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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할 거면 두 번 데뷔 안 함-73화 (73/346)

73화

운동회 전체 상품 중 하나인 간식들을 가지고 숙소에 돌아왔다. 이미 박재봉과 강도현, 지운이 형, 이수빈이 와 있었다.

“어, 형 지금 왔어요?”

“지금 형 때문에 완전 난리 났는데.”

“응?”

“에이라이브 할 때 형 목소리 들어갔었나 봐요.”

밖에서 한 말이라곤 간식 받아 가라는 소리에 답한 것밖에 없는데, 그 소리가 에이라이브에 들렸을 줄이야.

“근데 형 하차한다는 말을 믿은 사람이 진짜 많았나 봐-”

“괜찮아?”

“네, 제가 뭐 따로 해명을 할 수도 없는 상황이고, 그냥 액땜했다고 생각해야죠.”

양 볼 가득 과자를 우물거리던 박재봉이 먹던 과자 봉지를 내려 두고 화를 냈다.

“진짜 못된 사람들 너무 많다니까요? 거짓말하는 사람, 해명하는 사람 따로 있는 게 말이 되나?”

“그니까-”

“형도 SNS 하면 안 돼요?”

“너도 개인 SNS 아니잖아.”

“씨이… 지운이 형 일도 그렇고, 소속사 없는 게 잘못도 아니고!”

잘 해결되긴 했지만 모두 암묵적으로 지운이 형의 일에 대해 말을 꺼내지 않아 왔다. 순간 조용해진 분위기에 박재봉이 눈동자만 이리저리 굴리고 있었다. 또 자기가 실수한 거라고 생각하는 건가?

“뭐야, 재봉이 왜 갑자기 조용해?”

“…….”

“내 루머 때문에? 못 할 얘기도 아니고, 이제 다 지나간 일인데. 괜찮아.”

지운이 형의 말을 듣고 나서야 박재봉은 다시 과자를 먹기 시작했다.

“그게 벌써 한 달 전이네.”

“벌써 그렇게 됐어요?”

“응, 시간 진짜 빠르지?”

“형, 나는 처음에 100일이라는 시간이 정말 길다고 생각했거든요? 근데 벌써 3차 순발식이고, 파이널 무대만 남았다는 게 안 믿겨요.”

“나도 파이널 무대 할 수 있으면 좋겠다-”

“걱정 마요, 수빈 형. 여기 있는 우리 다 3차 순발식 살아남아서 파이널 무대 준비할 거예요!”

“말이라도 고마워.”

“진짜인데? 기죽지 마요! 우리 다 같이 파이팅이라도 외칠까요?”

의욕이 넘치는 박재봉을 보며 우리 넷은 누가 먼저 할 것 없이 눈빛을 교환했다. 내가 작게 도리질을 하자 둘 다 고개를 끄덕였다. 특히 나와 지운이 형, 이수빈은 청춘예찬을 준비하면서 이제는 눈만 봐도 어떤 생각을 하는지 대충 파악할 수 있었다.

“그래, 재봉이가 하자는데 해 보자.”

“모두 하나, 둘, 셋 하면 ‘파이팅’ 하는 거예요!”

“알았어.”

“재봉이 손을 맨 위로 올리자.”

“그래그래.”

계획을 실행할 생각에 이수빈과 지운이 형의 광대가 벌써 조금씩 올라가고 있었다. 나도 최선을 다해 포커페이스를 유지했다.

“그럼 제가 구호 외칠게요. 하나, 둘, 셋! 파이팅!!”

우렁찬 박재봉의 파이팅 소리만 숙소 가득했다. 두 눈까지 질끈 감고 외쳤는데, 이상함을 감지했는지 뒤늦게 실눈을 뜬다.

“…….”

“…….”

“…풉.”

숙소 한가운데에서 홀로 파이팅을 외치는 자신과 소리도 내지 못하고 꺽꺽대며 웃는 나머지 넷을 보는 박재봉의 표정이 가관이었다. 기록으로 남기지 못하면 너무 아쉬울 것 같아서 핸드폰으로 촬영을 했는데, 찍힌 영상을 보니 뒤쪽은 천장만 보이고 웃음소리만 가득했다.

“아, 뭐예요!!”

“아, 배 아파…….”

“나 지금, 눈물 나, 푸흡!”

“재봉아, 고맙다. 긴장 다 풀려서 오늘 잠 잘 올 거 같아.”

눈물까지 닦아 내며 웃는 형들을 보며 박재봉은 다시 얼굴이 토마토가 되었다. 뒤늦게 합류한 선우 형도 전후 사정을 듣고 누구보다 열심히 놀렸다. 걱정이나 고민은 잠시 뒤로 하고 정말 아무 생각 없이 웃을 수 있었다. 민망해서 얼굴이 터질 것 같은 박재봉을 달래느라 다들 내일 있을 순발식을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두고 봐요, 언젠가 다 갚아 줄 거니까요.”

“알았어, 알았어- 늦었다. 이제 자러 가자.”

“그래, 재봉아- 일찍 자고 빨리 키가 커야 형아들도 놀리고 하지 않겠니?”

“선우 형이 제일 나빠요.”

이마를 짚는 박재봉을 보며 속으로 위로했다. 몇 년만 기다리렴, 재봉아.

* * *

3차 순발식 현장은 어느 때보다 긴장감이 가득했다. 파이널 전 마지막 순발식인 만큼, 이제 데뷔가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다들 실감한 것이다.

순발식 등장 퍼포먼스를 짜면서도 내심 아쉬웠다.

‘이제 이것도 오늘로 마지막이구나.’

“우리 이번에는 어떻게 등장할까요?”

“뱀파이어 퍼포먼스 할까?”

“무대는 몽환, 섹시였으니까 좀 귀여운 거로 할까요?”

박재봉의 의견대로 무표정으로 걸어갔다가, 무대 중앙에 모여서 귀엽게 무는 시늉을 하며 끝냈다.

“뭐야, 아기 뱀파이어야?”

“와, 진짜 무섭네!”

섹시 팀은 웨이브를 하며 들어왔다. 그런데 윤빈이 그 큰 몸을 다른 참가자들 뒤에 숨기고 있었다. 다들 저게 뭐 하는 건가- 호기심의 눈으로 지켜봤다. 다른 멤버들이 무대 맨 끝까지 걸어와서는 옆으로 비켜섰고, 윤빈이 무대 위에서 혼자 하지 못한 바닥 쓰는 안무를 하는 척하다가 다른 멤버들이 말리면서 끝났다. 진지하다가 코믹하게 끝나서, 지켜보던 연습생들도 빵 터졌다.

30인이 모두 좌석에 앉고, 비장한 배경 음악과 함께 윤승철이 등장했다.

“투마월 시즌 2, 대망의 세 번째 순위 발표식. 지금 시작합니다!”

연습생들의 관심사 중 하나는 파이널 참여 인원이었다. 시즌 1은 20등까지 올라갔다. 이번에도 20명이 올라가지 않을까- 예상한 연습생이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2차 순발식에서 거대한 통수를 맞고 난 후부터 다들 긴장을 놓지 않았다. 또 터무니없는 방식을 가져오거나, 말도 안 되는 인원수를 통과시킬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파이널 무대 진출 인원은 총 18명입니다!”

“헐, 2명이나 줄었네?”

“나 2차 때 19위였는데, 하…….”

곳곳에서 연습생들의 탄식 소리가 들려왔다. 등수 하나하나가 중요한 때에 두 자리나 줄어든다는 것은 치명적이었다.

“그럼 17위부터 발표하겠습니다. 축하합니다, 김형석 연습생!”

“헉!”

“대박!”

“축하해, 형석아-”

김형석 스스로가 가장 놀란 듯했다. 연습생들도 예상하지 못했다는 반응이었다. 하지만 이유가 있는 순위 상승이었다. 30위 선발전 무대가 큰 임팩트를 주었고, 청량 무대에서도 1위를 한 만큼 대중 반응도 좋았다. 거기다가 투픽 투표였기 때문에, 차애가 떨어지거나 견제용으로 한 표를 남겨 둔 사람들의 표를 흡수했을 가능성도 높았다.

“제가 정말 어렵게 3차 무대에 합류했는데, 이렇게 또 팔로워 여러분 덕분에 파이널 무대에 설 수 있게 되어서 너무, 너무 감격스럽습니다. 우리 청량 팀 형들, 제가 늦게 들어왔는데도 잘 챙겨 주셔서 고마웠어요! 다시 한번 응원해 주신 모든 분 감사합니다!”

15위는 정세찬이었다. 자기는 이제 정말 가망 없다고 작별 인사까지 하던 애가 이름이 불리자마자 용수철 튀어 오르듯 자리에서 일어났다.

“형, 이거 꿈 아니죠?”

“축하해!”

뒷자리에 앉아 있던 성재 형과 이수빈도 정세찬을 부둥켜안으며 축하해 줬다.

“파이널 무대에서 최고의 무대 보여 드리겠습니다. 팔로워님들 감사합니다!!”

정세찬의 15위는 조금 놀라운 결과였다. 청예즈 케미가 있다고 하더라도 높은 순위였다.

‘이번에 견제표가 엄청 많이 작용했나 보네.’

“대박이다. 나는 이제 끝난 거 같다, 승빈아.”

성재 형이 우는 소리를 냈다.

“아직 꽤 남았잖아요.”

“아니야, 난 이제 집 가서 배달 음식 뭐 먹을지나 고민할래. 뭐부터 시켜 먹을까? 마라탕? 피자?”

“됐어요, 내일 식단으로 뭐 나올지나 생각해요-”

“아, 나도 이제 속세의 음식이 먹고 싶다, 승빈아!”

쉬는 시간이 있었으니 망정이지, 아니었으면 순위 발표 중에 웃음이 터졌을 것이다. 이어서 중간 쉬는 타임으로 체육 대회 날 VCR이 나왔다. 바로 어제 찍은 영상인지라, 아직 자막 등 후작업은 안 되어 있는 날것 그 자체의 영상이었다. 그래도 하루 만에 컷 편집까지 해내다니. 정말 여러모로 대단한 씨넷 제작진들이었다.

* * *

“9위를 발표하겠습니다.”

큐시트를 보던 윤승철의 표정이 심상치 않았다. 예상치 못한 연습생의 이름이 적혀 있어서였을까? 표정에서 그친 게 아니라 큐시트를 좀 더 가까이 가져가서 확인하기까지 했다. 연습생들도 술렁이기 시작했다.

“뭐야?”

“상위권 연습생인가?”

“문승빈인 거 아니야?”

“난 김병대 예상하는데?”

“선우 형인 거 아니야?”

“이랬는데 막 강도현이면 대박이겠다.”

연습생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다양하게 나뉘었다. 사실, 나는 지금쯤 불리기를 바라고 있었다. 아니면 아슬아슬하게 데뷔권에 드는 것이 가장 베스트였다.

“정말 3차 순발식까지도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는 투마월입니다. 처음으로 데뷔권에서 떨어진 연습생입니다.”

“진짜?”

“1차, 2차 다 데뷔권인데 9등이라고?”

“두 번 다 들어간 연습생이 누구 있지?”

강도현, 정유현, 박재봉, 윤빈 네 사람뿐이었다. 2차 순위를 생각한다면 박재봉이 가장 가능성이 높지만, 3차 경연 무대와 레빗드림의 영상이 큰 화제성을 얻은 만큼, 순위가 떨어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강도현은 워낙 코어가 세기 때문에 투픽이 되었다고 한들, 이렇게 큰 폭으로 순위가 하락하지 않을 것이다.

‘그럼 정유현 아니면, 윤빈인데…….’

두 연습생 모두 의심의 여지 없이 최상위권 연습생이기 때문에 어느 누가 불려도 믿기 힘든 결과였다.

“섹시 팀에서 활약한 연습생입니다.”

“유현이 형이랑, 윤빈 형 중에 한 명이라는 거잖아요?”

앞에 앉아 있던 박재봉이 놀란 눈을 하고 돌아봤다. 예측할 수 없는 전개에 현장은 혼란으로 가득했다.

“9등은 윤빈 연습생입니다!”

“응?”

“윤빈?”

“잘못 들은 게 아니라 진짜?”

“지난 순발식 1위였잖아, 근데 9위?”

“이게 무슨-”

윤빈의 9위는 정말 예상도 못 한 결과였다. 아무리 견제를 받더라도 무난하게 순위권에 들어올 줄 알았는데 9위라니. 데뷔권이었던 연습생들도 모두 놀란 눈이었다. 윤빈은 잠시 상황 파악을 하고 무대 위로 올라갔다.

“윤빈 연습생, 처음으로 데뷔권에서 벗어났는데, 괜찮은가요?”

“아, 괜찮습니다! 투표해 주신 모든 팔로워분들 감사합니다! 오늘은 조금 아쉬운 등수지만, 파이널 무대 정말 열심히 준비해서 꼭 데뷔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특유의 밝은 분위기는 여전했지만, 자리로 돌아가는 뒷모습에 힘이 빠져 보였다. 다른 상위권 연습생들도 위기감을 느낄 거였다. 하지만 충격적인 결과는 이게 끝이 아니었다.

8위 역시 한 번도 데뷔권에서 벗어난 적이 없는 연습생이었다. 그리고 한 번도 데뷔권에 든 적 없던 연습생이 여럿 유입됐다. 특히 6위가 가장 충격적이고 의외의 결과였다. 6위의 주인공도, 연습생도, 스태프들도 예상 못 한 결과였다. 오죽하면 윤승철이 큐시트를 보고는 잠시 촬영을 멈추고, 스태프에게 재확인하기까지 했을까.

“여러분, 정말 예상 밖의 결과입니다.”

“뭐야, 누군데 저래?”

“윤빈 9등이랑 8, 7등 애들보다 더 충격적일 게 있어?”

그런 연습생들의 반응을 비웃기라도 하듯, 윤승철의 입에서는 뜻밖의 이름이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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