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1화
“하지만… 그 자격은 제가 아닌 팔로워님들이 판단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자신감 가져 보겠습니다. 지금 이 순위를 받을 만한 자격을 가진 사람이라는 것을 꼭 증명하고 데뷔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ㅁㅊ...
-지운이 패기봐...
-내 새끼 언제 이렇게 강철멘탈이 된 거임?ㅠㅠㅠㅠㅠㅠㅠㅠ
┕어른 다 됐어ㅠㅠㅠ
┕너무 빨리 철들진 마ㅠㅠㅠ
┕지운이 빨리 철들게 한 세상 내가 저주할거야ㅠㅠㅠㅠ
-누구보다 자격 있어 지운아!!
“야, 나 지금 혈중 순덕 농도 수치 과하다…….”
“그래 보여.”
“날 순덕으로 만든 아이돌은 차지운이 유일할 듯?”
“그니까. 지운이 진짜 대단한 놈이야.”
18위로 성민호가 호명되고 이수빈이 떨어지면서 11화가 끝났다. 모두 청예즈인 이수빈의 탈락을 아쉬워했고, 큐트 팀에 들어가서 고군분투한 성민호의 합격을 축하했다.
-민호야ㅠㅠㅠㅠ파이널 무대는 하고 싶은 무대 하자ㅠㅠㅠ
-수빈이만 떨어졌네...ㅠㅠㅠㅠ
┕청예즈 못 잃어...
-민호야 축하해!
씨넷 특유의 어영부영 감동 편집으로 끝나는 줄 알았던 11화는 예상과 다르게 흘러갔다.
“파이널 무대에 여러분이 준비할 곡은 총 3곡입니다.”
“지금 세 곡이라고 했냐?”
“그걸 언제 준비해?”
“꿈을 향한 여러분의 열정을 담은 무대인 만큼, 최선을 다해 주시길 바랍니다!”
문스트럭은 환멸감을 느꼈다. 꿈을 위해서라면 뭐든 할 수 있다고 말하면서, 점점 말도 안 되는 요구를 하는 투마월에게.
남은 방송 시간 동안은 유닛 포지션 선정 과정과 센터 선발 영상이 공개됐다. 그리고 문스트럭과 문승빈 팬덤은 말 그대로 혼파망이었다. 랩 포지션으로 밀려나기, 병원행, 센터 안무 실수 세 가지 악재가 겹쳤기 때문이다.
[코피를 쏟는 문승빈 연습생]
[강도현 연습생과 동선이 겹쳐 버린 문승빈 연습생]
“X발…….”
지난번 악편으로 끝난 줄 알았던 투마월의 악몽은 현재 진행형이었다.
-ㅅㅂ...
-김병대 왜 저럼?ㅋㅋㅋㅋㅋㅋㅋㅋㅋ
┕문승빈 랩 포지션 ㅅㅂㅋㅋㅋㅋㅋㅋㅋ
┕MC빈 하는거냐곸ㅋㅋ
-김병대 지금 자기가 메보할 실력이라고 생각하고 승빈이 밀어낸거임?
┕꼬우면 승빈이가 더 높은 등수했어야지^^
┕김병대가 문승빈한테 실력으로 꿀릴 건 없지 않나?
┕응 ㅈㄴ 있어.
-지금 코피 난 거야?
┕애 안 재우고 연습시키냐고…
┕코피가지고 유난은
-승빈이 안무 실수 처음 아니야?
┕하필이면 지금…
┕병원 가고 안정 취하느라 수정한 안무 연습이 부족했나봐ㅠㅠㅠ
-센터는 물 건너갔넼ㅋㅋㅋㅋㅋㅋㅋ
문스트럭은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아무리 병원에 가서 연습 시간이 부족하고 몸이 좋지 않았다고 해도 수정된 안무는 어렵지 않았다. 거기다가 동선 수정은 전혀 없었는데 승빈 혼자서만 잘못된 동선 이동을 한 것이 뭔가 찝찝했다.
“승빈이가 저럴 애가 아닌데…….”
“몸이 진짜 안 좋았나 보네-”
답답했지만, 심증만으로 누군가를 의심하는 것은 무리라고 생각했다. 예고편은 끝까지 문승빈으로 어그로를 끌었다. 표정을 잔뜩 찌푸린 문승빈의 얼굴이 클로즈업되면서 의미심장한 자막이 떠올랐다.
[위기의 문승빈 연습생, 과연 유닛 곡 센터의 주인공은?]
부쩍 말이 적어진 문스트럭을 K가 불렀다.
“야, 무슨 생각해?”
“윤 피디 X끼 죽이는 생각.”
K는 문스트럭의 마음이 과장이 아님을 알았다. 자신 역시 윤 피디를 몇 번이고 부관참시하는 상상을 했으니까.
* * *
11화 방송이 종료된 후 문승빈 팬덤 내에는 다시 비상이 걸렸다. 뭐든 잘할 거라는 믿음은 있지만, 솔직히 랩은 걱정이었다. 노래와 춤은 이미 실력을 인정받은 영역이지만 랩은 반신반의했다. 거기다가 평소에 잘 하지도 않았던 안무 실수까지 있었고, 건강 상태까지 안 좋은 게 대놓고 나왔기 때문에 데뷔할 수는 있는 거냐고 비아냥거리는 이들도 많았다.
-솔직히 저 체력으로 어떻게 아이돌함?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해투 한 번 돌면 애 쓰러지는 거 아님?ㅋㅋㅋㅋㅋㅋ
-활동기간동안 바짝 벌어야 하는데ㅎ…
-활동 제대로 해보지도 못하고 건강문제로 활중하면 레전듴ㅋㅋㅋㅋ
┕그러길 바라는 사람 많은가봐?
┕아니 난 승빈이 걱정해주는거지^^
“머리 아프네, X발…….”
아니, 전후 사정이 있을 텐데 다짜고짜 코피 흘리는 장면만 내보내는 게 어디 있는가? 문스트럭은 다시 생각해도 열이 받았다. 앞에 연습 장면만 넣어 줬어도 애가 코피가 날 만큼 열심히 연습했구나- 좋은 이미지라도 생길 텐데. 하여간 도움이 안 되는 투마월 같으니라고.
그렇게 문승빈 팬덤이 혼란스러운 와중에 투마월 공식 위튜브 채널에 비하인드 영상이 올라왔다. 4개의 영상이 동시에 공개되었지만, 그중 유독 눈에 띄는 제목이 있었다.
[경쟁도 막을 수 없는 투마월 연습생들의 우정]
“이건 또 뭐야?”
이번에는 또 무슨 이상한 콘텐츠를 기획한 건가- 의심을 가지고 보던 문스트럭의 입꼬리가 점점 올라갔다.
“투마월이 웬일이래?”
콘텐츠 내용은 사실 별거 없었다. 그냥 연습생들이 연습하는 과정을 조각조각 보여 줬다. 마치 ‘우리 투마월은 단순히 경쟁만을 부추기는 프로그램이 아니라, 그 속에서도 연습생들의 아름다운 우정이 빛나는 서바이벌 프로그램’임을 보여 주고 싶어 하는 게 너무 티가 났다.
“비하인드 영상 보면 카메라 들고 다니더니, 이거 찍으려고 한 거구나.”
문스트럭의 입꼬리가 올라간 이유는 승빈 스쿨의 분량이 매우 많았기 때문이다. 문승빈은 다른 경연과 마찬가지로 여러 연습생을 도와주었다. 이렇게 파이널에도 연습생들을 코칭하는 모습을 보여 준다면 단순히 건강상의 문제보다는 문승빈의 선의의 행동이 더 부각될 것이다. 댓글 반응도 예상대로 흘러가고 있었다.
-뭐야 파이널에도 승빈스쿨이냐곸ㅋㅋㅋㅋㅋㅋ
-진짜 투마월에서 문승빈한테 코칭 안 받은 애들 세는게 더빠를듯ㅋㅋㅋㅋㅋㅋ
-승빈이 자기 할 것도 바빴을텐데ㅠㅠㅠ
┕승빈이 저래서 더 무리했던건가봐ㅠㅠㅠ
┕ㅅㅂ 승빈스쿨 폐강해ㅠㅠ
그런데 영상 말미에 와서는 눈살이 찌푸려졌다. 갑자기 김병대가 등장하는 장면부터 편집에 힘이 잔뜩 들어갔기 때문이다. 귀염 뽀짝한 비지엠에 무슨 말만 해도 머리 위에 천사링을 달아 주질 않나, 문승빈을 가르쳐 주면서 하는 말 하나도 놓칠 수 없다는 듯 말 그대로 영혼을 갈아 넣은 편집이었다.
[건강 문제로 연습에 참여하지 못한 문승빈 연습생을 도와주는 김병대 연습생]
[승빈 스쿨도 도움을 받을 때가 있답니다.]
[훈훈한 두 연습생의 우정]
“뭐야, 이러려고 빌드업한 거였어?”
문스트럭은 역시 투마월은 장난으로라도 칭찬해서는 안 된다고 다짐했다.
-병대 너무 착해ㅠㅠㅠ
-그래도 VM이었다고 챙기는거야?ㅋㅋㅋㅋㅋㅋ
┕병대가 문승빈 견제한다고 이간질하던 정병들 지금 부들거리고 있을듯ㅋㅋㅋㅋ
-병대 머리 위에 천사링까지 달아줬엌ㅋㅋㅋ
┕병대 피디픽 된거임?
┕오히려 좋아
“김병대 이미지 세탁용이었냐고.”
그런데 댓글 하나를 시작으로 여론이 180도 변하기 시작했다.
-근데 저기서 김병대 문승빈한테 잘못 알려준거 아님?
┕뭐가?
┕10:15 여기서부터 봐봐 분명 동선 바뀌었다고 알려주고 있잖아, 근데 어제 본 센터영상에서는 동선이 아니라 안무동작이 바뀐거아니었음?
┕오 진짜네;;
┕그래서 지금 병대가 고의로 그랬다는거임?
-ㅁㅊ 김병대 ㅈㄴ 무섭네;;
┕아니 병대가 일부러 그랬다는 증거있음?
┕아니 영상을 봨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어제 수업에서 수정된 부분 가르쳐주겠다고 지입으로 말했잖앜ㅋㅋㅋㅋㅋㅋ
┕헷갈린거일수도있지;;
┕ㅈㄴ순진하넼ㅋㅋㅋ그런 애가 자기 센터영상은 제대로 찍음?
-와 맞네ㄷㄷ 승빈이는 쟤가 가르쳐준 그대로 이동하다가 부딪힐뻔한거네 ㅁㅊ
┕소름돋아;; 김병대 인성 무슨 일임?ㅠ
“이게 무슨 말이야?”
문스트럭은 곧장 승빈의 센터 선발 영상과 김병대가 가르친 부분을 비교했다.
“뭐야, 진짜잖아?”
문스트럭은 속에서 화가 들끓고 있었지만 침착하기로 했다. 이대로만 흐른다면 문승빈은 가만히 있다가 봉변당한 거로 동정 여론이 생길 거고, 김병대는 알아서 이미지 타격을 받을 것이기에 무리하게 개입할 필요는 없었다.
아니나 다를까, 일은 걷잡을 수 없이 커져서 순식간에 기사까지 나왔다. 영상이 공개된 지 30분도 채 안 된 시간이었다. 뭐 이런 일로 기사까지 쓰냐- 하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지금 투마월은 대한민국에서 가장 화제성 높은 프로그램이었다. 연습생들과 프로그램에 관련해서는 모두가 예의 주시하고 있다는 뜻이었다. 오죽하면 연습생들의 사복과 간식을 가지고도 기사화되었겠는가? 충분히 기사화되고도 남을 사건이었다.
[과열된 투마월 경쟁, 이대로 괜찮은가?]
[무한 경쟁에 내몰린 투마월 연습생]
-솔직히 일주일에 무대 3개? 애들이 미치고도 남지
-나였으면 탈주했음ㅋㅋㅋㅋ
-그래 병대도 오죽했으면 그랬겠냐ㅠㅠ
┕뭐래;;누가보면 김병대가 피해자인줄 알겠다?ㅋㅋㅋㅋㅋ
┕병프들 지능적이넼ㅋㅋㅋㅋ
┕김병대 이제 겨우 열일곱살임;;
-김병대도 투마월 경쟁에 내몰린 피해자지;;
┕이렇게 여론 몰아가는거냐? 가만히 있던 문승빈은 무슨 잘못인뎈ㅋㅋㅋㅋ
┕아니 이건 병대가 고의로 그랬다는걸 기정사실화하고 하는 말이잖아
┕김병대가 안그랬다면 투마월시스템 피해자니뭐니 쉴드도 안하겠지ㅋㅋㅋㅋㅋ
사건은 일파만파로 커지더니 연습생들의 인권 문제까지로 번졌다. 각종 언론에서는 부당한 처우를 받거나, 지나친 경쟁 속에 내몰린 연습생들을 주제로 너도나도 할 것 없이 기사를 써 제끼기 시작했다.
-ㅅㅂ 대형기획사 애도 저렇게 여유없어 보이는거면 중소랑 좆소인 애들은 어떻게 사는거냐?
┕좆소 아이돌 파본적있는데 진짜 상상이상임;; 걔네는 데뷔했으니 그정도였지 연습생은 얼마나 더 심했을까ㅜㅠㅠ
┕아이돌산업 ㅈㄴ기형적인거 백날천날 말하면 뭐함? 다들 좋다고 소비하면서. 애들이 불쌍하면 소비를 하지마;;
-애들 꿈은 잘못이 없지 어른들이 문제인건데 소비안하라는건 뭐임;; 다들 실업자 만들자고?
┕이러니까 변하는게 없짘ㅋㅋㅋㅋㅋ
* * *
같은 시간 콘텐츠 담당자 피디 B는 조회 수를 확인하며 흐뭇해하고 있었다. 올라간 비하인드 영상은 총 4개였는데, B와 다른 피디 C가 각각 2개씩 영상을 올렸다. 둘 다 신입 피디라 은근한 경쟁 구도였는데, 다행히 B가 공들여 편집한 영상이 제일 반응이 좋았다. 초반 조회 수는 지난번 도미노 콘텐츠와 맞먹을 정도였다.
“이 정도면 윤 피디님 눈에도 들었겠지?”
평소 윤 피디는 대놓고는 아니지만 계속해서 김병대를 언급하고는 했다. 아마 피디님이 맘에 들어 하는 연습생이겠지. 그래서 특별히 김병대가 문승빈을 도와주는 장면은 영혼을 갈아서 편집했다. 영상이 공개되고 댓글을 확인했을 때도 모두 김병대에 대해 칭찬하는 내용이었다. 흡족한 기분으로 영상을 끈 그는 다른 영상을 편집하기 시작했다. 기분이 좋으니 편집도 잘되는 느낌이었다.
그렇게 윤 피디의 칭찬을 기대하던 B피디의 망상은 윤 피디의 찢어지는 고함 소리와 함께 와장창 무너졌다.
“비하인드 올린 새끼 누구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