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혼자 할 거면 두 번 데뷔 안 함-51화 (51/346)

51화

“7위, 차지운 연습생”

“대박-”

“형, 축하해요!”

지운이 형은 순위가 믿기지 않은 듯 주변을 두리번거리고, 자리에서 일어났다가 앉기를 반복했다. 안 올라가고 뭐 하냐는 윤빈의 손짓에 그제야 단상 위로 향했다. 마이크를 쥔 손이 떨리는지, 다른 손으로 꾹 붙잡는 모습에 내가 다 울컥했다.

“어… 일단 저를 투표해 주신, 아, 안녕하세요. 개인 연습생 차지운입니다.”

긴장한 나머지 자기 소개도 건너뛰고 소감부터 얘기할 뻔했다. 연습생들의 웃음소리가 들렸고, 오히려 긴장이 풀렸는지 지운이 형도 옅게 웃었다.

“제가 너무 긴장해서-”

“하하, 차지운 연습생. 지난 순위보다 무려 17위나 상승했고 데뷔조에도 들었으니 긴장이 될 만도 하죠. 천천히 해도 됩니다.”

“아, 감사합니다.”

“화이팅!!”

“축하해-”

심호흡을 하고 말을 이어 갔다.

“안녕하세요, 팔로워님. 개인 연습생 차지운입니다. 먼저, 이렇게 생각도 못 했던 높은 등수를 선물해 준 모든 팔로워님 감사합니다! 사랑에 보답할 수 있게 매 무대 최선을 다하고, 더욱 성장하겠습니다. 그리고 우리 청춘예찬 팀. 성재 형, 세찬이, 수빈이, 승빈이 너무 고맙다는 말 전하고 싶습니다. 전부 너희 덕분이야. 그리고 버스 광고 가득하게 응원의 말 적어 주신 모든 분께 정말 감사합니다. 포기하지 않아서…….”

목소리가 떨리더니 결국 말끝이 흐려졌다. 전광판에 비친 선우 형과 박재봉도 울먹이고 있었다. 울컥하던 것을 애써 참고 형은 소감을 이어 갔다.

“포기하지, 않아서.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믿어 주고, 격려해 주신 모든 분들 실망시키지 않겠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울음이 나오기 전에 말을 마치려고 했는지 두서없이 급하게 소감을 끝냈다. 하지만 꾹꾹 눌러 담은 진심이 전해지기에는 충분했다. 그 모습에 다른 연습생들도 박수로 격려했다. 7위 좌석을 향해 올라가는 얼굴에는 벅차오름이 가득했다.

다음 순위를 발표하기 위해 큐시트를 보던 윤승철이 고개를 갸웃했다. 전광판으로 보이는 윤승철의 표정 변화에 연습생들이 술렁였다.

“뭐지?”

“예상외의 인물인가 봐.”

“완전 올라가거나, 내려왔나 본데?”

“이 연습생이 지금 나올 줄은 저도 예상 못 했는데요. 이번 2차 순발식에서 의외의 결과가 많네요. 6위, 킨엔터테인먼트 박재봉 연습생.”

박재봉이 호명되자 모두 어리둥절했다. 센터를 하면서 화제성은 언제나 상위권이었고, 한 번도 3위권 밖으로 벗어난 적이 없는 연습생이었기 때문이다.

“안녕하세요, 팔로워님. 킨엔터테인먼트 박재봉 연습생입니다. 우선 6위라는 좋은 등수 만들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받은 사랑에 보답하고, 매 순간 성장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실망한 기색을 보이지 않으려고 했지만, 평소 텐션과는 확연하게 달랐다.

“어휴, 센터도 안전하지가 않네.”

워낙 새롭게 주목받는 연습생들이 많아졌기 때문에, 센터의 입지도 불안해졌다. 게다가 2차 경연에서 박재봉 팀의 무대가 큰 호응을 얻지 못한 것도 한몫했던 것 같았다.

’한동안 고민이 많겠네.‘

5위에 다른 연습생이 호명되면서, 생각보다 더 큰 순위 상승에 기쁘면서도 불안해졌다. 이렇게 갑자기 최상위권으로 올라가면 분명 끌어내리려는 어그로도 늘어날 것이고, 재수 없으면 악편의 타겟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1위 후보 연습생 4분할 공개합니다!”

전광판에는 정유현, 강도현, 나, 윤빈의 얼굴이 잡혔다. 모두의 예상에서 벗어나지 않은 결과였다.

’4등이어라. 제발-“

당연히 4등이라고 생각했다. 원래 최상위권인 강도현은 팀 베네핏을, 정유현은 개인 베네핏을 받았고, 윤빈은 상승세도 심상치 않았는데 팀 베네핏까지 받았기 때문이다. 내가 팀 베네핏을 받았더라고 해도 저 셋을 이기는 것은 무리가 있었다. 하지만 4위가 호명되고, 나는 잠시 표정 관리도 잊을 만큼 놀랐다.

“4위, JS 엔터테인먼트 정유현 연습생.”

“정유현?”

“응?”

“진짜?”

“이번에 왜 이렇게 순위가 널뛰냐?”

강도현도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는 듯 입을 틀어막았고, 윤빈은 말도 안 된다며 머리를 쥐어 잡았다.

“오마이갓.”

정작 정유현은 덤덤한 얼굴로 옷매무새를 다듬고 단상 위로 올랐다.

“안녕하세요, 팔로워님. JS 엔터테인먼트 정유현 연습생입니다.”

“지난번 2위였던 정유현 연습생. 이번 4위가 조금 아쉬운 결과였을 거 같은데요.”

“아닙니다. 4위라는 등수도 저에겐 정말 값진 등수입니다. 응원해 주시고, 투표해 주신 모든 팔로워님 정말 감사합니다.”

정유현은 고개 숙여 인사를 하고 순위석으로 향했다.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이후로도 충격적인 일들이 이어졌고, 그렇게 2차 순발식은 모두의 예상을 뒤엎는 이벤트들로 가득했다. 촬영이 끝나고 촬영장은 혼돈 그 자체였다. 몇몇 연습생은 허망함에 자리를 뜨지 못했고, 김형석은 몸을 가누지 못할 만큼 오열했다.

“어떻게, 흑, 이렇게 잔인할 수 있어요?”

“이게 무슨 희망 고문이야?”

“아니, 이건 너무 불공평하잖아요!”

3차 경연 무대를 꼭 하고 싶다고 했던 모습이 떠올라 더 안타까웠다. 그리고 투마월이 왜 그리 악명 높은 프로그램으로 유명했는지 몸소 깨달았다. 머리로 알고 있는 프로그램의 내용과 내가 직접 겪는 그 강도는 차원이 달랐다.

그렇게 2차 순발식이 모두 끝났지만, 촬영장을 떠난 연습생은 20명이 아니라 18명이었다.

* * *

순발식의 충격이 채 가시기도 전에 본격적인 3차 경연 연습이 시작되었다. 팀별로 탈락한 연습생의 수가 달랐기에, 연습에 앞서 재조정의 시간이 다가왔다. 탈락한 연습생들을 보내고 와서인지 기분이 이상했다. 절대 형을 떨어지게 하지 않겠다는 투지가 불타올랐다.

“우리가 이제 2명을 영입할 수 있는 거지?”

“응.”

“누가 올까? 왔으면 하는 사람 있어?”

“누가 방출됐는지를 알면 좋을 텐데.”

그때 익숙한 투마월 시그널 송과 함께, 윤승철의 목소리가 들렸다.

“팀 재조정을 위한 시간을 갖겠습니다. 먼저 8명이 생존한 화이트 팀은 2명의 방출자를 선정해 주십시오. 핑크 팀 역시 2명의 방출자를 선정해야 합니다. 최종 방출자 4명은 스태프의 안내에 따라 정해진 방에 모여 주시기 바랍니다.”

이제 화이트 팀에서 지운이 형이 방출되기를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럴 가능성이 희박하다는 걱정이 앞섰다. 힙합 컨셉에도 잘 어울리고, 이번에 7위까지 했으니 굳이 방출될 이유가 없었다.

두 팀이 방출자를 정하는 동안 지루한 대기 시간이 흘러갔다. 얼마나 지났을까, 마침내 제작진들은 영입이 필요한 몽환, 큐트, 청량 팀을 한 연습실로 모이게 했다.

“이제 방출된 연습생이 들어올 겁니다. 영입 순서는 랜덤 박스에 적힌 순번으로 정합니다.”

“승빈이 형이 뽑아요.”

“내가?”

얼떨결에 상자 속에 손을 넣었고, 2번을 뽑았다. 1번은 큐트 팀이었다.

방문을 열고 연습생들이 들어오는데, 유레카를 외쳤다. 신도 가끔은 내 편이다. 그게 아주, 아주 가끔이어서 문제지만.

“지운이 형?”

“재봉이?”

“재봉이는 섹시 컨셉이었으니 그렇다 해도 지운이 형은 왜지?”

“수빈이 형도 섹시에서 온 거지?”

“기찬이 형도 왔네.”

“그럼 30분의 상의 시간을 가지고, 영입 연습생을 뽑겠습니다.”

“네!”

의논을 위해 모였지만 그냥 지운이 형을 영입해야겠다는 생각뿐이었다.

“1순위, 2순위, 3순위를 정하자. 큐트 팀이 먼저 데려갈 수 있으니까. 먼저 나는 지운이 형, 재봉이, 수빈이 순으로 뽑고 싶어.”

“저는 수빈이 형이요. 목소리도 잘 어울리고, 비주얼도 잘 맞을 거 같아요. 그다음은 재봉이, 그리고 지운이 형이요.”

“저는 재봉이요. 인지도도 높고, 컨셉에도 잘 맞을 거 같고. 다음으로는 수빈이 형하고 지운이 형이요.”

‘이렇게 되면 지운이 형을 뽑을 명분이 없는데…….’

1순위로는 이수빈이 굳혀지면서, 최대한 지운이 형을 뽑아야 할 이유를 설명할 필요가 있었다.

“그런데, 우리 팀이 지금 보컬이 더 필요해. 메인 보컬은 내가 한다고 해도, 같이 받쳐 줄 리드 보컬이 적은데 지운이 형이 그 역할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해.”

“그건 기찬이 형도 비슷하지 않아요?”

“청춘예찬 무대가 최근에 방영된 거라 지운이 형의 보컬 능력을 팔로워분들도 잘 알고 있지 않을까?”

점점 설득이 돼 가는 얼굴이었다. 그리고 몽환적이면서도 도발적인 매력이 필요한 노래인데, 지운이 형 같은 유니크한 비주얼이 들어오면 더 큰 시너지가 날 것이라는 말도 덧붙였다.

“그럼 수빈이 형이 1순위, 지운이 형이 2순위, 재봉이 3순위로 하는 거로 할까요?”

“그래요.”

“그래.”

때마침 30분이 끝났고, 다시 한곳에 모였다.

“큐트 팀 먼저 영입 연습생 뽑겠습니다.”

‘제발 지운이 형만 아니어라, 제발…….’

“저희 팀은, 차지운 연습생-”

아, 이렇게 계획이 물거품이 되는구나- 낙담하던 찰나, 큐트 팀 연습생이 장난기 가득한 목소리로 말했다.

“옆 이수빈 연습생을 영입하겠습니다!”

“허-”

그 짧은 순간에도 긴장했는지, 안도의 한숨이 절로 나왔다. 박재봉을 안 뽑은 건 의외였지만 보컬 멤버가 부재했기 때문에 이수빈을 영입해서 메인 보컬로 활용할 생각인 듯했다. 지운이 형이 순위가 높은 보컬멤이기는 해도 저 얼굴을 큐트에서 데려갈 리가 없지.

“고마워요, 형!”

“우리도 잘 부탁해-”

“다음은 몽환 팀 영입 연습생 뽑겠습니다.”

“저희는 차지운 연습생과 박재봉 연습생을 영입하겠습니다.”

큐트 컨셉에 선택되지 못해서 울상이던 박재봉은 마지막은 피했다는 안도감에 펄쩍 뛰며 나에게 달려들었다.

“고마워요, 형!!”

“다들 고마워. 열심히 할게.”

한고비를 넘기고 긴장이 풀렸다. 형을 못 믿는 것은 아니지만 좀 더 확실한 길이 있는데, 굳이 어려운 길을 걷게 할 필요는 없지 않겠는가. 최대한 안정적으로 이 서바이벌을 끝내는 것이 나의 최종 목표였다. 1등이건 7등이건 데뷔만 하면 되는 거니까.

“그런데 형은 어쩌다가…….”

“우리 팀에 워낙 잘하는 애들이 많아서-”

“하긴. 거기 강도현이랑 김병대도 있잖아요. 박현수도 있고.”

섹시 컨셉에 정유현, 박선우, 윤빈이 있어서 가장 견제가 된다고 생각했는데, 힙합도 만만치 않은 조합이었다.

“어쨌든 새로운 노래인 만큼, 연습할 때 어려운 거 있으면 부담 갖지 말고 물어봐요. 재봉이 너도.”

“넵!”

그렇게 인기가 보장된 선곡, 만족스러운 팀 구성까지. 이제는 정말 탄탄대로라고 자신하던 내가 한 가지 간과한 게 있었다.

[제목: 기다릴게]

노래: ■■□□□

안무: ■■■□□

며칠째 노래 스텟이 요지부동이었다. 안무는 조금이나마 채워지고 있는데, 노래는 그대로였다. 보컬 등급이 A-인데 정작 해당 노래 스텟은 두 칸에 머물고 있어서 더 막막했다. 하지만 진짜 문제는 이게 아니었다. 이번 3차 경연은 신곡 대결이다. 말 그대로 내가 노래의 원곡자가 된다는 거다. 가이드가 있긴 하지만 도대체 왜 이런 목소리의 사람에게 가이드를 맡긴 건가 의문이 들 정도로 노래와 어울리지 않았다.

“몽환인데 왜 가이드는…….”

“몽환이 아니라 음침이라고 해야 할 거 같은데?”

메가 히트곡이었고 나도 여러 번 들었지만, 노래를 분석하기 위해서는 몇 번이고 반복해서 듣고 작은 디테일도 놓치지 말아야 하는데 몇 년 전 기억만으로는 역부족이었다. 게다가 노래의 실질적인 킬링 파트는 박재봉 파트였고, 메인 보컬 파트는 솔직히 말해서 임팩트가 부족했다.

한 마디로, 내가 ‘최초’가 되어야 하는 곡이었다. 이 노래만큼은 세상에서 내가 가장 잘 불러야 한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나만이 표현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일까-를 끊임없이 고민하다 약간의 도박을 해 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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