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혼자 할 거면 두 번 데뷔 안 함-96화 (96/346)

96화

[잊지 말아 줘

여름보다 뜨거웠던

우리의 봄]

다시 조용한 피아노 소리만 남고, 윤빈의 파트와 함께 무대 중앙으로 연습생들이 걸어오면서 한곳에 모였다.

[또다시 겨울이 와도

더 이상 두렵지 않아]

전광판에 잡힌 차지운의 눈에는 강한 확신이 보였다. 서바이벌 내내 어쩌면 가장 다사다난했던 연습생이었기 때문에 더 큰 의미가 있는 순간이었다. 옆자리 K는 이미 기력이 다해서 거의 문스트럭에게 업힌 정도였다.

[언젠가 아름답게 만개할

순간을 떠올리며

기다린 우린 다시, 봄]

엔딩 파트는 정유현이었다. 전광판에 잡힌 모습을 보면서 문스트럭은 감탄했다. 얼굴도 얼굴이었지만, 대부분의 연습생들이 울음바다가 된 것에 비해 단정한 정유현의 태도 때문이었다.

“와, 정유현은 역시 담담하네.”

“서바이벌 끝나기 전엔 우는 모습 한번 보고 싶었는데…….”

문스트럭도 공감했다. 모름지기 미남이 가장 아름다운 순간은 바로 눈물 흘릴 때가 아니겠는가? 최애는 아니지만, 언젠가 정유현이 펑펑 울게 되는 날을 직관한다면 덕질 인생에 잊지 못할 순간이 될 것이라고 확신했다.

무대가 끝나고 연습생들은 무대 중앙으로 모여서 서로를 껴안아 주었다. 그들의 머리 위로 새하얀 꽃잎들이 떨어지고 있었고, 아름다운 드라마의 해피 엔딩을 보는 듯했다.

* * *

‘다시 봄’ 무대를 마치고 내려오는데 머리가 어질했다. 예상치 못한 부분에서 울컥해서 눈물이 흘러나왔다. 물론 다른 연습생들에 비하면 얌전한 수준이었지만. 원래 계획은 울컥하는 정도였는데 나도 모르게 진짜로 울어 버렸다. 연기할 때도 감정을 넘치게 한 적이 없었는데 말이다. 목이 잠길까 봐 절대 울지 않겠다고 결심한 거였는데, 하이라이트 부분에서 약간 쇳소리가 나 버렸다.

다양한 이유가 있겠지만, 눈물이 난 결정적인 이유는 한 팬분이 들고 있던 슬로건의 문구였다.

[승빈아, 할 수 있어!]

할 수 있다고 적힌 슬로건을 흔들며 목이 터져라 응원하는 모습을 보는데, 그건 정말 참기 힘들었다. 얼마나 소리를 지른 건지 이미 반쯤 나간 목소리를 듣자마자 순간 눈물이 터졌다.

무대를 내려와 살짝 진정이 되니까 드는 걱정은 ‘과연 카메라에 우는 얼굴이 잘 나왔는가?’였다. 잘만 나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은 떡밥이지만, 찰나라도 못나게 나온다면 분명 캡처로 조리돌림당할 것이 눈에 훤했다. 마지막까지도 이런 생각이 드는 걸 보면, 정말 지난 몇 달간 서바이벌 한번 지독하게 겪었구나.

아쉬움을 가지고 박재봉과 대기실로 향하는데 복도 구석에 쭈그려 앉은 연습생이 보였다. 가까이 가 보니 김형석이었다.

“여기서 뭐 해?”

“…….”

“울어?”

울먹울먹하던 애가 말 그대로 우아앙 울기 시작했다. 그러자 이미 무대 위에서 한바탕 울고 온 박재봉도 감정 동기화되더니 결국 둘이 얼싸안고 울었다. 대기실로 돌아오던 강도현과 지운이 형이 멀뚱하게 서 있는 나를 보며 말했다.

“뭐야, 너 또 애들 울렸냐?”

“또? 내가 언제 울렸다고 ‘또’냐?”

“너 지난번에 윤빈 형도…….”

“그거 아니라니까?”

노발대발하는 나와 깐족대는 강도현 사이에서 지운이 형은 허허 웃으며 싸움을 말릴 뿐이었다. 그러는 형도 이미 펑펑 울어서 눈이 퉁퉁 부어 있었다.

“흐어어엉… 형, 진짜, 흑, 수고 많았어요오…….”

언제 김형석에게서 떨어진 건지, 이번에는 나를 붙잡고 박재봉이 대성통곡을 했다.

“알, 겠으니까, 이것 좀 놔 봐, 무거워-”

“형들도, 수고, 흑, 많았어요.”

자기 할 말을 다 할 때까진 죽어도 안 떨어졌다. 한참을 말하다가 강도현과 지운이 형에게 팔을 벌리고 다가갔다. 둘은 마치 걸어 다니는 벌금인 쿼카를 마주한 이들처럼 뒷걸음질 쳤다. 그래도 박재봉이 눈물을 멈출 기미가 보이지 않자 결국 지운이 형이 먼저 품에 안아 달랬다. 뒤에서 강도현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것이 보였다.

“와, 동생이 우는데 위로도 못 해 줄망정-”

“먼저 떼어 낸 게 누구신데요-”

랩 배우면서 한동안 훈훈한 분위기였는데, 역시 우리는 서로 으르렁거리는 게 더 어울린다. 말은 이렇게 해도 이제는 둘 다 어떠한 적의도 없다는 걸 잘 알고 있으니까. 결국 셋이 붙고 나서야 박재봉을 대기실로 옮길 수 있었다.

“뚝! 야, 좀 이따가 순발식 할 때 어쩌려고 그러냐?”

“맞아. 얼굴 부어서 나올걸?”

붓는다는 말에 귀신같이 울음을 멈췄다. 하여간 아이돌 하려고 태어난 애는 맞는 거 같다.

이제 마지막 VCR이 끝나면 정말 마지막 순발식이 시작된다. 쉽게 긴장하는 성격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몰려오는 심리적 부담감이 있었다. 다른 연습생들 역시 어딘가 붕 떠 있는 느낌이었다. 다들 한 곳에 가만히 있지 못하고 이곳저곳을 배회했다. 선우 형은 평소 안 하던 운동까지 하면서 마음을 다잡고 있었다.

* * *

‘다시 봄’ 무대의 여운은 금방 사라지지 않았다. 현장은 훌쩍이는 소리로 가득했고, 문스트럭과 K, A 역시 울렁이는 마음이었다.

“재봉이 너무 울더라, 수분 다 빠졌겠어.”

“진짜 아직 애기야, 애기.”

연습생들과 함께했던 봄과 여름을 되돌아보는 노래여서인지 팔로워들에게도 아련함을 주는 무대였다.

“이제 연습생들이 준비한 무대가 모두 끝났습니다. 길었던 지난 4개월간의 여정을 마무리할 시간이 다가오고 있는데요. 연습생들이 준비한 마지막 이야기, VCR로 확인하겠습니다.”

[경쟁자에서 동료, 그리고 친구가 된 우리]

“하고 싶은 말이요? 꼭 한 명한테만 해야 해요?”

화면에 강도현이 등장했고, 함성이 엄청났다. 특히 A의 목청은 그 속에서도 가장 컸다.

“역시 강프들 소문대로 목소리 짱 크네…….”

“진심. 전투력도 쎄고 목소리도 제일 커.”

“근데 쟤가 제일 커.”

“인정.”

화면 속 강도현은 잠시 고민하더니 답했다. 강도현의 답에 현장은 술렁였다.

“저는… 승빈이요. 근데 지금 말 안 할래요.”

“왜요?”

“파이널 하는 날, 데뷔 결정되고 말할래요.”

문스트럭과 A는 동시에 머리를 부여잡았다.

“미친.”

“미친, 저 근거 X나 있는 자신감 어쩌면 좋냐? 진짜 얘들아 내 새끼 너무 잘났어…….”

“진짜 강도현이니까 할 수 있는 말이네.”

-도현이 지금 둘다 데뷔할수 있을거라고 생각하고 하는말인거냐곸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일단 자기는 떨어질일 없다 이거짘ㅋㅋㅋㅋㅋㅋ

┕ㅇㄱㄹㅇ ㅂㅂㅂㄱ

-강도현이 해서 납득이가넼ㅋㅋㅋㅋㅋㅋ

┕재수없다고도 못하겠음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무슨말을 하려곸ㅋㅋㅋㅋ

-이걸 지금 공개하면 어떡함ㅋㅋㅋㅋㅋ투표마감 전에 올렸으면 저거 궁금해서 문승빈 투표하는 사람들 꽤 됐을 듯?ㅋㅋㅋㅋㅋㅋㅋㅋㅋ

┕뭐래;;문승빈이 뭐가 아쉬워섴ㅋㅋㅋ;;

┕강도현에비하면 그렇다는거지 왜이렇게 꼬아서들어?

┕걍 ㄲㅈ

장난기 가득한 강도현의 반응에 순발식에 대한 기대감이 더욱 높아졌다. 문스트럭과 A는 벌써 손을 잡고 간절히 빌었다. 제발 둘 다 데뷔하게 해 달라고.

다음은 박재봉이었다. 질문을 듣고 한참을 고민하더니 겨우 답했다.

“너무 많은데… 저는 그럼, 선우 형이요!”

“엥?”

“박선우? 의외네?”

“그니까, 맨날 아웅다웅하더니.”

제작진들 역시 의외라는 반응이었다. 왜 박선우에게 말하고 싶냐고 물으니 박재봉은 간단명료하게 답했다.

“형 덕분에 덜 심심했어요!”

여기까지는 훈훈한 이유인 줄 알았는데, 뒤에 이어진 말에 모두 두 손 두 발 들었다.

“저랑 동갑이 없어서 좀 아쉬웠는데, 형이 저랑 정신 연령이 비슷해서 덜 심심하게 해 준 거 같아요.”

“하하하!!”

“그런 이유였냐고-”

파이널까지 골 때리는 박재봉이었다.

-아옼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박선우 정신연령 16세인거냐곸ㅋㅋㅋㅋㅋㅋㅋㅋㅋ

-맞다 선우 성인이짘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재봉이 ㅈㄴ해맑아서 더 웃곀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다음으로 박선우가 박재봉을 뽑으면서 상황은 더 흥미롭게 흘러갔다.

“제가 여동생만 있어서 남동생을 꼭 갖고 싶었는데, 재봉이는 정말 남동생 같았어요.”

“박선우 여동생 있어?”

“응, 예고 다니는데 유명하잖아. 박선우랑 똑같이 생겨서.”

“와, 진짜 예쁘겠다.”

“아마 연습생일걸?”

“하긴, 박선우 얼굴에 머리만 길다는 건데 연예인 안 하는 게 더 이상하지.”

-선우 여동생한테도 재봉이 놀리는것처럼 할까?

┕ㄴㄴ박선우 완전 여동생바보래

┕ㅅㅂ...님이 나 죽인거임 방금

┕여동생 전생에 우주구한거냐고…

-박선우랑 똑같이 생겼대

┕ㅁㅊ언제 데뷔해?언니 통장 준비해둘게;;

┕데뷔하고 숨겨도 바로 알아볼듯ㅋㅋㅋㅋㅋㅋㅋ

[티격태격했지만 누구보다 케미가 좋았던 두 연습생]

“제가 좀 짓궂게 굴긴 했는데, 재봉이도 재밌어하던데요?”

그리고 교차 편집으로 박재봉이 나왔다. 딱 봐도 어이없다는 표정에 현장 팔로워들도 웃음이 터졌다.

“그 형이 그래요? 제가 재밌어한다고요?”

“재봉이가 아니래요? 아유, 맨날 그래요. 저러면서 속으로는 즐거워하고 있을걸요?”

“덜 심심했다는 거지, 재밌는 건 아니었어요!”

다음은 정유현이었다. 문스트럭도 내심 궁금했다. 대부분의 연습생들과 두루두루 지내는 것 같으면서도 뚜렷하게 케미가 있었던 조합이 없었기 때문이다. 모두에게 친절하지만 범접할 수 없는 무언가 때문에 모두와 거리가 있는 연습생이라고 생각했다.

“저는… 문승빈 연습생으로 하겠습니다.”

“어떤 말을 하고 싶은데요?”

“서바이벌 내내 좋은 자극제였다고 말해 주고 싶어요.”

-내가지금 서바이벌을 보는거냐 청춘드라마를 보는거냐?

-ㅈㄴ의외다;;

-좋은 자극제였대ㅠㅠㅠㅠ

┕둘이 친한거였냐고…

-발린다 진짜.........

-근데 진심 둘이 묘하게 비슷한 느낌이야

┕ㅇㅇ 둘다 ㅈㄴ 천재인데 노력까지 하는 타입.

-둘다 데뷔하면 누가 리더할지 궁금하다ㅋㅋㅋㅋㅋ

“미친, 승빈이 인기 왜 이렇게 많음?”

“심지어 승빈 스쿨 수강생들도 아닌 애들이 저러니까 더 대단한데?”

스스로 하는 캐해만큼이나 매력적인 것이 남이 해 주는 캐해였다. 투마월에서 올라운더로 양대 산맥인 두 연습생에게 지목당하다니. 아이돌이라 하면 만들어진 이미지를 소비하는 것이 암묵적으로 정해진 거라지만, 승빈이는 뭔가 다르다고 믿고 싶어지게 했다. 이후에도 승빈을 꼽은 연습생들이 많았다. 특히 청예즈와 김형석을 비롯한 승빈 스쿨의 도움을 받은 연습생 등 다양했다.

마지막으로 나온 연습생은 최다 득표자인 문승빈이었다. 제작진으로부터 최다 득표라는 말을 들은 문승빈의 두 눈이 동그래졌다.

“저한테요? 다들 무슨 말을 한 거지?”

-승빈버스냐곸ㅋㅋㅋㅋㅋ

┕인성좋고 잘생기고 노래잘하고 춤잘추는데 나는 그걸 몰라

[최다 득표자 문승빈 연습생이 뽑은 연습생은?]

“저는… 지운이 형에게 말하겠습니다.”

지운의 이름이 불리자 장시간의 녹화에 죽어 가던 K의 눈이 반짝였다.

“형 덕분에 서바이벌하면서 포기하지 않을 수 있었고, 꼭 데뷔하겠다고 마음잡을 수 있었어요. 춤적으로도 정말 도움 많이 받았고, 청예즈 하면서 정도 많이 들었고 그리고…….”

“미친… 지운이가 뭘 했으면 저런 말을 하는 거냐?”

“지운이 X나 완벽하다 진짜…….”

잠시 뒷말을 아끼던 승빈이 결심한 듯 말했다. 그리고 승빈이 던진 폭탄 발언에 장내가 술렁였다. 문스트럭은 감격스러움과 동시에 걱정이 밀려왔다.

“우리 꼭 같이 데뷔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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