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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할 거면 두 번 데뷔 안 함-56화 (56/346)

56화

박승빈, 투마월 시즌 4에서 마주한 유일한 남자 작가. 모든 방송가가 그렇듯 작가진은 여자 작가가 대다수였다. 그렇기에 더 눈에 띌 법했는데도, 존재감이 극도로 미미했던 자의 이름이었다. 아마 나와 동명이인이 아니었다면 이름도 기억하지 못했겠지.

“승빈아!”

촬영장에서 들려온 낯선 목소리가 부르는 익숙한 이름. 소리가 들리는 쪽으로 고개를 돌렸을 때, 나와 같은 곳을 바라보는 남자와 눈이 마주쳤다. 그게 나와 박승빈의 첫 만남이었다.

“어머, 승빈 씨, 미안. 승빈 씨 말고 박승빈 작가 부른 건데. 그러고 보니 승빈 씨랑 우리 봉봉이랑 이름이 같네요.”

“봉봉이요?”

“우리 승빈 작가 별명이 봉봉이에요.”

“아-”

“앞으로는 현장에서도 그냥 봉봉이라고 불러야겠다. 헷갈리겠네.”

성인 남성에게 붙이기에는 꽤나 귀여운 별명이라고 생각했지만, 별명의 주인공을 제대로 마주하니 한층 더 의아해지는 별명이었다.

색깔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무채색 계열의 옷과 제대로 눈 마주치기도 어려운 두꺼운 안경. ‘봉봉이’라는 상큼한 별명과 이렇게 안 어울릴 수가 있나. 근데 더 웃긴 건 이미 익숙한 별명인 건지 정작 본인은 봉봉이라고 불러도 아무렇지 않아 보였다는 거다. 그래서 가끔 현장에서 봉봉이를 부르는 소리가 들리면, 저 혼자만 피식거리던 기억이 떠올랐다.

키도 크고 말라서 옷핏이 좋은데도 저런 칙칙한 옷만 입고 다니는 게 아깝다는 생각도 했지만, 그냥 잠시 스쳐 가는 무의미한 감상일 뿐이었다.

근데 그게 박재봉이었다니. 박승빈과 박재봉. 그리고 박재봉과 박승빈. 도대체 그 두 이름 사이에 어떠한 간극이 있었던 거지.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머리가 깨질 듯이 아파졌다.

[♡52%]

그 와중에도 박재봉 머리 위에 동동 떠다니는 하트창. 저게 지금 사람 놀리나? 퍼센트로 표시가 된 걸 보면 저것도 뭔가의 달성률을 의미하는 거 같기는 한데, 지금으로서는 전혀 감을 잡을 수가 없었다.

“아, 그냥 기절하고 싶다.”

“승빈이 형, 형 진짜 괜찮아요?”

“어, 괜찮아. 얼른 가자, 승, 아니 재봉아.”

“그래요. 어쩐지 형 오늘 너무 무리한다 했어.”

그래도 재봉이 키는 잘 크겠네. 급하게 짐을 챙기는 동그란 뒤통수를 멍하니 쳐다봤다. 저렇게 조그마한 놈인데, 고작 4년 만에 그렇게 자란다고? 남 걱정할 때가 아니었다. 가끔 박승빈과 얘기를 할 때면 내가 올려다봐야 했으니까. 이런 생각까지 드는 걸 보니 복잡해진 뇌가 오늘은 더 이상 생각하기를 거부한 것 같다.

“형, 정신 차리고 얼른 갑시다.”

멍한 상태로 어떻게 걸어 온 지도 모르게 도착한 숙소. 간단히 씻고 나오니 창밖이 벌써 약간 밝아진 건 기분 탓이겠지? 박승빈과 박재봉, 그리고 하트창. 다시 머릿속이 복잡해질 뻔했지만 그것도 잠시, 기절하듯 깊은 잠에 빠졌다.

* * *

충격과 공포의 2차 순발식 방송이 끝나고, 윤승철이 말한 대로 씨넷 홈페이지에는 30위 후보인 김형석, 송호준, 강영빈 세 연습생의 1분 무대 영상이 올라왔다.

“야, 영상 바로 떴다.”

“진짜 방송국 놈들 지독하다.”

그리고 여느 때처럼 함께 9화를 본방 사수한 문스트럭과 K도 바로 영상을 재생시켰다..

무대에 오른 세 명도, 지켜보는 29명의 연습생도 누구 하나 웃는 얼굴이 없었다. 순위 발표식보다 더한 긴장감이 촬영장을 가득 채웠다. 영상으로만 봐도 현장의 분위기를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그나마 다행이라고 할지, 다른 탈락자들은 모두 촬영장을 떠난 이후에 녹화된 무대 같았다.

“분위기 봐라, 진심.”

“윤 피디 진심 싸패 새끼 아니냐고-”

“누가 피디 서바이벌 좀 하나 열어 줬으면.”

“야, 그런 서바이벌을 어떤 피디가 만들겠냐.”

“하긴, 그것도 결국 피디가 만들어야 하니까 할 리가 없네.”

정적으로 깨고 처음 무대를 시작한 것은 30위 김형석이었다. 그런데 무대를 가득 채운 노래의 전주는 이걸 보는 모두가 알고 있는 노래였다. 바로 이번 시즌의 시그널 송 ‘눈부셔’.

솔직히 뻔하다고 생각했다. 아무리 연습 시간이 짧았어도 그렇지, 시그널 송을 그대로 부르는 건 너무 성의 없는 게 아닌가? 하지만 그 생각은 김형석이 첫마디를 떼는 순간 완전히 사라졌다.

[눈을 떠 Right Now

나를 향한 네 시선이 짜릿해

지금 이 감정 절대 잊지 않아

오직 너를 위해 올라갈게

또 다른 나의 무댈 위해

눈을 떠 Right Now]

지금 자신의 상황에 맞춰 완벽하게 노래를 개사한 거다.

-뭐야 이거 눈부셔 아님?

┕눈부셔 맞는데 가사 뭐지??

-가사가 다른데??

┕22 눈부셔 아니고 눈을떠 잖아 지금

-가사 다른 거 맞음ㅇㅇ 원가사 이거임

[눈부셔 New World

나를 향한 이 시선이 짜릿해

너만의 스타 그게 바로 나야

오직 너를 위해 노래할게

새로운 나의 세상으로

눈부셔 New World]

-설마 형석이가 개사한 건가?

┕ㅁㅊ;; 맞는 듯ㅠㅠㅠㅠㅠㅠㅠ

-나만 이게 원래 가사같음?

┕22

┕33 ㄹㅇ 위화감이 없음

-독기 미쳤다;;

[티비 속 쟤가 내 새끼라는 엄마의 자랑

논란 속 걔가 내 가수라는 당신의 사랑

이 모든 걸 놓고 싶지 않기에

지금 이 감정 절대 잊지 않아

여기 이 무대 절대 잃지 않아]

심지어 댄스 브레이크가 들어가는 간주 부분에는 아예 새로 랩을 짜서 넣었다. 짧지만 그동안의 김형석 서사를 요약한 자전적 가사. 지켜보던 연습생 중 일부는 눈물을 훔치기도 했다. 특히 김형석이 유독 욕을 먹었던 1차 경연을 함께한 샷건 팀은 거의 오열 직전이었다.

“나 형석이 뽑는다.”

“아직 다른 애들 무대 보지도 않았는데?”

“야, 승빈이 봐 봐. 형석이 탈락하면 울 승빈이 울듯.”

“울기를 바라던 거 아니었어?”

“님, 제가 그 정도 쓰레기는 아니거든요?”

“아, 그러셨어요? 처음 알았네-”

-뭐야;; 문승빈이 김형석 낳았대?

┕문승빈만 안우는데 뭔소리;;

┕눈빛에 애정이 가득한데 무슨 안울었다 ㅇㅈㄹ

-샷건팀 진짜 애틋하다ㅠㅠㅠㅠ

┕샷건팀 못잃어.......☆

-생각해보면 형석이 고작 17살인데ㅠㅠㅠ

┕ㅁㅊ.... 그렇게 어렸음??

-중졸인 애를 욕할게 뭐가 있다고ㅠ

┕그니까 ㅅㅂ 형석이 고생했다 진짜ㅠㅠ

20분 만에 준비했다고는 믿을 수 없는 퀄리티와 아이디어의 무대였다. 그 누구보다 충격받았을 연습생이었지만, 그 짧은 새에 극복한 건지 오히려 독기로 가득한 무대에 다른 연습생 모두가 자리에서 일어나 박수를 쳤다.

“김형석 칼 갈았네.”

“독기 무슨 일이야.”

“형석이 원래 보컬멤 아니었어?”

“그니까 랩하는 거 거의 처음 본 거 같은데-”

“랩 메이킹도 자기가 한 거잖아. 돌았네.”

“야, 나도 그냥 형석이 뽑아야겠다.”

이어진 무대는 셋 중 가장 실력이 좋다고 평가받았던 송호준이었다. 모두가 예상하는 합류 후보였다. 하지만 긴장했는지 예상 밖의 실수가 이어졌고, 아무래도 김형석의 앞선 무대가 영향을 준 것 같았다. 마지막 순서인 강영빈 역시 덜덜 떠는 모습이 화면 밖까지 느껴질 정도였다. 다른 두 후보의 무대를 보고 나니 더욱 더 김형석의 무대가 대단하게 느껴졌다.

그러나 누가 최종 합류를 했는지는 3차 경연 시작 전까지 아무도 알 수가 없었다. 그래서 9화가 방영된 이후 온갖 인터넷 커뮤니티와 SNS는 전쟁 그 자체였다.

세 연습생의 목격담 루머가 온갖 형태로 올라왔고, 서로 자기 새끼는 탈락이 아니라며 부정했다. 점점 더 커지는 화제성에 제작진만 신났다.

[이거 강영빈 아님?]

누가 아이돌 아니냐고 목격담 올렸는데 넘나 강영빈인 것;;

-구씹 꺼져

-지금 목격담 뜬 거면 강영빈 빼박 탈락 아님?

┕그니까 ㅁㅊ

-뭐야 결과 벌써 나옴?

┕ㄴㄴ 목격담만 뜬건데 인증 없음

-사진에 얼굴은 보이지도 않는구만;;

┕긍까 이걸 보고 누군지 어케 알아??

-근데 저거 만약에 일반인이면 몰카 아님?;; 개념 무슨 일?

┕아니 일반인 아니더라도 몰카는 맞지

┕그건 그럼ㅇㅇ

[송호준이 뽑힌 거 레알임ㅇㅇ]

이거 송호준네 누나가 빛삭한 SNS인데 앞으로도 계속 응원해달라는 내용이었음

-떨어져서 응원해달라는 거 아님?

┕22 나도 이 말인줄?

-근데 뉘앙스가 탈락은 아닌 거 같은데;;

┕ㅇㅇ 앞으로도 (서바이벌을) 응원해달라는 말 아님?

-아니 근데 누나는 일반인 아님? 일반인 SNS까지 가져오냐;;

┕쟤네 누나가 #투마월 #송호준 태그달고 올린 글임ㅎ

┕아 미친,,,,,, 호준이는 데뷔 안했으면;;

-가족이 관종이면 답도 없음. 송호준 광탈 ㅅㅊ

[형석이가 떨어지지 않은 이유 ㅇㄱㄹㅇ]

그의 무대를 봐라, 떨어질 무대가 아니다.

-이건 또 무슨 신종 어그로임?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동의합니다^^

-솔직히 팔로워들이 눈이 있으면 김형석 뽑았지

-1분 무대가 형석이 레전드무대였다 인정?

┕쌉인정;; 형석이 약간 궁지에 몰려야 잘하나봐ㅠ

┕앜ㅋㅋㅋㅋㅋ 근데 이거 맞다. 1차경연도 깨지고 나서 정신차렸잖아ㅠ

-에휴ㅠ 안타까운데 진짜 평소에도 이만큼만 하지ㅠㅠ

┕어쩌면 간절함이 빚어낸 기적 아닐까,,,

┕진심,,,, 그냥 저때 누가 쟤 몸에 빙의한 거 아니냐며ㅠ

사람들은 타인의 행복보다 불행에 더 관심을 갖는다 했던가. 데뷔조가 누군지보다 30위가 누가 될지, 누가 마지막으로 탈락할지에 더 과몰입한 팔로워들이었다.

* * *

다시 시작된 연습. 오늘이었지, 마지막 연습생이 합류하는 날이.

“승빈이 형!”

예상은 했지만, 30위로 합류한 건 역시나 김형석이었다. 또 한번 과거가 바뀌었다. 회귀 전 투마월 시즌 2에서 김형석은 이번과 똑같이 30위를 했고, 최종후보 3인에 들었다. 하지만 결국 팔로워의 선택을 받지 못하고 탈락하고 말았다. 모두가 걱정했던, 30위를 했지만 탈락했던 비운의 연습생이 바로 그였던 거다. 그래서 이번에도 김형석이 30위를 했을 때, 불안한 마음이 더 컸다. 그때의 비극이 반복될까 봐.

“형, 저 진짜 형 덕분에 살았어요!”

“네가 잘한 거지.”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모두가 김형석의 합류를 당연하게 생각했다. 그만큼 인상적인 무대였으니까.

결국 이 프로그램의 끝에는 오직 7명의 데뷔조만이 서 있을 거다. 하지만 적어도 여기 남은 다른 연습생들의 삶이 조금 더 나아졌으면 한다. 다들 충분히 그럴 만한 사람들이니까. 지운이 형과의 데뷔만 생각하던 나에게는 실로 놀라운 변화였다.

“와, 겸손하기까지? 형 완전 제 생명의 은인이라구요.”

김형석을 알게 된 이후 가장 신나 보이는 모습이었다. 원하던 메인 보컬을 얻고도 초조해하던 1차 경연 때를 생각하면, 아예 다른 사람 같았다. 웃으며 어깨동무를 하는데, 그 순간 김형석의 머리 위에도 하트창이 나타났다.

[♡75%]

존재감을 과시하기라도 하는 듯 반짝이는 하트창에 나타난 숫자는 박재봉을 훨씬 뛰어넘는 퍼센트였다. 잘못 본 게 아닌지 두어 번 눈을 깜박여도 숫자가 달라지지 않았다. 대체 뭐지? 처음 박재봉에게 하트창이 등장했을 때보다도 더 의아했다. 김형석이 박재봉보다 잘하는 부분이 있던가? 외적인 거나 실력적인 부분, 그 어떤 걸 떠올려도 마땅한 게 없었다. 그나마 조금 더 큰 키 정도?

혼란에 빠진 내가 정신을 못 차리는 동안, 김형석은 어느새 청량 팀 한 가운데 합류해 있었다. 하지만 훈훈한 순간도 잠시, 투마월은 역시 투마월이었다. 김형석이 청량 팀으로 투입되고, 그를 반가워하는 연습생들과 인사를 다 마치기도 전에 윤승철이 폭탄 발언을 던졌다.

“축하드립니다, 여러분. 드디어 모든 팀이 확정되었네요.”

“그럼 바로 돌발 중간 점검에 들어가겠습니다.”

네? 지금 여기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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