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4화
“6위, 이성재 연습생입니다!”
“뭐?”
“뭐라고?”
“응?”
“아악!!”
성재 형은 비명을 질렀다. 하긴, 오늘 집에 돌아가면 배달 음식이나 마음껏 시켜 먹을 거라고 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데뷔 조가 됐으니.
‘11화 방송되면 난리 나겠네.’
청예즈 서사와 개그 캐릭터로 만인의 차애가 되었거나 견제를 위한 투표였을 것이다. 나는 시즌 1에서 4까지 보면서 1~3차 순발식마다 팔로워들의 투표 양상이 어떻게 바뀌는지 어느 정도 파악하고 있었다. 그래서 놀랍지만, 전혀 말이 안 되는 결과는 아니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다른 연습생들은 그게 아니었다. 특히 데뷔권이었던 연습생들은 멘붕 그 자체였을 거다.
성재 형은 단상에 올라선 후에도 실감이 나지 않은 듯, 안절부절못했다.
“아니 이거 진짜예요? 꿈 아니고? 와… 아니, 이게 가능한가? 가능하니까 올라온 거긴 할 텐데!”
“아, 진짜 저 형은 저기서도 웃기냐고-”
“진짜 너무 말이 안 돼요 이건! 일단 팔로워님들 정말 감사합니다! 여러분들 덕분에 이렇게 말도 안 되는 경험도 해 보고… 파이널 무대 때 실망시키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우리 청량 팀! 같이 무대 준비하느라 너무 고생 많았다! 팔로워님들 다시 한번 감사합니다!”
“대박이다.”
“축하해요, 형!!”
“인간 승리다, 진짜…….”
대부분 축하와 부러움의 반응이었지만 질투도 섞여 있었다.
“5위는 ‘몽환’ 팀에서 새로운 매력을 보여 준 연습생입니다. 축하합니다. 개인, 문승빈 연습생!”
“축하해요, 형!”
“축하해, 승빈아.”
“베네핏을 그렇게 받았는데도 5위야?”
“의외네.”
팀 베네핏과 개인 베네핏을 모두 받았기 때문에 더 높은 순위일 것이라 예측한 연습생들이 많았다. 하지만 나는 오히려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이미 10화 악편 때문에 투표 기간 절반을 날렸고, 투픽인 만큼 나도 견제를 심하게 당했을 것이다. 그래서 10위 안에만 든다면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5위라는 것은, 원픽 투표인 파이널에서는 무난하게 데뷔할 코어를 가졌다는 것이다.
“안녕하세요, 팔로워님들. 개인 연습생 문승빈입니다. 우선 투표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파이널 무대에서 더 좋은 모습 보여 드리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그리고 우리 ‘로즈’ 팀. 같이 연습하면서 너무 즐거웠어. 덕분에 좋은 무대 꾸밀 수 있었다고 생각해. 앞으로도 겸손하게 성장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내가 5위로 발표됨과 동시에 1위 후보 4명에 대한 이목이 쏠렸다.
“순위가 오를 거라고 생각은 했지만, 저 정도로 올랐다고?”
“투픽이 이렇게 큰 변화를 줄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 했지.”
강도현과 박재봉은 예상한 결과였지만, 나머지 둘은 예상을 뒤엎는 연습생이었다. 이 뒤로 1~4위를 뽑을 때도 여러 반전이 등장했다. 결과적으로 1위는 강도현이 차지했지만, 11화가 방송된다면 분명 강도현의 1위보다 다른 연습생들의 순위가 더 화제가 될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마지막으로 발표된 18위는 성민호 연습생이었다. 큐트 팀으로 가면서 위기가 있었지만, 막판 성민호 팬덤의 동정표 영업이 먹히면서 투픽의 수혜자가 되었다.
청예즈 멤버였던 이수빈은 결국 19위로 탈락했다. 나머지 4명에게 둘러싸여 위로를 받았다.
“형들, 끅, 꼭, 데뷔해요, 저도 열심히, 훌쩍, 노력할 거니까.”
“당연하지 인마, 울지 마. 이걸로 끝 아니잖아.”
“그동안 수고 많았다. 나중에 꼭 무대 위에서 같이 만나자!”
“그럼요! 저, 진짜, 흑, 열심히 할 거예요.”
2번의 순발식을 거치면서, 연습생들도 어느 정도 이별에 익숙해졌다. 1, 2차와 같이 대성통곡을 하는 연습생은 확연히 줄었다. 선우 형과 박재봉도 담담하게 팀원들을 위로했다.
“살아남은 18인의 연습생 여러분, 축하합니다! 이제 데뷔를 향한 최종 관문만을 남겨 두고 있습니다.”
탈락 연습생들이 촬영장을 빠져나가기 무섭게 윤승철의 멘트가 시작됐다. 연습생들이 담담해진 이유가 있었다. 이제 더 이상 슬픔의 감정을 오래 끌고 갈 여유가 없거든.
“파이널 무대에서 여러분이 준비할 곡은 총 3곡입니다.”
“원래 두 곡 아니었나? 팀별 곡이랑 단체 곡.”
“이번 시즌은 댄스와 발라드, 두 곡의 단체 곡과 하나의 팀별 곡 무대를 꾸미게 됩니다.”
“오늘부터라고 해도 열흘 안 남은 거 아니야?”
“그사이에 저걸 다 하라고?”
“곡은 잠시 후 촬영장으로 이동해서 공개하겠습니다.”
갈수록 경연 준비 기간이 줄어들었고, 3차 경연은 팀 재조정까지 있었기 때문에 연습생들의 피로도는 극에 올라와 있었다. 그런데 9일 만에 단체 무대와 팀별 곡을 준비하라니. 발라드곡이야 가사만 외우면 되겠지만, 댄스곡을 두 개나 준비하는 건 객기에 가까운 짓이었다.
“꿈을 향한 여러분의 열정을 담은 무대인 만큼, 최선을 다해 주시길 바랍니다!”
꿈이라는 단어 하나면, 뭐든 가능해지는 줄 아나 보다.
* * *
제작진이 예고한 대로 의상만 갈아입고 바로 촬영장을 옮겼다. 3차 경연이 끝나고 나서는 거의 생방송 수준으로 촬영을 하고 있다. 윤승철도 여유가 없어 보였다. 촬영장에 모이자마자 노래 소개로 넘어갔으니 말이다.
“첫 번째 곡은 제일 마지막에 부르게 될 단체곡, ‘다시, 봄’입니다. 유일한 발라드로 따로 안무는 없습니다.”
[추운 겨울의 끝자락에 만나
봄의 인사를 나누고
우리의 여정은 시작되었지
언젠가 아름답게 만개할
순간을 떠올리며
기다린 우린 다시 봄]
부드러운 선율과 함께 클라이맥스는 벅차오르는 미디엄 템포의 발라드곡이었다. 3월에 시작해 6월 초에 끝나는 방송처럼 봄을 함께 한 팔로워들과 연습생의 이야기를 담은 곡이었다. 계절인 봄과 다시 바라본다는 이중적 의미를 담은 제목이었다.
“노래 좋다-”
“승빈이 부르다가 우는 거 아니야?”
“뭘 울어.”
“이런 애들이 더 펑펑 우는 거라잖아.”
“됐네요, 지금까지 운 걸로 치면 형이 저보다 몇 배는 더 많이 울었을걸요?”
“두 번째 곡은 ‘본 투 샤인’입니다. 18명의 연습생이 두 팀으로 나뉘어서 1절과 2절 무대를 꾸미게 됩니다.”
[눈부시게 빛나는 스포트라이트
무대 위 그 누구도
나만큼 빛날 순 없어
본 투 샤인]
웅장한 사운드와 빠른 비트가 청량하지만, 절대 가볍지 않은 분위기를 만들었다. 후렴구 멜로디를 벌써부터 흥얼거리는 연습생들이 있었다.
“안무 너무 멋있다-”
“맞아. 역대급으로 다인원 안무잖아.”
다인원인 만큼 안무 구성도 지금까지와는 차원이 달랐다. 이전에는 군무 중심이었다면, 구성 안무도 들어가면서 다양한 볼거리가 있었다. 특히 단체로 하는 화려한 텃팅 안무는 무대의 완성도를 더욱 높였다.
“1절 할 거야, 2절 할 거야?”
“난 1절.”
평소보다 2배 정도 되는 방송 시간 동안에 모든 무대를 꼼꼼히 보는 시청자들은 적을 것이다. 무엇보다도 파이널 날 처음으로 시청하는 머글들은 빨리 뽑을 만한 연습생을 찾아서 투표하고 싶어 하므로 최대한 빨리 임팩트 있게 나오는 것이 중요하다.
“첫 번째 유닛 곡은 ‘본(Born)’입니다.”
[길고 긴 잠에서 깨어나
이제는 새롭게 태어나
마침내 눈부신 빛이나]
서바이벌의 끝이지만, 이를 통해 최고의 아이돌로 태어난다는 포부를 담은 곡이다. 비장한 사운드와 깨어나, 태어나, 빛이나 라임이 들어간 파트가 중독성 있는 곡이다. 그런데 어딘가 익숙했다.
“이거 단체곡이랑 비슷하지 않아?”
“너도 그렇게 생각해? 나도 도입부 듣는데 단체곡 1절이랑 비슷하다고 생각했는데.”
윤승철은 그런 연습생들의 의문에 해답이 될 만한 답을 줬다.
“두 번째 유닛 곡은 ‘샤인(Shine)’입니다.”
“어?”
“벌써 눈치를 챈 연습생이 있는 거 같은데, 맞습니다. 단체곡 ‘본 투 샤인’은 유닛 곡 ‘본’과 ‘샤인’을 합친 곡입니다.”
“신기하다.”
“생각도 못 한 조합이네.”
“유닛 무대의 곡과 파트는 밀어내기를 통해 정해집니다.”
‘눈치 싸움이 엄청나겠네-’
‘샤인’은 빛나기 위해 노력한 순간을 지나 스스로 빛나겠다는 결심을 담은 곡이었다. 힙합 베이스를 기반으로 강렬한 래핑과 시원한 보컬이 귀를 사로잡았다. 메인 보컬을 하게 된다면 실력을 보여 주기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 둘, 셋씩 하는 페어 안무와 빛을 표현하는 안무가 눈에 띄었다.
[어두웠던 시간은
눈 깜짝할 사이 사라져
무대 위 조명보다도
밝게 빛날 나니까 투 샤인]
“청량한 느낌이네?”
“와, 고음 봐-”
“본이랑 정반대인데 어떻게 두 곡이 한 곡으로 합쳐진 거지?”
“그럼 바로 유닛 무대 곡과 파트 선정을 시작하겠습니다!”
18위부터 곡 선정을 시작했고, 한 명씩 밀어내기가 발생할 때마다 연습생들의 눈치 싸움도 심해졌다. 사실 나는 크게 신경 쓰이지 않았다. 어차피 나보다 순위가 높은 연습생 중에 메인 보컬을 선택할 연습생이 없었기 때문이다. 누군가 메인 보컬을 선점했다면 밀어 버리면 그만이었다.
“5등 문승빈 연습생, 나와 주세요.”
“네.”
나는 곧장 ‘샤인’의 메인 보컬 자리에 내 이름을 붙였다. 모두 예상했다는 반응이었다. ‘샤인’ 팀에는 이미 선우 형과 정유현이 있었다. 둘 다 랩과 보컬도 안정적이고, 무대 실력도 좋아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노래도 나와 잘 맞고, 이제 메인 보컬 파트를 어떻게 연습해야 할까 생각하던 찰나, 찬물을 끼얹는 일이 생겼다.
“응?”
“진짜로?”
“김병대가?”
“문승빈은 그럼 어디로 가는 거야?”
“야 대박, 랩2에다가 붙였는데?”
‘저 새끼가 미쳤나?’
김병대가 다짜고짜 내가 방금 전 고른 메인 보컬 파트에 자신의 이름을 붙이고 나를 랩2로 보내 버린 것이다. 안 그래도 남은 랩1 자리에는 강도현이 거의 정해져 있는데, 자칫하다가는 강도현과 제대로 비교당할 게 뻔했다. 그보다 더 심각한 건, 난 랩을 제대로 배워 본 적이 없다.
서바이벌 시작하고 이렇게 당황한 건 악편 논란 이후 처음이었다. 랩을 맡게 된다면 보컬 스텟을 올렸던 것처럼 실력 상승이 필요한데 9일 만에 그게 가능할까?
“김병대 연습생, 의외의 선택이라 다들 놀란 거 같은데요?”
윤승철마저도 예상치 못했다는 반응이었다. 지켜보던 제작진만 신났다.
“지금까지 메인 보컬을 해 본 적이 없어서 꼭 해 보고 싶었습니다.”
“문승빈 연습생, 랩 괜찮겠어요?”
“네! 최선을 다해 보겠습니다. 하하-”
‘나 하나 엿 먹이겠다고 자기도 망하는 건 신경 안 쓴다, 이건가?’
김병대가 실력이 있다고 한들, 저 곡의 메인 보컬을 할 정도는 아니다. 차라리 안정적이고 분량도 확보할 수 있는 메인 보컬2나 서브 보컬을 하는 게 훨씬 전략적이고 이득이었다. 그런데 오직 나를 랩 포지션으로 보내기 위해 메인 보컬1을 선택했다? 정말 모 아니면 도인 선택이었다.
이렇게 생각하고 나니 한결 마음이 편해졌다. 그래, 까짓것 해 보면 된다. 설마 완전 다른 분야를 연습해야 하는데 상태창이 가만히 구경만 할까? 내가 망해서 아이돌 못 하게 되면 바로 쓸모없어질 상태창인데 말이다. 분명 랩 실력을 상승시킬 만한 이벤트가 있을 것이다.
예상대로 강도현이 랩1을 가져가면서 자연스럽게 ‘샤인’ 팀의 파트 선정이 끝났다. 강도현, 김병대, 나, 선우 형, 정유현 등 상위권 연습생들이 대거 포진했다.
“승빈아, 랩 해 봤어?”
“아니?”
“…힘내라.”
“도현아, 잘 부탁한다?”
“응?”
승빈 스쿨보다 도현 스쿨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도현 스쿨 영혼까지 싹 빨아먹을 생각이다. 혹시 모르잖아, 내가 랩에 재능이 있을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