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3화
지금껏 윤빈에게서 보지 못한 결연함이었다. 처음 보는 윤빈의 낯선 모습에 현장의 관객석이 술렁거릴 정도였다.
“미친…….”
지난 순위 하락으로 묘하게 텐션이 낮아진 게 느껴졌는데, 저렇게 비장한 각오를 말하니 수진의 전투력도 올라가는 기분이었다.
[본 투 샤인 무대가 지금, 시작합니다!]
무대 중앙부터 조명이 들어오고, 주변을 감싼 연습생들이 하나둘 옆으로 나오면서 센터인 문승빈이 등장했다.
“와!”
“미친, 승빈아!!”
1절 센터인 문승빈의 원샷을 시작으로 무대가 시작되었는데, 수진과 수정 모두 헉했다.
“미친, 작정했네.”
“지금 페이스체인을 한 거지?”
전광판에 비친 문승빈의 얼굴은 비주얼쇼크 그 자체였다. 얼굴에 실버 페이스체인을 두른 모습에 모두 환호했다. 특히 손가락 사이로 문승빈의 눈이 클로즈업되면서 노래가 시작됐는데, 실버체인 덕분에 신비로운 느낌이 더 부각됐다.
-ㅁㅊㅁㅊㅁㅊㅁㅊㅁㅊㅁㅊㅁㅊㅁㅊㅁㅊㅁㅊㅁㅊㅁㅊ
-도른놈아!!!!!
-ㅅㅂㅅㅂ내가 지금 문승빈 페이스체인을 보고있는거냐?
┕좋은 삶이었다…
-승빈이오늘 와꾸미쳤네;;
[깨어나 태어나 빛이 나]
묵직한 밴드 사운드와 함께 시작한 ‘본 투 샤인’은 처음 듣는 곡임에도 귀에 익숙했다. 의아해하던 수정과 수진이 노래의 비밀을 발견한 건 다음 소절부터였다.
[길고 긴 잠에서 깨어나
이제는 새롭게 태어나
내게서 시작된 History
선물해 줄게 잊지 못할 Memory]
“이게 유닛 두 곡 합친 거라고 했지?”
“응, 그냥 연달아 붙인 건가?”
그런데 ‘본’ 노래를 그대로 붙여 놓은 것이 아니라, ‘샤인’과 매쉬 업을 한 거였다. 그래서 웅장하면서도 청량한 새로운 느낌의 무대를 볼 수 있었다.
“이걸 이렇게 섞을 수가 있네?”
“그니까, 각자 들었을 때보다 더 좋은데?”
[쉼 없이 달려온
모든 순간은
오늘을 위해서야]
“재봉이도 샤인 파트 하네?”
‘본’처럼 각 잡힌 곡도 좋지만, 역시 아직 재봉의 나이에는 청량이 더 잘 맞는다고 수정은 생각했다. 길지 않은 파트지만 짧은 시간 안에 사람의 눈을 사로잡는 능력은 여전했다.
모두가 기대한 킬링 파트에서도 문승빈은 기대 이상이었다. 빛을 표현하기 위해 연습생들이 텃팅 동작을 하며 문승빈을 중심으로 모였다가 퍼져 나갔다. 그 한가운데에서 문승빈은 깔끔하게 안무를 해냈다.
[눈부시게 빛나는 스포트라이트
무대 위 그 누구도
나만큼 빛날 순 없어
본 투 샤인]
1절이 마무리되고, 9명의 연습생들이 무대 뒤로 들어가면서 2절 팀 연습생이 등장했다. 1절 팀이 푸른 계통이었다면, 2절은 흰색 계열의 의상이어서 청룡과 백호의 바톤 터치 느낌이었다. 윤빈이 센터로 걸어오는데, 수진은 1차 경연 때 느꼈던 벅차오름이 떠올랐다.
“윤빈이가 선택한 아이템은 뭐지?”
“팔에 뭐가 있는데?”
“미친, 저거 타투 스티커임?”
윤빈의 팔뚝에는 은하수와 고래가 그려진 타투 스티커가 있었다. 그리고 목에도 영어로 무언가 적혀 있었는데 정확히 보이지는 않았다.
-찐타투 아니지?
┕찐이겠냨ㅋㅋㅋㅋ?
┕아 다행이다;;
-해외파자나 찐일수도 있지
┕ㄴㄴ스티커야 윤빈이 무서워서 타투 못할듯ㅋㅋㅋㅋㅋㅋ
┕ㅇㅇ1차 경연때랑 아무것도 없었어
-근데 영어로 뭐라고 쓴거임?
┕흐릿해서 잘안보여ㅠㅠ
┕고화질뜨면 봐야겠음ㅇㅇ
[이곳을 벗어나
한 번 더 빛이 나
잠든 꿈이 깨어나
내 앞을 비출 사람은 그 누구도 없어
스스로 빛을 내 샤인 어게인]
호랑이 한 마리가 걸어오는 듯한 포스는 여전했다. 딱 맞게 핏이 떨어지는 바지에 민소매를 입었는데, 안무를 할 때 유독 힘이 좋다는 걸 확인할 수 있었다.
“근육 움직이는 것 봐…….”
“와, 피지컬은 진짜 미쳤네.”
“홈마들이 제발 레전드 영상 하나 남겨 줬으면 좋겠다.”
수진은 핸드폰으로 찍으려다가, 이런 구린 화질로 남길 바엔 두 눈에 담기로 했다. 마침 얼마 전에 시력 교정 수술을 했는데, 피눈물 내며 냈던 돈이 아깝지 않게 됐다. 그녀의 540만 원짜리 신상 눈은 제 가격을 톡톡히 해냈다.
‘본’ 무대와는 달리 눈이 반달이 되도록 웃는 모습에 수진은 절로 기분이 좋아졌다. 웃을 때면 깊게 패이는 보조개도 그녀의 입덕 포인트 중 하나였다. 매 경연 강렬한 모습을 자주 보여 줬던 것과는 다른 새로운 매력을 발견한 기분이었다. 수진은 이렇게 또 한 번 입덕했다.
[Born to be a shining star
수많은 별 중 가장
빛나는 내가 되는
이 순간을 주목해]
1, 2절이 끝나고 하이라이트 파트에서 열여덟 명의 연습생이 한자리에 모였다. 배경으로 깔렸던 사운드가 다 빠지고 센터인 문승빈과 윤빈의 파트가 이어졌다. 그리고 서로 어깨를 잡고 아예 뒤로 확 누워 버리는 페어 안무로 현장 분위기는 최고조에 도달했다.
“애들 허리 다치겠다.”
“그치만 너무 좋다…….”
[절대로 잊지 마 이 순간
꿈처럼 하나가 되어
빛나는 너와 나
스스로 빛을 내
본 투 샤인]
1절, 2절 팀들이 서로 마주 보며 거울에 비친 듯 안무를 하다가 다시 일사불란하게 섞였다. 같은 군무이지만 역시 다인원이 하는 거라서 안무 자체가 주는 강렬함이 달랐다.
[눈부시게 빛나는 스포트라이트
무대 위 그 누구도
나만큼 빛날 순 없어
본 투 샤인]
화려한 엔딩과 함께 ‘본 투 샤인’ 무대가 끝났다. 현장을 가득 채울 만큼의 꽃가루가 쏟아졌다. 엔딩 요정은 역시 센터인 두 연습생의 것이었다. 얼굴과 머리 위로 꽃가루가 잔뜩 내려앉았지만 연습생들은 미동도 없이 카메라에 집중했다.
“와, 윤빈이 센터 한 번도 못 했으면 나 억울해 뒤졌을 듯.”
수진의 말에 수정은 은은하게 웃으며 답했다.
“응, 내가 지금 그래.”
나직한 한마디였지만, 뼈가 있었다.
“아, 쏘리.”
그런데 문승빈의 얼굴이 클로즈업되자 주변에서 걱정의 목소리가 가득했다.
“뭐야, 피야?”
“헐, 페이스 체인 떼면서 긁혔나 봐.”
“아프겠다…….”
-ㅁㅊ 승빈이 얼굴뭐야.
-긁혔나봐ㅠㅠㅠㅠㅠㅠ
-다음 무대해야하는데 어쩌냐;;
-얼굴이생명인데 이게뭐야!!!!!!!!
-야 근데 피나서 좋은거 나뿐이냐?
┕22....
┕미안하다 승빈아 그치만 너가먼저!
┕애가 다쳤는데 싸패냐?
걱정으로 가득하던 분위기를 상쇄시킨 건 박선우였다. 꽃가루가 쏟아져도 두 눈을 꿈쩍도 안 했는데, 깊게 숨을 들이마시던 찰나에 꽃가루가 입에 들어간 것이다. 급하게 뱉는 장면이 화면에 잡히면서 현장에 있던 많은 팔로워들은 웃음이 터졌다.
“진짜 귀엽다…….”
“선우야!!!!”
“아, 귀여워!!!!”
-ㅁㅊ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예능신이 도왔넼ㅋㅋㅋㅋㅋㅋㅋㅋ
-선우 에퉤퉤하는거 왜이렇게 커여웤ㅋㅋㅋㅋㅋㅋㅋ
-사랑스러워ㅠㅠㅠㅠ
-왜 선우에게만 이런일잌ㅋㅋㅋㅋㅋㅋㅋㅋㅋ
-짱쎈고양이었다가 힝구고양이 되어벌임ㅋㅋㅋㅋㅋㅋㅋㅋ
* * *
어수선한 현장 분위기가 정리된 후 윤승철이 다시 무대 위에 등장했다.
“세 번째 무대 ‘본 투 샤인’까지 보고 왔습니다. 팔로워님들 즐거우신가요?!”
“네!!!!”
“이제, 여러분들이 가장 궁금해하고 기대하셨을 투마월 시즌 2 데뷔 그룹명을 공개하겠습니다!”
투마월 시즌 2 데뷔조의 그룹명은 이미 씨넷 홈페이지에서 후보가 공개됐고, 공개 투표를 받았다.
“언니, 뭐 투표했어?”
“나? 크리드. 너는?”
“나는 투샤인. 나도 크리드랑 고민했는데 이게 더 직관적이어서.”
“아, 근데 3번인가? 울트라? X나 구려서 빵 터졌잖아-”
“울트라는 나도 흐린 눈 함.”
“이름 뜻도 너무 구려서 도대체 어쩌다 저게 후보가 됐나 했잖아.”
“어? 공개하나 보다.”
전광판에 카운트다운이 시작되고 팔로워들의 기대감도 증폭됐다. 그리고 카운트다운이 끝난 화면에는 두 개의 이름이 떠올랐다.
[크리드 CR:ID/ 투샤인 TO SHINE]
“뭐야? 최종 후보라는 건가?”
“어, 퍼센트 나온다!”
각 이름 옆의 숫자가 점점 올라가더니 ‘크리드’가 40%, ‘투샤인’이 35%에서 멈췄다.
[크리드 CR:ID]
Create+ ID(아이디/이드)의 합성어로 팔로워들과 함께 아이돌로서 자아를 완성해 가고, 팔로워들의 이상을 창조한다는 의미.
“오, 크리드가 됐네?”
“투샤인 안 돼서 아쉽긴 한데 확실히 유니크한 이름이긴 해.”
“그치, 그리고 난 의미가 너무 마음에 들었어.”
“저 둘이 압도적이었네, 후보가 그렇게 많았는데.”
현란한 로고 모션이 전광판을 가득 채우자, 현장은 전례 없는 함성 소리로 가득했다.
“투마월 시즌 2 데뷔조의 이름은 ‘크리드’로 선정되었습니다. 그런데 팔로워 여러분, 여러분이 투표했던 후보 그룹명들의 출처가 궁금하지 않으신가요?”
윤승철의 물음에 다들 어리둥절한 반응이었다.
“출처? 그냥 제작진들이랑 방송국에서 만든 거 아니야?”
“작명소라도 갔나?”
“뭐래…….”
“VCR을 통해 확인하겠습니다!”
흥미와 함께 궁금증이 가득한 팔로워들은 화면에 나온 장면에 기함했다.
“미친놈들 아니야?”
“와…….”
VCR에 나온 것은 바로 연습생들이었다. 공통된 질문에 한 명씩 답하고 있었다.
“그룹명을요? 저희가 직접?”
“저희가 후보 명을 내면 팔로워님들이 투표를 하신다는 거죠?”
“우와! 제가 지은 이름으로 데뷔할 수도 있다는 거네요?”
해맑은 연습생들의 얼굴에 현장에 있던 팔로워들은 탄식했다.
“아니, 저랬는데 자기가 지은 그룹명으로 데뷔하고 본인은 떨어지면 뭐가 되는 거야?”
“미친 거 아니냐고-”
게시판 반응도 싸늘했다.
-아 진짜 끝까지 잔인하네;;
-뭐가 좋다고 웃어 이놈아ㅠㅠㅠㅠ
-크리드 누가 지은거냐 연습생말고 엔터사 취직해야하는거 아님?
-저랬는데 그룹명만 채택되고 탈락하면 ㅈㄴ맴찢일드슈ㅠㅠ
가장 먼저 나온 연습생은 박재봉이었다. 수정은 재봉이 분명 크리드를 지었을 것이라고 믿었다. 하지만 이내 박재봉이 쓴 그룹명에 입이 떡 벌어졌다.
[울트라]
“미친.”
“아학학학하!”
“웃지 마…….”
“아, 배 아파, 미친.”
수진은 넋이 나간 수정의 얼굴에 배를 쥐고 웃었다. 방금까지 구리다며 온갖 욕을 했던 이름일 줄이야. 수정은 애써 울트라를 변호하기 시작했다.
“우, 우리 재봉이한테 최상급은 울트라인가 보지. 야, 울트라 얼마나 직관적이고 외우기 쉽니? 한번 들어도 절대 안 잊을 듯.”
“그야… 잊기 힘든 이름이긴 하지?”
[박재봉 연습생의 엉뚱함에 빵 터진 현장]
“왜 울트라예요?”
“제일… 좋아서?”
해맑게 이름을 설명하는 재봉의 모습에 팔로워들도 골 때린다는 반응이었다. 다음은 이성재였다. 수진이 뽑은 이름이 바로 성재의 것이었다.
“투샤인이요! 투마이월드라는 이름과도 어울리고, 뭔가 꿈을 향하는 저희 같아서? 그리고 부르기도 쉽고요!”
“아, 투샤인 진짜 아깝긴 하다. 나중에 다른 그룹이라도 써 줬으면 좋겠다.”
“벌써 막 상표권 등록하고 그러는 건 아니겠지?”
“헐, 소름. 설마-”
[데뷔 그룹 이름 선정에 설레어하는 연습생들]
[과연 크리드를 만든 연습생은?]
“누가 한 걸까?”
“정유현?”
“헐, 나도 그 생각함. 아니면 문승빈일 거 같아.”
“뭔가 제일 똘똘한 애들이네.”
모두의 궁금증을 뒤로 하고, 한 연습생이 모자이크된 상태로 화면에 나타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