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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할 거면 두 번 데뷔 안 함-53화 (53/346)

53화

보현이 처음 박선우에게 관심이 생긴 후에 한 거라고는 위튜브에서 박선우의 무대를 정주행하는 것뿐이었다. 박선우는 오랜만에 보현에게 영감을 주는 사람이었기 때문에 무대를 보고 얻은 영감으로 디자인 창작물을 만드는, 딱 그 정도의 덕질이었다. 더 나아간다고 해도 포털 사이트에 박선우의 이름을 검색하거나, 사진 플랫폼에서 박선우의 사진을 보는 정도? 그러니 투표를 해야 한다는 것도, 어떻게 해야 하는지도 몰랐다.

“다시 생각해도 웃겨. 그냥 영상만 보면서 덕질하고 있었다니.”

“참나, 누나도 전에 해외 배우 덕질할 때 다를 거 없었으면서.”

“난 현지 연극 보려고 직접 비행기 타고 간 적도 있거든?”

“진짜? 와… 하긴 잡는 배우마다 상업 영화는 안 나오고 독립 영화나 연극만 했으니.”

“아픈데 들쑤시지 마라?”

“넵.”

“근데 누나는 나한테 할 말 없잖아?”

보현의 반격에 모연은 재빨리 말을 돌렸다. 그도 그럴 것이 모연이 보현의 계정으로 정유현을 투표한 사실을 들켰기 때문이다. 결혼을 조르던 보현에게 그녀가 제안한 조건 중 하나가 바로 이메일과 비밀번호 등의 정보 공유. 사실 청혼을 거절하려는 목적으로 던진 말이었는데, 그 정도는 문제없다며 흔쾌히 받아들인 보현 덕에 지금 둘이 이러고 앉아 있는 거였다.

암튼 그래서 서로 웬만한 개인 정보는 다 알고 있었는데, 그녀는 보현이 투마월을 볼 리가 없고, 알더라도 투표에는 관심이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처음 정유현 덕질이 들키고, 보현이 뜻밖에 덕밍아웃을 했을 때도 걱정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가 투표의 존재를 알게 되고 박선우에게 투표하려는데 이미 정유현에게 투표가 된 것을 보고 그녀의 완전 범죄는 검거되고 말았다.

“어떻게 이럴 수 있어?”

“아니, 너는 투마월은 어디서 알아 와 가지고…….”

“이거 어떻게 할 거야? 돌려내요!”

평소 반말을 하다가도 감정이 격양되면 존댓말을 하는데, 한마디에 반말과 존댓말이 섞인 것은 신혼 초에 했던 부부 싸움 이후로 처음이었다. 진짜 화났단 소리였다.

결국 모연이 3일 동안 박선우를 투표하는 것으로 극적 화해했다. 당시는 박선우가 20위권에서 전전하던 때여서 그가 더 화를 낸 거기도 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너무했어. 그때 정유현은 2위였고 우리 선우는 20위권이었는데 벼룩의 간을 빼먹은 거야.”

“미안하다고 했잖아.”

“솔직히 말해서 3일보다 더 많이 투표했지?”

다시 생각해도 억울한 듯 보현이 칭얼대자, 모연이 안주로 가져온 육포를 죽죽 찢으며 말했다.

“보현아.”

“왜?”

“적당히 하고 입 다물자?”

등 뒤로 오소소 소름이 돋았다. 본능적으로 위협을 느낀 보현은 재빨리 방송으로 화제를 돌렸다.

“근데, 오늘 순발식 하는 날 아니야?”

“그러겠지.”

“근데 왜 순발식 촬영장이 아니지?”

“그게 무슨 소리야?”

모연이 확인해 보니 정말 윤승철과 연습생들이 대강당에 모여 있었다. 방송 사고인가 싶었다.

-뭐임?

-순발식 안 해?

-얘네 또 무슨 꿍꿍이임? 하도 이상한 걸 해대서 감도 안 잡히네;;

그리고 윤승철의 폭탄 발언에 모연과 보현, 게시판 모두 충격에 휩싸였다.

“오늘 여러분을 부른 이유는! 3차 경연곡 공개와 팀 선정 때문입니다!”

“응?”

“뭐라고?”

-?

-???

-뭔 소리임??

-그걸 왜 지금 정해?

-방송사고각??

┕편집 오류 아니야?

이런 대중의 반응을 먼저 예상이라도 한 듯 자막으로 확인 사살을 했다.

[*방송 사고 아닙니다.*]

-이게 가능해?

-무대는 그럼 몇 명이 하는 거야?

“이번 시즌 2, 3차 경연은 지금 이 자리에 있는 50명의 연습생이 모두가 준비하게 됩니다.”

-설마 50명 다 경연 참여하는 거?

┕제발...

┕무대는 하게해줘

“하지만 무대에 오르는 연습생은 단 30명입니다.”

-아 ㅅㅂ...

-20명은 뭐가 되는거임?

┕탈락하는 거지

┕그럼 그냥 연습하고 무대 못 올라간다는 거임?

┕룰을 진짜 개 ㅈ같이 만들어놨네.

-재수없어 씨넷

“진짜 잔인하다.”

“윤 피디 칼 갈았네.”

-노래 선정 방식도 바뀌는 거 아님?

-시즌1에서는 노래 듣고 순위별로 선택하는 거였지?

-이것도 투표시키는 거 아니야?

하지만 ‘색깔 뽑기’라는 전무후무한 선정 방식에 게시판도 모두 할 말을 잃은 듯했다. 다행히 노래에 대한 반응은 좋았다. 특히 ‘섹시’ 컨셉의 ‘Checkmate’과 ‘몽환’ 컨셉의 ‘기다릴게’가 좋은 반응을 얻었다.

-ㅅㅂ...

-누구 대가리에서 나온 생각이냐? 시말서 쓸 준비해라ㅂㄷㅂㄷ

-색 잘못 뽑으면 ㅈ되는 거 아니냐곸ㅋㅋㅋㅋㅋㅋㅋㅋ

┕그건 좀 재밌겠닼ㅋㅋㅋㅋㅋㅋㅋ

┕윤빈이 귀여운 거 하고 박재봉이 섹시하면 ㅈㄴ 웃길 듯?

┕응 니 최애 안 맞는 컨셉 뽑길!

-야 그래도 노래는 좋다.

┕시즌1때 싼티난다고 쳐맞더니 제대로 받아 왔넼ㅋㅋㅋㅋㅋ

┕PTSD오네... 사랑의 핑팡퐁 기억나냐?

┕그 널 보면 핑! 돌아 팡!하고 터지는 내 마음에 퐁!퐁 뛰어들어 였나?ㅋㅋㅋㅋㅋㅋㅋㅋ

┕쿠루루핑퐁 잊지 마라

-스노우튠 노래네? 저기 숨겨진 명곡 되게 많음ㅇㅇ

┕가사 봐라... 역시 스노우튠 노래 믿고 들음

┕유명한 작곡가야? 못 들어봐서

┕케이팝 고인물들은 다 알걸? 주로 수록곡 위주로 작업하는 데 하나같이 명곡들임.

┕ㅇㅇ 알 사람은 다 아는 작곡팀.

“유현이는 무슨 색 뽑았을까? 몽환이나 섹시하면 좋을 텐데.”

“선우는 힙합이 제일 어울릴 거 같고.”

“큐트해도 잘 어울릴 거 같지 않아?”

“선우 귀여운 거에 알레르기 반응 있어.”

“…그런 것도 알아?”

“누나도 정유현이 싫어하는 거 잘 알잖아.”

“그야 유현이는 내 아들이니까.”

“와, 나 언제 아빠 됐어?”

“선우도 니 아들이라매.”

“졸지에 아들이 둘이나 됐네.”

수많은 덕질의 형태가 있지만, 이 부부의 덕질은 순도 99.99%의 유사 육아였다. 전광판 광고 디자인을 할 때도 자식에게 밥해 주는 부모의 마음처럼 최고의 것만 주고 싶어 하는 마음이었다.

윤승철의 충격 발표 후에 이어진 팀 선정에서는 색깔과 전혀 다른 느낌의 컨셉인 것과, 문승빈의 등장과 함께 차지운이 밀리는 과정이 나왔다.

-민호야...

┕검정이 큐트일거라고 누가 생각했겠냐ㅋ...

┕저 팀 구성 개망했넼ㅋㅋㅋㅋㅋ큐ㅠㅠㅠㅠㅠ 죄다 우락부락한 애들밖에 없어ㅠ

-이래도 되는거임? 무대 어떻게 하라고;;

┕아이돌인데 큐트 컨셉도 못하면 그게 아이돌이냐?

-승빈이 지운이랑 같은 팀 돼서 좋아한 거 같은뎈ㅋㅋㅋ;;

┕ㅈㄴ 무슨 운명의 장난이냨ㅋㅋㅋㅋㅋㅋㅋㅋ

┕문승빈 영혼 사라졌엌ㅋㅋㅋㅋㅋ

-아 ㅅㅂ 지운이 몽환 저 새끼 때문에 날렸네?

┕느그 지운이가 순위가 낮은 걸 어쩌라고.

┕결국엔 힙합 컨셉 갔네, 그럼 된 거 아님?

다음으로는 팀 배정 이후 연습생들의 연습 과정이 나왔다. 탈락 가능성이 높은 하위권인 연습생들이 많은 팀은 확실히 사기가 떨어지는 모습이 보였다.

[솔직히 30위 안에 들어갈 자신이 없어요.]

[다들 떨어질 거라고 생각해서 의욕이 없을 때가 많아요.]

-나 같아도 연습 열심히 안 함ㅎ...

-내 새끼 분량 갑자기 늘어난 거 같은데 전혀 기쁘지가 않음 ㅅㅂ

┕갑자기 분량 늘어나면 높은 확률로 떨어졌지?

┕ㅇㅇ재고처리 분량 개열받아.

그 와중에도 몸을 사리지 않고 연습에 임하는 김형석 연습생이 상대적으로 주목받았다.

[떨어진다고 해도 후회 없이 준비하고 싶어요. 그게 저를 응원해 주는 분들에 대한 예의인 거 같아요.]

“형석이 철들었네.”

“근데 저런 환경에서 지내면 철이 빨리 들 수밖에 없는 거 같아.”

“그것도 사람 나름이지. 나이만 먹고 허구한 날 사고 치는 연예인들도 많잖아.”

“하긴.”

-형석이 살아남았길ㅠㅠ

-목격담 뜨고 빛삭되지 않았나?

┕ㅇㅇ... 형석아 고생 많았다ㅠ

-차라리 열심히 하지 마, 이놈아ㅠㅠㅠ 노래랑 ㅈㄴ 잘 어울려서 더 눈물 남.

중간 평가 과정에서는 최성재 트레이너가 연습생들을 꾸짖는 장면이 나왔다.

[떨어진다 해도 후회는 남지 않게 해야지. 너희 여기서 떨어진다고 아이돌 준비 그만둘 거야? 열심히 하는 모습을 보여 줘야 사람들도 너네 기억할 거 아니냐고.]

“맞는 말이지만 저게 쉽게 되나…….”

“연예계가 보통 살아남기 힘든 곳이 아니니까 저렇게 말하는 거지.”

보현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최성재의 말처럼 여기서 탈락한다고 끝이 아니니까.

[2차 순발식이 곧 시작됩니다!]

광고 타임이 끝나고 드디어 본격적으로 2차 순발식이 시작됐다.

“쟤네 아이디어 되게 좋다, 그치?”

“청춘예찬 팀?”

“응. 교복 바꿔 입고 나왔나 봐. 지난번이랑 옷이 달라.”

“둘이 라이벌 고등학교인가? 게시판에 다 그 얘기뿐이네.”

-거의 예고계의 연고전 아님?

┕연고전이 뭐죠? 고연전 말하시는 건가요?

-지운이 노란색 잘 받네ㅠㅠ

┕다시 봐도 교복 입자고 한 거 미친거 같음;;

-승빈이 옷 조금 큰가봨ㅋㅋㅋㅋㅋ어깨가 좀 남네.

┕차지운 어깨가 태평양이어서 그런 거임ㅠㅠㅠ

-뭔 놈의 등장 장면이 교복 얘기만 하다가 끝나네.

-화음 ㅆㅅㅌㅊ야

-청예즈 영원해ㅠㅠㅠ

┕스페셜 무대 한 번만 해줘!!!

다음 팀은 나침반 팀이었다. 박선우의 등장에 보현이 카메라를 들고 연신 사진을 찍었다.

“아, 촌스럽게 왜 이래?”

“이러려고 카메라 좋은 핸드폰으로 바꾼 거라고-”

“아니, 화질이 얼마나 좋건 화면을 왜 찍냐.”

천장 카메라를 향해 박선우가 망원경으로 올려다보는 연기를 하자 보현은 홀린 듯 화면을 응시했다. 그러고는 바로 수첩을 꺼내서 무언가 끄적거렸다. 영감이 떠오르면 바로 메모하는 습관이었다.

“저기 유현이와 무임승차들 나오네.”

“이제 이름도 없이 무임승차야?”

“쟤네 때문에 내 새끼 고생한 거 생각하면-”

모연이 마시던 맥주캔을 찌그러트렸다. 정유현 팀의 등장은 심플했다. 다섯 명이 걸어와서 각자 포즈만 취하고 자리로 향했다. 이렇듯 오프닝은 아주 사소하고 찰나의 순간이지만, 그 짧은 순간에도 각 팀의 친밀도를 확인할 수 있었다.

연습생들이 모두 착석하고 29위 연습생이 누구일까 맞춰 보던 부부는 28위부터 뽑는다는 엠시의 말에 또 한 번 충격을 받았다.

“아씨, 이럴 거였으면 시즌 1 복습한 보람이 없잖아?”

“다 바뀌었네…….”

“30위도 이상하게 뽑을 생각인가 봐.”

-이게 뭔 X소리야?

-좀 평범하게 뽑아라, C(넷)발

-28위 성민호

┕민호 베네핏으로 살았구나ㅠㅠㅠㅠ

┕ㅅㅂ...이제 빼박 큐트 컨셉 해야 하는거임?

┕이걸 생각 못했네...

20위권 내에 청춘예찬 팀이 2명 호명되면서 게시판은 청예즈 전원 3차 진출을 위해 이수빈 연습생을 응원하고 있었다.

-감전좌 20위 ㅊㅋㅊㅋ

┕순위 엄청 올랐다!

┕너무 늙었어ㅠ

┕ㅇㅇ 활동하다가 군대 갈 듯?

┕동정표 너무 많이 받았음.

┕축하한다는 댓글에 눈새짓하네.

-수빈이 1차가 40위권 아니었나?

┕ㅇㅇ..29위나 30위 노려야 해.

┕씨더스타로 캐릭터 좀 생기지 않았나?

┕그렇게 해서 29위나 30위 노린다고ㅠ

┕청예즈 다 살아남아야 함ㅠㅠ

이어서 쉬어 가는 타임으로 나온 ‘고요 속의 외침’ 콘텐츠에서는 연습생들의 예능적인 모습을 많이 볼 수 있었다.

“누나, 저거 쇼츠 봤어? ‘안녕 클레오파트라’에 합성해서 만든 건데 나 진짜 빵 터졌잖아.”

“어, 박현수랑 무임승차1이랑 합쳐 놓은 거 봤는데 귀 나가는 줄 알았어.”

그리고 대망의 윤빈 ‘아닥모으면’ 발언이 나왔지만,

[윤빈 팀은 방송 불가로 통편집된 점 양해 부탁드립니다.]

자막과 함께 삐처리되어 모자이크된 입모양 컷으로만 지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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