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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할 거면 두 번 데뷔 안 함-57화 (57/346)

57화

기뻐하던 김형석도 얼마나 놀랐는지 딸꾹질까지 했다. 들어오자마자 갑자기 중간 점검이라니. 물론 김형석은 평가 대상은 아니겠지만, 아무리 그래도 그 고생하고 올라왔는데 축하받을 시간도 제대로 안 주는 건 너무한 거 아닌가.

연습생들도 허둥지둥 팀원들끼리 모이기 시작했다. 새롭게 팀 멤버가 조정되고 겨우 이틀 지났는데 중간 평가라니. 하지만 진짜는 이다음이었다.

“그리고 여러분들을 평가해 줄 스페셜 손님들이 와 계십니다.”

“스페셜 손님?”

“뭐야?”

그리고 강당 문이 열리더니 각 노래의 작곡진과 안무가들이 들어왔다.

“헐…….”

“망했다.”

“아오, 진짜 씨넷…….”

다짜고짜 처음 보는 사람들 앞에서 무대를 하라니. 대다수의 연습생은 말 그대로 멘붕 상태였다. 그리고 이유는 다르지만 내 상태도 그다지 다를 게 없었다. 작곡진의 깜짝 등장은 이미 알고 있는 내용이었음에도, 김형석의 하트창이 머릿속을 어지럽게 만들었다.

“문승빈, 박재봉, 차지운? 여기도 섹시 컨셉만큼이나 어벤저스네?”

“또 부담 준다.”

“그만큼 기대가 된다는 거죠.”

벌써 3번째 중간 평가인데도 긴장감은 여전했다. 데뷔권 연습생이 3명이나 있는 팀이니 연습생들과 트레이너들이 가지는 기대치가 높다는 것에서 오는 부담감도 꽤 컸다. 게다가 처음 보는 작곡가 스노우튠과 안무가 앞에서 해야 하니 더 잘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럼, 한번 봐 볼까?”

“네!”

빠르게 대형을 정리했고 무대를 시작했다. 긴장을 풀기 위해 평소보다 더 텐션을 높여서 춤과 노래를 했다. 다행히 각자 맡은 파트는 실수 없이 끝냈다. 앞에 있는 트레이너와 스노우튠, 안무가의 표정도 밝아 보였다.

“2절까지 다 준비해 왔네?”

“네. 시간이 조금 부족해서 뒷부분은 아직 충분히 연습을 못 했습니다.”

“응? 2절까지 준비해서 잘했다는 뜻이었는데?”

알고 있었다. 다른 팀들은 대부분 1절까지만 준비하거나, 그조차도 하지 못해서 쓴소리를 들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와는 다르게 아예 처음 듣는 노래와 안무를 바로 익히기가 쉬운 건 아니지. 하지만 다른 팀과는 다르게 우리 팀이 잘한 점을 한 번 더 강조할 기회였기 때문에 일부러 모른 척한 것도 있었다.

평가지를 작성하던 스노우튠 작곡진 중 한 명이 물었다.

“메인 보컬 한 연습생이 문승빈 연습생 맞죠?”

“네!”

짧은 순간이었지만 약간 긴장했다. 내가 해석한 곡의 방향과 작곡가가 생각한 것과 다르면 어쩌지 하는 걱정이 컸다. 하지만 걱정과는 다르게 사람 좋은 웃음으로 칭찬했다.

“제가 상상하고 바랐던 보컬 그 자체라서 놀랐어요.”

“맞아요. 저랑 누나랑 의견이 한 번에 통한 적이 없는데, 승빈군 노래 잘한다는 건 둘 다 인정했어요.”

“감사합니다!”

“몽환 컨셉이어서 노래 가사가 조금 추상적인 게 많았을 텐데 감정도 너무 좋았고, 컨셉에 맞는 음색이나 보컬 스킬도 너무 좋았어요.”

“저는 특히, 후렴구에서 약간 긁는 소리 냈잖아요. 맞죠?”

“네.”

“저희가 노래 만들면서도 딱 소년과 성인 사이의 느낌이 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긁는 소리로 약간의 야성? 같은 걸 추가한 거 같아서 저는 너무 좋게 들었어요.”

역시 상태창은 거짓말 안 한다. 처음부터 끝까지 내가 창조해야 했기 때문에 노래 스텟창이 올라가는 것을 보면서도 처음으로 긴가민가했는데 이로써 의심을 거둘 수 있었다.

“그리고 차지운 연습생도 인상 깊었어요.”

“음색 자체는 이번 컨셉이랑 노래에 제일 잘 어울린다고 생각해요.”

여전히 칭찬은 어색한지 연신 감사하다는 말만 하는 지운이 형이다.

“안무는 전체적으로 누가 이끌었어요?”

“지운이 형과 제가 주도적으로 했습니다.”

“지운이는 이 팀에 이번에 들어간 거 아니었어?”

“네.”

“안무를 엄청 빨리 따나 보네요?”

“아, 지운이가 예전에 댄스 크루 멤버였거든요. 댄서 경험도 있고.”

“아- 어쩐지 춤출 때 눈에 띄더라고요.”

‘기다릴게’는 힘 있으면서도 부드러운 선이 필요한 동작이 많았다. 그리고 동작이 빽빽하게 채워지지 않았는데, 그래서 더 난이도 있는 안무였다. 동작이 많으면 춤을 잘 춘다고 생각할 수 있는데, 사실 춤을 배우고 추다 보면 동작이 적은 춤을 추는 게 훨씬 어렵다. 기본기가 부족하면 금세 실력이 들통나기 십상이다.

“무용 배운 적 있니, 지운아?”

“정식으로 배우지는 않았고, 학교 수업 때 잠깐 배웠습니다.”

“근데 춤 선이 되게 예쁘네. 나는 너 스트릿 장르 춤만 봐서 이런 장르도 잘 어울릴 줄 몰랐어.”

나도 공감하는 얘기였다. 1분 PR, 대면식 무대, 1차 경연 때도 주로 힘 있고, 강한 느낌의 춤을 춰서 무용 느낌의 안무가 잘 어울릴까 반신반의했다. 하지만 춤으로 다져진 힘에 긴 팔다리가 더해지면서 부드럽지만 강한 춤 선을 표현할 수 있었다.

나머지 팀원들도 보컬과 춤에 좋은 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박재봉에 대한 평가가 가장 마지막에 진행된 건 의외였다.

“킬링 파트를 박재봉 연습생이 한 거죠?”

“네!”

“음…….”

스노우튠의 표정이 애매했다. 미간을 찌푸리며 누가 봐도 무언가 마음에 들지 않은 얼굴이었다. 거울 너머로 박재봉의 표정이 실시간으로 변하는 것이 보였다. 감정 표현이 솔직한 만큼 얼굴에도 그대로 드러나려고 했다.

“뭔가 임팩트가 부족했어요.”

“재봉 연습생 노래도 춤도 웬만큼 잘하는 거 같았는데 저도 이 말에 동의해요. 딱 무대에서 터져야 하는 부분인데 아쉬웠어요.”

박재봉 자신도 아쉬운 듯 점점 고개가 떨궈지고 있었다.

“재봉아, 너 요즘 생각이 되게 많아 보여.”

“…네.”

“뭔가 프로그램 초반에는 자신감도 넘쳤고, 적극적이고 활기 넘쳤는데 지금은 뭐라고 해야 하지, 쫓기는 느낌?”

“맞아. 잘 해내고 싶은 마음은 앞서는데 잘 안 따라 주니까 마음의 여유가 없는 게, 노래나 춤이 되게 조급해 보여.”

역시 프로들의 눈은 속일 수 없었다. 한참 서로 의논을 하던 트레이너들이 결국 제안을 했다.

“킬링 파트를 다른 애들이 한 번씩 해 볼래?”

다들 갑작스러운 킬링 파트 제안에 당황스러운 듯했다.

“먼저 지운이부터 해 봐.”

“네.”

이 노래의 킬링 파트는 ‘기다릴게’ 가사에 맞춰서 애절하게 손을 뻗는 동작이었다. 지운이 형은 강점인 춤 선을 살려서 손끝까지 디테일을 살렸다.

“잘 어울리네-”

“괜찮다.”

다음은 내 차례였다. 박재봉에게는 미안하지만, 센터를 한 번쯤 해 보고 싶다는 생각에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 표정 연기를 했다.

“승빈이는 진짜 표정이 너무 좋아.”

“진짜 나중에 꼭 연기해라. 알겠지?”

“음, 킬링 파트를 누가 하느냐는 결국 너희가 정하는 거니까 판단할 때 도움이 되었으면 해서 해 보라고 한 거였어.”

그때 박재봉의 머리 위 상태창이 다시 빛나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겨우 절반 정도 남아 있던 하트창의 게이지가 줄어들었다.

[♡52% >49%]

‘지금 퍼센트가 떨어진다고?’

설마 하트창이 자신감을 나타내는 건가? 생각이 들어 다른 연습생의 하트창을 확인해 보려고 했다. 지난번 스텟창의 포인트를 분배한 것처럼 속으로 ‘하트창’을 불러봤지만, 원래 보이던 김형석과 박재봉 둘 외에는 달라지는 게 없었다.

다만 내 머리 위로만 하트창이 새로 나타났다.

[♡82%]

‘82%? 이렇게나 높다고?’

놀라운 수치였다. 대체 뭔지는 모르겠지만, 부디 나쁜 것만 아니기를 바랄 정도로.

평가는 아직 끝나지 않았고, 그 와중에도 박재봉의 하트창 게이지가 한 번 더 줄어들었다.

“등수도 6위잖아. 이제 안정권 아니야, 재봉아.”

[♡49% >44%]

퍼센트를 확인해 보니 순식간에 5%나 깎였다. 서바이벌 시작하고 처음 보는 박재봉의 모습이었다. 금방이라도 눈물을 쏟아 낼 것 같았다.

“재봉아, 충분히 잘하고 있으니까 부담 갖지 말고 잘해 보자?”

‘저런 말을 들으면 더 부담을 갖지.’

“네…….”

“수고 많았다! 이 팀은 특히나 두 명이나 새로 들어와서 준비하기 힘들었을 텐데 이 정도 준비한 것도 정말 잘한 거야.”

“감사합니다!”

조금은 아쉬운 평가를 마치고 자리로 돌아왔다. 다른 팀의 평가를 보는 내내 박재봉은 확실히 평소와 달랐다. 조금 전 평가 때 표정 관리를 하지 못한 것이 마음에 걸렸는지, 대놓고 슬퍼하거나, 울적한 티는 내지는 않았다. 하지만 다른 팀의 무대에 리액션할 때도 평소의 텐션이 아니었다. 아무렇지 않은 척했지만 차오르는 눈물을 꾹 참는 게 눈에 보였다.

어떻게 기분을 풀어 줘야 하나 고민하던 중에 주머니에 남은 초콜릿을 건넸다.

“이거라도 먹고 힘내.”

“고마워요.”

쉬는 시간이었지만 카메라는 계속 돌고 있기에, 박재봉은 앞에 앉은 연습생의 등 뒤에 숨어서 초콜릿을 꺼내 먹었다. 그런데 순간 긴장이 풀린 건지, 눈물이 한 방울 흘러내렸다. 본인도 당황했는지 다급하게 눈가를 닦는 모습이 안쓰러울 지경이었다.

“아, 죄송해요.”

“괜찮아? 다음 팀이 마지막이니까 곧 끝날 거야.”

“네.”

눈치가 조금 없지만, 항상 해맑음을 유지했던 애가 오죽하면 이럴까- 안타까웠다. 과거의 내 모습이 떠올랐다. 티벡스로 데뷔했을 때도 초반에는 지운이 형의 인지도 덕분에 어느 정도의 관심을 얻을 수 있었다. 하지만 활동을 할수록 대중의 관심이 곤두박질치는 것을 느낄 때마다 자괴감이 들었다. 존재의 의미를 부정당하는 느낌? 무플보다는 악플이라는 말에 뼈저리게 공감하는 순간이 올 줄은 몰랐다.

그때의 나는 적어도 데뷔라도 했으니 망정이지만, 박재봉은 자칫하면 데뷔가 불투명해질 수 있기 때문에 더 불안할 것이다. 게다가 회귀 전 박재봉이 박승빈의 삶을 살았던 것을 생각하면, 박재봉이 반드시 데뷔한다고 안심할 수도 없었다.

‘빨리 하트창을 올리는 방법을 알아야 할 텐데-’

그때 생각 하나가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대중의 관심?’

굳이 많고 많은 모양 중 ‘하트’모양으로 생긴 이유가 분명 있을 것이다. 아이돌이 영향을 받는 사랑과 애정은 달리 말하면 대중의 관심인데. 그렇다면 하트창은 대중의 관심을 의미하는 것일까? 아주 잠깐 들떴었다. 곧바로 머릿속에 반박이 떠올랐지만.

‘하지만 박재봉이 아무리 등수가 떨어지고, 대중들의 관심이 줄어들었다고 해도 저 정도로 낮은 포인트를 가지는 게 말이 되나?’

단순히 대중의 관심을 표현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무언가 퍼즐 하나만 찾으면 완성될 거 같은데 그 한 조각을 찾는 게 보통 일이 아니었다.

‘진짜 뭐 하나 쉽게 알려 주는 게 없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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