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8화
초성으로 이루어진 알계의 등장에 모두 의문을 가졌다.
-저게 뭐야?
-초성으로만 알계파는 건 또 처음보네
-근데 저거 빼박 문승빈 얘기 아님?
-투마월 문승빈 그 다음은 뭐냐?
-랍스타갈래?
┕겠냐?ㅋㅋㅋㅋㅋㅋ
-락스타고래?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승프들 웃기네 진짜^^
┕ㄲㅈ
-아니 윗댓들 진짜 몰라서 저러는거임?ㅋㅋㅋㅋㅋㅋ
┕승프들 나이 많은 팬들 많아서 가능할 듯?
┕뭔 개소리야 이건;;
-럽스타그램?
┕ㅇㅇ럽스타
-문승빈 럽스타라고?
-ㅅㅂ저런 알계는 나도 파요
-오늘 알계파서 ㅇㅈㅎ ㅁㅅㅂ ㅇㅇ 해도 믿을꺼냐?ㅋㅋㅋㅋ
┕ㅇㅈㅎ은 뭐임?
┕내이름 초성
┕미쳤나봨ㅋㅋㅋㅋㅋ
-맞넼ㅋㅋ 투마월 문승빈 럽스타그램 파이널 끝나자마자 터트릴거임^^ 이거인 듯
-아니 데뷔전에 터트려야지ㅅㅂ 이미 다 데뷔하고 터지면 무슨 소용임?
-ㅅㅂ 나 승프인데 걍 빨리터트려줘 탈덕각잡게ㅠㅠ투표한 돈이랑시간애정 아까워지기 전에
┕진짜 승프 맞음?
┕딱봐도 어그로인뎈ㅋㅋㅋㅋㅋ
┕지금 비계는 난리났어
어그로 끄는 알계와 사람들 반응을 확인하던 문스트럭은 울분에 찬 목소리로 외쳤다.
“다들 덕질 하루 이틀 하냐고- 저런 걸 믿어?”
“파이널까지 조용한 날이 없네.”
“아니, 저런 빡대가리들이랑 같은 팬이라고 하니까 자존심 X나 상해.”
문스트럭은 답답한 마음이 컸다. 솔직히 이제 데뷔하면 주기별로 심심할 때마다 ‘ㅇㅇ아 연애하니까 좋아?’, ‘ㅇㅇ아 정신차려’, ‘ㅇㅇ아 팬이 준 선물 여친 줬더라?’ 따위의 알계가 올라올 텐데 그럴 때마다 반응해서 먹이 주는 것만큼이나 우스운 게 없기 때문이다.
일단 글 하나뿐인 알계여서 사람들의 반응도 반신반의지만, 연애 관련해서는 지나치게 민감하게 반응하는 일부 팬들과 타팬, 억까들은 경계해야 할 부분이었다.
“X발, 안 그래도 막판 투표 이벤트랑 영업할 시간도 부족한데 저런 거에 시간 버리고 있어-”
쏟아지던 졸음이 확 깨는 그녀였다.
* * *
파이널 전날, 드디어 모든 연습이 마무리되고 숙소로 돌아가기 전 윤승철이 마지막 공지를 했다.
“연습생들은 오늘 짐 정리를 모두 마무리해 주세요.”
‘짐 정리’라는 말에 모두 정적이 오갔다. 정말 투마월에서의 마지막 밤이라는 것을 느끼게 된 거다.
“마지막 짐 정리네요…….”
박재봉의 목소리가 평소보다 가라앉았다. 옆에 있던 성재 형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러게, 매번 짐 정리하면서 꼭 캐리어 다시 푸는 날 오게 해 달라고 기도했었는데.”
“형도 그랬어요? 저도인데.”
“너가? 말도 안 돼-”
“진짜예요! 여기는 한 치 앞도 예상할 수가 없었잖아요.”
“하긴…….”
모두 처음은 당연히 돌아올 거라는 마음으로 짐 정리를 했을 것이다. 하지만 첫 번째 순발식의 충격 이후 다들 티는 안 내도 이날을 가장 두려워하고 있었다. 분위기가 조금 가라앉던 찰나, 강도현이 심각한 얼굴로 걱정했다.
“야, 근데 짐 정리 어떻게 하냐……? 나 이번에 진짜 역대급인데?”
“방이요?”
“응, 나 진짜 방에 잠만 자러 오는 거여서 방 정리 하나도 안 했거든.”
“인정, 형 오늘 짐 정리 하느라 잠 못 자는 거 아니에요?”
“가자마자 정리해야 할 듯?”
정말 끝까지 진지함과는 어울리지 않다. 강도현의 현실적인 고민에 연습생들도 하나둘 슬픈 생각에서 벗어났다.
‘차라리 이런 게 나은 걸지도 모르겠다.’
생각해 보면, 이번에는 모두 퇴소하는 것이니 다시 합숙소에 돌아와 짐을 풀 일도 없다. 모두가 떠나는 거니까, 조금은 덜 슬프지 않을까.
숙소로 돌아와서 짐 정리를 시작했다. 어김없이 선우 형이 준 젤리를 우물거리면서 정리를 하는데, 후련하면서도 시원섭섭했다. 룸메이트가 한 번도 안 바뀌어서 4개월 가까이 지냈던 공간이었다. 파이널에 가까워지면서 정말 잠만 자는 공간이 되었지만, 다른 연습생들과 보냈던 소중한 추억은 잊지 못하겠지.
점점 빈 공간이 많아지는 숙소가 적적하지 않게 열심히 쫑알거려 준 선우 형에게도 고마움이 있다. 생활 패턴도 다르고 성가시게 하던 때도 있었지만, 시간이 지나면 원래 뭐든 다 미화되는 거 아니겠는가?
“승빈아, 정리 다 했어?”
“거의 다 했어요.”
“다 하고, 애들 모아서 마지막으로 파티라도 할까?”
“시간 괜찮을까요?”
“그냥 1-20분 노가리 까자는 거지-”
“뭐라도 챙겨 올까요?”
“놉, 내꺼 오늘 다 털고 간다.”
선우 형은 딱 봐도 부피가 꽤 되어 보이는 가방을 흔들었다. 저 안에 온갖 과자, 젤리, 사탕이 있겠지.
청소를 마치고 지운이 형과, 박재봉, 윤빈 형이 찾아왔다. 모두 남은 식량을 모아 온 건 지, 두 손 가득 간식으로 가득했다.
“근데 우리 너무 많이 먹으면 안 되지 않아?”
“그건… 그렇죠.”
“흠…….”
다섯이서 결국 과자 하나 먹는 걸로 합의를 봤다. 배고플지언정 내일 부은 얼굴로 나오는 것보다는 나을 거라는 생각은 동일했다.
“그나저나 강도현은?”
“그 형, 아직도 짐 정리 중이에요.”
“너, 안 불편했어?”
“어차피 저도 잠만 자러 오는 공간이라 괜찮았어요. 그치만 만약에 같이 데뷔하면 그땐 절대 같은 방 안 하려고요.”
박재봉의 덤덤한 팩폭에 지운이 형과 윤빈 형은 먹던 과자를 내려놓고 웃었다. 잠시 숨을 고르던 지운이 형이 말했다.
“근데 진짜 실감 안 난다. 뭔가 내일도 똑같이 기상송 들으면서 일어나고 연습실 가서 경연 준비해야 할 거 같은데.”
“그니까요. 습관처럼 연습실로 향할 것 같아요.”
그렇게 한참 이 주제, 저 주제로 대화를 나누다가도 결론은 항상 같았다.
“진짜 데뷔하고 싶어.”
모두 투마월의 기억을 하나의 경험으로 남기고 싶지 않아 보였다. 100명 중에 18명이 되도록 살아남은 것만으로도 충분히 자랑스러울 일이지만, 최종 7인에 뽑혀서 더 큰 기회를 붙잡고 싶은 것이다.
“진짜 많은 일이 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결같이 응원해 주는 사람이 있다는 걸 투마월 하면서 처음 느꼈어.”
“맞아요. 저도 그게 제일 커요. 제 팬이 생긴 것도 신기한데 너무… 벅찬 일이죠.”
“내일 재봉이 소감 얘기하다가 우는 거 아니야?”
“와, 칭찬이랑 악담을 동시에 하네요? 그래도 데뷔하라는 뜻이죠?”
재봉의 말에 선우 형은 어깨를 으쓱이며 과자를 집어먹었다.
“내일 팔로워님들 엄청 많이 오겠지?”
“촬영장 크기만 봐도 몇 천은 거뜬해 보이던데요?”
“나 너무 떨릴 거 같아.”
“무대 위에서 토만 안 하면 돼.”
“아, 형 진짜…….”
박재봉은 그럴 줄 알았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그때 문을 열고 누군가 들어오는 소리가 들렸다. 뒤돌아보니 강도현이었다.
“여러분 축하해 주세요, 드디어 제가 방 청소를 마쳤습니다.”
“와…….”
뻔뻔한 강도현의 태도에 모두 홀린 듯 마지못해 박수를 쳤다. 공연자인 양 이리저리 구십 도 인사를 하며 감사합니다- 하는데, 역시 강도현이었다.
“이런 자리에 내가 없으면 재미없지!”
“충분히 재밌었는데? 그치 애들아?”
선우 형의 말에 모두 짜 놓은 듯 고개를 끄덕였다.
“헐, 어이없어.”
“알았어, 알았어. 넌 뭐 가지고 온 거 없냐?”
“있겠어요? 지금 있는 것도 버리고 온 마당에.”
“아, 입이 늘었잖아. 어쩔 수 없네…….”
“하나 더 깔까요?”
윤빈 형의 말에 선우 형이 옳다구나- 과자 하나를 더 가져왔다.
“우리 윤빈이가 먹고 싶다는데 가져와야지-”
“그냥 형이 먹고 싶다고 해요.”
“응?”
역시 조용히 기가 쎈 사람이다. 좀처럼 보기 힘든 선우 형의 당황하는 모습이었다. 그때 지운이 형이 강도현에게 물었다.
“내일 어떨 거 같아?”
“저요? 엄청 기대돼요. 빨리 무대 하고 싶어요!”
자신감에서 오는 당당함이 저런 건가. 강도현은 유독 긴장이 없어 보였다. 무대에 대한 걱정보다는 빨리 준비한 걸 보여 주고 싶다는 기대감이 더 커 보였다. 하긴 그 정도 실력에 연습까지 하면 무대 서는 게 얼마나 재밌겠는가? 저 자신감 하나는 정말 부러웠다.
“내일 진짜 후회 없는 무대 하고, 꼭 데뷔할 거예요!”
“그게 제일 중요한 거지.”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 보니 어느새 과자는 동나 있었다. 그럼에도 대화는 멈추지 않았고, 얼마 남지 않은 합숙소의 밤이 지나가고 있었다.
어느덧 네 명이 떠나고, 마지막 연습 일지를 적었다.
[내일이면 파이널이다. 사실, 투마월이 끝난다는 게 아직 믿기지 않는다. 내일 순발식이 시작할 때쯤 되면 실감이 날까? 4개월 동안 정말 많은 일이 있었다. 기쁘기도 하고, 슬프기도 하고, 기적과 같은 일도 있었다. 4개월 전의 나는 지금의 나를 상상이나 하고 있었을까? 일생일대의 기회를 망치지 않겠다는 각오 하나만으로 여기까지 달려왔다. 내일이 되면 그 모든 시간들을 형과의…….]
“아, 맞다.”
지우개를 들어 ‘형과의’ 부분을 지웠다.
[나와 함께 고생한 이들과의 데뷔로 유종의 미를 얻을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란다. 오랫동안 바랐던 꿈에 한 발자국 가까이 다가간다는 게 설레지만 한편으로는 두렵기도 하다. 하지만, 절대 놓치지 않을 것이다. 무엇 하나 후회를 남기지 않은 무대를 보여 줄 것이다. 스스로에게도 수고 많았다고 하고 싶다. 정말 수고 많았다. 투마월이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이길 바란다.]
“아직 안 자?”
“이제 자려고요.”
“승빈아, 여기 처음 온 날 생각나?”
“형이랑 첫 만남은 못 잊죠.”
“그렇게 임팩트 있었나?”
‘홍삼 캔디 주면서 다짜고짜 베프 되겠다는 또라이를 잊기 힘들긴 하죠…….’
라고는 차마 말할 수 없으니 대충 웃어 넘겼다.
“그래도 난 투마월 하면서 너랑 엄청 친해졌으니까 1차 목표는 달성한 거야.”
“근데 왜 그런 거예요?”
“글쎄? 나도 몰라.”
“형이 그걸 모르면 어떡해요?”
“내가 사람 볼 때 촉이 올 때가 있거든? 저 사람이랑은 잘 지내야겠다, 거리 둬야겠다 같은 거. 근데 너는 뭔가 딱 보자마자 촉이 왔어. 가까이 두면 엄청 좋은 사람이겠다고.”
“누가 보면 점쟁이인 줄 알겠어요.”
“응, 나 아이돌 안 하면 점이나 보려고-”
“늦었어요. 저 먼저 잘게요.”
“그래, 잘 자. 내일 잘해 보자.”
“형도 실수하지 마요.”
“당연하지. 잘 자!”
돗자리 깔고 점 보는 형을 생각하니 어이가 없었다. 점이 아니라 도사님 얼굴이 용하다고 소문이 날 거 같긴 하다.
문득 합숙소에서의 첫날 밤이 떠올랐다. 그때는 한참을 뒤척이다가 잠에 든 것 같은데, 오늘은 신기하게 머릿속이 맑았다. 걱정과 고민은 연습생들과의 대화로 날려 보낸 걸까, 이러다가도 막상 아침이 오면 떨리겠지.
‘내일이 지나면, 형과 데뷔하고 난 후엔 어떻게 되는 거지?’
투마월 시작부터 있던 의문이었지만 깊게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데뷔했다고 바로 4년 뒤로 돌아가거나, 미래를 반복하는 최악의 상황만은 아니길 바랄 뿐이다. 그 두 가지 상황만 아니라면, 솔직히 어떤 일이 벌어져도 감당할 자신이 있었다.
‘일단 자자.’
이곳에서의 진짜 마지막 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