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화
게시글은 꽤나 본격적인 내용을 담고 있었다.
[ㅌㅁㅇ 이번에 자진하차 연습생 나옴ㅇㅇ]
계자인증 가능하고
(직원카드 사진)
ㅁㅅㅂ 자진하차함. 악편 때문에 며칠 멘탈 터져있더니 하차 의사 전달함. 곧 기사뜰 듯
-뭔 개소리야?
-응 저런 사진 검색하면 다 나와~
-근데 저사람 1,2차 순발식 순위 스포한 사람 아님?
┕아이피 보니까 맞는데?
┕헐;;;
-아이피는 걍 같은 피방이기만 해도 같은 거 아님??
┕ㄴㄴ 아님
-씨넷 제 꾀에 지가 빠졌네;;
-ㅁㅊ 시청률에 눈멀어서 애먼 애 인생 날렸네...
[ㅁㅅㅂ 찐 맞나봐]
금방 펑할 거긴 한데;;
지인 중에 씨넷 일하는 계자 있는데 지금 ㅁㅅㅂ 자진하차한다 그래서 난리났대ㅠㅠㅠ
제작진들이 설득하고 있는데 애가 걍 패닉상태인가봄ㅠㅠ
-노인증구씹임
-아까 계자 인증한 사람이랑 같은 얘기하는데??ㄷㄷ
┕뭐가 ㄷㄷ임 아까 그 글보고 이거 쓴거겠지ㅎ....
-아니 지들이 악편해놓고 뭘 잡아 잡기는
┕그니까;; 찐이면 씨넷 양심 뒤짐?
-문승빈 빠지면 누가 메보함??ㅠ
┕하 데뷔조 벌써 망했다........
“허…….”
그런 와중에 목격담까지 뜬 거다.
[오늘 00역 카페에서 문승빈 봄. 컵홀더 이벤트하는 카페였던 거 같은데, 완전 꽁꽁 싸매고 왔더라. 평일 아침이라서 걍 직장인들밖에 없었는데, 다 가려도 잘생겨보여서 번호 물어볼까 하고 주시하고 있었는데 눈 보니까 딱 문승빈인거ㅋㅋㅋㅋ 근데 나랑 눈 마주치지마자 돌처럼 굳어가지고 들고 있던 컵홀더도 떨구는 거임... 놀라서 내가 주워줬는데 도망가버려서 못 돌려줌ㅠㅠㅠ큐ㅠㅠㅠㅠ 너무 안절부절해서 알아본게 미안해질 정도였음ㅠㅠㅠ 자진하차 루머 도는 거 같은데, 확실한 건 문승빈 상태 넘 안 좋아 보였음ㅠ 내 최애가 저 정병판에서 일찍 탈락한 게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안쓰럽더라ㅠㅠㅠ]
-아 ㅁㅊ........
-콩알단들아 우리 어쩌냐??
-나 승빈이가 그렇게 힘들어하는 지 몰랐음ㅠㅠㅠ
-윤피디 X발새끼야ㅠㅠㅠㅠㅠ
-글 내려 ㅅㅂ
┕ㅇㅇ 지 최애 아니라고 막 올리네;;
-문승빈이 정병온게 글쓴애 잘못임??
┕그니까;; 그냥 평범한 목격담인데 왜이리 난리임
-나 그냥 윤피디 죽이고 지옥갈게ㅇㅇ
┕22
┕33
┕44 이러다 지옥에 승프들만 남을 듯....
‘타이밍 한번 죽이네.’
혹시나 해서 들어가 본 팬 카페에서는 여러 의견이 오가고 있었다.
[콩알단들 우리 이제 어떻게 함?]
루머가 찐이면 지금 투표하는 거 아무 의미 없잖아ㅠㅠ
-그니까ㅠㅠ 지금 힘빠져서 투표할 마음도 안들어ㅠㅠㅠ
-주변 사람들한테 긁어온 표가 몇인데,..
-이번에 진짜 1위할 수 있을 거 같았는데ㅠㅠㅠㅠ
-그래도 투표는 계속해야지;;
┕그니까;; 저게 구씹이면 어쩌려고 투표를 그만두네 마네 하는 거임?
┕계자인증글인데 빼박이지 뭔 행복회로 돌리고 있어?
-저게 찐이라도 투표는 계속해야지.. 승빈이가 볼 거잖아....
┕ㅇㅇ 이제 등수는 상관없고, 걍 우리가 이만큼 응원하고 있다고 보여주고싶어ㅠㅠ
┕그래 일단 저게 찐인지는 방송보면 알겠지. 투표는 계속 해야 함
-난 승빈이 1위하는 꼴 봐야 탈빠하겠음
┕진심 내새끼 센터하는 거는 보고 탈케할거임
┕이게맞지ㅠ 하차건 아니건 승빈이 등수는 남는 거니까
필터링 없는 팬들의 반응을 보니 문득 팬심이라는 게 뭘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만약 내가 진짜 하차를 했다면 하등 쓸모가 없어지는 투표임에도, 오로지 나를 응원하는 마음을 전하기 위해 포기하지 않겠다는 마음은 도대체 뭐라 설명할 수 있을까?
한껏 복잡했던 머리가 한결 가벼워졌다. 누군가는 나를 가벼운 마음으로 좋아할 거고, 누군가는 나를 진심으로 사랑하고 있겠지. 그리고 또 다른 누군가는 자신의 이상에 담긴 내 모습만을 좋아할 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있는 힘껏 나를 사랑해 주는 사람들의 마음마저 뭉뚱그려서 두려워하는 것은 너무 이기적인 행동이었다. 마주하기 무섭다고 이 감정들을 비가시화해서는 안 되는 거였다.
금방이라도 나 하차 안 한다고 댓글을 달고 싶어 드릉거리는 손을 꾹 참고 오늘의 마지막 할 일, 상태창을 확인해 봤다. 지난 경연은 갑자기 등장한 하트창 때문에 나머지 스텟에는 상대적으로 관심을 두지 못했는데, 그동안 많은 변화가 있었다.
[이름: 문승빈]
외모: B+
끼: B-
보컬: A-
댄스: B-
프로듀싱: C+
그사이 두 번의 타임 어택 미션에 성공해서 잔여 포인트가 3포인트 남아 있었고, 일부 스텟은 자연적으로 오르기도 했다. 무엇보다도 아직 작곡 능력을 보여 준 적도 없는데, 두 단계나 오른 프로듀싱 항목이 눈에 띄었다. 얼마나 다른 연습생들을 도와주고 다닌 건지 새삼 놀라운 상승이었다.
‘승빈 스쿨이 도움이 되기는 했네.’
파이널을 앞둔 만큼, 우선 외모에 1포인트를 분배했다. 3차 경연 스타일링이 워낙 화려하기도 했고, 며칠간 합숙소를 떠나 있던 지금이 적기라고 생각했다. 바로 거울을 확인해 보니 확실히 A등급은 달랐다. 완전한 쌩얼 상태인데도 투명 화장을 한 것처럼 광이 나고 있었고, 미묘하게 얼굴에 여백이 더 줄어들었다. 마치 카메라 마사지를 받은 것처럼, 뭐라고 콕 집을 수는 없는데 얼굴이 정돈된 느낌이었다. 하다못해 탈색을 반복해서 난리 났던 머릿결까지 좋아졌다.
‘이런 디테일함까지 챙긴다고?’
역시 뱀의 머리보다는 용의 꼬리가 나은 건가, A-면 A등급 끝자락인데도 이 정도라니. 앞으로의 외모 스텟 상승은 조금 조심해야 할 거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음 스텟 상승부터는 잘못했다간 성형 논란이 나올 수도 있을 만한 변화일 것만 같았다.
다음 포인트는 보컬에 분배했다. 원래 상태가 A등급이라서 그런지 그렇게 많은 연습을 했음에도 자연적으로 오르지 않은 유일한 항목이었다. 파이널 무대에서 확실한 메인 보컬의 모습을 보여 줘야 했기에, 긴 고민 없이 선택한 부분이었다.
마지막 1포인트는 비상 상황을 위해 남겨 두기로 했다. 파이널 방송이 어떻게 진행될지는 알고 있지만, 어떤 변수가 나타날지는 모르는 거니까. 윤 피디 성격상 지금 열이 잔뜩 올랐을 텐데, 무슨 짓을 할지 예상이 안 가는 인간이었다.
[이름: 문승빈]
외모: A-
끼: B-
보컬: A
댄스: B-
프로듀싱: C+
최종적으로 확정된 상태창을 보니 이 정도면 충분했다. 외모와 보컬이 A등급에 끼와 댄스가 B등급이라니. 하트창 수치가 살짝 줄어서 [♡73%] 상태였지만, 점점 다시 회복할 걸 알기에 별걱정이 없었다. 악편 논란이 터지고 며칠간은 70% 밑까지 떨어지기에 한동안은 하트창을 비활성화시켜 놨었다. 쭉쭉 떨어지는 수치가 생각보다 꽤 스트레스였거든. 하지만 다시 찔끔찔끔 오르는 걸 보면, 내가 그래도 조금씩 회복하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이제 마지막 단계만이 남았다. 투마월 파이널이 바로 앞까지 다가온 이상, 남은 건 오직 데뷔뿐이었다.
* * *
점심시간 직전에 숙소에 들어온지라, 과연 점심을 줄까 싶었는데 예상을 뛰어넘는 화려한 식단이었다. 식판을 가지고 자리에 앉은 박재봉의 얼굴이 오랜만에 밝아 보였다.
“오늘 유독 고기 메뉴가 많은 거 같은 건 제 기분 탓일까요?”
“그러게, 전에 연습생들 살쪘다고 욕먹은 이후부터 나물 반찬 범벅이었잖아.”
그 말에 식판을 골똘히 보던 선우 형이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야, 근데 난 이제 이런 변화만 봐도 뭔가 불안하다?”
“에이, 설마- 먹는 거로 뭐가 있겠어요?”
“오늘 완전 빡센 프로그램이어서 미리 체력 보충하라고 이러는 거 아니야?”
“내일이 순발식인데?”
“아, 형! 말이라도 그런 소리 하는 거 아니에요!”
몸서리치며 고개를 젓는 박재봉의 반응에 선우 형이 더 신났다.
“막 체력장 이런 거 시키면 재밌겠다, 흐흐”
“으, 진짜 싫어.”
박재봉은 아예 양손으로 귀를 막았다. 정말 놀릴 맛이 나게 반응하는 놈이었다. 식사를 다 마칠 무렵 익숙한 투마월 시그널 송이 들렸고, 박재봉의 동공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연습생 30인은 점심 식사를 마치고 1시까지 스태프들의 안내에 따라 촬영장으로 집합해 주시길 바랍니다.”
“아…….”
급격히 시무룩해진 재봉의 얼굴에 선우 형이 더 의기양양해졌다.
“와, 나 돗자리 깔아도 될 듯?”
“이게 다 형 때문이에요!”
“야, 아직 뭐 할지도 모르는데 형을 너무 신뢰하는 거 아니야?”
웃는 얼굴에 침 못 뱉는다고, 박재봉은 포기했다는 듯 식판을 들고 황급히 자리를 떠났다.
“형은 재봉이 놀리기 위해서라도 데뷔 꼭 해야겠어요.”
“하긴, 재봉이도 심심하긴 싫으니까 나랑 데뷔하고 싶어 할 듯?”
“와- 형, 자신감 쩐다.”
옆에서 묵묵히 대화를 듣던 지운이 형이 말했다.
“이제 이렇게 불쑥 집합시키는 것도 얼마 안 남았다니, 기분 이상해.”
“우리 이제 2화만 지나면 서바이벌 끝나는 거잖아? 와…….”
숨 가쁘게 달려오느라 서바이벌이 끝나는 순간은 생각을 못 했는데, 불쑥 실감이 났다. 무작정 형과 데뷔하겠다는 마음으로 참가한 투마월이 끝난다니, 마지막 무대에서 나는 어떤 표정일까? 일단 기쁠 것이다. 그토록 바랐던 성공이 보장된 아이돌이 되었으니까. 그동안의 시간들이 떠오르면서 눈물을 흘릴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자리에 지운이 형이 없다면?
그건 어떠한 경우의 수로도 생각해 본 적이 없다. 이곳으로 회귀해 온 이상 지운이 형과의 데뷔는 반드시 해야 한다는 생각뿐이었다. 그게 아니라면 돌아온 이유가 없으니까. 확신은 있지만 불안한 마음을 다 떨치긴 힘들었다. 이곳에서 모든 것이 회귀 전과 같이 흘러가는 것도 아니고, 내가 제어할 수 없는 변수들이 없다고 보장할 수 없기 때문이다.
생각에 잠겨 있던 나를 깨운 건 지운이 형과 선우 형의 목소리였다.
“야, 문승빈!”
“승빈아.”
“…네?”
선우 형이 얼굴 앞에 손을 흔들었다.
“멍 때리고 뭐 해?”
“이제 가 볼까?”
이유는 모르겠지만, 둘의 목소리를 듣자마자 든든해졌다. 그래, 지금 내가 하고 있는 걱정들은 모두 ‘만약’으로 시작한다. 일어날 수도, 일어나지 않을 수도 있는 일들이다. 하지만 지금 내 앞의 두 사람이 있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었다.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걱정으로 허비하기엔 너무 아까운 순간들이었다.
언제부터 순탄하게 살아왔다고 이런 고민을 하고 있었는지. 많은 사람의 관심을 받고 싶었던, 꿈을 포기하고 사라지고 싶지 않았던, 그리고 형이 살아 있기만을 바랐던 순간이 있었다.
그 모든 게 이뤄진 지금, 뭐가 그렇게 두려웠던 걸까. 앞으로 더 큰 시련이 오더라도 멈출지언정, 절대 꺾이지 않을 것이다. 투마월 참가를 결심한 날 스스로에게 다짐한 모든 것을 이루기 전까지는 절대 돌아갈 생각이 없다.
변수를 또 만나게 될 지라도 다시 극복하면 된다. 몇 번의 고비를 넘어왔던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