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혼자 할 거면 두 번 데뷔 안 함-48화 (48/346)

48화

“그래, 하나 찍자.”

“응?”

“네?”

아니, 박재봉 쟤는 자기가 찍으라고 해 놓고 왜 놀라? 오늘 정유현한테 여러 번 놀란다. 생각보다 까탈스러운 애는 아닌 거 같다.

박재봉이 말한 것처럼 정유현 광고 바로 옆에 내 광고가 있었다. 여기 꽤 비싼 자리일 텐데 새삼 감회가 남달랐다. 우리 둘은 서로의 광고 사이에 서서 어색하게 포즈를 취했다. 박재봉과 지운이 형도 빨리 상황을 정리하고 싶었는지, 포즈나 표정에 대해 아무 말이 없었다.

그 결과 서로 반대 방향으로 광고를 가리키는 사진이 나왔다. 정유현의 광고를 가리키는 나와, 내 광고를 가리키는 정유현. 정말 두 번 보긴 힘든 광경이었다. 누가 보면 자기 광고도 못 알아보는 바보인 줄 아는 거 아닐까.

후다닥 찍고 대충 인사만 하고 돌아가려는데, 옆에서 누군가 조심스럽게 말을 걸었다.

“저기…….”

“네?”

광고를 보러 온 팔로워인 것 같았다. 네 명 중 누구한테 눈을 둬야 하는지 모르는 듯했다.

“사인 좀-”

“아, 네.”

“어떡해 미쳤나 봐, 종이랑 펜이 없는데.”

가방을 뒤지던 여자가 난처한 듯 말하자 지운이 형이 가져온 포스트잇과 펜을 꺼냈다.

“이거 빌려 드릴게요.”

“감사합니다!”

여자는 싸인을 받는 내내 입을 틀어막고 대박이라는 말만 반복했다.

“정말 감사해요, 네 명 모두… 꼭 데뷔하세요!”

“네? 하하, 감사합니다.”

“조심히 들어가세요-”

뒷걸음질 치며 소심하게 두 손을 쥐고 파이팅을 외치는 팔로워를 따라 네 명도 얼떨결에 파이팅을 외쳤다.

“그리고… 유현아, 사랑해!”

정유현 팬이셨구나. 마지막으로 모든 용기를 끌어 모은 듯한 우렁찬 발성에 다들 깜짝 놀랐다. 그 말을 마지막으로 팔로워분은 반대쪽을 향해 뛰어갔다. 내가 봐도 이렇게 귀여운데 정유현 눈에는 오죽했을까. 처음 보는 정유현의 꿀 떨어지는 눈빛이었다.

“이제 들어갈까?”

“그래야겠어요. 근데 왜 순발식 일주일 전부터 복귀하라는 걸까요?”

“그러게?”

그야 3차 경연곡 연습해야 하니까. 하지만 저 셋은 모르겠지. 투마월은 시즌 2부터 3차 경연 준비 방식이 바뀌었다. 원래 시즌 1에서는 2차 순발식이 끝나고 남은 30명끼리 3차 신곡 경연을 준비했다. 하지만 시즌 2 때부터는 50명끼리 3차 신곡 경연을 준비하다가 중간에 20명이 탈락하고, 다시 재조정을 하는 방식으로 바뀌었다.

연습까지 하고 탈락하는 연습생에게 너무 잔인한 거 아니냐는 비난도 있었지만, 그걸 뛰어넘는 화제성을 불러온 방식이었다. 그래서인지 이렇게 잔인한 중간 탈락 방식은 시즌 4까지 이어졌다.

* * *

“어떻게 이럴 수 있냐고!”

“덕계못 언제 벗어나냐…….”

삼성역 광고 투어를 마치고 훠궈를 먹던 문스트럭과 K는 웨이팅까지 해서 주문한 식사를 뒤로하고 절망에 빠졌다.

[오늘 삼성역에서 유현이, 재봉이, 승빈이 지운이 봤어요!]

(사인 사진)

시간 꽤 지나서 올립니다! 오늘 유현이 광고에 포스트잇 수거하러 새벽에 갔는데 네 명이 있는 거예요ㅠㅠ 거기서부터 심장 터질 것 같았는데 방해될 거 같아서 뒤에서 사진만 찍었다가 애들 가려고 하길래 완전 용기 내서 갔거든요? 근데 와... 나는 실제로 만나면 막 주접도 떨고, 사진도 찍어 달라고 하고 다 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애들 코앞에서 보니까 말이 안나와요. 진짜 너무 잘생김... 유현이는 사람 아닌 줄 알았어요. (타래로 이어서)

키도 엄청 큰데 얼굴이 진짜 작아요. 눈코입 들어있는게 신기할 정도... 그리고 실물 제일 놀란 건 승빈이. 화면으로는 엄청 말랑하게 생겼잖아요? 실물은 전혀 아님... 완전 이목구비 뚜렷해요. 그리고 재봉이도 완전 뽀짝하게 생긴 줄 알았는데 실제로 보니까 남자더라고요. 지운이는 역시 쎄게 생겼습니다. 냉미남 타입인데 엄청 착해요. 제가 종이랑 펜을 준비 못해서 당황했는데 자기가 챙겨왔다고 빌려줬어요.

이 홈마의 후기는 빠른 속도로 인터넷에 퍼졌다.

-ㅁㅊ 정유현 팔척이야;;

-피지컬은 차지운이 압승이네.

-아가가 남자일 수 있는 거임? 재봉이도?

-아씨 오늘 저기 갔었는데ㅠㅠㅠ

-근데 어쩌다가 저 넷이 모인거임?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리고 가장 화제가 된 건 정유현과 문승빈이 서로의 전광판을 가리키고 있는 사진이었다. 뒤에서 찍은 거라서 선명하게 찍힌 건 아니었지만, 방송에서는 나름 라이벌 구도를 가지던 둘이어서 그런지 사람들의 관심을 더 받았다.

-아니 근데 저럴거면 왜 같이 찍은거임?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저화질에서도 느껴지는 엉거주춤 어쩔거임ㅋㅋㅋㅋㅋ

-유현아 지령을 받은거면 당근을 흔들어주세요.

-저 둘 조합은 의외네.

┕오히려 좋아.

“아니, 시간대 보니까 딱 우리 도착하기 1시간 전 아니냐고.”

“내가 그러니까 일찍 가자고 했지?”

“야, 8시보다 일찍 갈 수 있었냐?”

“아오, 옆에 광고는 내가 건 건데.”

“그래도 너는 인증이라도 받은 거잖아. 지운이 꺼는 다음 주에 걸리는데 다음 주에 오지, 아쉽네-”

덕계못은 진리라더니. 최애를 마주칠 기회를 이렇게 눈앞에서 놓칠 줄이야. 게다가 자신이 건 문승빈 광고 옆의 정유현 최애의 목격담이어서 더 배가 아팠다. 이 사람도 덕후인데 왜 계를 타는 거냐고.

“승빈이 보고 싶은데…….”

문스트럭은 ‘승퍼피’ 인형을 흔들며 한탄했다. K는 그 모습을 보며 불안감이 엄습했다. 쟤 저러다가 분명…….

“아, X발!”

“야, 빨리 꺼내!”

“승빈아!!”

허공에 포물선을 그리며 승퍼피가 그대로 홍탕에 입수했다. 둘 다 재빨리 손을 뻗었지만 늦었다.

“X됐다…….”

구본진 덕질 때도 시세가 반포자이인 포카를 홍탕에 풍덩시킨 전적이 있었다. 어쩐지 기시감이 든다 했다.

“이거 다시 제작 넣으면 한참 걸리는데-”

그녀가 더 절망한 이유였다. ‘승퍼피’는 문스트럭이 입덕과 동시에 지인인 팬들과 직접 소량 제작한 인형이었기 때문이었다. 최소 수량 겨우 맞춰서 바로 주문 넣고도 한참 기다려서 지난주에야 겨우 실물 인형을 받았건만. 시간을 되돌리고 싶은 그녀였다.

“아씨, 웃어서 미안한데 풉, 이거 하나만 찍으면 안 되냐?”

“넌 이게 재밌냐?”

“안 웃기냐?”

“아, 장난칠 기분 아니라고. 그리고 이미 찍어 놓고 무슨.”

문스트럭은 집게로 인형을 꺼내들고 좌절했다. 백탕도 아니고 하필이면 홍탕이라니. 직원의 도움으로 얼룩은 어느 정도 지워졌지만, 하필 백구 인형이어서 황구가 되었다.

“눈물 난다, 진짜.”

“오늘은 울어도 인정.”

“내 승퍼피… 다시 제작 주문해야겠네.”

“야, 이거 내 계정에 올려도 돼?”

“너 진짜 못됐다.”

“웃음으로 승화시키자는 거지, 하하.”

“네 맘대로 하세요.”

될 대로 되라는 식으로 한 말이었는데, 그날 새벽 문스트럭은 까무러칠 소식을 들었다.

[야 미친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이거 무슨 일임?ㅋㅋㅋㅋㅋㅋㅋㅋㅋ]

[링크]

“이게 뭔데?”

링크를 들어간 문스트럭은 이마를 짚었다.

[그는 좋은 승퍼피였습니다...]

(홍탕을 뒤집어쓴 인형 사진)

리짹이 20K를 넘어가고 있었다. 인용을 보니 같은 경험을 한 사람들의 경험담이 올라오면서 투마월판을 넘어서 케이팝 대통합의 장이었다. 게다가 투디판까지도 넘어갔다. K가 추가로 보낸 링크를 보니 각종 SNS에도 사진이 퍼졌다. 그중에는 출처 표기도 없이 유머 계정에 올라온 것도 있었다.

-저거 원래 흰색 인형이라곸ㅋㅋㅋㅋㅋㅋㅋㅋ

┕아 그래서 사람들이 황구 됐다고 한 거야?

┕ㅇㅇㅋㅋㅋㅋㅋㅋㅋ

-인형 ㅈㄴ 귀엽게 생겼다 어디서 삼? 쿱팡 가면 있음?

┕쿱팡ㅋㅋㅋㅋㅋㅋ저거 저 팬이 자체 제작한거래ㅋㅋㅋㅋㅋㅋ큐ㅠㅠㅠ

┕아깝

┕진짜 피눈물 나겠다ㅠㅠㅠㅠ

-유독 저기에서 피해 보는 사람 많더랔ㅋㅋ큐ㅠㅠㅠ

┕다들 경험담 푸는데 웃겨가지고 숨넘어갈 뻔했잖앜ㅋㅋㅋㅋ

처음에는 자신의 괴로움이 웃음으로 소비되는 것이 짜증 났던 문스트럭도 더 처참하고 웃기게 망가진 인형 경험담들을 보면서 웃음을 참을 수 없었다. 오히려 자신의 승퍼피는 약과였다는 생각이 드니 한결 기분이 나아졌다.

그리고 결과적으로 그녀에게도 이득이 되었다. 훠궈에 빠진 승퍼피 글이 엄청난 관심을 받으면서 덩달아 ‘승퍼피’도 화제가 됐다. 글이 올라온 지 하루도 안 지났는데도 사진을 올린 K의 계정에 인형 구매 문의가 쇄도했다. 결국, 문스트럭은 못 이기는 척 홈 계정으로 승퍼피 제작 수요 조사를 올렸다.

[승퍼피 공구 수요 조사]

황구가 되어버린 승퍼피 글이 인기를 얻으면서 승퍼피 구매 문의가 엄청 많이 들어왔더라구요ㅋㅋㅋ 승빈이 입덕하자마자 지인들이랑 만들었던 인형이었는데 역시 귀여운 건 숨길 수가 없나 봐요.(웃음) 일단 제 인형이 저 꼴이 나서ㅠ 제 꺼 다시 만드는 김에 최소수량 맞춰보려구요. 구매의사 있으신 분들만 폼 작성 부탁드려요.

(승퍼피 공구 수요 조사 폼 링크)

-아 문스트럭이었어?ㅋㅋㅋㅋㅋㅋㅋ

┕저 사람 문승빈 네임드 아님?

-황구버전도 만들어주면 좋겠닼ㅋㅋㅋㅋㅋ

-아니 데뷔도 안했는데 인형이 나왘ㅋㅋㅋㅋ

-이러고 데뷔 못하면 뭐 되는거임?

┕그냥 인형 가진 사람 되는 거지.

┕아니 근데 저건 데뷔랑 상관없이 그냥 귀여워서 가지고 싶음ㅋㅋㅋㅋㅋㅋㅋ

┕ㅇㅇ나도 승프 아닌데 수요조사 참여함.

“데뷔를 못 하는 경우?”

문스트럭은 진심으로 코웃음 쳤다. 문승빈이 데뷔를 못 한다는 건 그녀의 머릿속 경우의 수에는 존재하지 않는 가정이었다.

* * *

“승빈아, 이 글 봤어?”

“무슨 글이요?”

“너 인형이 완전 인기 장난 아니야!”

“인형이요?”

선우 형이 보여 준 글에는 고추기름이 범벅된 강아지 인형이 있었다.

‘이게 뭔데 이렇게 난리지?’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그 인기를 실감했다. 승퍼피는 연습생들 사이에서도 화제였다. 합숙소에 와서 하루에 못해도 10번은 들었다. 대강당에 모이라는 안내 방송을 듣고, 대강당으로 향하는 지금 이 순간에도 말이다.

“벌써 인형도 생긴 문승빈~”

“인형 진짜 귀여워요.”

“승퍼피 하나 사야 하는 거 아니야?”

“아으, 알겠어요. 더 하면 놀리는 줄 알 거예요.”

대강당에 도착하니 역시 윤승철이 서 있었다. 연습생들 모두 경계 태세였다. 이곳에 불릴 때마다 도미노, 씨더스타 등의 깜짝 콘텐츠 촬영을 당하고 나니, 이번에는 또 무슨 이상한 걸 시킬까- 하는 불신이었다.

“안녕하세요. 투마월 연습생분들! 휴가 잘 보내고 왔나요?”

“네!”

“오늘 여러분을 부른 이유는!”

꿀꺽. 의도적으로 이어진 잠깐의 정적에 침이 목울대를 넘어가는 소리가 가득했다. 모두 긴장했겠지.

“3차 경연곡 공개와 팀 선정 때문입니다!”

“네?”

“3차 경연?”

“뭐야?”

“그걸 왜 지금?”

연습생들은 모두 충격에 빠졌다. 하긴 나 같아도 아무것도 모르고 저 소식 들으면 망치로 머리 맞은 기분이었을 것이다.

“아니, 그걸 지금 공개해?”

“2차 순발식 하고 나서 하는 거 아니었어?”

촬영장은 연습생들의 웅성거림으로 소란스러워졌다.

“시즌 1과 달라서 다들 많이 놀란 것 같네요?”

‘그럼 안 놀라겠냐?’

“이번 시즌 2 3차 경연은 지금 이 자리에 있는 50명의 연습생이 모두 참여합니다.”

“그러면 다 같이 기회를 얻는다는 건가?”

“대박. 그런 거면 오히려 좋지.”

그렇게 연습생들이 부푼 기대감을 채 드러내기도 전에 윤승철이 말을 이었다.

“하지만 무대에 오르는 연습생은 단 30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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