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혼자 할 거면 두 번 데뷔 안 함-55화 (55/346)

55화

예상치 못한 방식에 게시판이 난리가 났다.

-30위를 대중 투표로 뽑는다고?

-찐 30위는 누구인데 ㅅㅂ

-30위는 알려주는 거임?

“그리고 30위 후보는 방금 4분할에 나왔던 나머지 연습생 3명입니다.”

-ㅁㅊ

-저 중에 30위 투표하라고?

“실제로 32위는 송호준 연습생, 31위는 강영빈 연습생, 30위는 김형석 연습생이었습니다.”

-ㅅㅂ?

-미친놈들아

-뭐하자는거임?

-형석이 멘탈 나간 거 봐...

┕나였으면 카메라에 쌍욕한다.

┕애가 눈에 초점이 없어ㅠㅠㅠㅠㅠ

-거지발싸개 같은 놈들아 멀쩡하게 30위가 있는데 왜;;

“진짜 잔인하다.”

“형석이 어쩌냐.”

“세 명의 연습생은 순발식 촬영이 종료되는 직후 20분의 연습 시간을 가지고.”

“뭐?”

“네?”

“29명의 연습생 앞에서, 자유곡 1분 무대를 하겠습니다.”

-작작해 미친놈들아

-20분 만에 뭘 준비하라는거임?

-끝까지 비참하게 하네.

-그냥 탈락하자 형석아.

┕그게 나을 거 같다.

┕니들 형석이 팬 아니지.

┕무조건 3차 올려야지 뭔 개소리임 이건?

“1분 녹화 영상은 9화 방영이 끝나고 바로 씨넷 홈페이지에 올라올 것입니다. 공개된 순간부터 딱 하루, 24시간 동안만 투표가 진행될 예정입니다.”

-새벽에 누구한테 투표 구걸을 하냐고.

-화딱지 나서 하차한다 ㅅㅂ

-진지하게 폐지하면 안 됨?

-형석이 투표 좀 해줘ㅠㅠ

┕22

┕어리고 실력있는 형석이로 가자ㅠㅠ

┕그럼 뭐 함 인성이 덜 됐는데.

-호준이 뽑아줄 사람... 호준이 섹시컨셉 보고 죽을거라고

┕호준이 투표 안 할게 내가 님 살리는 거임ㅇㅇ

┕ㄲㅈ

“그럼, 팔로워님들의 신중하고, 현명한 선택을 기다리겠습니다.”

* * *

연습 영상 녹화를 마치고 모두 한곳에 모여 모니터링을 했다. 거울을 통해 보는 모습과 카메라로 찍히는 것에는 차이가 있기에 모니터링은 몇 번을 해도 익숙해지지 않았다. 같은 동작을 하더라도 더 크게, 힘 있게 해야 카메라에 담겼다.

“여기서 박자를 반박자 빨리 들어가는데, 정박자로 들어가야 해.”

“네!”

재조정 이후 나와 지운이 형의 주도하에 연습이 진행됐다. 이번에 영입된 거지만, 댄스 크루 실력 어디 안 간다고 당일 날 몇 시간 만에 안무를 모두 숙지했다.

다행히 다들 기본 실력은 있었기 때문에, 큰 무리 없이 연습을 잘 따라왔다. 초반에는 실력이 모두 다르다 보니 누구 하나를 이끄는 데 시간이 많이 들어갔는데, 그때와 비교하면 지금은 척하면 척이다.

“형, 이 부분은 이렇게 부르면 될까요?”

“불러 봐.”

[아직은 어려 보일지라도]

“지금 끝 음이 조금 불안하거든? 숨이 딸려서 그런 거니까, 복식 호흡 더 연습하고 불러 봐.”

“형은 진짜 연습생 생활 알차게 보냈나 봐요.”

“내가 좀 길게 하긴 했지?”

“아, 그런 의미는 아니었는데.”

“당연히 알지-”

연습생 3년에 망돌 2년이면 알차게 보내긴 했다. 그나저나 거의 매 경연 승빈 스쿨을 열고 있는 건 기분 탓이겠지. 전체 연습을 마치고 개별적으로 어려운 부분을 도와주는 시간을 가졌다. 추가적인 연습이 필요하지 않은 연습생은 잠시 쉬는 시간을 갖도록 했다.

어디서 웃음소리가 난다 했더니, 박재봉이 스태프들 사이에서 까르르 웃고 있었다.

“진짜 재봉아, 너랑 우리 엄마 아들이랑 바꾸고 싶다!”

“그니까, 저런 남동생 있었으면 내가 업어 키웠지.”

“저희 누나가 저 업어 키우긴 했어요.”

강도현과 투탑으로 친화력이 좋은 연습생이었다. 특히 자신보다 나이가 많은 어른들과 허물없이 지내는 모습이 신기할 정도였다. 아무래도 나이도 가장 어리고, 구김살 없는 성격이 어른들 눈에 좋게 들었을 것이다. 그리고 실제로 누나 3명에 늦둥이여서, 정말 남동생처럼 대하는 여자 스태프들이 많았다.

‘저 작가 누나 저렇게 웃는 거 처음 보네.’

여기 스태프들은 대부분 시즌 4에도 그대로 참여했다. 그래서 익숙한 얼굴들이 많았지만, 분명 내가 촬영장에서 본 모습은 저렇게 밝지 않았는데.

“봉봉아, 봉봉소다 사줄까?”

“아, 뭐예요~”

“어떻게 이름도 재봉이어서 별명이 봉봉이야-”

‘봉봉이?’

이제는 이름도 아니고 별명으로 부를 만큼 친해졌구나- 혼자 생각하던 찰나, 기시감이 들었다. ‘봉봉이’라는 말을 어디선가 들은 거 같았다.

‘어디서 들었지? 설마 박재봉도 과거에 나랑 연관된 사건이 있었나?’

그때 갑자기 상태창이 반짝였다. 뭐가 새로 뜨나 했지만, 잠깐 반짝이더니 사라졌다. 뭔가 시그널만 주는 느낌이었다. 지금까지 상태창에 변화가 생긴 것은 전부 과거에 나와 인연이 있던 인물과 함께할 때였는데.

박재봉과 나의 접점을 찾아야 했다. 당장 떠오르는 것은 없었다. 지금까지 상태창의 변화에 영향을 줬던 강도현, 김형석, 송호준은 전부 데뷔했었기 때문에 쉽게 기억할 수 있었다. 그런데 박재봉은 과거엔 데뷔하지 않았기 때문에 생각의 범위를 방송국, 연예계에서 더 넓혀야 했다.

“형.”

“…….”

“승빈이 형?”

“…응?”

고민에 잠겨 있던 나를 깨운 건 같은 팀 조진영 연습생이었다.

“아, 미안해. 어디까지 했었지?”

“여기 파트요.”

이번엔 큰 사건 없이 무대를 준비하나 했는데, 또 하나의 퀘스트를 마주한 기분이었다.

* * *

어느덧 시간이 새벽 3시를 향하고 있었기 때문에 대부분의 연습생은 숙소로 돌아갔지만, 우리 연습실 불은 꺼질 생각이 없었다.

“한 번만 맞춰 보고 오늘 연습은 끝내자!”

“네!”

“마지막이니까 다들 집중하고 실수하지 말자-”

“오케이!”

[깊은 잠에서 이제 깨어나

그대만의 소년이 될게

누가 뭐래도 One & Only]

“팔 돌리고! 왼발 먼저 보내고, 거기 표정 놓치지 말고!”

지운이 형이 하나하나 디테일을 맞춰 나갔다. 구령을 맞추느라 목에 무리가 갈 법도 한데 오늘의 마지막 연습인 만큼 아끼지 않았다.

“재봉아, 박자 빨라!”

“네!”

모니터링하면서도 지적을 받았던 곳이었다. 분명 박재봉의 스텟창 속 포인트들은 모두 우수한데, 연습 과정에서 실수가 계속 발생하는 것이 의아했다.

[이제는 숨기지 않아

그대만의 소년이 되었어.]

“끝!”

“후, 땀나는 것 봐.”

“수고 많았어, 다들.”

“형들도 수고 많았어요!”

모두 짐을 정리하고 숙소로 돌아가려는데, 박재봉만 거울 앞에서 떠나지 않았다.

“재봉아, 안 가?”

“저 몇 번만 더 맞춰 보고 갈게요. 먼저 들어가세요!”

“너무 무리하지 마!”

“당연하죠! 다들 안녕히 주무세요, 내일 봐요!”

5명이 핸드폰 플래시에 의존해서 옹기종기 모여 가는데, 티벡스 데뷔 전이 떠올랐다. 새벽 연습을 마치고 불 꺼진 연습실을 나올 때면, 겁이 안 나는 척하면서도 결국엔 이 자그마한 불빛이 필요했다.

“재봉이 혼자 올 때 무섭겠다.”

“박재봉 놀이 기구 타는 거 못 봤어? 담력 장난 아니잖아-”

“그리고 재봉이는 항상 새벽 연습 했으니까.”

맹하게 생겼지만 정말 악바리다. 저렇게 안 자고 연습만 하면 안 클 텐데, 나중에 데뷔한다면 박재봉 혼자 움푹 들어가 있는 거 아닌가- 쓸데없는 생각이 들었다. 건물 밖으로 나오니 새벽 공기가 제법 찼다. 외투 안으로 손을 집어넣었는데, 지나치게 가벼웠다. 이상한 마음에 반대편 주머니와 바지 주머니를 뒤졌지만 역시나 없었다.

“아씨-”

“왜요?”

“아, 나 핸드폰 두고 왔나 봐.”

“헐.”

“먼저들 들어가. 난 올라가서 그냥 재봉이랑 같이 숙소 갈게.”

“안 무섭겠어요?”

“그니까요. 형 귀신 체험 보니까 혼자 못 갈 거 같은데.”

“그거랑 같겠냐? 쓸데없는 소리 말고 빨리 들어가.”

자신만만하게 보냈지만, 사실 조금 쫄렸다. 혼자 엘리베이터를 타기는 무서워서 굳이 계단으로 향했다. 연습실이 3층이어서 그나마 다행이었다.

‘쫄지 말자, 뛰어가면 금방이야.’

운동화 끈을 두어 번 질끈 묶었다. 그리고 계단 손잡이를 파악하고 정말 무아지경으로 달렸다. 그러다가 정체 모를 검은 물체가 내려오는 것을 뒤늦게 발견했지만.

퍽-

“악!”

“뭐야?”

“누구야?”

그 순간 카메라 플래시가 얼굴을 향했고, 눈부심에 눈을 뜨지 못했다.

“아오, 그 플래시 좀 내려 봐!”

“뭐야, 문승빈 너였어?”

“정유현?”

하필이면 정유현이라니. 강도현이었어도 이렇게 가오 떨어진다는 생각은 안 들었을 것이다.

“핸드폰 없어?”

“…네.”

“하긴, 그러니까 이 어두운 곳에서 무작정 달렸겠지.”

“죄송합니다.”

“죄송할 거까지는 없고. 잘 잡고 가 봐.”

원래 한 번에 멈추지 않고 달려야 덜 무서운 건데, 저 자식 때문에 흐름이 끊겼다. 쉽게 발걸음을 떼지 못하자 정유현이 허공을 향해 휴대폰 플래시를 비췄다. 덕분에 계단 형태를 파악할 수 있었다.

“1분이면 되겠지?”

“…고맙습니다.”

“빨리 가는 게 좋을걸?”

“네?”

뭔 소리인가 했더니, 휴대폰 화면을 보여 주는데 절로 개또라이라는 말이 튀어나왔다.

[00;00;55]

“아, 진짜!”

온갖 나쁜 말을 꾹 참고 뒤도 돌아보지 않고 두 계단씩 뛰어갔다. 그리고 연습실에 도착할 무렵 정말로 불빛이 끊겼다.

‘조금이라도 괜찮은 놈이라고 생각한 내가 미쳤지.’

박재봉은 문을 열고 들어온 내 모습에 놀란 듯했다. 하긴, 새벽에 갑자기 뛰어 들어오더니 헉헉대는 사람을 보면 이상하다 느낄 만도 했다.

“형, 뭐예요?”

“나, 핸드폰, 후우, 두고 와서, 헉.”

“아, 제가 챙겨서 아침에 주려고 했는데.”

“너 연습 언제 끝나?”

“이번 한 번만 맞춰 보고 가려고 했어요!”

“그럼, 그냥 끝나고 같이 가. 야, 밖에 개어두워.”

“저 맨날 돌아다녀서 괜찮은데.”

‘내가 안 괜찮아, 이놈아!’

박재봉은 연습을 이어 갔고, 나는 연습실 뒤편에 대자로 누워서 숨을 골랐다. 숨을 너무 크게 쉬어서였을까, 선반 위에 있던 종이가 팔랑이며 떨어졌다.

“이게 뭐지?”

가사지였다. 그런데 여기저기 연습한 흔적이 가득해서 너덜너덜했다. 그리고 가사지 한구석에는 사인처럼 보이는 글자들이 몇 개 적혀 있었다.

[박재봉]

“사인인가?”

“어? 보지 마요!”

거울 너머로 종이를 보는 나를 발견하곤 박재봉이 종이를 낚아챘다.

“사인이야? 이야, 재봉이 벌써 사인 연습도 하고.”

“아니, 그냥 재미로…….”

“하긴 넌 데뷔할 거니까.”

“아니에요. 요즘 얼마나 고민이 많은데요.”

“왜?”

박재봉이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말하는 내내 근심 걱정이 가득한 얼굴이었다.

“순위도 6위로 떨어졌고, 2차 경연에서 기대에 못 미치는 무대를 보여 드린 거 같아요. 뭔가 갈수록 제가 특별해지지 않는 기분이랄까. 센터 했다는 걸로 계속 인기 있을 수는 없잖아요. 이러다 순위가 더 떨어지기라도 하면…….”

“쓸데없는 걱정도 많다. 사인이나 다시 보여 줘 봐, 요즘 누가 이름 세 글자로 사인하냐?”

“그냥 이름 아니거든요?”

그냥 이름이 아니라는 게 무슨 소리인가 했는데 정말 특이한 점이 있었다. ‘봉’의 받침에 동물 귀 모양 그림이 그려져 있었다. 고양이 귀인지, 토끼 귀인지, 여우 귀인지 뚜렷하게 구분이 안 가는 그림을 보면서 또 기시감을 느꼈다.

‘뭔가 익숙한데?’

“근데 동그라미 위에는 뭐야?”

무심코 던진 질문이었기에 이게 얼마나 큰 충격을 줄 것인지 알지 못했다.

“귀요.”

“왜 그려 놓은 거야?”

“토깽이 같잖아요.”

순간 머릿속을 스쳐 지나가는 장면 하나. 장소는 투마월 시즌 4 대기실. 정장을 입은 내 앞에 앉은, 자신이 입은 회색 후드 색보다 더 칙칙한 분위기의 남자 보조 작가.

[토깽이 같잖아요.]

눈앞에 오버랩 되는 장면에 등줄기부터 정수리까지 소름이 돋았다. 갑자기 표정이 바뀐 내 모습에 박재봉은 당황했는지 연신 내 이름을 불렀지만, 믿을 수 없는 진실 앞에서 온몸의 힘이 싹 풀렸다.

‘!!!!’

똑같은 버릇, 똑같은 이유, 익숙한 별명. 유난히 작가 누나들과 친한 사람. 그제야 투마월 시즌 4 촬영장에서 흘리듯 들은 말이 떠올랐다.

[봉봉이? 쟤도 원래 연습생이었는데 여기서 일하는 거잖아.]

모든 것은 단 한 사람을 가리키고 있었다. 절대 같은 사람이라고 생각도 못 했기 때문에 용의선상에도 두지 않았던 한 사람. 누가 봐도 태생부터 아이돌이라고 생각하는 지금의 박재봉과는 정반대에 서 있던 사람.

“박승빈?”

박재봉의 어깨에 손을 댄 그 순간, 그의 머리 위로 상태창이 반짝였다.

[하트창 발현]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