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혼자 할 거면 두 번 데뷔 안 함-90화 (90/346)

90화

거대한 스크린에 카운트 다운이 시작되었다. 수많은 사람들의 함성이 들렸고, 100명의 연습생들이 무대를 준비하고 있다. 피날레를 화려하게 장식할 시간이 왔다. 피디가 되어 방송을 만드는 것은 거대한 ‘트루먼 쇼’를 만드는 것과 같다. 내가 만든 각본과 설정에 대한민국이 들썩인다는 것은 언제나 짜릿하니까.

투마월 시즌 2는 시즌 1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의 화제성과 인기를 얻었다. 시즌 1의 성공 이후 다들 원조를 뛰어넘는 시리즈는 없다고 얼마나 입을 털었던가. 윤 피디도 끝이라는 둥 내가 망하기만을 바라던 열등감 덩어리들이 좌절할 모습이 선했다.

오늘은 이 프로그램의 마지막이지만, 내 인생의 또 다른 시작이 될 거다. 이걸 발판 삼아 나에게 쏟아질 부와 명예가 눈앞에 훤했다.

[새로운 세계로 떠날 준비 되셨나요?]

“네!!!!”

“으아아악!!!!”

“시작하나 봐!”

스크린에 뜬 문구에 사람들의 엄청난 함성 소리가 터졌다. 이내 조명이 들어오고, 연습생 100명의 모습이 공개됐다.

[눈부셔 New World

나를 향한 이 시선이 짜릿해

너만의 스타 그게 바로 나야]

100명이 다 같이 시그널 송 무대를 한 것은 경기장에서의 도미노 버전 이후 처음이었다. 100명이 똑같은 옷을 입고, 동시에 같은 노래에 춤을 추는 건 내가 생각해도 기이했다. 처음 이 프로그램을 기획한다고 할 때 모두가 미친 짓이라고 했지만 나는 결국 해냈다. 중간 중간 날파리가 꼬이긴 했지만 투마월은 건재했다.

스크린 너머로 연습생들의 얼굴이 보였다. 장시간의 리허설과 격한 안무로 땀이 비 오듯 오고 있었다. 구석에 있는 연습생들은 카메라에 얼굴 한 번 더 잡히겠다고 용을 썼다.

‘찝찝하지도 않나?’

그런 나의 생각과는 달리 연습생들의 눈에는 생기가 돌고 있었다. 그래 봤자 저 중 93명은 7명의 주인공을 위해 만들어진 이 프로그램의 조연에 불과한데 말이다.

보이지도 않는 자리에서 애쓰는 게 한심했지만, 저런 부류의 인간들 덕분에 내 밥벌이가 끊이지 않는 거라고 생각하니 박수 정도는 쳐 줄 수 있었다. 파이널이라 그런지 나답지 않게 너그러운 기분이었다.

[오직 너를 위해 노래할게

새로운 나의 세상으로

눈부셔 New World]

센터인 강도현은 역시 흠잡을 곳이 없었다. 김병대가 그동안 속 썩였던 것을 생각하면 강도현은 아주 굴러온 복덩이다. 이변이 없다면 강도현이 센터로 데뷔할 것이라고 예상하고 있다. 그러면 VM에 면 세우기도 좋겠지.

중간중간 비치는 문승빈의 얼굴은 보기만 해도 재수 없었다. 처음 참가 신청 영상을 봤을 때만 해도 이 정도로 맹랑한 놈일 줄은 몰랐지. 회차가 거듭될수록 내 의지대로 움직이지 않는 게 눈엣가시였지만, 저놈이 투마월의 화제성과 인기에 분명한 도움이 됐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었다.

[떠날 준비가 됐다면

이제 내 손을 잡아

새로운 나의 세상으로

눈부셔 New World!]

화려한 폭죽과 꽃가루가 쏟아지면서 눈부셔 무대가 끝났다.

“와!!!!”

“승빈아!”

“지운아!”

“도현아, 여기!”

엔딩은 데뷔권 연습생들의 것이었다. 특히 김병대를 잘 잡아 달라고 추가적으로 요구했는데 잘 들어갔다. 인물이 부족한 놈은 아니니 알아서 카메라에 잘 나오는 것 하나는 마음에 들었다.

카메라에 문승빈의 얼굴도 잡혔다. 시그널 송 때와 같이 볼을 꼬집는 제스처를 하고 있었다. 그러니까 쟤 팬들은 저런 걸 보고 귀엽다고 열광하는 거지? 실상은 약아빠진 놈인데 말이다. 찢어지는 듯한 함성 소리에 귀를 파는 척 틀어막았다.

데뷔를 못 한다면 가장 베스트겠지만, 그러긴 어려워 보이니 아슬아슬한 순위로 데뷔하기를 내심 바랐다.

‘가사나 한번 절었으면 좋겠네.’

* * *

눈부셔 무대를 마치고 연습생들은 다음 무대를 준비하기 위해 정신없이 달렸다. 대기실에 돌아오자마자 의상부터 메이크업 수정까지, 정말 시간과의 전쟁이었다. 지금 현장에서는 ‘본’ 무대의 센터 선발 과정과 준비 과정이 나오고 있을 것이다. ‘샤인’을 준비하는 연습생들은 그나마 여유가 있어 대기실 모니터로 송출된 화면을 지켜보고 있었다.

“‘본’ 무대 연습생들 스탠바이 해 주세요!”

“네!”

“어, 잠시만……!”

정신 없이 준비를 하던 지운이 형의 인 이어에 문제가 생긴 듯했다. 주변의 연습생들도 처음 겪는 돌발 상황에 우왕좌왕했다. 나는 급히 지운이 형에게 달려가 인 이어를 정리했다. 온갖 싸구려 인 이어들을 써 와서 그런가, 이런 결함쯤은 눈 감고도 고칠 수 있었다.

“고마워.”

“당황하지 말고, 혹시 무대 할 때 헐렁할 거 같으면 스태프분한테 한 번 더 얘기해요.”

“응.”

“잘하고 와요!”

잠시 당황했던 지운이 형도 금세 안정을 찾고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지운이 형, 준비 다 했어요?”

“응, 재봉아 지금 갈게.”

“다녀오겠습니다!”

재봉의 우렁찬 인사에 샤인 팀 연습생을 비롯한 현장의 모두가 웃음이 터졌다. 누가 보면 등굣길인 줄 알겠어.

“잘하고 와!”

[‘본’ 무대가 이제 시작합니다!]

무대가 시작되고 공개된 ‘본’ 무대의 센터는 지운이 형이었다.

“미친!!”

“지운아!”

“와아아아아!!!!”

지운이 형을 중심으로 9명의 연습생이 대각선으로 서 있는 대형이었다. 양옆으로 윤빈과 성민호가 서 있었다. 피지컬적으로 우세한 세 명이 중심을 잡고 있으니, 무대 자체가 볼 맛이 났다.

[길고 긴 잠에서 깨어나

이제는 새롭게 태어나

마침내 눈부신 빛이나]

지운이 형의 인트로가 시작하면서 나머지 연습생들은 일제히 등을 돌렸다. 센터의 특권인데, 전체 노래 중 한 부분에서 온전히 자신에게만 집중되는 파트를 얻을 수 있었다. 현명한 선택이었다. 팔로워들에게 처음 선보이는 신곡의 시작을 온전히 자신의 것으로 만들겠다는 선전포고와도 같았다.

약간 젖은 머리의 스타일링은 여우상인 지운이 형의 매력을 돋보이게 했다. 웅장한 사운드가 주를 이루는 노래인 만큼, 의상도 세련되고 무게감 있었다. 골드와 블랙의 조합이 고급스러운 느낌을 주었다. 센터인 지운이 형에게만 추가적인 악세사리와 어깨 견장이 있었다. 마지막까지 지독한 센터 위주의 구성이었다.

지운이 형의 인트로 파트가 끝나고 뒤돌아선 8명의 연습생들과 함께 무대 중앙으로 향했다. 연습생들의 걸음마다 환호성이 가득했다.

[세상 그 누구보다

눈부신 나니까

어쩌면 태어날 때부터

본 투 샤인]

이어서 윤빈 형의 파트였다. 처음 시도한 쉼표 머리였음에도 이질감 없이 잘 어울렸다. ‘본’이 힙합 베이스의 묵직한 사운드가 돋보이는 곡이어서였을까, 형이 센터에서 격한 안무를 하는데 피지컬만으로 압살한다는 게 이런 거구나- 하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와…….”

“지운이 형이랑 윤빈 형 피지컬은 진짜 타고난 거 같아요.”

“아, 5cm만 떼어 오고 싶다…….”

연습생들은 촬영 중이라는 것도 잊은 듯 감탄했다. 나중에 저 둘이랑 데뷔할 걸 생각하니 암담했다. 키를 키울 수 있는 상태창 기능은 없으려나-

[Born to be a shining star

수많은 별 중 가장

빛나는 내가 되는

이 순간을 주목해]

다음 파트는 박재봉이었다. 순간 훅 작아진 피지컬에 무의식적으로 ‘귀엽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하지만 깔끔하고 힘 있는 춤 실력과 프로페셔널한 무대 매너에 그런 생각은 먼지처럼 사라졌다. 저 작은 체구에서 저런 힘이 나올 수 있다는 게 신기했다. 지금도 저 정도인데 몇 년 뒤에는 얼마나 폭발적인 무대를 할지가 벌써 기대됐다.

특히 이번에 바꾼 머리색이 눈길을 사로잡는 데 한몫했다. 평소 박재봉의 이미지에서 보기 힘들었던 강렬한 빨강 머리였다. 처음 ‘본’을 선택했을 때, 이런 분위기의 노래와 스타일이 잘 어울릴까 반신반의했지만, 걱정은 기우였다. 박재봉의 가장 큰 무기이기도 한데, 콘셉 소화력이 사기다. 안 어울릴 듯하면서도 결국 자신의 스타일로 훌륭히 소화해 낸다.

무대는 하이라이트를 향해 빠르게 달려가고 있었다. 묵직한 베이스로 시작했다가 점점 강렬하고 리드미컬한 악기 소리가 쌓이면서 노래를 풍성하게 만들었다. 그러면서도 중독성 있는 멜로디 때문에 벌써 노래를 따라 부르는 팔로워들도 있었다.

하이라이트는 센터인 지운이 형의 독무였다. 파워풀하지만 부드러운 선이 돋보이는 독무였다. 쪼개지는 박자에 맞춰서 안무를 하는데, 동작 하나 날리는 것이 없었다.

[내게서 시작된 History

내 앞길에 펼쳐진 Victory!]

‘Victory’ 가사에 맞춰 힘차게 손을 뻗는 엔딩 포즈로 무대가 마무리됐다. 엄청난 응원과 함성 소리는 촬영장을 뚫고 대기실에서도 생생히 들렸다. 곧 샤인 무대에서 저 환호성을 들을 생각에 벌써부터 심장이 터질 것 같았다. 팔로워들의 함성과 함께한 무대가 처음은 아니지만, 일반 경연과는 확연히 다른 규모였기 때문에 색다른 설렘을 줄 거였다.

이어서 ‘샤인’의 센터 선발 과정과 무대 준비 과정 VCR이 시작됐다. 다행히 윤 피디의 어그로는 없었다. ‘본’ 무대를 마친 연습생들이 대기실로 돌아왔고, 긴장이 풀린 듯 다들 소파 위에 널브러졌다.

“형, 저 어땠어요?”

그 와중에도 모니터링을 하는 박재봉이었다.

“잘했어.”

“진짜요? 다행이다… 형이 괜찮다고 하니까 안심이 되네.”

가끔 연습생들이 이렇게 나를 신뢰한다 말할 때마다 기분이 이상했다. 오직 나와 지운이 형의 데뷔만을 바라보고 시작한 레이스였는데, 알게 모르게 정이 들었고 그들을 진심으로 응원했다.

“선우 형이 말이 없네요?”

“그러게, 형도 긴장을 하나 봐.”

“참 나, 어제 그렇게 나보고 떨지 말라고 하던 사람이.”

말은 저렇게 해도 그새 선우 형 앞에서 쫑알거리기 시작했다. 무슨 대화를 했는지 모르겠지만, 선우 형의 얼굴도 점점 밝아지더니 둘의 웃음소리가 들렸다.

“‘샤인’ 팀, 스탠바이해 주세요!”

“네!”

무대를 마치고 돌아온 지운이 형이 말없이 어깨를 토닥였다. 조용하지만 무엇보다 힘이 되는 응원이었다.

무대로 향하는 길에 강도현이 물었다.

“긴장돼?”

“안 한다면 거짓말이겠지?”

“하긴, 나도 좀 긴장돼.”

“잘해 보자.”

잠시 멈춰선 강도현이 말했다.

“너랑 다시…….”

하지만, 다급한 스태프의 외침에 뒷말은 들을 시간이 없었다.

“연습생들 빨리 오세요!”

“네!”

둘 다 정신없이 무대 위로 달려가 대형을 잡았다.

‘강도현이 뭐라 할 말이 있었던 것 같은데, 중요한 거면 무대 끝나고 말하겠지?’

“와!!!!”

“승빈아!!”

“도현아!!”

아직 조명이 들어오지 않았지만, 소리만으로도 얼마나 많은 사람이 왔는지 가늠할 수 있었다. 앞에서 스태프가 수신호를 보내고 있었다. 5초 뒤 시작한다는 의미였다. 천천히 심호흡을 했다. 옆에 있던 강도현이 작게 속삭였다.

“할 수 있어.”

이상하게도 그 말을 듣자 긴장이 눈 녹듯 녹아내렸다.

‘그래, 할 수 있어.’

불안함은 사라진 지 오래다. 그저 이 무대를 빨리 내 것으로 만들고 싶다는 기대감과 자신감만이 남았다.

팟-

눈부신 조명과 함께 수천 명의 사람이 보였다. 기대감으로 가득한 눈을 보면서 속에서부터 무언가 끓어오르는 것이 느껴졌다. 옅은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고개를 들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