”
“근데 나 왜 불안하냐, 지금.”
차지운이 3위로 호명되고 K는 이제 다 이뤘다며 짐 정리를 하기 시작했다. 비교적 여유로운 A에 비해 문스트럭만 손톱을 깨물고 있었다.
“1위 후보 최종 2인을 공개하겠습니다.”
윤승철의 외침과 함께 1위 후보가 전광판에 클로즈업되었다.
[강도현 / 문승빈]
“미친, 됐다, 됐어!”
“야, 우리 애들 셋 다 데뷔한다!”
“돌았다. 우리 이제 크리드 팬인 거임.”
후보가 발표되자마자 현장이 난리가 났다. 그중에서도 제일 신난 건 역시 문스트럭과 친구들이었다. 좀 전까지만 해도 셋 다 말도 제대로 못 꺼낼 정도로 긴장하고 있었는데, 드디어 그 살벌한 정적이 깨진 거다.
“두 명의 연습생 중 누가 1위의 주인공이 될까요?”
윤승철이 그 어느 때보다 비장한 목소리로 말했지만, 이미 흥분한 그녀들에게는 아무런 영향력이 없었다.
“1위가 무슨 상관임, 우리 애가 데뷔를 한다는데.”
“진심. 센터 누가 하든 상관없다고 이제.”
셋이 같이 방청을 왔는데, 누구 하나라도 떨어졌으면 그 분위기 진짜 어쩔 거냐고. 최애의 데뷔도 물론 너무너무 축하하지만, 이 우정이 깨지지 않게 된 게 무엇보다도 다행이었다. 하지만 그녀들의 행복과는 별개로 현장 및 인터넷 반응은 난리가 나고 있었다.
-ㅁㅊ..... 유현이 어디감?
-1위 후보에 지금 정유현이 없다고?????
-아니 강도현문승빈 오케이, 근데 유현이는??
-돌았다.... 리더 누가 하냐 이제......
-투표의 중요성이다 진심;;
-아니 정유현이 저얼굴 저피지컬 저실력에 데뷔를 못한다고??
-제발 유현이 7위라도ㅠㅠㅠㅠㅠ
모두가 안정권이라고 생각했던 정유현이었기에 그 충격이 배가 된 것이다. 물론 아직 7위 발표가 남아 있지만, 7위를 하더라도 충격적인 순위였다.
희비가 교차하는 순간에도 생방송은 이어지고 있었다.
“참고로 1위 연습생의 표는 153만 표를 넘겼습니다.”
“미쳤다. 153만 표?”
“와 6위랑 50만 표 넘게 차이가 나네.”
대국민적 인기를 기록한 프로그램이었지만, 그걸 감안해도 엄청난 득표수였다. 누가 돼도 납득할 만한 후보였기 때문에 그 긴장감은 더 커져만 갔다.
“압도적인 득표수를 자랑한 1위의 주인공은 바로!”
“광고 후에 공개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