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1화
‘본’무대의 열기는 쉽사리 줄어들지 않았다. K는 여전히 차지운의 무대로 인한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와…….”
“얘 아까 전부터 ‘와-’만 하고 있어.”
“그럴 만도…….”
그리고 곧 ‘샤인’ 무대 준비 과정 VCR이 나왔다. 슬슬 다리가 아파 왔지만, 문스트럭은 신경을 곤두세웠다. 윤 피디라면 파이널까지도 엿 먹일 수 있는 작자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승빈의 인터뷰 장면이 나왔다.
[승빈 군, 랩은 처음이라던데.]
“네.”
[혹시 랩 한 소절 해 볼 수 있어요?]
“지금요?”
문스트럭은 기가 찼다. 지금 누구 놀리나?
“랩 처음인 애한테 랩 시키는 건 무슨 의도냐?”
승빈의 랩이 나오고, 현장은 3초 정도 정적이었다.
“어, 음.”
“승빈이 랩이 정말 하하, 처음 맞구나.”
국어 책 읽는다는 표현의 의인화 그 자체였다. 문스트럭조차도 첫 소절 듣고 조용히 귀를 막았다. 그리고 속으로 외쳤다.
‘X됐다, X발…….’
주변에서는 걱정과 조롱의 반응이 주를 이뤘다.
“승빈이 어쩌냐.”
“아, X나 웃겨.”
“승빈이 무대 위에서 저 상태면 찐으로 데뷔 어렵겠는데?”
아니나 다를까 게시판 반응도 비슷했다.
-아 이건 쫌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승빈이도 못하는 게 있넼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MC승빈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애 귀 빨개진 것 봨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큐ㅠㅠㅠㅠㅠ
┕덤덤한 척 하는 거 다 티낰ㅋㅋㅋㅋㅋ
“하하, X발 이렇게 엿을 먹이네?”
“야, 혹시 몰라 승빈이가 갑자기 랩을 엄청 잘할지?”
“그러면 난 오늘부터 승빈이 인간 아니고 신이라고 부를 거임.”
“이미 그러고 있는 거 같은데요?”
[위기의 문승빈 연습생의 운명은?]
고민하는 문승빈의 모습이 나오더니, 바로 강도현과 함께하는 장면으로 넘어갔다.
“아, 이 X끼들 또 중간 생략하네.”
[승빈 스쿨은 가라, 이제 도현 스쿨의 시대다!]
“도현이가 승빈이 랩 도와주나 봐!”
A의 상기된 목소리에 문스트럭은 불만을 속으로 삭였다.
‘강도현 이미지 좋게 하는 서사로만 쓰이고 팽 당하는 거기만 해 봐.’
“벗어나, 빛이 나, 깨어나 이 세 문장이 라임으로 연결되는 거잖아? 그럼 여기 부분 할 때 좀 더 강세를 넣어서 하면 돼.”
“벗!어나 빛이!나 깨어나!”
절대음감 게임이라도 하는 것일까, 문스트럭은 이마를 짚으면서도 귀여움에 웃음을 참을 수 없었다. 다행히 주변 팔로워들도 단순히 못한다는 부정적인 반응에서 노력이 가상하다는 반응으로 변하고 있었다.
“아, 미친. 도현이 표정 봐.”
“승빈이 근데 대단하다. 나였으면 민망해서 도와 달라고 못 함.”
문스트럭은 그 말에 또 벅차오른 듯했다.
“내가 그래서 우리 승빈이 사랑하잖아.”
“그런 거 없어도 충분히 사랑하시잖아요.”
“A야, 넌 나에 대해 너무 많이 알고 있다. 죽어 줘야겠어.”
“도현이 데뷔하는 것만 보고 가게 해 줘.”
“응, 그때까지만 참아 볼게.”
무슨 바람이 분 건지 모르겠으나, 편집이 문승빈과 강도현을 중심으로 흘러갔다. 특히 승빈의 경우 레벨 업을 하는 게임 캐릭터처럼 자막과 연출이 들어갔다.
[문승빈의 랩 포인트가 올라갔다!]
[도현 스쿨의 효과는 엄청났다!]
[랩 +1]
“뭐야…….”
“왜? 귀여운데.”
“귀엽지, 당연히 승빈이는 귀엽지. 근데 이렇게 좋게만 나오면 꼭 불안하단 말이지? 윤 피디가 이렇게 순한 맛일 리가 없지 않겠어?”
팔로워들의 윤 피디를 향한 불신은 엄청났다. 오죽하면 편집을 좋게 받거나 갑자기 분량이 늘어나면 ‘탈락했나?’라는 생각이 먼저 들게 됐을까.
-승빈이 오늘 편집 괜찮은데?
-상대는 윤피디다
-승빈이 진짜 성장하는거 보는맛이 있으뮤ㅠㅠㅠㅠ
┕ㄹㅇ하나를 알려주면 백을 배우는 애야ㅠㅠㅠㅠ
점점 성장하는 승빈의 모습이 기특했다. 점점 랩의 모양이 잡히기 시작하면서 문스트럭의 기대감도 고조되고 있었다.
“둘이 VM 때 저렇게 연습했었겠지?”
“쟤네 둘이 냉전이었던 거 전생 같아.”
“둘이 제발 같이 데뷔하자.”
아이돌은 잘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열심히 노력하고 성장하는 모습도 필요했다. 그래서 아이돌로 성공하기가 어려운 거다. 발전할 영역이 없을 정도로 이미 완벽한 아이돌은 아이러니하게도 흥미가 떨어진다. 어디 하나 결핍이 있을지라도 그것을 채워 가는 노력의 과정을 보는 것 역시 팬들 마음에 불을 지르고, 덕심을 타오르게 하는 것이다. 잘하는 놈이 노력까지 한다? 이런 아이돌을 어떻게 안 사랑할 수 있겠는가?
다음은 ‘샤인’의 녹음실 장면이었다. 녹화장에 있던 녹음실을 벗어나 처음 방문한 외부 작업실이었다. 정식 녹음실을 써 본 적이 있을 리가 없는 연습생들이었기에 다들 신기해하는 모습이 귀여웠다.
-갓기들 녹음실 처음이라 눈 휘둥그레햌ㅋㅋㅋㅋㅋㅋㅋㅋ
-귀여웤ㅋㅋㅋㅋㅋㅋ큐ㅠㅠㅠㅠ
여기서도 문승빈이 눈에 띄었다. 다른 연습생들과는 달리 능숙하게 녹음을 한 번에 마치는데, 문스트럭은 그 프로미에 또 한 번 반했다.
“내가 녹음해 본 사람 중에 제일 최단 시간으로 녹음 마친 거 같아.”
“감사합니다!”
“수고 많았어요.”
거기다가 다른 연습생들의 녹음을 도와주는 장면까지 완벽했다.
-문승빈 아이돌 2회차냐곸ㅋㅋㅋㅋ
-승빈이 녹음해본적 있는건가?
-VM에서 데뷔조였으면 녹음해보지 않았을까?
-여기서도 승빈스쿨ㅋㅋㅋㅋㅋㅋㅋ
“승빈 군, 혹시 후렴구에 애드리브 녹음해 볼 수 있을까요?”
“네!”
“아, 작곡가님. 진짜 감사합니다.”
문스트럭은 작곡가가 있는 방향으로 절이라도 하고 싶었다. 정식 파트는 아니지만 무대 위에서 노래 한번 부를 기회는 생기는구나 안심했다.
그리고 승빈도 그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짧은 애드리브였지만 임팩트를 주기에 충분했다.
“오케이! 잘했어요.”
“네, 저 작곡가님 혹시…….”
“뭐 더 필요한 거 있어요?”
“애드리브 부분에 화음 넣어도 괜찮을까요? 소리가 더 풍성해질 거 같아서요.”
“화음 넣을 줄 알아요?”
“네, 당연하죠.”
“그럼 한번 해 봅시다.”
“감사합니다!”
익숙하다는 듯 원래 애드리브 위에 높은 음과 중간 음, 낮은 음이 차례대로 쌓여 갔다. 연습생들도 선망의 눈으로 녹음실 속 문승빈을 바라봤다.
-대박;;
-화음 너무 좋다ㅠㅠㅠㅠ
-절대 음감이야?
-ㅈㄴ사기캐 아니냐고;;
녹음실을 끝으로 VCR 분량이 끝났다. 비장한 비지엠과 함께 연습생들의 각오가 한마디씩 나왔다.
[마지막까지 최고의 무대 보여 드리겠습니다!]
[절대 뒤돌아보지 않을 거예요.]
[데뷔까지 멈추지 않겠습니다.]
마지막으로 승빈의 내레이션이 나왔다.
[무대 위에서 누구보다 빛나겠습니다.]
[‘샤인’ 무대가 시작됩니다.]
“미친, 승빈이 핑머에 청량 너무 기대돼…….”
카운트다운이 시작되고, 문스트럭은 승빈이 이번에는 어떤 신선한 충격을 줄지 잔뜩 기대하고 있었다. 조명이 들어오고 연습생들의 모습이 공개됐다.
“센터 선우네?”
아무래도 문승빈이 센터가 되기에는 무리가 있었다고 생각했지만, 내심 아쉬운 건 어쩔 수 없었다. 센터인 박선우의 윙크와 함께 인트로 반주가 시작됐다. 여기저기서 앓는 소리가 터져 나왔다.
“미친…….”
“눈 밑에 글리터 반짝인 거냐?”
“X나 글리터신이 도우시네.”
[오직 내게 주목해
눈부시게 빛나는]
‘본’ 팀이 무게감 있는 무대였다면, ‘샤인’은 그보다 힘을 조금 뺀, 청량함이 느껴지는 곡이었다. 그래서 스타일링도 키라키라한 것들이 주를 이뤘다. 문스트럭은 승빈의 스타일링을 보고 119를 부를 뻔했다. 안 그래도 딸기 우유색으로 염색해서 가만히만 있어도 상큼한데, 눈 밑에 반짝이는 파츠까지 붙여 놓으니 요정 그 자체였다.
“승빈이 완전 요정님인데?”
“파츠 개이뻐.”
“노래 진짜 청량하다.”
경쾌한 피아노 선율로 시작한 노래는 적절한 이디엠 사운드와 함께 듣는 것만으로도 시원함을 느낄 수 있었다. 장시간의 대기와, 다닥다닥 붙어 있는 공연장에서 피로감을 느꼈을 팔로워들에게 힘이 될 노래였다.
[쉼 없이 달려온
모든 순간은
오늘을 위해서야
어둠 속에서 헤매며 깨달아
난 빛나고 있어]
“역시 강도현이네.”
“내 새끼 너무 잘해…….”
강도현의 음색과 잘 어울리는 곡이라고 생각했고, 역시 완벽하게 소화했다. 목소리 자체도 높은 톤에 청량한 느낌인데 리드미컬함까지 갖추고 있어서 더 잘 어울렸다.
[어둠도 두렵지 않아
오히려 나를
더 빛나게 해
Cause I’m a shining star]
정유현도 의외로 잘 어울렸다. 지금까지 청량 콘셉을 한 적이 없었는데 완전 아이돌 스타일링을 해 놔도 잘 어울렸다. 저 얼굴에 뭔들 안 어울리겠냐만.
“와, 정유현 청량도 잘 어울릴 줄 몰랐네.”
“역시 잘생기면…….”
[어두웠던 시간은
눈 깜짝할 사이 사라져
무대 위 조명보다도
밝게 빛날 나니까 투 샤인]
메인 보컬 파트를 하는 김병대를 보면서 문스트럭은 배가 아팠다.
‘X발, 지금 승빈이는 누구 때문에 랩 하는데…….’
심지어 랩 파트는 2절에 있는 건지, 1절에는 파트가 하나도 없었다. 동선도 계속 뒤쪽에 몰려서 전광판에서 안 잡아 주면 얼굴 한번 보기 힘들었다.
“아, 가리지 좀 말아 봐-”
문스트럭이 하소연하기 무섭게 문승빈의 파트가 나왔다. 승빈이 입을 뗀 순간부터 그녀는 속으로 온갖 신에게 기도했다.
‘제발 가사 절지 않게 해 주세요!’
[이곳을 벗어나
한 번 더 빛이 나
잠든 꿈이 깨어나
내 앞을 비출 사람은 그 누구도 없어
스스로 빛을 내 샤인 어게인]
“미친!”
솔직히 말해서 평타만 해도 만족할 마음이었는데 이건 평타 수준이 아니었다. 활동하는 아이돌 랩 멤버들과 비교해도 아쉬울 게 없을 정도였다. 랩처럼 낯선 장르도 잘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있었지만 그 어려운 걸 문승빈은 해냈다.
랩을 처음 해 본다는 승빈의 말이 없었다면 아무도 믿지 않을 무대였다. 하다못해 VCR에서 처음에 못했던 모습이 안 나왔다면, 듣고도 믿지 못할 정도로 수준급의 래핑이었다.
물론, 강도현이나 박선우와 비교한다면 약간의 어색함이 있었지만 그런 건 중요하지 않았다. 사실상 문승빈이 가사만 절지 않는다면 올려치기 당하고도 남을 서사였는데, 그 이상의 것을 보여 줬으니 이제 문승빈의 데뷔에 의문을 가질 이들은 없을 것이다. 당장 문스트럭의 주변에서도 승빈의 랩에 대해 놀랍다는 반응이 주를 이루고 있었다.
“문승빈 랩도 잘하네?”
“그니까. 쟤, 랩 이번이 처음 아니야?”
타팬들도 이 정도였으니 문스트럭의 벅차오름은 비교할 수 없었다.
“K야, 우리 승빈이가 지금 랩도 한 거냐.”
“A야, 나랑 자리 좀 바꿔 주라.”
“야, 이번엔 네가 감당해. 이따가 단체 무대 때는 내가 할게.”
“쟤 제정신 아님.”
“그럴 만도?”
“승빈이가, 랩을 X나 씹어 먹었다고-”
뒤통수를 맞는 충격이 이런 거구나. 문스트럭은 승빈을 처음 본 날 느꼈던 짜릿함과 맞먹는 충격에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나 진짜 이러다가 승빈이 군대 식판 계정 운영하는 거 아니야?’
문승빈에게서 벗어날 생각도 없었지만, 어쩌면 자신의 최장 기간 덕질인 5년을 가뿐히 뛰어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최소 10년 뒤에나 있을 일을 벌써 걱정하는 걸 보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