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9화
사실 문승빈 팬들, 속칭 ‘콩알단’들로서는 처음 겪는 위기감이었다. 투마월 첫 화에 나온 공개 대면식 무대부터 VM 출신으로 관심받았고, 매 경연 레전드를 찍으며 순위가 계속 오르기만 했다. 게다가 최근에는 계속 데뷔 조 안정권이었기 때문에, 팬들도 별로 걱정이 없던 게 사실이었다. 이대로만 가면 무난하게 데뷔하겠지 싶었는데, 갑작스러운 악편으로 한순간에 나락에 떨어질 뻔한 거다.
서바이벌에서 안전한 순위라는 건 없었는데, 지나치게 안일했다. 그렇게 콩알단 내에서의 공포 영업이 시작되었다.
[3차 순발식 순위 예상 (중요!)]
아마 데뷔권 순위는 못할 거 같음ㅠㅠㅠㅠ
잘 해봐야 10위? 한 자릿수는 절대 불가능함ㅇㅇ
해명되기 전까지의 투표는 걍 망했다고 봐야 하니까
투표기간 거의 절반을 날린 거임;;
정신 차리고 투표해야 함ㅠㅠ
-아니 무슨 자료도 없이 뇌피셜임;;
-이게 무슨 예상이야ㅋㅋㅋㅋㅋㅋㅋ
-직전 순위가 3위였는데 무슨;;
┕그니까;; 공포영업도 정도껏 해라
-애는 ㅈㄴ 잘하고 있는데 팬들이 문제임
┕진심ㅋㅋㅋㅋㅋㅋ 걍 승빈이가 머글표까지 하드캐리하는 중임
-근데 콩알단들 진심 투표 안하긴 함
┕ㅇㄱㄹㅇ 인증글 올리자하면 다들 ㅈㄹ하잖아;;
[다들 정신차리자;; 승빈이 개인 연습생인 거 다 잊음??]
착각하고 있는 거 같은데 승빈이 더 이상 VM 아님;;
개인연습생이라서 소속사 공계에서 올리는 떡밥도 없는 앤데
다들 뭐하자는 거임??
투마월에서 데뷔 못하면 우리 애 다시 못 볼 수도 있음ㅠ
-윤피디 나가 죽어 ㅅㅂㅠㅠ
┕이제 좀 안정권으로 가나 싶었는데ㅠ
-여기서 떨어져서 차라리 대기업에 스카웃되는 게 더 이득 아님?
┕덕질 원투데이 하냐? 서바 나온 연생을 대기업이 왜 데려가;; 중소라도 가면 성공임ㅇㅇ
┕VM에서 다시 주워가주면 안 될까요?
┕승빈이가 재활용품이냐? 뭘 주워가 ㅅㅂ
-그리고 이미 VM에 밉보였을 가능성이 높음...
┕VM입김 ㅈㄴ 세잖아.
┕ㅇㅇ새롭게 소속사 찾으면 된다고 행복회로 돌릴 때가 아니라는 거임.
이런 팬들의 불안감에 제대로 불씨를 붙인 글이 올라왔다. 바로 ‘To My World’ 시작 후 처음으로 올라온 문승빈 지인의 글이었다. 학창 시절 내내 연습생으로 보내서인지, 학교나 주변 지인들의 글이 전혀 올라오지 않았었기 때문에 더 많은 관심을 받았다.
[안녕하세요. 승빈이와 VM에서 연습생 같이 했던 지인입니다.]
(연습생 시절 문승빈 사진)
(문승빈, 강도현과 셋이 찍은 사진)
승빈이랑은 1년 정도 같이 연습하고 저는 다른 소속사로 옮겼다가 지금은 다른 길을 가고 있습니다. 짧다면 짧은 시간이었지만, 승빈이와는 좋은 기억뿐입니다. 연습도 정말 열심히 하고, 어린 나이인데도 동생들도 잘 챙겨주고 든든한 친구였어요. 저보다 어리지만 배울 점이 많은 친구라고 항상 생각했습니다.
대형기획사 시스템이 많이 잔인해서, 저도 그거 못 견디고 다른 소속사로 이적한 것도 있어요. 승빈이랑 도현이 덕분에 그나마 버틸 수 있었는데, 그래도 힘든 건 어쩔 수 없더라고요. 둘이 하도 친해서 승빈이만 소속사 나왔다는 얘기에 놀랐는데, 그래도 둘 다 투마월 통해서 잘 돼가는 거 같아서 정말 기뻤어요. 그런데 말도 안 되는 악편 당하면서 먹지 않아도 될 욕까지 먹는 게 너무 안타까워서 글을 쓰게 되었습니다. 정말 좋은 사람이라는 걸 조금이라도 알리고 싶어서요.
승빈이 부모님은 미국에 계셔서 원래 누나분이랑 같이 살았는데, 그분도 해외 유명 대학으로 사진 전공하러 떠나신 걸로 알고 있어요. 혼자 아이돌 하겠다고 한국에 남아있는 겁니다. 그래서 명절이나 휴가 때 저희 모두 본가 갈 때도 승빈이는 혼자 숙소에 있던 때가 많았어요. 그게 안쓰러워서 몇 번 집에 데려왔었는데, 그때마다 저희 부모님께 저보다 더 살갑게 감사인사 했던 게 생각나네요.
급하게 써서 두서없는 글이지만, 승빈이 믿고 응원해주셔도 됩니다. 정말 착하고 잘하는 친구예요. 승빈아, 나도 뒤에서 늘 응원하고 있어! 꼭 데뷔하길 바랄게. 승빈이 투표 많이 해주세요!! (P.S. 이미 잘하고 있지만, 도현이도 파이팅!)
글이 올라온 지 10분도 되지 않았지만 댓글창은 불타오르고 있었다.
-승빈이 연습생때 사진이야?
┕아 ㅈㄴ 귀여워 미치뉴ㅠㅠㅠㅠㅠ
┕볼살 통통한 거 봨ㅋㅋㅋㅋㅋ큐ㅠㅠㅠㅠㅠㅠ
-도현이랑 승빈이 둘다 완전 애기였네ㅠㅠㅠㅠㅠ
-도현이 키가 저렇게 작았어??ㅠㅠㅠ
┕그니깤ㅋㅋㅋㅋ 저땐 승빈이가 훨씬 컸네ㅋㅋㅋㅋㅋㅋㅋ
-야 그게 중요한 게 아니라 데뷔 못 하면 미국행인거임?
┕아..............?
┕????
┕ㅁㅊ......
-아니 진짜 정신 차려야 한다니까? 애 VM도 자기가 나온거라잖아;;
┕이번이 찐 마지막이라고 생각하고 나온 건가 봄ㅠㅠ
┕승빈이 무조건 데뷔해야 해ㅠㅠㅠ
-문승빈이 아이돌 안 하면 누가 하냐고...
┕저 얼굴 저 실력에 공부하면서 조용히 산다? 내가 용납 못 함
┕인재낭비야 ㅅㅂ
┕와 정신이 확 드네;; 여기서 데뷔 못하면 가망 없다는 거 확인사살당한 기분임
-가족이 다 미국 살면 최소 은수저 아님? 승빈아 걍 미국 가서 갓생살잨ㅋㅋㅋ
┕ㄲㅈ
┕망한 서바이벌이면 인정, 하지만 투마월로 데뷔하면 성공은 떼놓은 당상인데 무조건 데뷔해야짘ㅋㅋㅋ
-저런 글을 왜 올려가지고ㅉㅉ
┕못 올릴 이유가 있음?
┕ㅈㄴ 쓸데없이 공포감 조성하잖아;;
┕이 판은 위기감이라는 걸 좀 느껴야 정신차림ㅇㅇ
┕검열 오지네ㅎ
-도현이랑 승빈이 진짜 친했나보다ㅠㅠㅠㅠㅠ
┕하.... 븨엠에서 같이 데뷔하지ㅠㅠㅠㅠㅠ
┕그니까ㅠㅠㅠ 이런 애들 두고 경쟁구도로 편집한 거임?ㅠㅠ
-대면식에서 VM 떴을 때 승빈이가 놀랄만했네.....ㅠ
“미국? 이건 또 무슨 소리야?”
지인의 게시글을 읽던 문스트럭의 얼굴이 사색이 됐다. 첫 방송에서 VM 출신인 것을 처음 알았을 때만큼의 멘붕이었다.
“아니, 내 아들이 승빈이었으면 난 전 재산 투자했을 텐데 미국은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야?”
“너희 장모님한테 그래도 되는 거야?”
“야, 다른 때면 천 원이라도 입금할 텐데 지금 그럴 기분이 아니다.”
악편의 위협은 레빗드림 덕분에 어찌어찌 잘 넘어갔지만, 앞으로 악편을 안 할 거라는 보장도 없었다. 게다가 제 뜻대로 흘러가지 않으면 더 강하게 나오는 게 윤 피디였다. 시즌 1을 이미 경험한 문스트럭은 앞으로가 더 고비라고 생각했다.
‘어쨌든 승빈아, 미안하지만 미국에서 갓생 사는 건 절대 안 된다.’
* * *
악편 논란 이후 어느 정도 정신을 차리고 보니, 합숙소로 돌아가는 게 이제 겨우 이틀밖에 안 남았다. 남은 시간 동안 뭘 할까 고민하다가 이참에 상태창도 재점검하고, 파이널 무대에 필요한 것들을 준비하기로 했다.
하지만 그전에 꼭 해 보고 싶은 게 있었다. 언젠가 기회가 된다면 전광판을 비롯한 팬들의 선물을 영상으로 담고 싶었다. 혹시라도 데뷔한 이후에 직접 편집한 영상을 선물하면 팬들도 분명 좋아할 것 같았다.
전광판 광고는 이미 다른 연습생들과 보고 온 적이 있지만, 혼자 가서 보는 전광판은 또 느낌이 다를 것이라 기대했다. 조금 더 솔직한 감정으로 마주할 수 있지 않을까.
투마월 막바지고 악편 논란까지 있으면서 이제 전처럼 하고 나갔다가는 큰일 날 거였다. 모자에 마스크, 최대한 튀지 않는 옷까지. 할 수 있는 최대한으로 중무장하고 나섰다. 지난번 전광판 투어 날보다도 일찍 출발했다.
“진짜 조용하네.”
캠코더를 켜고 가볍게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오늘은 팬분들이 선물해 주신 전광판 보는 과정을 찍어 보겠습니다. 처음 찍는 영상이라 어색해도… 예쁘게 봐주세요.”
처음으로 향한 곳은 자취방 근처의 지하철역이었다. 바로 이틀 전에 걸려서 아직 확인을 못 했던 광고가 있었다.
[승빈이가 그려낼 우리의 계절]
팔로워님들! 문승빈 연습생의 미래를 응원해 주세요!
걸린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도, 응원의 메시지들이 가득했다. 그 모든 말들을 캠코더에 천천히 담았다. 기분이 이상했다. 나를 좋아했던 사람이 한순간에 등 돌리는 걸 목도했기 때문일까? 하지만 적어도 여기 있는 메시지들만큼은 온전히 나를 응원하는 마음이 아닐까 스스로를 달랬다. 이런 생각이 드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복잡해졌다.
아직 사람들이 없는 시간대였기에 얼른 강아지 스티커를 붙였다. 지난번 광고를 보러 갔을 때 붙이고 왔던 스티커라서, 팬들 사이에는 나를 나타내는 표식처럼 쓰이고 있었다.
두 군데의 전광판을 더 돌고, 다음으로 간 곳은 컵 홀더 행사를 하는 카페였다. 살짝 고민했지만, 문스트럭이 연 카페라서 한 번쯤은 꼭 와 보고 싶었던 곳이었다. 평일이기도 하고 카페 오픈 시간에 맞춰서 갔던지라, 다행히 대부분 출근하는 직장인들 같았다. 최대한 조용히 주문한 음료를 받고 나오려는데, 누군가가 나를 알아본 듯했다.
“어……?”
순간 나도 모르게 몸이 굳었다. 이런 느낌은 연습생 때도, 티벡스 시절에도, 그리고 배우 활동 때도 느끼지 못했다. 나에게 있어 대중의 시선은 무관심 아니면 애정이었다.
‘저 사람은 그저 나를 만난 게 신기한 사람일 거다.’ 되뇌어 봤지만 그럼에도 마음속 의심이 사라지지 않았다. 혹시 나를 싫어하는 사람이면 어떡하지? 악편 속 모습이 진짜 나라고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그럼 나는 어떻게 반응해야 하지?
온갖 생각들이 소용돌이치면서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행동은 바로 자리를 뜨는 것뿐이었다.
“저기……!”
다급한 여자의 목소리를 뒤로하고, 무작정 달려 나왔다. 한참을 달렸을까, 목 끝까지 차오른 숨에 겨우 걸음을 멈추자 낯선 거리 한복판이었다. 기껏 받은 컵 홀더도 결국 가지고 나오지 못했다. 캠코더라도 챙긴 게 다행일 정도였다.
회귀하고 다른 연습생들과 생활하면서 나는 비교적 서바이벌이 수월하게 느껴졌다. 산전수전 다 겪어 봤다고 생각했으니까. 하지만 그런 나에게도 대중의 맹목적인 비난은 처음 경험해 보는 충격이었다.
두 군데 정도 더 가려고 계획했던 곳이 있었지만, 더 이동하는 건 무리였다. 자취방에 돌아와서 핸드폰을 확인해 보니 선우 형에게서 연락이 와 있었다.
[승빈아 너 하차해?]
[별 루머가 다 있다 진심]
[링크]
[아니지?]
[야, 왜 답이 없어.]
[이거 보면 바로 연락해라.]
“이건 또 뭔 소리야?”
갑자기 하차라니? 허무맹랑한 소리에 링크를 눌러 보니 한 익명 사이트에 올라온 글이었다. 읽기도 전에 헛웃음이 나왔다.
“이게 다 뭐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