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혼자 할 거면 두 번 데뷔 안 함-78화 (78/346)

78화

꿀꺽-

고요한 연습실에 연습생들의 침 넘어가는 소리만 가득했다. 다들 눈동자를 쉴 새 없이 굴리며 눈치를 봤고, 머리로는 무엇이 부족했는지 생각하고 있었다.

“우선 승빈이.”

“네!”

매도 먼저 맞는 게 낫다고 생각했다.

“네가 센터가 된 이유는 정확히 알겠거든? 확실히 사람들 눈을 사로잡을 만해. 표정 연기나, 보컬이나. 근데 센터 파트에서 텃팅 동작은 연습 많이 해야겠다. 너만 클로즈업되면 문제가 없는데 전체적인 그림을 생각해야 하니까.”

“네!”

“그래, 넌 뭐든 빠르게 배워서 하는 말이야.”

두 번 살다 보니 내가 빠르게 배운다는 말을 다 듣네. 역시 인생 2회차는 뭔가 다른가?

하지만 2절 팀의 무대를 보고 나니 속 편한 생각이나 할 때가 아님을 확 느꼈다. 선이 굵은 춤과 섬세한 춤 선을 다 잘 살리는 윤빈에게 단체 곡 안무는 몸에 딱 맞아 보였다. 생소할 수 있는 텃팅 동작도 조화롭게 해내는 것에서 위기감을 느꼈다.

“1절 팀은 긴장 좀 해야겠다?”

“네…….”

“아니, 기죽으라고 하는 소리는 아니고 긴장은 하라는 거지! 그리고 승빈이는 오늘 윤빈이 무대 한 거에서 네가 어느 부분을 보완해야 하는지 파악했으리라고 믿어.”

“네.”

“나, 윤빈이가 저렇게 무대 하는 거 처음 봐.”

옆자리 선우 형이 작게 속삭였다. 9위로 순위 하락을 하고 나서도 평소 생활할 때는 여유로운 모습을 잃지 않았는데, 그것과는 별개로 윤빈도 이번에 사활을 걸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좋은 심사평을 받았음에도 좀처럼 얼굴에서 웃음이 보이지 않았다.

* * *

단체 무대 레슨을 마치고 저녁을 먹는데, 평소보다 입맛이 없었다. 연습하는 내내 근육통이 있었지만, 최대한 참아 보자는 마음으로 무리했더니 후폭풍이 몰려온 거 같았다. 깨작이는 내가 이상해 보였는지 선우 형이 입을 열었다.

“승빈아, 속 안 좋아?”

“입맛이 좀 없네요, 하하-”

“헐, 형 얼굴이 너무 빨간데요?”

“응?”

“열 있는 거 아니야?”

옆자리에 앉은 박재봉이 자기 이마와 내 이마를 짚었다.

“확실히 열나네.”

“연습할 때도 아팠었어? 왜 말 안 했어?”

지운이 형이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물었다. 연습할 때는 그저 긴장이 풀려서 근육이 놀란 거구나- 생각했다. 그럴수록 움직여서 풀어야지! 패기 있게 통증을 무시한 게 화근이었다. 티벡스와 배우 생활을 겪으면서 몸이 아픈 것에 대해선 감각이 무뎌졌다. 티벡스 시절에는 앨범이나 음원으로는 돈이 안 되니 행사 뺑뺑이 도는 것은 일상이었다. 그렇다 보니 소속사의 모토는 ‘아파도 참자’였다.

‘어쩌면 그날’에서 장시간 폭우 신을 찍은 날, 독감에 걸렸음에도 12시간 연속 촬영을 한 적이 있었다. 이 정도는 괜찮다고 감독과 스태프들에게 인사까지 다 하고 차로 오르는 순간 기절했었는데.

“괜찮아요. 가벼운 몸살이에요.”

“숙소 가서 약 먹고 조금이라도 자고 와.”

“에이, 그 정도는 아니에요. 밥 먹고 좀 쉬면 괜찮아질 거예요.”

“무리하지 마. 컨디션 조절 잘해야지.”

“당연하죠. 제 몸은 제가 잘 아니까 걱정 마요.”

지운이 형은 뭔가 할 말이 남아 있는 듯했지만, 고개만 끄덕였다. 어차피 말해도 안 들을 거 알아서 그런 거일지도 모른다. 이럴 때면 형이 예전 그 형인 것만 같아서 기분이 묘해진다. 예전이 아니라 나중 그 형인가, 괜히 실없는 생각을 하며 화제를 전환했다.

“유닛 센터 선발 방식은 연습생 현장 투표였지?”

단체 무대 센터 조작 정황이 들켰다는 것을 의식이라도 하듯, 투표 방식이 현장 투표로 바뀌었다.

“내일 뽑는다고 했었나?”

“응, 오늘까지는 센터 파트 없이 연습한다고 했어.”

식사를 마치고 연습실로 향하는 내내 센터 얘기뿐이었다. 이미 단체 곡 센터로 선정됐기 때문에 유닛 센터에 대한 욕심은 없었다. 하지만 연습에 소홀할 수 없었다.

그런데 몸 상태가 말을 듣지 않았다. 격한 안무를 할수록 숨이 턱턱 막혔다. 숨이 위로 차니 절로 목에 부담이 갔고, 더 심해지면 목에도 이상이 갈 것을 직감했다. 움직임이 둔해지는 것을 최성재 트레이너도 발견했다.

“승빈아, 너 어디 아파?”

“괜찮습니다.”

“괜찮긴! 너 지금 박자 하나도 안 맞는 거 알긴 해?”

“…죄송합니다.”

급속도로 냉해진 분위기에 모두 눈치만 볼 뿐이었다. 그때 선우 형이 놀란 목소리로 외쳤다.

“헐, 코피!”

거울을 보니 정말 코피가 선명하게 흐르고 있었다. 연습생들과 최성재 트레이너도 경악했다. 나도 이런 적은 처음이었다. 어려졌다고 서바이벌 내내 체력을 끌어모아서 살았구나- 실감했다.

“안 되겠다, 승빈아, 병원 좀 다녀와라.”

이렇게 된 이상 더 연습하겠다고 고집부릴 수도 없게 됐다. 선우 형이 배웅해 주며 말했다.

“푹 쉬고 와, 안무는 내가 알려 줄게.”

“고마워요, 형.”

일주일 정도는 버틸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지금이라도 휴식이 필요했다. 의사도 최소한의 수면 시간은 지켜야 한다고 말했다. 간단히 수액을 맞고 합숙소로 돌아오니 벌써 늦저녁이었다.

“형, 괜찮아요?”

“승빈이 왔어?”

숙소에 돌아와 보니 박재봉과 지운이 형이 와 있었다.

“둘이 이 시간에 무슨 일이에요?”

“몸은 괜찮아?”

“당연하죠- 연습 때 잠깐 무리했었나 봐요.”

“와- 둘이 봤어야 했는데, 멀쩡하던 애가 갑자기 코피 흘리는데 얼마나 놀랐는지-”

“아, 오버하지 마요. 코피가 대수인가, 솔직히 연습하면서 다 한 번씩은 흘리는 거 아니야?”

걱정시키고 싶지 않아 일부러 더 아무렇지 않게 말했다. 누구 하나가 말 얹어서 대화 주제가 바뀌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참에 박재봉이 입을 열었다.

“코피 처음 난 날 생각나요, 뭔가 찝찝했는데 내가 그만큼 열심히 했구나- 쫌 뿌듯하기도 했어요.”

“아이고, 재봉아. 그러니까 키가…….”

“아, 진짜, 형!”

그 잠깐을 놓치지 않고 아웅다웅하는 둘을 지운이 형이 말렸다.

“왜 그래- 기특하네, 재봉이.”

“진짜 선우 형이 지운이 형 반의반만 닮았으면 좋겠어요.”

“그럼 너무 완벽해지지 않을까, 재봉아?”

선우 형의 말에 일순간 숙소가 조용해졌다. 지운이 형조차도 꿀 먹은 벙어리처럼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아니, 물론 이유 있는 자뻑이다. 저 얼굴에 저 피지컬, 실력인데 지운이 형의 성품까지 가진다면… 그건 사기다. 게임 캐릭터도 그렇게 커스터마이징하면 전 재산 올인해야 할 것이다.

“와…….”

“허…….”

“저 이만 자러 갈게요.”

박재봉이 질렸다는 듯 일어섰고, 선우 형은 뒤늦게 간식으로 회유했다. 과자 하나로는 어림도 없어서 젤리에 사탕에, 침대 위 간식 창고를 털었다. 그제야 표정을 바꾸는 박재봉이었다.

“오늘이 진짜 마지막이에요, 다음에는 이렇게 안 넘어가요-”

“아, 당연하지! 재봉이 잘 자~”

“지운이 형이랑 승빈이 형도 잘 자고 내일 봐요!”

“야, 나는?”

“형은 잘 주무시든가 말든가 알아서 하시고요-”

“헐, 너무해.”

선우 형의 표정을 보고 한 방 먹였다고 생각했는지 뒷모습에서도 광대가 빵싯 올라간 게 보였다.

“형, 저 안무 좀 알려 줘요.”

“야, 벌써 12시 넘었어. 너 의사가 잠 잘 자야 한다고 하지 않았어?”

“어떻게 알았어요?”

“코피 흘러서 가면 대부분 그러던데, 수액 맞고.”

깜짝 놀랐던 나와는 달리 정말 아무 일도 아니라는 듯 덤덤한 말투였다. 얼마나 자주 겪은 일이었으면 저럴까. 이럴 때 보면 참 적응 안 됐다. 사람이 가볍든가, 어른스럽든가 둘 중 하나만 하면 좋을 텐데.

“그래 승빈아, 오늘은 좀 더 쉬어. 연습 시간 아까운 건 알겠는데 계속 컨디션 안 좋으면 무대 준비 제대로 못 해.”

선우 형이 나를 침대로 밀어 넣고, 지운이 형이 거의 반강제로 이불을 머리끝까지 올렸다.

“잘 자!”

“형도 잘 자요!”

“불은 내가 끈다?”

“네-”

* * *

전날 평소보다 일찍 잔 게 확실히 효과가 있었다. 가벼워진 몸을 이끌고 일찍부터 연습실을 향했다. 어제 숙소에서 썼던 미니 캠도 챙겼다. 연습하는 모습도 찍고, 혹시 연습실에서 재밌는 에피소드가 있을 수 있으니까. 선우 형은 아직 잠든 상태였다. 연습실에 가 보니 김병대가 연습을 하고 있었다.

‘열심이네.’

“어, 승빈이 형?”

“응, 일찍 나왔네.”

“몸은 괜찮아?”

“그럭저럭.”

이렇게 살가운 대화 할 사이는 아닌 거 같은데. 카메라를 한곳에 두고 거울 앞에 섰다.

“아, 형 어제 동선 바뀐 부분 있는데, 트레이너 선생님이 나보고 알려 주라고 하셨어.”

“그래?”

“응, 많이는 아니고, 중간에 센터 파트할 때 동선이랑 동작 약간.”

“고마워.”

프로그램 막바지라고 애가 진짜 철이 들었나? 김병대는 열심히 안무를 알려 줬다. 디테일까지 맞춰 주는데 이상하게 찝찝했다. 사람이 갑자기 바뀌면 의심이 가기 마련이다.

“너 연습할 시간 쪼개서 알려 주는 건데, 고마워.”

“에이, 그동안 내가 형한테 좀 짓궂게 굴기도 했고…….”

김병대가 연습생으로 들어온 첫째 주를 제외하고 이렇게 평화로웠던 적은 없었다. 그래, 얘도 처음부터 나쁘진 않았지, 어른들 하는 행동에 물든 거니까.

“거기서 원래 오른쪽으로 이동했잖아? 근데 이번에 왼쪽으로 동선 이동하기로 했어.”

“그럼 내 기준으로 강도현 앞쪽으로 오면 된다는 거지?”

“응, 역시 형은 한 번에 이해하네.”

뒤이어 연습생들이 들어오고, 개별 연습을 하다가 마침내 최성재 트레이너가 들어왔다.

“다들 연습 많이 했어? 승빈이는 몸 괜찮고?”

“네! 이제 하나도 안 아픕니다.”

“그래. 다 먹고살자고 하는 건데, 건강 챙겨야지. 승빈아, 변경 사항 병대한테 들었지?”

“네.”

“그럼 센터 선발 영상부터 먼저 찍을까?”

“네!”

“누가 먼저 찍을래?”

“제가 먼저 하겠습니다.”

일부러 처음에 지원했다. 안무를 익힌 지 얼마 안 돼서 혹시 틀리더라도 내 영상에만 피해가 하기 위함이었다. 그리고 방금 배운 안무라서 몸이 최대한 기억하는 순간에 영상을 찍는 게 낫다고 생각했다.

“그럼, 승빈이부터 촬영 시작한다. 이건 파이널 전에 팔로워한테도 선공개되는 거 알고 있지? 정신 차리고 제대로 찍어야 한다.”

“네!”

촬영이 시작되고 순조롭게 센터 파트를 시작했다.

“그 누구보다 빛날 오늘의 나를, 샤인 샤인”

이제 김병대가 알려 준 수정 부분이었다. 집중해서 동선을 왼쪽으로 가서 강도현 앞쪽에 서려고 했는데, 강도현이 자리를 비키지 않는 것이다.

‘뭐야?’

결국 충돌이 있었고, 강도현은 당황한 눈으로 뒤돌아봤다. 하지만 아직 촬영이 끝나지 않았고, 남은 파트라도 해야 한다는 생각에 센터로 자리를 잡고 파트를 마쳤다.

X같네 진짜.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