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혼자 할 거면 두 번 데뷔 안 함-82화 (82/346)

82화

B피디는 식은땀이 흐르기 시작했다. 무슨 상황인지 이해가 안 되는 그였다.

‘왜 화를 내시는 거지?’

B는 급히 영상을 다시 확인했고 눈앞이 아득해졌다. 분명 김병대의 칭찬으로 가득했던 댓글창이 김병대가 고의로 문승빈을 엿 먹인 거냐는 여론으로 가더니, 이제는 연습생들의 인권 문제로까지 갔다. 그는 죽은 듯 모니터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걸리면 X된다는 생각뿐이었다. 사내 메신저창은 알림으로 폭주하고 있었다. 다른 스태프들의 연락이었다.

[B야 너 현장에 없었지]

[야 윤피디 지금 ㅈㄴ 화났던데?]

‘일찍도 알려 준다, X발…….’

“이런 걸 나한테 컨펌도 안 받고 올려? 너네 정신이 있긴 하냐? X발 진짜, 머리에 뭐가 든 X끼들을 뽑아야지!”

“대가리는 왜 달고 다니냐? 든 것도 없는데 대가리를 왜 달고 있냐고!”

방송국을 뒤엎을 만한 데시벨이었다. 아직 윤 피디의 모습이 시야에 들어오지 않는 거리였음에도 목소리만 들어도 그의 분노가 극에 달했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B는 억울했다. 분명 지금까지 콘텐츠 영상을 윤 피디가 컨펌한 적이 없었다. 방송 초반 도미노 영상 때나 신경 썼지, 그다음부터는 컨펌 요청을 해도 이런 거쯤은 자기가 신경 안 써도 되지 않느냐며 거절한 그였다. 위튜브에만 올리는 거까지 자기가 신경 써야 하냐며 짜증 내던 모습이 아직 선한데 말이다.

“안 그래도 쥐새끼 같은 놈 때문에 머리 아픈데 좋은 말로 할 때 자수해. 내 손으로 찾아내면 시말서 쓸 각오해야 할 테니까. B야 C야?”

“저, 저는 비하인드 1, 2만 편집했습니다!”

저 의리 없는 X끼, 지 혼자 살겠다고 냅다 불어 버리는 C의 목소리를 듣자 모든 희망이 사라졌다.

‘X됐다…….’

B는 더 이상 도망칠 구석이 없다고 판단하고 일단 머리부터 박았다.

“정말 죄송합니다! 피디님이 평소 김병대를…….”

“너 진짜 미쳤냐? 야, 잠깐 나와 봐.”

도살장으로 끌려가는 소가 된 기분이었다. 뒤도 안 돌아보고 하던 편집을 마저 하는 C의 뒤통수에 대고 쌍욕을 날리고 싶었지만 이미 늦었다. 그 짧은 순간 동안 그는 심각하게 퇴사를 고민했다.

* * *

남 피디 놈 뒤치다꺼리도 벅찬데 곳곳이 지뢰밭이었다. 투마월 시즌 2의 성공으로 손쉽게 원하는 자리까지 얻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후반에 와서 이렇게 어그로 끄는 놈들이 많아질 줄 몰랐다.

“아까 무슨 말이야, 내가 평소 김병대를 뭐.”

비하인드로도 열받았는데, 다른 스탭들이 다 있는 곳에서 마치 내가 김병대를 편애한다는 양 말하는 것을 보고 급하게 꺼내 왔다.

“요, 요즘 상승세인 연습생이라고, 열심히 하는 연습생이니까 잘 봐 달라고…….”

“B씨 말대로면 내가 김병대를 편애했다는 거네?”

“네? 아, 아닙니다. 그건 아니지만…….”

사실 따지고 보면 B가 그렇게 잘못한 건 없었다. 오히려 내 의도를 잘 파악한 거지. 평소였다면 눈치 빠르다고 칭찬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게 중요한가? 결과적으로 김병대는 물론이고, 프로그램 이미지에도 먹칠을 했는데 당연히 욕먹어도 싸지.

“저 촬영본은 어디서 가져온 거야?”

“김 작가! 김 작가님이 주셨어요. 문승빈 연습생이 찍은 연습실 영상인데 김병대 연습생이 도와주는 장면도 나온다고…….”

“문승빈?”

머리가 아파 왔다. 설마 문승빈이 이 모든 걸 의도하고 영상을 넘긴 걸까? 김 작가한테만 따로 영상을 넘겼다는 게 의심스러웠다. 안 그래도 예고편을 편집하면서 김병대가 잘못 알려 준 건 이미 알고 있었다. 머리 좀 썼다 싶어서 처음으로 기특하기까지 했다.

당연히 그 장면이 담긴 연습실 녹화캠은 이미 전부 삭제한 상태였다. 그러니 따로 녹화해 둔 영상이 있으리라고는 상상도 못 했지.

‘씨X, 뒤통수 한번 제대로 처맞았네.’

혹시 그때 비상구에서 센터 조작 관련 대화를 엿들은 놈도 문승빈이었나. 두 사건 모두 확실한 증거는 없었지만, 이제껏 틀린 적 없던 촉이 같은 답을 말하고 있었다.

초반 어그로용으로 쓰고 버리려다가 화제성도 좋아서 지금까지 살려 둔 거였는데 판단 미스였다. 계획하는 족족 저 새끼 때문에 틀어지고 있었다. 완전 호랑이 새끼를 키운 꼴이었다.

‘18살밖에 안 된 놈이 왜 이렇게 영악해?’

자신을 이렇게까지 당황스럽게 만든 연습생은 처음이었다. 아니, 현역 연예인들을 다 합쳐도 처음 보는 캐릭터였다. 다들 악편이나 분량 실종 한두 번 당하고 나면 알아서 설설 기었는데, 어찌 된 게 밟을수록 더 기어올랐다.

“하, 앞으로 비하인드 포함 모든 콘텐츠 무조건 나한테 컨펌받고 올려. 알겠어?”

“네! 알겠습니다. 그리고 정말 죄송합니다!”

잔뜩 쫄아서는 사과하는데 헛웃음이 나왔다. 지금 자기가 뭘 잘못한 건지는 알고 사과하는 건가?

여기서 더 무리하다가는 위험할 것 같다는 느낌이 왔다. 김병대 살리려다가 내가 골로 가겠네. 실수는 한 번으로 족했다. 인정할 건 인정해야지, 이건 다 문승빈을 만만히 봤던 내 패착이었다.

맘 같아서는 당장 바닥까지 잘근잘근 밟고 싶었지만 지금은 김병대에 대한 여론 수습이 먼저였다. 먼저 기자들과 언론사에 관련 정보를 보낼 때 무조건 ‘전달 과정의 오류’, ‘짧은 시간에 준비하다 보니 안무가 계속 수정되었다.’와 같은 내용을 넣도록 지시했다. 불행 중 다행으로 점점 프레임이 ‘김병대도 시스템의 피해자’로 두루뭉술하게 바뀌었다.

VM에서도 계속해서 연락이 왔다. 안 그래도 머리가 터질 것 같은데 숨 돌릴 틈이 없었다. 데뷔 조 연습생 투마월에 내보려고 낭비한 돈이 얼마인 줄 아냐, 김병대 데뷔 못 하면 어쩔 거냐 등… 아니, 막말로 둘 다 데뷔하면 VM 차기로 누구 내세울 건데?

솔직한 마음으로는 이딴 짓 안 해도 안정권으로 데뷔할 만한 애를 내보냈음 되는 거 아니냐고 지랄하고 싶었다. 강도현을 봐, 가만히 놔둬도 알아서 1위 먹고 인기 유지하고 있잖아. 실력이랑 얼굴 다 괜찮다 했더니, 하필이면 제일 중요한 머리가 나쁜 놈일 줄이야. 지들이 멍청한 놈 보내 놓고 징징거리니 더 X같았다.

게다가 이미 여론 반응도 안 좋아진 상태인데, 지금껏 해 온 것처럼 김병대는 감싸고 문승빈은 죽인다? 그랬다가는 문승빈 팬들과 대중의 반발로 김병대도 데뷔하긴 어려워질 거다. 그럼 VM한테 또 죽어라 까일 테지? 그럼 나한테 남는 게 뭔데?

‘이렇게 된 거 그냥 둘 다 살려 두면 되는 거 아닌가?’

이제 더 이상 문제될 요소를 만들어서는 안 됐다. 일단 김병대를 살려 놓고 상황이 좀 수습되고 나면 최대한 둘이 부딪히지 않게 해야 할 것 같았다. 아직은 김병대 개인의 문제로 여겨지지만, 잘못했다가 편집 얘기까지 나오면 프로그램 자체가 논란의 대상이 될 수도 있으니 말이다. 그러니 더 큰 목표를 위한 일보 후퇴 정도로 해 두자.

그러다 문승빈이 데뷔한다면 VM에서는 노발대발할 테지만 어쩌겠는가. 김병대가 얼마나 큰 뻘짓을 했는지 정도는 지들도 알고 있으니 김병대와 강도현을 모두 살리는 유일한 방법이었다고 살살 구슬리면 또 그런가? 하고 넘어올 게 뻔했다.

‘그래, 승빈아. 이번에는 내가 한번 봐주는 거다.’

근데 어떻게 이걸 갚아 주지. 나를 이렇게까지 머리 쓰게 하는 놈은 또 오랜만이었다. 벌써부터 머지않아 다가올 복수의 순간이 꽤나 기대가 됐다.

* * *

단체 곡 센터가 되고, 2절 센터인 윤빈과 연습하는 시간이 부쩍 늘었다. 서로 닮고 싶은 점이 분명해서 연습하는 동안 손발이 잘 맞았다. 이렇게 오랫동안 가까이서 연습한 것은 이번이 처음인데, 생각보다 더 꼼꼼한 성격이었다. 연습하다가 안 되는 부분이 있으면 몇 번이고 반복을 하고는 했다.

게다가 항상 허허실실 여유로워 보여서 몰랐는데, 자신에 대해 꽤 엄격한 스타일이었다. 단순히 등수가 떨어져서라기보다는 이번 경연을 준비하면서 아직 자신이 만족할 만한 무대를 준비하지 못했다는 것을 더 신경 쓰는 것 같았다.

한참 연습을 하는데, 윤빈의 움직임이 미세하게 어제 중간 평가 할 때와 달랐다. 어깨 부분이 불편한지, 동작이 약간 걸리는 것처럼 보였다.

“잠깐 쉴까요, 형?”

“그럴까?”

그래도 휴식 시간에는 다른 연습생들과 다를 바 없이 핸드폰을 꺼내 들었다. 의도치 않았지만 눈에 들어온 배경 화면이 구름 한 점 없이 맑은 하늘과 바닷가였다.

“와, 형 배경 화면 캘리포니아예요?”

“어? 응.”

“날씨 진짜 좋아 보이네요.”

“여름 되면 정말 예뻐.”

자연스럽게 형의 캘리포니아 거주 시절 사진을 여러 개 보게 되었다. 어린 얼굴이었지만 특유의 활발함이 가득했다. 넓은 들판 위에서 뛰어다니는 영상도 있었는데, 보는 내가 자유로워지는 기분이었다. 이렇게 자유롭게 지내던 사람이 연습생 시작하고 서바이벌까지 하면서 고생깨나 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맞아요. 저도 몇 번 가 봤었는데, 제일 선명한 기억이 햇빛이 너무 강했다는 거?”

“응, 너무 오래 있으면 빨개지고, 엄청 타. 난 전에 야구 연습하다가 그, sunstroke 걸린 적 있었어.”

“썬스트로크요?”

바로 번역기를 돌려 보니 ‘일사병’이 나왔다.

“형 덕분에 영어 단어 하나 알아 가네요. 그나저나 야구를 오래 했었나 봐요?”

“응.”

“우와, 어쩐지 운동 신경 좋아 보인다 했어요.”

“그래? 하긴, 3년 했으니까.”

“야구 선수가 꿈이었어요?”

“어렸을 땐? 중간에 다쳐서 그만두게 됐지만”

“어쩐지-”

윤빈이 의문스러운 눈으로 나를 봤다.

“뭐가?”

“형, 방금 연습할 때 어깨가 안 좋은가 생각했었거든요.”

“그래? 어떻게 알았어?”

“저도 연습하다가 어깨 다친 적 있었거든요. 그때 생각이 나서.”

어깨를 다쳤던 건 사실이었다. 비록 그게 춤 연습이 아니라, 액션 신 연습이긴 했지만 말이다.

“어깨가 안 좋아 보였구나… 나도 몰랐어.”

“재활 치료는 안 했어요?”

“재활?”

낯설어하는 반응에 영어로 다시 한번 말해 줬다. 그제야 고개를 끄덕이는 윤빈이었다.

“했었지. 근데 한국 와서는 거의 못 했어.”

“어깨는 진짜 오래가요! 제때 치료하는 게 중요한데.”

“가족한테 아프다고 말하기 싫었어. 내가 오고 싶다고 한 거니까.”

예상치 못한 답변에 고개만 끄덕였다. 여유로워 보였을지언정, 이곳에 누구 하나 필사적이지 않은 사람은 없는데 내가 너무 가볍게 생각했다. 그리고 새삼 나와 닮은 구석이 많은 형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 역시 내 고집으로 한국에 남아 연습생 준비를 했었으니까.

* * *

점심 식사를 마치고 다시 촬영장으로 모였다. 자유롭게 연습하는 모습을 찍으러 왔다고 했지만…….

‘X발, 뭐지?’

부담스러운 시선으로 쳐다보는 것도 속이 메슥거리는데, 묘하게 내 분량마다 관심을 가지는 윤 피디 탓에 기분이 나빠졌다. 점심을 적게 먹어서 망정이지, 아니었으면 한번 게워 냈을지도 모른다. 이쯤 되니 저 인간도 뭔가 눈치를 채긴 했나 싶긴 했다. 비하인드 영상을 내가 줬다는 것쯤은 이미 듣고도 남았을 테니까.

갑작스러운 윤 피디의 관심에 본능적으로 경계 모드가 발동됐다. 저 인간 머리에 또 무슨 교활한 꿍꿍이가 있을지 모르니까. 머릿속으로는 온갖 생각이 오고 갔지만 겉으로는 아무것도 모른다는 순수한 표정을 유지하며 연습을 계속했다. 윤 피디와 눈이 마주칠 때면 오히려 보란 듯이 한 번 더 방긋 웃어 줬다.

안 그래도 옆에서 죽상인 김병대 때문에 잔뜩 신경 쓰이는 중이었다. 소속사에서 제대로 혼난 것 같아 보였다. 혼날 짓 했으니 당연한 처사였지만, 김병대가 저렇게 기죽어 있는 정도면 내 생각보다 더 크게 까인 것 같았다. 원래 김병대 성격이라면 저러다가도 나를 죽일 듯 노려보거나, 정신 못 차리고 태클을 걸었을 텐데 그런 것도 없었다.

‘아니, 고생한 건 나인데 왜 저 둘이 X랄이야?’

비하인드 사건은 연습생 사이에서도 큰 이슈였다. 다들 실수였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고의로 그랬을 수도 있다는 증거가 나왔으니 놀라운 일도 아니었다.

“그래도 설마 일부러 그랬을 줄은 몰랐다…….”

“솔직히 무섭지 않냐?”

“내가 문승빈이었으면 소름 돋았어.”

수군거리는 연습생들을 의식한 듯 김병대는 연습생들이 몰리는 시간에는 연습실에 좀처럼 나타나지 않았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