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혼자 할 거면 두 번 데뷔 안 함-72화 (72/346)

72화

그다음으로도 림보, 밀가루 사탕 먹기 등 전형적인 운동회 대표 게임이 이어졌다. 섹시 팀이 전체 1위를 하고, 우리 팀은 3위를 차지했다.

“이제 상품을 발표하겠습니다! 바로, 팔로워와의 라이브 방송입니다!”

“부럽다.”

“이번에도 3등까지 주는 건가?”

“이번 상품은 오직 1위 팀에게만 20분의 라이브 시간을 드리겠습니다.”

내심 기대하고 있던 박재봉이 시무룩해졌다. 지난번 씨더스타 대회 때도 4등을 차지해서 에이앱 라이브에 참여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진짜 해 보고 싶었는데…….”

“데뷔하고 매일 하면 되잖아.”

지운이 형이 박재봉을 달랬고, 그제야 뾰로통했던 얼굴이 풀어졌다.

“형이랑 꼭 같이 데뷔해서 에이앱 하고 싶어요.”

“그래. 꼭 그러자.”

“뭐야, 나도 껴 줘!”

“도현이 형은 이미 해 봤잖아요!”

“아, 데뷔하고 우리 재봉이가 혼자만 에이앱 처음해서 뚝딱거리면 또 형이 에이앱 선배님으로서 옆에서 잘 이끌어 주고 그런다는 거지~”

데뷔 못 할 확률이 0에 수렴하는 강도현이라서 박재봉도 더 할 말이 없어 보였다. 아웅다웅하는 모습을 보던 선우 형이 슬쩍 말을 얹었다.

“어휴, 그래 봤자 에이앱 한 번밖에 못 해 본 애들끼리- 귀엽다, 귀여워!”

“형은 무슨 복이야? 에이앱 두 번 하는 건 선우 형이랑 윤빈 형뿐이지 않아?”

“내가 행운을 몰고 오긴 하지? 인간 네잎클로버잖냐.”

“네잎클로버한테 사과하세요.”

“응, 당사자와 원만한 합의 볼게.”

문득 저 셋이 모두 데뷔해서 라이브 방송을 한다면 얼마나 엉망진창일지 궁금해졌다.

* * *

연습생들은 운동회 촬영으로 모르고 있었지만, 이미 씨넷에는 8시 기습 라이브 공지가 올라와 있었다. 우승팀은 미공개였기 때문에 수많은 팔로워는 자신의 최애 팀이 이겼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었다. 모모와 보보 역시 그중 하나였다.

“섹시 팀이 되면 선우랑 유현이 다 나오는 거니까 딱 좋을 텐데.”

“그니까.”

“알림 설정했지?”

“당연하지. 10분 남았네. 쓰레기 버리고 오면 딱이겠다.”

“아, 끝나고 버리면 안 돼?”

“응, 안 돼.”

지난번 내기 벌칙이 아직 끝나지 않았다. 입이 댓 발 나와서 나중에 나가겠다며 시위하듯 바닥에 누운 보보를 보며 모모가 차분히 말했다.

“지금 가서 시작 시간 맞춰서 들어올래, 아니면 너 나가고 비번 바꿔서 방송 다 끝나고 들어올래?”

“지금 갔다 올게.”

“좋은 생각이야. 아직 싸늘하니까 바람막이 챙겨 입고 가.”

“넵.”

보보는 말이 끝나기 무섭게 달려갔다. 전력 질주한다면 10분 안에 돌아올 수 있겠다 싶었는데, 역시나 아슬아슬하게 59분에 도착했다.

“아직, 헉… 시작 안 했지? 후하…….”

“응, 빨리 와.”

“누나, 나 진짜 힘들어 죽을… 고양이? 이거 선우 아니야?”

[안녕하세요, 팔로워님들! (고양이, 늑대, 기본 웃는 이모티콘…….)]

“늑대 이모티콘 있는 거 보니까 윤빈. 미친, 섹시 팀인가 보네!”

라이브가 시작되고, 부부는 만세를 외쳤다.

“안녕하세요, 팔로워님들! 섹시 팀입니다- 저희가 오늘 왜 라이브 채팅을 하게 됐죠, 윤빈 씨?”

“바로, 운동회에서 전체 1위를 했기 때문이죠!”

“저희가 정말 열심히 했는데, 이렇게 좋은 기회를 얻을 수 있어서 기뻐요.”

“유현이 말 잘하는 것 봐.”

-애들아 안녕!

-아싸 섹시팀ㅠㅠㅠㅠ

-애들아 저녁 먹었어?

-오빠들 저 내일 시험 봐요, 응원해주세요.

-ENG PLZ

-성우 당신의 눈은 빛나고 모든 수행을 완벽합니다.

“네! 저희 모두 맛있게 저녁 먹었습니다!”

“팔로워님들도 모두 맛저하셨죠?”

-맛젘ㅋㅋㅋㅋㅋㅋ

-윤빈아 그건 또 누구한테 들었엌ㅋㅋㅋㅋ

-백퍼 강도현이나 박선우일듯ㅋㅋㅋㅋㅋㅋㅋㅋㅋ

“오늘 저희가 나름 코너를 준비해 왔어요! 먼저 무대 비하인드에 대해 말해 드릴게요.”

“선우 진행 너무 잘한다.”

-선우야 데뷔하면 음방 엠씨 하자...

-애들 너무 기특해ㅠㅠㅠ

-귀엽닼ㅋㅋㅋㅋㅋㅋ

그렇게 경연 준비 비하인드에 대해 말하던 중, 복도 쪽에서 다른 연습생들의 목소리가 들렸다.

“여기가 방음이 잘 안 돼서…….”

-애들 당황했엌ㅋㅋㅋㅋㅋ

-괜찮앜ㅋㅋㅋㅋ

-누구 하나 욕하면 방송사고 되는 거 아님?

“승빈아!”

“어, 금방 가-”

-?

-??승빈아?

-지금 문승빈 부른거임?

-뭐야?

-하차 구라였던 거임?

-헐;;

“근데 관계자 인증도 했다고 하지 않았나?”

“근데 이미 투표 다 끝나지 않았어?”

“그니까. 지금 해명한다고 달라질 게 없는데.”

“아이고, 애들 당황했네.”

온통 문승빈 얘기로 가득해진 댓글창에 박선우가 열심히 화제를 돌려 봤지만, 반응을 잠재우기엔 역부족이었다.

-아 다른 얘기하세요. 여기 애들 라이브채팅인데 문승빈 얘기만 하고 있으면 어떡합니까?

-ㅇㅇ 플 돌려

-주제 바꿔

-문승빈 하차 아닌거야?

-애들아 승빈이 하차 안 했으면 브이 해 줘

-아 문승빈 얘기 나가서 하라고;;

“아, 저희 연습하다가 제가… 아, 얘기하면 안 되나?”

잠시 정유현과 눈빛을 교환하더니 박선우가 자연스럽게 받아쳤다.

“아, 유현이 형, 그건 좀.”

-뭐야?

-뭔데 얘기하면 안 된다는 거야?

-얘기해봐 애들아!

-스태프 눈치 보는 거 보면 얘기하면 안되는 거였나?

-유현이 관련한 일인가 본데?

“유현이 지금 일부러 어그로 끌어서 주제 돌린 거지?”

“그런 거 같은데?”

“내 새끼 머리도 좋아.”

“선우도 눈치채고 맞장구친 거지? 진짜 눈치도 빠르고 똑똑하네.”

모로 가도 최애 칭찬으로 흘러가는 부부였다. 부부의 예상대로 정유현의 단순 어그로였다. 연습하다가 귀신을 본 적이 있다며 합숙소 괴담을 얘기하는데 이미 분위기가 달라져 있었다. 이후로는 문제없이 방송이 이어졌고, 순식간에 20분이 지나 라이브가 종료됐다.

“게시판 난리 난 것 봐.”

“아니, 근데 이렇게 금방 밝혀질 루머가 왜 퍼진 걸까?”

“그러게, 인증도 있었다는데 본 사람들만 있고 실제 캡처나 이런 건 없어.”

* * *

라이브 채팅이 종료되고, 남 피디가 안절부절못하는 게 보였다. 신입 티 제대로 내고 있네, 진짜.

“이런 건 예상 못 했는데…….”

“남 피디, 라이브 방송 종료 잘했어?”

“아, 윤 피디님. 안녕하십니까. 언제 오셨습니까?”

“방금. 라이브 반응은 어떠냐?”

“그게, 사실 지금 문승빈 얘기로 가득합니다. 죄송합니다.”

“그래? 잘됐네.”

“네?”

예상치 못한 반응이라는 듯 얼빠진 얼굴이다. 한심하긴, 말은 잘 듣지만 멍청한 놈이었다. 그래서 이용해 먹긴 딱이었지만 답답한 건 어쩔 수가 없었다.

[문승빈 하차했다고 한 사람 누구냐]

계자 인증은 있던 글임?

-ㅇㅇ 근데 1분도 안 되고 펑해서 지금은 없어

-캡처한 사람도 없음?

-원글도 지워졌을걸?

[그래도 투마월은 문승빈 잡으려고 한 거일 듯?]

-ㅇㅇ 그 사람 찐계자인거는 1,2차 순위 맞춘거로 확인된 거였고 글 올린 다음에 계속 달래서 문승빈 잡은 듯?

-ㅅㅂ 그럼 뭐함? 그 글 때문에 투표 안 하겠다고 탈주한 사람이 몇인데;;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소리

“인증 사진은 부서나 직급은 전혀 안 나오게 올렸지?”

“네! 그 부분은 철저히 했습니다.”

“뭐, 내일까지 하차설로 끌어갔으면 좋았겠지만, 이 정도에서 끝내는 것도 괜찮아. 어쩌면 대중들에게 더 재밌는 가십거리를 던져 준 거나 마찬가지니, 우리한테는 완전 땡큐지.”

“아…….”

“내가 왜 1, 2차 순위를 스포하라고 했겠어? 허무맹랑한 소리라고 하면서도 결국은 확인하고 싶어지는 게 대중이야. 그게 다 화제성이고 시청률이고.”

뭔가 대단한 걸 깨달았다는 듯 입을 다물지 못하는 멍청한 얼굴에 헛웃음이 났다. 내가 언젠가는 인사부 가서 시스템을 다 뜯어고치든지 해야지. 어떻게 매번 이렇게 멍청한 애 한둘은 꼭 들어오는 거냐.

“게다가 1, 2차 순위를 맞췄기 때문에 남 피디가 올린 글을 사람들은 믿을 수밖에 없어. 글이 거짓이 아니라, 이후에 ‘어떤 일’ 때문에 거짓이 돼 버린 것처럼 생각하는 거지. 다들 열심히 머리 굴려서 ‘어떤 일’이 뭘까 탐정 놀이하는 거야. 마치 우리가 문승빈을 달래서 잡은 것처럼 자기들끼리 말하고 있잖아. 안 그래?”

“생각해 보니 그러네요?”

“잘 배워 둬, 남 피디. 앞으로 그저 그런 프로그램이나 하는 피디 되고 싶진 않잖아?”

“…네.”

“피디는 대중을 이끌 줄 알아야 해. 쉬지 않고 그들이 좋아할 만한 이벤트들을 던져 줘야 한다는 거야.”

“네!”

“남 피디가 제일 싹이 보여서 내가 굳이 남 피디한테 글 올려 보라고 한 거 알지?”

“아! 감사합니다, 피디님. 정말 많이 배우고 있습니다!”

“그래그래, 이런 게 다 경험이지. 내일 3차 순발식이니까 잘 준비하고. 그럼 수고해.”

“네, 열심히 하겠습니다!”

다 큰 놈이 칭찬 한 번 해 줬다고 귀까지 벌게져서는. 하여간, 요즘 애들은 너무 오냐오냐 큰 게 문제다. 일희일비하는 꼴 하고는, 쯧.

예상보다 빨리 하차 루머가 밝혀졌긴 했지만, 이미 투표 기간이 끝났기 때문에 상관없었다. 제아무리 문승빈 팬덤이 결집했다 하더라도 투표수 하락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사람들은 생각보다 자신의 한 표를 소중하게 여기거든. 문승빈 팬이 아닌 이상, 일반 대중들이 이미 하차했다는 애한테 표를 던질 이유가 없잖아.

그리고 행여 우리 쪽에서 개입한 게 들통나더라도 꼬리만 자르면 그만이다. 관심받고 싶은 신입 피디의 자작극? 충분히 일어날 만한 일이었다. 멍청한 놈, 칭찬까지 해 가면서 달래 놓은 이유가 뭔데.

루머는 맑은 물에 떨어진 잉크와도 같다. 아주 작은 한 방울이라도, 다시 깨끗한 물로 돌아가기란 불가능하다.

문승빈의 악편과 하차 루머가 해명되었다고 한들, 이미 대중들의 머릿속에 퍼진 루머는 완전히 걷어 내기 어려울 것이다. 멍청한 대중은 재밌고 자극적인 소식이 내심 사실이길 바라면서 정작 진실은 외면하려고 하니까.

지금 내가 보고 있는 수많은 댓글이 이를 증명해 주고 있었다.

-어차피 문승빈 인성도 별로인데 하차하건 말건...

┕그거 악편이라고;;

┕문승빈 악편 해명글 링크

┕세 줄 요약 좀

┕저 정도 길이 글도 못 읽고 요약해달라는 수준이면 설명 해봤자 내 입만 아플 듯.

┕세 글자로도 요약가능함. 악편임.

-그래서 하차한다고?

┕안 한다고 ㅅㅂ

┕글 좀 읽어라...

-문승빈이 뭐라고 씨넷이 붙잡기까지 하겠음?ㅋㅋㅋㅋㅋㅋㅋㅋㅋ

┕ㅇㅇ 걍 멘탈 깨져서 객기 부리다가 안되겠으니까 꼬리 내린 거겠짘ㅋㅋㅋㅋㅋㅋ

짜릿하다. 피디 일을 하면서 가장 쾌감을 느끼는 순간이었다. 어차피 내 손에 달려 있는 프로그램에서 연습생들은 시나리오 속 조연 1에 지나지 않는다. 주인 뜻대로 움직이지 않고 경로를 이탈한다면 싹을 잘라야지.

누군가는 내가 냉혈한이다 사이코패스다 말하지만, 정작 그런 사람이 만든 프로그램에 열광하지 않는가? 착한 프로그램을 만들어 보겠다던 선배들은 이미 다 방송국에서 사라진 지 오래였다. 대중의 관심이 곧 돈이 되는 이 판에서, 가장 마지막까지 자리를 지키고 있을 사람은 바로 나다.

이번 프로그램이 끝난 후 받게 될 어마어마한 보너스가 벌써 눈앞에 훤했다. 이번에는 차나 한번 바꿔 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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