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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할 거면 두 번 데뷔 안 함-95화 (95/346)

95화

‘다시 봄’ 녹음 과정 VCR이 끝나고 다시 현장은 암전됐다. 그리고 스크린에 박재봉의 인터뷰 장면이 나왔다. 첫 방송 촬영 때였는지, 소속사 평가 당시 의상이었다. 주변에서 함성 소리와 함께 앓는 소리가 가득했다.

“아, 귀여워…….”

“그새 큰 거 봐-”

“저 때도 귀여웠는데 지금도 귀여워!”

‘눈부셔’ 피아노 버전 비지엠이 흐르고 문스트럭과 K는 이제 눈물 타임이구나- 직감했다. 스크린 가득 문구가 떴다.

[100일 뒤 나에게 보내는 편지]

“음… 100일 뒤의 재봉아, 안녕? 파이널 무대까지 안 떨어지고 잘 있지? 그랬으면 좋겠다. 악착같이 살아남아서 꼭 데뷔하자!”

두 주먹을 불끈 쥐면서 말하는 박재봉의 모습에 문스트럭도 웃음이 터졌다.

“재봉이는 진짜 애가 특이한 곳에서 진지해.”

“악착같이 살아남겠다는 말이 왜 이렇게 귀엽냐?”

두 번째로 문승빈이 나왔고, 문스트럭은 반사적으로 소리를 지르고는 입을 막았다. 한 마디라도 소리에 묻히게 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100일 뒤에요? 가장 먼저 떠오르는 말은, 음… 탈락 안 했지? 너, 꼭 데뷔해야 해, 그러려고 여기 온 거니까. 힘든 일 많겠지만 잘 견뎌 주길 바란다, 미래의 나야. 아마 파이널 무대 준비하고 있을 텐데 후회 없는 무대 하고 데뷔했으면 좋겠다.”

“승빈이 강단 있는 거 봐.”

“저 때도 독기 가득했네.”

“어떡해? 나 눈물 나, X발…….”

“벌써?”

“승빈이 너무 기특해”

“어, 지운이다!”

화면에 나온 차지운의 모습은 확실히 지금보다는 볼살이 있었다. K는 당장 데려다가 고봉밥에 고기반찬으로 상다리 부러지게 차려다가 먹여야 한다고 생각했다.

“지운아, 새롭게 시작한 길인 만큼 잘 모르는 것도 많고, 어려운 일도 있겠지만 포기하지 말자! 데뷔하면 너무 좋겠지만… 혹시 그렇지 못하더라도 절대 실망하지 말고.”

“그게 무슨 말이야, 이놈아!”

“몸도 마음도 다치지 말고, 건강하게 완주하자, 파이팅!”

“X발…….”

벌써 우는 거냐고 묻던 K가 결국 먼저 눈물을 보였다. 지난 몇 달간의 일들이 파노라마처럼 머릿속에 펼쳐지는 것만 같았다. 아마도 비슷한 마음이었는지 주변의 차지운 팬들도 눈가가 촉촉했다.

모든 연습생의 인터뷰가 지나가고, 마지막으로 강도현이 나왔다.

“꼭 데뷔하자. 데뷔하려고 나온 건데 다시 연습생으로 돌아가는 건 너무 멋없잖아? 지금보다 더 성장해서 정말 후회 없는 무대 남기고 서바이벌 잘 마무리했길 바란다. 정말 수고 많았어!”

옆에서 K가 우는 걸 보고 놀리던 A는 입을 틀어막았다.

“미친, 도현이 왜 이렇게 잘났냐?”

“너 진짜 오늘 야근 안 해서 다행이다.”

“야근했으면 팀장 뒷산에 묻어 두고라도 왔어.”

진심이 가득한 K-직장인의 한 서린 말에 문스트럭과 K는 잠시 등골이 서늘했다. 그리고 다시 전광판에 문구가 나왔다.

[우리 앞에 펼쳐질 또 다른 봄의 시작을 위하여…….]

“야, 시작하나 보다.”

무대 전체에 일제히 조명이 들어왔다. 모두들 발라드 센터가 누가 됐는지 기대하고 있었다. 이미 투표는 끝났지만, 그래도 센터는 마지막까지도 센터니까. 문스트럭과 K도 최대한 목을 빼고 돌출 무대 앞자리의 연습생을 찾아봤다.

“누구야?”

“유현이네?”

“정유현이야?”

“아, 미친 오늘 스타일링 돌았다.”

“핑크색 너무 잘 어울려!!”

발라드 센터는 정유현이었다. 사슴을 닮은 것으로 유명한 만큼 청순한 이미지가 잔잔한 발라드곡과 잘 어울렸다. 연분홍 파스텔톤의 정장을 입었는데 화사한 매력이 더해졌다.

“아, 진짜 잘생겼다-”

“미친, 개청순해.”

주변에서도 정유현의 비주얼에 넋이 나간 사람이 많았다. 정유현이 돌출 무대 가장 앞으로 걸어오면서 반주가 시작됐다. 부드러운 피아노 선율과, 파스텔톤 의상을 입은 연습생들만으로도 봄을 떠올리기 충분했다.

그리고 화룡점정은 얼굴에 붙은 꽃이었다. 연습생들의 볼과 눈 주변에 생화를 붙여 놓았다.

‘누구 아이디어인지 모르겠지만, 적게 일하고 X나 많이 버세요…….’

문스트럭은 카메라로 승빈을 찾다가 충격적인 비주얼에 카메라를 놓칠 뻔했다.

“미친 거 아니야?”

‘본 투 샤인’에서 페이스 체인을 떼는 과정에서 생긴 상처 부분에다가 밴드로 꽃을 고정한 것이다.

실시간 반응도 폭주하고 있었다.

-저거도 승빈이 아이디어인가?

-미쳤나봐 ㅈㄴ청춘드라마 아니냐고;;

-아기 아픈데도 방긋방긋 웃는거봐ㅠㅠㅠ

-문승빈군 피땀눈물 다 보여주는 프로아이돌로 인정합니다.

-나 이런거 좋아하네;;

문스트럭은 혼신의 힘을 다해 승빈의 이름을 불렀고, 마침내 승빈이 그녀의 카메라를 발견했다. 상처 난 곳 아프지 않냐며 손가락으로 가리키니, 시무룩한 표정을 한번 짓다가 활짝 웃으며 입 모양으로 한 글자씩 또박또박 말했다.

‘괜찮아요-’

“이런 미친…….”

영상에 소리가 들어가는 것을 망각한 지 오래였다. 욕이 안 나올 수가 없었다. 어차피 감동적인 비지엠으로 다 밀어 버릴 소음이었다.

그리고 마이크를 감싼 꽃장식이 눈에 띄었는데, 연습생들마다 꽃 종류가 달랐다.

[추운 겨울 끝자락에서

우리가 처음 내디딘 발걸음

이제는 따스한 봄바람을 지나

봄의 끝자락에 닿았어.]

노래가 시작되고, 단 몇 마디만으로도 지난 투마월의 시간을 떠올릴 수 있었다. 추운 손에 입김을 불어 가며 카메라를 들고 사진을 찍은 대면식 날부터 3월 시작한 방송, 그리고 봄의 끝을 알리는 6월이 되어 마침점을 찍고 있었다.

정유현의 부드러운 목소리와 잘 어울리는 도입부였다. 다음 파트는 승빈이었다. 연보라색의 재킷과 깔끔한 화이트 셔츠의 착장이었다. 단체 무대와 유닛 무대에서 보여 준 강렬함과는 다른 부드러운 매력이 돋보였다.

[얼어 있던 서로의 마음은

어느새 눈빛만 봐도

가늠할 수 있을 만큼

따스하게 녹아내렸지.]

마지막 가사에 따라 옆자리의 강도현과 화음을 맞추며 눈을 마주했다. 옅게 웃는 모습을 보면서 문스트럭은 울컥하는 마음을 감출 수 없었다. 언제 저렇게 친한 사이가 된 걸까, 그리고 문스트럭은 마이크의 꽃을 보고 감탄했다.

”야, 미친. 마이크에 저거 애들 탄생화인가 봐-“

”어떻게 알아?“

”승빈이 탄생화가 천리향이거든? 근데 마이크에 있어.“

”헐, 나중에 찾아봐야겠다.“

[힘들지 않았다면 거짓말

나를 향한 수많은 걱정의 말

때로는 아프게 하는 말들도 있었지

하지만 견뎌 낼 수 있었어

서로가 있었으니까]

평소의 랩 스타일과는 사뭇 다른 강도현의 랩이었다. 지그시 눈을 감고 랩을 하는데 얼마나 행복해하는지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이어지는 파트는 박선우의 랩이었다. 항해의 시대 무대에서 느꼈던 짜릿함을 다시 느낄 수 있었다. 박선우도 평소보다는 하이톤으로 부드럽게 읊조리듯 랩을 이어 갔다.

[겨우내 움츠려 있던

우리의 소중한 꿈은

긴 기다림 끝에

봄을 만나 아름답게

피어나고 있어]

후렴구는 차지운의 파트였다. 개성이 강한 박선우의 다음 파트임에도 전혀 묻히지 않는 유니크한 음색이 한순간에 귀를 사로잡았다. 이 둘의 음색 합은 지금껏 들어 본 적이 없었는데, 묵직함과 청량함이 잘 어울렸다.

[추운 겨울의 끝자락에 만나

봄의 인사를 나누고

우리의 여정은 시작되었지]

차지운은 울컥한 듯 파트가 끝나고 조금 급하게 마이크를 내렸다. 옆에 있던 박재봉이 눈치채고 차지운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렸다.

“미치겠네, 왜 울어 진짜…….”

K는 이미 눈가가 충혈된 지 오래였다. 문스트럭 역시 눈시울이 붉어졌다. 단순히 아쉬움이 아니었다. 서바이벌 내내 함께 웃고, 울었던 순간이 주마등처럼 지나갔다. 서바이벌이 끝나더라도 승빈을 응원할 거라는 마음은 변함이 없었다.

다만 연습생들의 청춘을 함께한 것에 대한 벅차오름과, 끝이 왔다는 것의 아쉬움일 뿐이다. 데뷔를 한다면 또 다른 설렘이 있겠지만 이렇게 치열하지만 순수한 모습을 다시 볼 수 있을까, 약간의 두려움도 섞여 있었다.

하지만 관객석의 팔로워들을 보며 눈을 반짝이는 승빈의 모습에 문스트럭은 마음을 다잡았다.

‘진짜 승빈이만 믿고 간다.’

다음은 재봉과 선우의 페어 파트였다. 유난히 투탁거리는 순간이 많았던 둘이었기 때문에 팔로워들은 꿀 떨어지는 눈으로 지켜봤다.

[한때는 찬바람에 떨기도 했지

하지만 우리는 알아]

[서로의 온기를 느낀다면

시린 바람도 봄바람이 된다는 것을]

파트가 끝나고 박선우가 환하게 웃으며 박재봉을 툭 건드렸다. 박재봉도 잠깐 뾰로통한 얼굴을 하다가 입가 가득 웃어 보였다.

”어떻게 가사도 저 둘한테 딱 어울리는 파트를 받았냐?“

”난 사실 저 둘 같이 데뷔하길 바라고 있어.“

”너도? 나도. 박박즈 쟤네 케미 너무 귀여워.“

빨갛게 물들인 박재봉의 머리가 가볍게 흔드는 몸을 따라 찰랑거렸다. 연한 크림색의 의상과 포인트가 된 리본이 몽글한 느낌을 주었다. 마이크를 두 손으로 쥐고 노래를 부르는 박재봉의 눈동자에도 물기가 어리고 있었다.

절정을 향할수록 잔잔한 피아노에 기타 소리가 들어오면서 점차 분위기가 고조됐다.

[포기하지 않고

내게 내민 손]

[붙잡고 일어섰던

수많은 순간들]

[절대 잊지 못할 거야

여름보다 뜨거웠던

우리의 봄을]

한 파트씩 서로의 눈을 바라보며 맞춰 가는 연습생들의 모습은 벅찬 감동을 주었다.

[스쳐 지나간 시간 속

어느 하나 소중하지 않은

순간은 없었고

이제는 우리의 이야기

마침표를 찍으려 해]

문승빈이 클라이맥스에서 고음 파트를 해냈을 때 문스트럭은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승빈의 보컬에는 정체기가 없었다. 그사이 보컬 실력이 더 단단해졌고, 여러 개의 무대를 소화하느라 묘하게 쇳소리가 났었지만 그조차도 노래의 분위기와 너무 잘 어울렸다. 승빈의 뺨을 타고 흐르는 눈물이 조명을 받아 반짝였다. 문스트럭은 놀란 와중에도 승빈을 처음 본 날을 떠올렸다.

‘너는 정말 한순간도 빛나지 않은 적이 없구나.’

승빈이 이 정도로 눈물을 보인 적이 없었기 때문에 모두 놀란 듯했다. 마이크를 꾹 쥔 손이 붉어졌고, 잘게 떨리고 있었다. 승빈이 얼마나 무대를 사랑하고 아이돌의 꿈을 바랐는지 다 알 수 없겠지만, 그 간절한 마음이 고스란히 전해지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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