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7화
감격스러운 순간도 잠시, 이제 포인트를 어떻게 적용할지 고민이 됐다. 외모 포인트를 높일까도 고민했지만, 어차피 염색을 할 거라 굳이 포인트까지 사용할 필요는 없을 것 같았다. 내 입으로 말하긴 뭐하다만 솔직히 지금 외모도 충분히 만족스러우니까.
아직 3칸인 ‘샤인’의 랩 스텟창을 4칸까지는 채우고 싶은데, 기존 상태창의 노래, 춤, 외모, 끼, 프로듀싱 포인트를 올린다고 한들 랩 포인트가 올라갈지는 미지수였다.
‘혹시 이렇게도 가능한가?’
밑져야 본전이라는 생각으로 상태창을 향해 말했다.
“샤인에서 랩 포인트 1 추가해 줘.”
하지만 상태창에는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
‘역시 안 되는 건가?’
그럼 보컬 스텟을 높여야 하나 고민하던 찰나, 포인트 창을 보니 남은 게 없었다.
“뭐야, 잘못 선택하면 사라져? 이런 게 어디 있어?”
순간 욱해서 여기가 화장실인 걸 잊고 화를 낼 뻔했다. 어이없어하는 나에게 상태창은 참을성도 없는 놈이라고 하는 듯이 반짝이기 시작했다. 다시 확인해 보니 노래창에 변화가 있었다.
[제목: 샤인(Shine)]
-랩: ■■■■□
-안무: ■■■■□
‘됐다!’
랩 포인트가 오른 것에 기뻐하기도 잠시, 의문이 생겼다. 랩 포인트가 올라갔으면, 전체 포인트에도 영향을 주는 건가? 혹시 하는 마음에 스텟창을 확인했지만 변화가 없었다.
[이름: 문승빈]
외모: A-
끼: B-
보컬: A
댄스: B-
프로듀싱: C+
밑져야 본전이라고 생각한 선택으로 상태창의 두 가지 특성을 발견했다. 하나는 상태창의 다섯 가지 항목에 포인트를 분배하는 것과 같이 노래 창에도 포인트 추가가 가능하다는 점. 두 번째는 이때 오르는 포인트는 전체 상태창 포인트에는 영향을 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기왕이면 상태창 기본 항목에 포인트를 사용하는 게 좋겠네.’
아깝지만 어쩔 수 없었다. 지금은 일단 랩이 중요하니까. 혹시 하트창에도 포인트가 적용될지도 궁금했지만, 언제 다시 뜰지 모르는 미션창이었다. 대체 언제쯤 이 상태창을 다 알아 갈 수 있을까.
어쨌든 이제 남은 건 염색뿐이었다. 핑크색으로 염색을 결심한 이유는 간단했다. 백발로 나온 지 오래이기도 하고, 중간에 스프레이를 사용해서 흑발한 거 외에는 머리에 큰 변화를 준 적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핑크색은 이미 티벡스 때 해 봤는데 내 이미지나 얼굴 톤과도 잘 어울리고, 무엇보다 ‘샤인’과 ‘본 투 샤인’ 두 곡에 다 잘 어울릴 것 같았다.
똑똑-
‘?’
그때 문밖에서 노크 소리가 들렸다. 순간 온몸이 정지됐다. 가까운 곳에서 들린 소리였다. 어쩌면 내가 들어간 칸의 문 소리였을지도 모른다. 숨을 죽이고 조용히 문을 열었다.
“…….”
눈앞에 들어온 건 정유현이었다. 솔직히 말하면 너무 놀라서 비명을 지를 뻔했다. 하지만 최대한 아무렇지 않은 척했다. 이런데 연기력을 쓰다니, 재능 낭비도 이런 낭비가 따로 없었다.
“아, 형이었어요?”
“응.”
“하하, 근데 왜 끝 칸까지 와서…….”
“전화 좀 하려고.”
“아-”
“왜, 문제 있어?”
“아뇨?”
정유현의 표정을 보는데 괜히 말을 더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많고 많은 곳에서 제일 구석진 곳을 고른 게 의심스러워서 물은 거였는데, 도리어 내가 더 뭔가를 숨기는 사람이 되어 버렸다. 정유현은 내가 손을 씻고 화장실을 나서는 것을 확인할 때까지 조용했다. 들으면 안 되는 전화 내용이었나.
‘십년감수했네.’
연습실에 돌아와서도 도현 스쿨은 멈추지 않았다. 귀찮다고 노래를 부르면서도 성심성의껏 코치하는 모습이 모든 일에 열심인 강도현다웠다.
“와, 근데 벌써 또 다르다, 승빈아?”
“그, 그래?”
“응, 아까 전보다 더 능숙해졌다고 해야 하나?”
“그렇게 생각해?”
“화장실 갔다 온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나?”
“하하, 그럴 리가? 선생님이 너무 유능하셔서 그런 듯?”
“그건 인정.”
이제 이런 순간에도 능청스럽게 넘어가는 데 익숙해졌다. 게다가 기분이 좋아져서인가, 칭찬해 주니 금세 신나서 레슨을 이어 가는 강도현이 꽤 귀여워 보이기까지 했다.
“근데 너 머리 핑크색 한다며?”
“어떻게 알았어?”
“아까 쌤이 말해 주시던데, 오늘 하는 거지?”
“오, 쌤들 벌써 오심? 내일 오전일 줄 알았는데-”
“응, 재봉이는 벌써 불려 갔더라.”
그 말에 주변을 둘러보니 몇몇 연습생이 자리에 없었다. 상태창 확인하러 화장실 다녀온 사이에 공지를 한 것 같았다.
“나도 곧 가겠네.”
“그럴 듯? 그니까 얼른 더 연습해.”
“네네, 근데 넌 염색 안 해?”
“응, 솔직히 고민했는데 뭘 할지 모르겠어서.”
“하긴, 너는 갈색 머리가 진짜 찰떡이긴 해.”
“인정. 근데 네가 특이한 거임. 백발 할 생각은 어떻게 했냐?”
“그때는 그냥 어떻게든 눈에 들어야겠다고 생각했으니까.”
“…….”
아무 생각 없이 던진 말이었는데, 강도현이 순간 조용해졌다. 뭔가 싶어서 쳐다보니 복잡해 보이는 표정이었다. 하여간 얘도 참 애가 투명하다니까.
“뭔데, 그 표정.”
“너는 무슨 애가 그렇게 덤덤하냐.”
“내가?”
“어, 가끔 보면 나보다 형 같아.”
“그럼 형이라고 부르던지-”
“됐다, 됐어. 형 같다는 말 바로 취소다.”
“왜, 얼른 해 봐. 승빈이 형.”
“야, 꺼져. 훠이. 저리 가.”
무거워질 뻔한 분위기가 금세 환기되었다. 혼자 숨기고 있는 얘기가 많아서일까. 가끔 강도현을 마주할 때면 드는 묘한 죄책감이 있다. 물론 회귀 전 우리가 멀어졌던 이유는 강도현에게 있었지만, 지금 얘는 그걸 모르는 상태니까.
처음 과거로 돌아왔을 때는 VM을 나가고 4년이나 지났기 때문에 다시 마주한 강도현이 불편했던 게 사실이었다. 그때는 지운이 형을 살려야 한다는 생각밖에 없으니 더더욱 다른 사람은 내 관심 밖이기도 했고. 하지만 월말평가를 준비하면서는 나도 진짜 옛날로 돌아간 기분이라 마지막까지도 회사 나가는 걸 강도현에게 말할까 고민하기도 했었지.
왜 내가 그렇게 회사를 나가야만 했는지, 강도현은 왜 우리의 월말평가 무대를 김병대와 함께 했는지. 서로 묻고 싶은 얘기들은 많겠지만, 아직은 그렇게 여유를 부릴 때가 아니었다.
그래서인지 이번 랩 파트를 더 잘해 내고 싶었다. 그러면 적어도 우리 둘 다 조금이나마 마지막 월말 평가의 쓰린 기억을 덮을 수 있지 않을까.
여러모로 잘해야 하는 이유가 넘쳐 나는 파이널이었다.
* * *
대망의 파이널이 진행되는 공연장, 생방송 촬영은 내일임에도 이미 수많은 사람들이 공연장 주위에서 줄을 서고 있었다. 마지막까지도 선착순으로 자리를 배정한다는 씨넷의 공지 때문에, 당첨자들임에도 너 나 할 것 없이 밤샘을 하고 있는 거였다.
“표가 있는데도 밤샘 실화냐?”
“씨넷 선착순에 미쳤잖아.”
“걔네는 월급도 선착순으로 받아야 돼.”
“아니, 진심 투마월 겨울에 했으면 어쩔 뻔?”
“그럼 걍 다 같이 동사하는 거지 뭐.”
문스트럭과 K, A도 다 같이 밤샘 중이었다.
“번호표 언제 배부한다 그랬지?”
“아침 7시에 받고 일단 1차 해산이라고 하더라.”
“와, 아직도 한참 남았어.”
저녁부터 시작된 줄서기는 어느덧 밤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그녀들의 앞에 선 사람들보다 몇 배가 넘는 인원이 뒤에 쌓이고 있었다. 그만큼 파이널을 향한 열기가 대단했다.
“야, 이제 진짜 나이 먹었나 봐. 밤샘 다시는 못하겠어.”
“님, 얼마 전까지만 해도 상암 길거리에서 인권 유린 당하고 싶다 그러셨잖아요.”
“아니, 그건 승빈이를 하도 못 보니까 그랬지.”
“근데 그건 인정. 난 다시는 연습생 덕질은 못 할 듯.”
“동의합니다. 어차피 제 마지막 아이돌은 문승빈이니까 전 더 이상 할 일이 없네요.”
“나 저 멘트 너무 익숙하다. 벌써 몇 번째냐, 너의 마지막은?”
“얘는 마지막이라는 단어 뜻을 다시 배워야 할 듯.”
“이번에는 진짜거든! 문승빈이 내 케이팝 인생 마지막 아이돌이다.”
자신 있게 외치는 문스트럭이었지만, K와 A 그 누구도 그녀의 말을 귀담아듣지 않았다.
“그래도 우리 다 같이 공연 보는 건 진짜 오랜만이다.”
“헐, 진짜네? 에잇비트가 마지막이었나?”
“에잇비트는 너무 갔다. 재작년에 연말 시상식 할 때가 마지막이었나?”
“맞네, 서로 덕질하는 그룹이 달랐었지, 그때는.”
같은 그룹을 좋아하다가도 서로 다른 그룹을 좋아하고, 잠깐 투디나 드라마에 빠졌다가도 결국 다시 케이팝이었다. 마치 살던 곳으로 돌아오는 연어처럼 돌고 돌아도 결국 결론은 하나였다.
“우리 셋 다 파이널 표를 구한 것도 웃겨.”
“나 진짜 당첨 안 됐을 때 눈물 날 뻔.”
“말도 마라. 나 직장에서 덕밍아웃하고 게임 잘하는 동기들한테 빌었잖아.”
단언컨대 올해 가장 핫한 프로그램일 ‘To My World’ 시즌 2 파이널은 그 명성에 걸맞게 경쟁률이 살벌했다. 우선 1차로 발표된 투표자 대상 추첨은 문스트럭만 당첨이 됐다. 첫 투표부터 한 번도 빠짐없는 출석률을 자랑했던 그녀였지만, 발표가 날 때까지 조마조마했을 정도였다.
그리고 표를 구할 수 있는 두 번째 기회는 바로 ‘씨더스타’ 게임이었다. 미션으로 제시된 몇 가지 노래의 순위권자들에게 일부 표를 제공했는데, 개발자인 A는 동기들의 도움으로 이 표를 쟁취한 거다. 게다가 그녀의 능력자 동료들은 K의 아이디로도 게임을 해서 결국 그녀의 표까지 얻어 주었다. 그동안의 수많은 야근으로 인해 본방 사수 한 번 제대로 하기 어려웠던 A의 모든 한이 싹 풀리고도 남을 쾌거였다.
그렇게 어려운 과정을 거쳐 마침내 셋이 완전체로 뭉치게 된 거다. 비록 몇 시간째 밤샘하고 있는 처지였지만 말이다. 이건 좋은 자리를 위한 마지막 퀘스트였다.
“파이널 무대 어떨까.”
“난 솔직히 기대 안 해. 일주일에 3곡 준비하는 거부터가 오바임.”
“아, 인정. 퀄은 기대하지 말아야 하나.”
“왜, 승빈이 랩하는 거 기대되지 않음?”
“승빈이가 과연 랩을 할 수 있을까-”
“원래 노래 잘하는 애들은 랩도 기본은 하더라.”
“제발 그랬으면. 근데 울 애기 랩도 잘하면 나 진짜 망했는데?”
갑자기 진지해진 문스트럭의 말에 의아한 K와 A였다.
“왜 망해?”
“지금도 이렇게 좋은데, 대체 얼마나 더 좋아해야 하는 거임?”
“어휴, 얘 진짜 진성이다.”
“나는 쟤랑 있으면, 내가 머글이 된 것만 같아.”
덕질 꽤나 했다 하는 그녀들 중에서도 유별난 문스트럭이었다.
“근데 셋 다 데뷔할 수 있겠지?”
“무조건임.”
“진심 내가 더 떨려.”
“애들은 지금 자고 있으려나?”
“푹 자고 오늘 진짜 잘했으면 좋겠다.”
“하, 투마월 끝나면 무슨 재미로 사냐.”
“그니까, 욕은 했어도 투마월 존잼이었는데.”
“하지만 두 번은 겪고 싶지 않다.”
“그것도 인정-”
K의 진심이 담긴 한마디였다. 그 누구보다 우여곡절을 많이 겪었던 그녀였기에, 투마월이 끝난다는 게 이렇게 속 시원할 수 없었다. 망할 놈들, 지운이 알게 해 준 거 빼고는 싹 다 맘에 안 드는 프로그램이었다.
“나 진짜 너무 과몰입해서 이따가도 걱정 돼.”
“왜? 울까 봐?”
“울기만 하면 다행이게? 기절 안 하면 다행이다.”
“진심. 나는 지운이 보면 울 거 같아.”
“투마월이 진짜 대단하긴 했다.”
“악마의 재능이라니까, 진심.”
“제발 내일 이 시간에 내가 웃고 있기를.”
“진짜 제발요.”
이런저런 수다 떨기도 몇 시간, 아직도 어두컴컴한 하늘에 다들 점점 지쳐 가고 있었다.
“아씨, 모기 물렸어.”
“도현아, 내가 너 보려고 별짓을 다 한다, 진짜.”
“한계다, 이제. 나 눈이 저절로 감겨.”
그렇게 그녀들이 한창 졸음과 싸우고 있던 그 시각, 짹짹이에는 알계 하나가 파졌다.
데뷔가하고싶니? @Giman_stop 1분 전
ㅌㅁㅇ ㅁㅅㅂ ㄹㅅㅌㄱㄹ
파이널 끝나자마자 터트릴거임^^
#투마월 #투마월시즌2 #투마월_짹친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