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혼자 할 거면 두 번 데뷔 안 함-50화 (50/346)

50화

1차 연습 기간으로 주어진 3일은 정말 빨리 지나갔다. ‘눈 깜짝하는 사이’라는 관용어구가 아니라고 주장할 수 있을 정도였다. 이곳에서 3일은 정말 눈 한번 깜짝하면 끝났다.

“벌써 2차 순발식이라니.”

“시간 진짜 빠르다-”

“이번에는 뭐 하면서 등장해야 하나. 승빈아, 너희 팀은 정했어?”

“대충은?”

“메이크업 다 받고 애들이랑 맞춰 봐야겠다.”

1차 순발식 연습생 등장 장면에서 참신한 아이디어가 많아서인지, 2차 순발식 등장부터 고민인 연습생들이 많았다.

“이번에도 다 살아남았으면 좋겠다.”

성재 형이 긴장되는 듯 발을 동동거렸다.

“긴장하지 마요, 형!”

“맞아요. 우리에겐 베네핏이 있잖아요-”

“맞네, 내가 베네핏만 생각하면 근심 걱정이 싹 사라져-”

이게 바로 청춘예찬 팀의 최대 장점이었다. 우울한 분위기가 5분을 못 간다는 거?

“2차 순발식 오프닝 스탠바이합니다!”

스태프의 공지와 함께 다시 촬영장으로 향했다. 지난 1차 샷건 팀 등장 때 너무 화제가 돼서 이번 퍼포먼스에 큰 부담이 있었다. 뭐 이런 거에 부담을 가져야 하나 싶었지만, 작은 분량이라도 허투루 낭비할 수 없다.

“청춘예찬 팀 준비하세요!”

“네!”

그래서 고심 끝에 이번에 준비한 퍼포먼스는 서로 교복 바꿔 입기였다. 8화 이후 서로 교복을 바꿔 입은 그림과 합성 사진 등 팬들의 2차 창작이 인기를 얻었던 것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다.

“와, 나 여기 예고 교복 입어 보고 싶었는데!”

“맞다, 수빈이는 일반고 다니지?”

“네. 연습생 하는 대신에 공부도 놓치면 안 된다고 무조건 일반고 가라고 하셔서.”

서로 사이즈가 달라서 어색하기도 했지만, 교복을 바꿔 입음으로써 잠시나마 각자의 학창 시절을 체험한 기분이었다. 특히 입장을 지켜보던 연습생들의 시선을 끈 것은 나와 지운이 형의 교복 교환이었다.

“지운이랑 승빈이는 그러고 보니까-”

“예고 중에서 제일 유명한 곳 아니야?”

“거기다가 저기 두 곳이 완전 라이벌 느낌 아닌가?”

내 모교와 지운이 형의 고등학교는 예고계의 양대 산맥이라고 할 만큼 인지도나, 연예인 배출에 일가견 있는 곳이었다. 그리고 매년 축제 기간이 되면 연고전을 방불케 하는 장기 자랑 대결이 있었다. 그런 두 학교의 교복을 바꿔 입는다는 것은 팔로워들에게도 보는 재미가 있을 거라 생각했다.

“할 수 있어, 우린.”

런웨이 끝에 와서는 5명이 화음을 맞췄다. 경연이 끝나고 시간이 꽤 지났음에도 호흡이 잘 맞았다.

나침반 팀은 항해사 컨셉의 무대를 준비한 팀답게 네 명이 선우 형을 감싸고, 선우 형은 위쪽에 위치한 카메라를 향해 망원경으로 올려 보는 연기를 했다. 그렇게 다섯 명이 주변을 순찰하듯 둘러보다가, 손가락으로 데뷔조 좌석을 향해 가리키고 보물섬을 발견한 거 마냥 힘찬 기합을 외쳤다.

“목청도 좋아-”

등장 퍼포먼스마다 눈을 떼지 못하고 리액션을 하던 옆자리 박재봉이 말했다.

“솔직히 등장 퍼포먼스 보려고 순발식 기다려져요”

“다들 뭐 이리 열심히 준비해 온 거야.”

“물론 순위 발표는 무섭지만.”

“인정.”

연습생들이 모두 자리에 앉고, 윤승철이 등장했다.

“안녕하세요, 팔로워님. 투마월 엠시 윤승철입니다. 지금부터 ‘To My World’ 시즌 2, 두 번째 순위 발표식을 시작하겠습니다!”

“긴장된다.”

“먼저, 28위부터 공개하겠습니다.”

바로 발표하는군. 언제 얘기하나 했다. 2차 순발식 역시 시즌 1과는 전혀 다른 방식이 하나 추가되었다. 3차 경연곡이 공개되던 날만큼이나 연습생들의 반응이 격렬했다. 촬영장이 연습생들의 수군거림으로 시끄러워졌다.

“원래 29위부터 해야 하는 거 아니야?”

“30명 올라간다는 것도 거짓말이었나?”

“말도 안 돼…….”

이미 알고 있는 반전임에도 불구하고, 너무하다는 생각은 쉽게 지워지지 않았다. 3차 경연 통과 연습생은 분명 30명이 맞다. 하지만 오늘은 29위까지 호명할 것이다.

“28위 연습생, 이번 경연 베네핏의 큰 도움을 받았습니다. 축하합니다. 와우 엔터테인먼트 성민호 연습생.”

“축하해요, 형!”

“성민호 연습생은 이번 경연 팀, 개인 1위를 하여 11만 표의 베네핏을 얻으면서 총 30만 5천 표로 28위에 안착했습니다.”

“대박, 베네핏 아니었으면 탈락이었던 거네.”

청춘예찬 팀의 정세찬이 26위, 성재 형은 20위에 호명됐다. 1차 순위 32위에서 12계단이나 상승한 결과였다.

“청춘예찬 팀 너무너무너무 고마워! 그리고 현장에서 할 수 있다고 응원해 주신 모든 팔로워분들 감사합니다! 포기하지 않고 더 발전하는 이성재가 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10명도 아직 발표 안 했는데 벌써 3분의 1이 지나가자, 자리에 남은 연습생들 사이에 긴장감이 감돌았다.

“뭐 했다고 벌써 20위야?”

“난 마음의 준비하고 있어.”

“나는 가망 없어. 이제 그냥 시청자 입장이 된 거지.”

우리 팀에서도 이수빈의 이름이 아직 불리지 않았다. 1차 순위가 40위권이었기 때문에, 어느 정도 마음을 내려놓은 듯했다.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떨구고 있었다.

“형, 같이 팀 할 수 있어서 좋았어요.”

“넌 무슨 벌써 떨어진 거처럼 그러냐.”

“미리 마음의 준비 하는 거죠, 뭐.”

회귀 전에는 2차 순발식에서 탈락한 연습생이었기 때문에 섣불리 위로의 말을 할 수 없었다. 그래도 혹시 청춘예찬 팀의 무대로 인해 바뀌게 될 가능성이 있지 않을까. 그러길 바랐고, 나답지 않게 조금은 무모한 말을 던졌다.

“너, 할 수 있어. 그니까 포기하지 마.”

“형한테 그런 말 들으니까 뭔가 용기가 생기네요.”

“그래?”

“형은 항상 최상의 선택만을 말하니까요.”

“누가 들으면 내가 점쟁이인 줄 알겠다.”

뭐, 여기 기준으로는 과거와 미래를 다 아는 사람이니까 점쟁이라는 말도 틀리지는 않네.

20위까지 발표를 하고 1차 순발식과 같이 VCR을 보며 쉬어 가는 타임이 있었다.

[고요 속의 외침-투마월ver]

2차 경연은 유독 고음이 많은 무대가 많았고, 이 때문에 고음 파트만 잘라서 마치 대결을 하는 것처럼 합성한 영상이 제2의 ‘투마월 도미노 ver.’처럼 밈화되었다. 이때부터 뭔가 이런 걸 주제로 콘텐츠를 찍겠다고는 생각했는데, ‘고요 속의 외침’이라니.

“저 날 목 나가는 줄 알았잖아.”

“난 목 다 쉬었었어.”

“문제가 너무 어려웠어!”

첫 번째 팀은 윤빈 팀이었다.

[제시어 : 열닭볶음면]

첫 제시어부터 PPL이라니. 정말 구석구석 잘 끼워 넣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열닭! 볶!음!면!”

성민호의 외침을 들은 윤빈이 긴가민가하다는 듯 답했다.

“아닥?”

상상도 못 한 단어에 연습생들이 더 놀랐다.

“이거 방송 가능해?”

“아니, 열닭!”

“제한 시간 지났어요, 넘어가!”

결국 ‘열닭볶음면’이 ‘아닥모으면’이 되면서 하나도 성공하지 못했다.

“열닭볶음면 말한 거였어? 나 그거 엄청 좋아하는데!”

“형 맨날 먹던 건데 왜 그랬어요!”

“아니, 아무리 봐도 아닥이라고…….”

“이거 또 삐소리 난무하겠네.”

에이스는 역시 박현수 팀이었다. 목청이 어찌나 좋은지, 귀마개를 하던 팀원들도 이거 고장 난 거 같다고 소리가 다 들어온다고 할 정도였으니 말 다 했다.

“한방! 능이 백!숙!”

“한방능이백숙?”

“어!”

“아오, 귀 따가워-”

주변에 있던 연습생들은 자진해서 귀마개를 장착하기도 했다. 다시 생각해도 엄청난 성량과 목청이었다. 다른 팀은 많이 해야 3문제였는데, 이 팀은 속전속결로 10문제를 맞추고 끝났다.

“이제 우리 팀 나온다.”

지운이 형의 말에 정신이 번뜩 들었다. 내가 또 무슨 짓을 저질렀던 거 같은데…….

[제시어 : 아메리카노]

“아메!리!카!노!”

“아메리카노?”

“어! 맞아!”

[빠른 속도로 전달하는 청춘예찬 팀]

그리고 문제의 마지막 주자가 나였다.

“아메리카노!”

“어?”

“아메리!카노!”

“메..라..카노?”

“응!”

“뭐라카노?”

다시 봐도 두 볼이 화끈거렸다.

“‘뭐라카노’는 진짜 생각도 못 했어.”

“나 저 때 배 찢어지는 줄 알았잖아.”

“야, 너무 웃어서 눈물 나네.”

주변 연습생들은 자지러지고, 배를 쥐고 웃는데 당사자인 나는 댄스 음악만 들릴 뿐이었다. 영문을 모르겠다는 눈으로 지운이 형을 보자, 지운이 형이 다시 소리를 질렀다.

“아니, 아니! 아메리카노!”

“아, 아메리카노!”

여기까지만 보여 주면 참 좋을 텐데, 그럴 제작진이 아니다. 그 뒤로도 내 활약은 계속됐다.

“승빈이 별명 생겼잖아. 맥 끊어서 맥가이버,”

“이거 언제 끝나?”

“승빈이 귀에서 불나-”

선우 형은 이미 호명 돼서 비어 있는 옆자리 연습생 의자에까지 쓰러져서 배를 쥐고 웃었다.

“아, 배 아파, 푸하하!!”

‘저 인간은 어떻게 나왔나 보자-’

조금의 실수나, 어벙한 모습을 보이면 가차 없이 비웃어 주리라 각오했지만.

“미친, 저거 방송 나가면 대박이겠다.”

“뭐야? 귀여워.”

인정하기 싫지만, 대박인 장면 하나 얻어 냈다. 정작 당사자는 닭살이 돋는다며 몸서리를 쳤지만.

“아, 왜 저랬대? 미쳤었나?”

아예 등을 돌려 버리는 선우 형을 보면서, 문득 의아했다.

‘저 비주얼이면 귀여운 거로 밀고 가도 될 텐데, 왜 저렇게 싫어하지?’

* * *

2시간 같았던 20분의 VCR이 끝나고, 순위 발표가 이어졌다. 12위까지 지운이 형의 이름이 불리지 않았다. 설마 하는 기대와 함께 혹시 사건으로 인한 여파가 커서 순위가 더 떨어진 건가 하는 의심도 있었다. 선우 형은 이제 갈 때가 됐다며 옷매무새를 다듬고 있었다. 그런데 11위는 뜻밖의 인물이었다.

“11위는, VM. 김병대 연습생입니다.”

“엥?”

“김병대?”

반쯤 일어나 있던 선우 형은 머쓱한 듯 다시 자리에 앉았고, 윤승철의 눈에 딱 들었다.

“박선우 연습생, 본인인 줄 알았어요?”

“네? 아뇨? 뭘 떨어트려서- 하하.”

“알겠습니다. 김병대 연습생 소감 말씀해 주세요.”

“안녕하세요, 팔로워님. VM엔터테인먼트 연습생 김병대입니다. 우선 투표해 주신 모든 팔로워님들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최선을 다하고 늘 겸손한 자세로 임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기가 많이 죽었네. 하긴, 1차 순발식 소감이 논란되면서 초반 욕받이 역할을 했으니까.’

언제 자리를 옮긴 건지 뒷자리로 온 선우 형이 쫑알댔다.

“나 이번에 안 불리면 좀 무서울 거 같-”

“10위는 트로피엔터테인먼트 박선우 연습생입니다!”

“미쳤다.”

저 언어 습관을 어쩌면 좋을까. 데뷔한다면 언젠가 논란 한 번은 날 거 같은데 말이다. 단상 위에 올라선 선우 형은 기쁨을 주체할 수 없는 듯 입꼬리가 계속 움찔거렸다. 광대를 내려 보려고 인중을 늘리는데, 저 얼굴 저렇게 막 쓸 거면 나 달라고 하고 싶을 지경이었다.

“와, 10위는 진짜 상상도 못 했어요. 저 지난번에 18위였는데.”

‘어떻게 등수도 18위냐…….’

“여기서 안 불리면 너무 무서울 등수여서 조마조마하고 있었는데, 10위여서 정말 다행입니다!”

‘야망이 없는 거야, 욕심이 없는 거야?’

“하지만, 이번에 10위라는 등수에 면역이 생겼으니 다음에는 데뷔조에 꼭 들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그렇게 하다 보면 파이널엔 데뷔하겠지요?”

아니네. 야망도 욕심도 있는 형이었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