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4화
현장은 연습생의 정체를 추측하는 소리로 웅성거렸고, 마침내 공개된 연습생은 바로 문승빈이었다.
[크리드 CR:ID]
“미친, 문승빈이었네.”
“쟤는 무슨… 항상 혼자 아이돌 2회차 느낌이야.”
덤덤하게 이름 뜻을 설명하는 모습에 다들 ‘역시 문승빈이다.’라는 반응이었다.
“음, 아무래도 씨넷 덕분에 데뷔하게 되는 거니까 상징성 있는 C가 들어가는 게 좋을 거 같았어요. 팔로워분들이 저희를 데뷔조로 만들어 주시는 거니까 C로 시작하는 단어 중에서도 Create를 선택해 봤고, ID도 여러 의미로 쓰일 수 있어서 합쳐 봤습니다.”
“팬분들을 통해서 저희의 정체성이 완성된다고 생각해서요.”
-쟤가 뭐라는 거야 지금ㅠㅠㅠㅠㅠㅠㅠ 미쳤냐고ㅠㅠㅠㅠ
-엄마, 엄마딸 남자 때문에 울어 지금ㅠㅠㅠㅠㅠ
-승빈이 똑부러진거봐ㅠㅠㅠ
-역시 천재아이도루임
-작명도 잘하면 어쩌자는거냐 승빈아ㅠㅠㅠㅠ
-씨넷 저작권료 내라 진심ㅡㅡ
-날로 먹네 이샛기들.........ㅂㄷㅂㄷ
“뭔가 제가 지은 이름으로 데뷔한다면 정말 뜻깊을 거 같아요.”
해맑게 웃는 문승빈에 현장 이곳저곳에서 앓는 소리가 터져 나왔다.
“데뷔하자, 승빈아!!!!”
“목소리 진짜 크다…….”
“문스트럭인가 그 사람인 듯? 저 사람 다른 경연 때도 목소리 크기 장난 아니어서 기억해.”
“아, 문승빈 홈마?”
“응, 사진 X나 잘 찍는 사람. 만우절 때 윤빈이 사진 올렸는데 나 아직도 배사 그거잖아.”
“나중에 재봉이도 한번 찍어 주셨으면 좋겠다.”
“같이 데뷔할 텐데 가능하지 않을까?”
“야, 최고의 칭찬이다. 그럼 내년 만우절에도 윤빈이 사진 올려 주실 듯?”
“진짜 셋 다 데뷔하면 베스트인데…….”
그렇게 VCR이 끝나고 윤승철의 안내 멘트가 나왔다.
“그룹명 선정 과정에서 집계된 정확한 투표수는 파이널 방송이 끝난 후, 연습생들의 총득표수와 함께 공개하겠습니다.”
“울트라 몇 퍼센트 나왔는지가 더 궁금…….”
“즈영히흐르그흐뜨.”
“아, 알겠어! 근데 뭐가 또 뜨네?”
[데뷔조 특혜]
“‘크리드’로 데뷔하는 7명의 연습생들에게는 데뷔의 기회와 함께 씨넷 단독 리얼리티 그리고 최고의 프로듀싱 팀을 포함한 전폭적인 서포트를 받게 됩니다. 그리고 1위, 센터로 데뷔하는 연습생에게는 추가적인 특혜가 있는데요. 하나는 모두 아시죠?”
“네!!”
“바로 데뷔곡 센터 확정입니다. 그리고 이번 시즌부터는 추가적으로 하나의 특혜가 더 있는데요.”
“뭘 또 줘?”
-뭐야???
-ㅋㅋㅋㅋㅋ뭐 솔로곡이라도 주게?
┕개싸움나짘ㅋㅋㅋㅋㅋㅋㅋ
-상금 주려나?
┕차 주는거 아니야? 개부럽다.
-하긴 쇼캐는 상금 겁나 주잖아ㅇㅇ
-데뷔만 하면 돈길 걸을텐데 상금까지 줘야 함?ㅠ
“바로, 데뷔조인 ‘크리드’ 세계관의 문을 여는 솔로 곡이 부여됩니다!”
“솔로 곡?”
“미친!!”
-???????????
-야 좀전에 솔로곡 얘기한 댓글 어디감?
┕성지순례가야겠는데?
-데뷔하자마자 팬덤분열 오지겠넼ㅋㅋㅋㅋㅋㅋ
-솔로곡 군침도네;;
“자동적으로 이 솔로 곡은 데뷔 앨범의 첫 번째 트랙으로 담길 예정입니다.”
-개같이투표한다
-투표권 더 못사냐?
-ㅁㅊ 일번트랙이요????????
-악개 ㅈㄴ많아지겠네;;
┕솔로곡 받고 악개소리듣기? 개이득ㅇㅇ
“이제 ‘다시 봄’의 무대만을 남겨 놓고 있습니다. 그리고 투표 시간도 10분밖에 남지 않았는데요. ‘다시 봄’ 무대 시작 전에 투표를 마감하니, 아직 투표를 안 한 팔로워분들은 서둘러 주시길 바랍니다!”
* * *
‘본 투 샤인’ 무대를 마치고 대기실로 향하는 길에 지운이 형이 걱정하며 물었다.
“얼굴 괜찮아?”
“아, 괜찮아요. 그냥 살짝 긁힌 거예요.”
“약 잘 발라, 흉 지겠어.”
“네.”
페이스 체인을 떼는 건 사실 계획에 없었다. 리허설 때도 큰 문제가 없어서 걱정하지 않았는데, 현장 분위기에 흥분해서 춤을 더 격하게 추니까 덜컹거리는 페이스 체인이 거슬리기 시작했다. 그래서 나름 조심했다 생각하고 떼어 냈는데 피가 나 버리고 말았다.
만나는 연습생마다 걱정을 하기에 나중에는 내가 먼저 괜찮다고 말할 정도였다.
‘그나저나 이걸 어떻게 하지…….’
다른 곳도 아니고 얼굴에 생긴 상처다. 게다가 ‘다시 봄’은 얼굴에 장식을 해야 하는 무대여서 더 고민이 컸다. 그때, 머릿속을 스쳐 가는 아이디어가 있었다. 비록 예상치 못하게 다쳤지만, 전화위복이 뭔지 보여 줄 테다.
그렇게 대기실에 도착해서는 다 같이 그룹명 선정 과정을 지켜봤다. 그리고 마침내 ‘크리드’가 선정되었을 때는 정말 기분이 묘했다.
‘이게 된다고?’
‘크리드’라는 이름은 사실 전 그룹명이 ‘티벡스’로 결정된 날 혼자 지어 본 이름이었다. 임팩트라곤 하나도 없이 지어진 그룹명이 마음에 안 들었기 때문이었다. 미성년자여서 망정이지 아니었으면 바로 깡소주 깠을 텐데.
시즌 2에서는 데뷔조 팀명 후보를 연습생들이 낸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기 때문에 반신반의하는 마음으로 크리드를 제안했다.
원래 투마월 시즌 2 데뷔조의 이름은 ‘투샤인’이었다. 성재 형이 제안한 이름이 선정됐지만, 결국 형은 데뷔하지 못했다. 그래서인지는 몰라도 원래 투마월 시즌 2 파이널에서는 씨넷이 그룹명을 연습생이 지었다는 것 자체를 공개하지 않았다. 다들 그냥 방송국에서 정한 이름에 투표를 한 걸로 알고 있었다.
그런데 내가 배우 활동을 시작한 즈음, 성재 형이 ‘투샤인’ 이름은 자신이 제안한 것이라고 폭로를 했던 거다.
[도둑맞은 그룹명… ‘투샤인’은 씨넷의 것이 아니었다.]
[소년들의 꿈을 담보로 한 어른들의 추악함…….]
[아이돌 연습생의 충격 폭로!]
[사람을 상품화하는 서바이벌, 이대로 괜찮은가?]
비슷한 내용의 헤드라인이 포털 사이트 연예면과 사회면에 가득했다. 한동안 메인 뉴스와 공중파 뉴스에도 올라오는 등 사회적 이슈가 된 사건이었다. 심지어 회귀 전에는 성재 형이 데뷔에도 실패한 상황이었기 때문에 그 파장은 더 컸다.
투마월 시즌 3 시작과 비슷한 시기에 터진 일이어서 더 큰 이슈가 된 것도 있었다. 연습생들에 대한 보호나 존중이 부족한 프로그램이라는 것은 모두가 알던 사실이었지만, 노골적으로 그룹명을 갈취한 것이나 마찬가지였기 때문이다.
아마 성재 형이 데뷔조에 들었거나, 아슬하게 10위권 안에라도 드는 연습생이었다면 공개를 했을지도 모른다. 아니, 했을 거다. 그러니까 연습생들에게 후보를 제안하라고 했겠지. 하지만 성재 형은 회귀 전 18위로 탈락했기 때문에 아예 그룹명 공모에 대한 에피소드 자체를 지워 버린 게 분명했다.
‘어쨌든 크리드가 되면서 또 회귀 전과 달라졌네.’
지금까지는 알고 있던 과거가 달라지면 신기하면서도 두려워했는데, 이번에는 달랐다. 그냥 더 깊게 생각할 것도 없이 행복했다. 원래도 데뷔하고 싶은 마음이 가득했지만, 이제는 그걸 넘어 간절해질 정도였다.
“크리드 누가 제안한 거야?”
“나도 저거 투표했는데.”
이번에도 자칫하면 출처를 숨길 생각이었는지, 어떤 이름을 제안했는지는 연습생들끼리도 철저한 비밀 리에 진행됐었다. 그리고 내가 제안한 것이 공개되자 여러 연습생에게서 축하를 받았다.
“와, 자기가 지은 그룹명으로 데뷔하면 무슨 기분일까? 진짜 축하해.”
“고마워요, 근데 아직 결과 안 나왔는데.”
“야, 넌 당연히 데뷔하지!”
성재 형이 축하해 주는데 기분이 이상했다. 내가 투마월에 참가하면서 데뷔조 이름이 ‘투샤인’에서 ‘크리드’가 된 것이 형에게는 과연 좋은 변화인지 아닌지 가늠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예측할 수는 없지만 성재 형에게도 좋은 영향을 주었길 바랄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센터 특혜도 연습생들 사이에서 이슈였다.
“와, 센터 특혜 봤어요?”
“그니까. 솔로 곡은 웬만큼 연차 쌓이고 나서야 할 수 있는 거잖아.”
옆자리에서 메이크업을 받던 박재봉이 말했다.
“저 솔직히 데뷔만 해도 너무 감사하다고 생각해서 1위 욕심까지는 없었는데 솔로 곡은 너무 탐나요.”
“오, 무슨 콘셉을 하고 싶은데?”
“저의 카리스마를 보여 줄 수 있는 센 콘셉?”
“어릴 때 귀여운 거 많이 해 둬-”
“그치만 너무 귀여운 모습만 보여 드리기는 싫어요.”
“너 나중에 귀여운 거 하고 싶어도 눈치 보이는 나이 되면 후회한다?”
“귀여운 거 너무 많이 해서 이제 안 해도 되지 않을까요?”
‘큰일 날 소리 한다, 재봉아.’
솔로 곡 특혜 역시 시즌 2에만 있다가 욕이란 욕은 다 먹고 사라진 걸로 알고 있다. 회귀 전 센터였던 정유현은 솔로 곡으로 인해 개인 팬덤은 늘어났지만, 투샤인 전체 팬덤 내에서는 한동안 시끄러웠던 걸로 기억한다.
‘이번엔 누가 센터가 될지 모르겠지만 고생 꽤나 하겠네…….’
대기실 모니터 속에서는 윤승철이 멘트를 이어 갔다.
“이제 투마월 시즌 2의 마지막 무대, ‘다시 봄’ 무대만을 남겨 두고 있습니다. 지난봄의 시작부터 오늘까지 숨 가쁘게 달려온 연습생들이 준비한 무대를 보시기 전에, VCR 먼저 보고 오겠습니다.”
멘트가 끝나자마자 대기실에 들어온 스태프가 무대 준비를 마무리하라고 알렸다. 모니터로 VCR을 확인하면서도 분주하게 헤어와 메이크업을 수정받았다.
“녹음할 때 진짜 힘들었는데-”
“맞아요. 작곡가님이 진짜 완벽주의셔서…….”
“말도 마, 나 겨우 한 소절이었는데 100번 하고 오케이 받았잖아.”
“무대 엄청 기대돼.”
“맞아. 팔로워님들도 엄청 좋아하실 거 같아.”
‘다시 봄’이라는 제목처럼 봄이 떠오르는 스타일링이었다. 작정하고 감동을 유도하는 곡이기 때문에 현장 분위기를 따스하게 만들어 줄 것이다.
“무대 하다가 울지나 말았으면 좋겠다.”
성재 형의 말을 듣는데 녹음하던 날이 떠올랐다. 다들 투마월이 끝나 간다는 것을 담담하게 받아들이는 듯했는데, ‘다시 봄’ 녹음 과정에서 눈물을 보인 연습생이 많았다.
그도 그럴 것이 ‘다시 봄’의 프로듀싱팀 ‘클라우드’는 투마월의 애청자였다. 그래서인지 파트 분배와 가사 하나하나 연습생들을 생각하며 정했다는 게 뚜렷하게 보였다. 자신의 상황과 투마월에서의 시간이 고스란히 담긴 가사를 부르다 보니 저절로 감성적이게 될 수밖에 없었을 거다.
“연습생들 무대 위로 스탠바이해 주세요!”
아, 정말 마지막 무대구나. 정신없는 백스테이지에서 연습생들은 의상을 정돈하고, 마지막으로 힘차게 파이팅을 외쳤다.
“다들 수고 많았어, 애들아!”
윤승철의 응원과 함께 모두 무대 위로 올랐다. 벌써부터 울컥한 연습생들이 보였다. 나는 절대 안 울 것이다. 오히려 노래 분위기에 맞게 눈물 한 방울 정도 흘리는 연기를 해 볼까 생각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